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5)
타티(4)
“너희 종족한테도 가족이라는 개념이 있나?”
[응?>“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얘네도 새끼를 낳는 건가? 아니면 난생?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났을 수도 있고.”
[히재?>“아니, 아냐. 타티, 널 낳아 준 사람이 있어?”
[나… 으응?>‘낳다’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다행히 타티는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 있다. 있어. 있어?>“나도 있어.”
짧은 단어. 한 단어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서 더 많은 단어가 필요했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일이라거나,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 던전 안에서만큼은 나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다른 복잡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 사이에서는 인간으로 있을 수 없는데, 정작 괴물이라 불리는 미지의 생명체 앞에서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타티를 보았다. 커다란 황금색 눈이 느리게 깜빡깜빡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머리카락 대신 나뭇가지와 이파리, 꽃이 달린 이질적인 생김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다. 그래, 아름답다.
인간적인 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섬세한 꽃을 그린 그림. 혹은 여름날 햇살 아래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무를 옮긴 그림과 같은.
이래서 간혹 홀려 버리는 놈이 있는 건가.
따지고 보면 그 빌어먹을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히재.>정신을 일깨우는 맑은 목소리가 상념을 멈추게 했다.
소녀 같은 외양과 새소리처럼 들리는 요정의 말, 그리고 한국어를 할 때의 어눌한 발음 때문인지 자꾸만 연구소에 있는 동생들처럼 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애의 주도로 가끔 연구소에 폭동을 일으키곤 하는 아이들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미안하다. 게다가 어리다고 느껴지는 건 외모와 목소리 같은 외양뿐이었지, 그 속까지 어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타티가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놀랍다?
아니. 무섭다.
발음조차 흉내 내기 어려운 언어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익힌다. 봐라. 낳는다는 개념. 가족이라는 개념.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 그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
내 부실한 설명으로도 금방 이해했다.
그래. 잊으면 안 되지. 지금은 저렇게 헤실거리며 웃고 있어도 타티는 내가 게이트 생성에 휘말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날 죽일 생각으로 공격했다. 쉽사리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자 던전을 진흙으로 가득 채우는 결단력까지.
도중에 나를 꺼내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다.
…타티에게 다른 종족,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죽었다.
[히재?>나는 타티의 진흙을 뭉쳤다. 연구소에 있는 애들이 만들던 것처럼 섬세한 형태는 만들지 못했다. 걔넨 찰흙으로 별 이상한 것도 잘 만들던데. 그래도 덕지덕지 진흙을 덧붙이자 대충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 나오긴 했다.
“응. 이걸 나라고 하면.”
[히재? 으으응. 알았다!>타티는 내가 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를 따라서 진흙을 뭉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진흙 인형이 만들어졌다. 머리가 있고 팔 두 개, 다리 두 개.
타티는 손을 뻗었다. 옆에 있던 나무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불쑥 내려왔다. 타티는 그걸 꺾더니 이쑤시개처럼 얇은 가지를 제 진흙 인형의 머리에 꽂았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거, 타티?”
[응!>타티의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맑은 웃음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다시 진흙을 뭉쳤다.
나는 내 진흙 인형 옆에 그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인형도 만들었다.
“이건 내 동생.”
[동생….>“나보다 늦게 태어난 가족.”
[가족, 늦게…. #*#!$@>봐. 이해력이 좋다니까.
타티도 나를 따라서 자그마한 인형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머리에 얇은 나뭇가지를 꽂고 있는 타티와는 달리 작은 잎사귀를 하나씩 달고 있었다.
나는 내 인형 옆에 있는 작은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얜 이록이야. 이록.”
[이… 음?>“이록. 동생 이름.”
[동생…. 이… 이로. 이로, 크? 그?>“아. 이 발음이 어려운 건가…. 다른 발음은 또 잘하더니.”
낯선 발음에 고생하는 타티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타티는 나를 가볍게 흘겼지만, 크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하늘을 보았다. 지금 바깥 시간이 어떻더라? 던전에 들어오면 모든 시간을 잊게 된다.
태양도 없는 던전. 항상 밝고, 항상 어둡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머리 위에 가득한데 아름답다기보다는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작은 인형들을 보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결국 우리의 유전자는 같다. 내 유전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한 소리인가. 그 약들이 정말 각성이나 마력에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아니어도 나처럼 각성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계획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여기에 데리고 올 수 있을까. 타티를 소개하면서 세상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 말고도 호기심 많고 잘 웃는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말해 줄 날이 올 수 있을까.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다.
“그래도 혹시라도.”
[응?>“네가… 내 동생을 만나게 되거든.”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던전이다.
[히재 동생?>물론 걔가 각성하기도 전에 타티의 던전이 공략될 수도 있다.
내 계획이 실패해서 전부 다 끝장날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나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을 담아 타티에게 말했다.
“걔랑 친하게 지내 줘.”
[친하게… 친구?>“그래. 친구.”
