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4)
타티(3)
‘이록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형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어?’
‘…또 어디 가?’
‘아마도.’
‘형은 항상 어디 가잖아.’
‘그렇긴 하지.’
작은 웃음소리가 뒤를 잇는다.
‘나중에 이록이한테 누가 찾아올 수도 있거든.’
‘날?’
‘응. 형 친구.’
‘형한테 친구도 있어?’
‘…형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질문 하면 안 돼.’
그 말뜻을 깨닫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어쨌든 당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몰랐다. 그냥… 뭐,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길래 위로도 해 주었던 기억이 있다.
‘괜찮아! 나도 친구 없어!’
‘…와 …는 친구 아냐?’
‘걔넨 그냥 같이 노는 거고.’
‘보통 그걸 친구라고 해.’
‘그래?’
좀 더 나이를 먹고 생각하면, 그래.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연구소를 나온 뒤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긴 했지만…. 좀 더 평범한 환경이었다면 나도 망설임 없이 친구라고 대답했을 텐데.
……아니. 이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록아.’
‘어?’
‘형도 친구는 있단다.’
‘누구?’
‘……있어.’
‘그럴 수도 있지.’
어른의 자존심과 그걸 지키기 위한 거짓말에 대해 알 만큼 알게 된 나이다. 나는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또 형은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지만.
‘아니, 진짜 있…….’
진짜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듣는 귀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연구소 내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얘기는 연구소가 아니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이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형에 대한 이야기지.
‘이록아.’
다시 울리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혹시 형 친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거든.’
‘형 친구 없잖아.’
‘있다니까…. 어쨌든, 그러면.’
‘응.’
‘…아니, 나중에라도 혹시 형 친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친구 없으면서?’
‘그러니까 혹시라도.’
형은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키웠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넘게 지난 지금.
형이 말한 친구에는, 친구라는 사람에는 몬스터도 포함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형은 내가 이 몬스터를 만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뭐, 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서두를 뗀 걸 보면 형은 몬스터가 아니라 아버지의 김 군, 김유화를 염두에 두었을 확률이 높다.
김 군이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형도….
“…….”
[끄윽, 그거, 킁, 내놔.>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흡사 딸꾹질처럼 들리는 소리를 내는 요정을 보았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홍석영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던전에 혹시나 형이 있을까 두려웠다. 형. 정확히는 형의 시신.
누나가 진흙 던전에서 검을 주운 게 아니라면 어디서 주웠겠는가. 누나의 검이 형의 검이었다는 게… 거의 확실해진 지금. 누나가 이 던전에서 형의 시신을 수습하고 검을 주웠고, 진흙 던전에 있던 김 군의 시신까지 수습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마 홍석영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형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쉬운 게 아니다. 솔직히 형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아 있으면 좋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형이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빌어 왔는데.
하지만 객관적인 상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형이 살아 있었다면 절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형을 찾고 싶다. 나를 홀로 두지 않았을 형을 위해 나도 형을 홀로 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니. 지금 시점이라면 살아 있을 수도 있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낙관적으로 희망을 품고 싶지도 않다. 결국 실망하는 것은 내가 된다.
형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든, 이곳에 형은 없다. 하지만 형을 아는 몬스터는 있지 않은가. 아직 형에 대한 단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보고 형의 검을 내놓으라고 우는 걸 보면… 그리고 형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적대감이 없다. 형이 얘 무기를 훔쳤다면 절대 나올 리 없는 반응이다.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나 하기에 따라서 설득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예 말을 할 생각이 없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거.”
나는 검을 쥐고서 손을 뻗었다. 훌쩍거리는 몬스터가 목을 앞으로 쭉 뺀다.
그대로 손을 느리게 좌우로 움직였더니 검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해 몬스터의 고개도 돌아갔다.
“내 건데.”
[아냐!!>몬스터는 격하게 반응했다.
[네 거 아냐!>“내 거야.”
[아냐! 그거, 그거.>몬스터는 답답한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이전처럼 귀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화가 난 기색이 역력한 말이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아 어깨를 으쓱이자 놈은 인상을 썼다.
음.
말이 아니라 몸짓도 알아듣는다는 뜻인데.
이게… 인간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학습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거, 그거, 내 친구 거야.>놈이 말했다.
친구.
친구라.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이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정말 형과 관련되었다면 죽일 수도 없지 않은가.
“희재?”
[히재! 알아?>아까 자기가 이름을 말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이거 받은 거야.”
[받은 거?>“가족이 나한테 줬어.”
[가족?>놈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잊고 있던 걸 떠올린 듯한 반응.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너, 히재, 동생?>“…….”
놈은 허리를 낮추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호기심 많은 어린 동물 같은 몸짓이다.
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닮았네.>놈은 활짝 웃었다.
“…….”
[이름, 이름… 나 알아.>이번엔 내 눈이 커졌다.
안다고?
[나, 들었어. 어, 로. 이로. 그. 크. 큭?>어눌한 발음이 모이고 모여 익숙한 음절을 내뱉기 시작한다.
[이로, 이로옷, 그. 그읏…. 어려워.>알아듣지 못한 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놈이 어떤 이름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았다.
[이로, 이로… 옥! 이록!>“우이록.”
[마자! 이록, 이록! 그거, 너야?>놈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린애처럼 군다 싶어도 나를 경계하고 있기는 했었다.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숨쉬기 편하게 한결 가벼워지고, 단단히 굳어 있던 진흙 바다가 긴장이 풀린 것처럼 물결치기 시작한다.
만약 싸움이 있었다면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갑게 웃고 있는 놈과는 반대로 나는 도리어 긴장했다. 잊지 말자. 놈은 게이트를 진흙 속에 담글 만큼 영악한 놈이다.
[어.>그러나 놈은 금방 인상을 찌푸렸다.
[히재… 동생, 작다 했는데. 으으음?>“…….”
나는 어릴 때부터 또래에 비해 키가 컸다.
뭐, 이걸 몬스터한테 설명하고 있을 이유는 없고.
[아! 시간… 음, 음. 빠르다. 빠르네? 성장했구나!>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틀렸다고 정정해 줄 의리는 없다. 아니, 틀린 말도 딱히 아니잖아.
하지만 점점 밝아지는 던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난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어린아이를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상한 일이지….
[어…. 아. 아아, 히재, 동생?>적극적으로 거짓말하기는커녕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편리하게 생각해 주는 놈은 또다시 무언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동생.
희재 동생이라.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낯설기만 한 호칭이다. 내가 살면서 저렇게 불리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히재가, 히재 아는 사람 오면… 보여 주랬어.>“……형이?”
그리고 타인과 형에 대해 얘기하는 날이 올 거라고도.
놈은 진흙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그대로 진흙 안에 집어넣고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인상을 찡그린 채 한참을 그러고 있던 놈은 다시 환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진흙이 뚝뚝 떨어지는 손에는 무언가 쥐고 있었다.
놈은 내 앞에서 손을 폈다. 진흙 속에서 건져 낸 것치고는 깨끗했다. 잔뜩 구겨져 있긴 하지만.
“……이거, 형이 줬다고?”
[응! 히재가 줬어. 보여 주래.>“형을 아는 사람이 오면 보여 주라고 했어?”
[응!>“…….”
나는 몬스터의 손에서 잔뜩 구겨진 종이를 보았다. 기껏해야 명함 사이즈.
평소라면 한 번 보고 잊을 촌스러운 디자인과 글귀지만, 나는 저걸 본 적이 있다.
[안전운전! 왕처럼 모십니다] [홍씨 대리운전]각성자범죄수사실과 연결되는 전화번호.
김유화의 품속에 있던 대리운전 명함.
[요거! 요거도 보여 주랬는데!>놈은 명함을 두 손으로 들고서 명함 뒷면을 내게 보여 주었다.
김유화가 가지고 있던 명함에 쓰인 문구는 흐트러진 탓에 글씨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의 글씨는 한결 편안한 상황에서 썼는지 정자로 또박또박 적혀 있다.
얼핏 보면 다른 사람이 쓴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몇 가지 버릇이 같다. 그 두 개는 같은 사람이 썼다.
정황상….
[이걸 누가 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형이겠지.
이럴 때 형의 손 글씨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딱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내 앞에서 글을 쓸 만한 일이 뭐가 있었겠냐고. 한글은 형이 아니라 연구원들이 가르쳐 주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십 년쯤 지나면 전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김 군? 김 군의 선생님?] [누가 되었든]명함을 가득 채운 빽빽한 글씨.
그걸 망막에 새겼다. 혹시라도 또 저 글씨를 볼 일이 생기면 헷갈리지 않도록.
[이 애는 믿을 수 있습니다.]뜻 모를 말이 적혀 있던 김유화의 명함과는 달리 여기에는 숨김없이 모든 게 적혀 있었다.
그만큼 이 몬스터가… 걱정이 되었던 걸까.
[이름은 타티라고 합니다.]“……타티?”
[내 이름이야!>몬스터는 황금색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활짝 웃었다.
[이 애를 부탁드립니다.]* * *
“…그렇게 된 겁니다.”
“선생님!”
김채민은 손을 번쩍 들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김채민한테 동의했다.
반면 홍석영은 놈이 쥐고 있는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 아저씨가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감정이 줄줄 새고 있다. 어지간히 당황했다는 소리겠지.
저걸 믿어야 하나. 하지만 몬스터잖아. 그런데 저 명함은? 아니, 눈앞에 있는 건 요정인데!
…하는 얼굴.
애초에 홍석영보고 냅다 저놈을 믿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나조차도 믿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홍석영이 있으니 놈이 허튼 마음을 먹으면 바로 죽일 수 있다. 내가 믿고 있는 구석은 그것뿐이었다.
“타티.”
나는 조심스럽게 놈을 불렀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쭈뼛거리던 놈은 반색하며 대답했다.
[응? 왜?>“이 진흙을… 없앨 수 있을까.”
[응!>놈은 더 묻지도 않았다. 짧고 경쾌한 대답이 있고 난 뒤, 진흙은 서서히 수위가 낮아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