형은 친구가 없지 않냐는 그 맹랑한 말이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걔랑도 친구가 되어 줘.”
* * *
[친구!!!>놈은 어디서 도자기 인형을 꺼내 오더니 졸지에 인형극을 시작했다.
“…….”
솔직히 어린아이 소꿉놀이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매끄러운 설명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수려한 문장을 완성하는 건 어려워했지만 툭툭 내뱉는 단어는 핵심을 제대로 짚어 내고 있다. 어리숙해 보이는 외견에 속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쫓아내기만 했다가, 그다음에는 게이트를 통째로 진흙 속에 담가 버린 놈이다.
…누나의, 형의 검을 알아봤다면 왜 굳이 던전에서 쫓아냈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헤실헤실 웃고 있는 요정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헤죽거리며 웃었다.
[히재 동생!>“…….”
이거, 그렇게 쫓아내면 다시 들어올 거로 생각해서 그런 거 아냐? 게이트를 진흙에 넣고 나면 좀 더 쉽게… 산 채로 잡을 수 있고, 그럼 대화하기도 쉬울 테니까?
대화가 아니더라도….
음.
심증은 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물어볼까? 대답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물어봐서 딱히 손해 볼 일은 없다. 대답을 하면 좋고, 아니면 마는. 딱 그 정도의 일이니까.
홍석영만 없었다면 말이지.
나는 홍석영을 보았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홍석영도 대충 눈치챘을 것 같긴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뱉을 이유도 없겠지. 홍석영의 경계만 올릴 거다. 안 그래도 당장 놈의 목을 날리고 싶어서 움찔거리고 있는데.
다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놈이 어떻게 형을 만났는지, 형과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알겠다.
그러면… 그다음은? 형이 저 명함을 놈에게 주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아… 마자, 이거.>도자기 인형을 가지고 신이 나서 한참을 떠들어 대던 놈이 눈을 끔뻑거렸다.
[이거… 말하랬는데.>문장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음. 한동안 쓰지 않았던 언어를 다시 기억해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찾는 사람 오면.>“오면?”
[거기, 가랬는데….>놈은 눈을 데굴데굴 굴렀다.
“…….”
[…….>아직 우리 사이에는 김채민의 마법이 있다. 이 마법을 풀 만큼 믿음이 있지는 않다.
[거기…….>놈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것마저도 인간과 너무 닮아 있다. 형에게 배운 건가? 아니면 이 던전에 들어왔던 수많은 인간에게서?
인간의 행동을 배운 것이라면…. 놈은 어느샌가 도자기 인형을 놓고 명함을 매만지고 있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눈치를 살피는 시늉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닫는다.
“타티.”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홍석영이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놈의 이름이다. 내가 비교적 편하게 소개하긴 했지만 홍석영이 제일 먼저 그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
놈, 타티의 눈이 커졌다.
“그 명함은 내 친구가 가지고 있던 것 중 하나네.”
홍석영은 품속에서 타티가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명함을 꺼냈다. 김유화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거면 우리가 같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나?”
[……^*)&&$^($&>타티는 활짝 웃었다. 이전에도 경계심 없이 웃고 있다고 생겼는데, 그것과 이건 또 다른 문제였던 모양이다.
[친구!>“그래. 친구.”
홍석영은 타티를 보며 마주 웃었다.
…괜찮은 건가?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한다고?”
[나, 잘 몰라.>“잘 모른다고?”
[여기 밖…. 여기의 어, 이름?>“괜찮아. 말해 주기만 하면 돼.”
[!%##가 있는… 가, 워도? 강, 원.>명함 한 장에 요정의 입은 쉽게도 열렸다.
“……강원도라.”
홍석영은 나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요정의 설명을 들으니….
“진흙 던전이잖아.”
“진흙 던전이네요.”
“아, 거기요? 저 거기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한 번 더 가요.”
나는 타티에게 재차 물었다.
“다른 곳은 없어? 거긴 이미 갔다 왔어.”
[어? 갔다 왔어?>“형이 거기만 말했어?”
[어….>타티는 눈을 깜빡였다.
[어, 어어, 거기?>“거기? 어디?”
[며, 명… 도옹? 소, 나오는 곳.>아.
진짜. 제발.
지금은 닫힌 지 오래인 저 개같은 던전은 왜 자꾸 튀어나오는 거야.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홍석영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거기도… 이미 갔다 왔는데.”
[어어어? 그래? 그럼, 어, 음….>타티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끙끙거리며 머리에 달린 가시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던 요정은 조금 뒤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지네!!!>“…….”
[파…. 파… 소옹.>“송파?”
[알아?>“…….”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데.
인간들 사이에 맴도는 미묘한 공기를 요정이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타티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럼, 부산!>어찌나 다급했는지 더듬거리던 발음이 제법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부, 부산에!>“부산?”
[……항, 구.>항구?
순간 깨달았다. 앞선 강원도나 명동, 송파는 던전이었지만.
[창고.>이건 던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