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8)
회의(2)
헌터 양성 고등학교의 하루가 다소 대충대충 흘러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길드 미미는 체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굴러갔다.
일단 양성고에 비하면 길드 미미는 규모가 작다. 게다가 다선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양성고와는 반대로 여긴 이미선도 쉽사리 건들 수 없다. 산드라 갬블의 영입을 이미선이 도와주긴 했다마는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소속된 인간들도 하나하나 챙겨 줘야 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어른들이고.
내 편의대로 마음껏 고쳐도 혼낼 사람도 없고.
그러니 운영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어느 쪽이든 홍석영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원래 사장은 부지런하면 안 되는 법이거든.”
게다가 입만 살아 있다.
…음. 뭐,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홍석영은 길드 운영에 손 놓은 상태에서 이름만 빌려주는 상태가 제일 좋다.
거기에 굳이 역할을 더한다면….
“돈이나 벌어 오세요.”
“어허.”
“파로스 장비 사 준다고 돈 많이 썼을 텐데요?”
“…아직 급할 정도는 아니네!”
“다음 던전 공략이 언제라고 했죠?”
홍석영은 툴툴거리다가 대답했다.
“3월 10일. 미국. 사막에 있는 던전인데, 최근 그 안에서 길드 하나가 전멸한 모양이야. 사막이라 관리가 힘들어서 닫아 버리기로 했다더군.”
“사막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력 시계를 켰다. 홍석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지. 그게 있었군! 완벽한 나의 컨닝 페이퍼.”
“그따위로 쓰지 마세요.”
“그 용도로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
“…….”
그렇긴 한데, 현대 마력 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의 취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한 면이 있다.
과거 아버지가 공략한 던전을 확인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공략한 던전이 더 많다. 연도를 설정하고 나라를 제한하고.
사막, 사막이라….
올해 공략하는 것 중 사막 던전은 없는데?
“음.”
눈을 찌푸렸다.
“사막이라고 하면.”
“모하비. 네바다 쪽이네.”
“…별명이 있습니까?”
“별명? 아, 벼락… 한국에는 낙뢰 던전이라고 종종 말하더군.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한 던전은 아니지만.”
낙뢰 던전.
아버지가 공략한 수많은 던전을 하나하나 외우고 있진 않다. 기억해 둘 만한 특이 사항이 있는 던전이라면 모를까.
검색 조건을 바꾸었다.
“…….”
“표정이 왜 그런가?”
아버지의 공략 던전 목록에 나오지 않는다.
“안 나옵니다.”
“안 나와?”
“선생님이 공략한 던전이 아니라는 건데, 그러면….”
한국인 헌터가 공략한 던전이 아니라면 해외 던전 정보도 다소 제한이 되어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홍석영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창을 훔쳐보는 게 느껴졌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
낙뢰. 혹은 벼락.
2032년 공략.
“2032년?”
홍석영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올해가 아냐? 너무 뒤인데? 내가 공략한 건가?”
“…아뇨.”
한태경 외 21명(한국인 3명, 미국인 18명) 공략.
“한태경이가 했다고?”
빠르게 던전 이력을 훑어보았다.
S급이며, 공략 난이도도 최상이다. 하지만 마력 흐름이 안정된 던전이었고, 방금 홍석영이 말한 대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던전에 드나들려는 헌터는 많지 않았다.
국토가 넓은 나라들이 그러듯, 미국도 자국 내의 모든 던전에 마력 측정기를 박아 두진 않는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있는 던전이나, 이곳처럼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는 던전에만 설치한다. 네바다주 사막의 이 던전은 십 년 넘게 안정되어 있다가 던전 브레이크 직전에 공략되었다.
“이 던전 맞죠? 공략해 달라고 한 곳.”
“등장하는 몬스터가… 음. 맞는데.”
“그럼 왜 지금 급하게 공략해 달라고… 길드 하나가 전멸했다고요?”
“서른 명 들어가서 한 명도 못 나왔다더군.”
던전 정보를 보았다.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이미 너무 많이 바뀌었다.
원래라면 한창 자기 집 차고에서 마력 측정기 시제품 개발에 열 올리고 있었을 산드라 갬블은 홍석영의 지원을 받아 최신식 마력 공학 장비와 대마법사에게 둘러싸여 있다.
죽은 아이가 어쩌고 하는 말도 이제 입 아프다.
다만, 그렇게 바뀐 영향력이 이런 식으로 튀어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전멸한 길드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해야겠군.”
“뭐라고 말하게요?”
“원래도 건네받을 예정이긴 했네. 전멸한 길드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봐야 던전 난이도를 추측할 수 있으니까.”
“아, 하긴….”
홍석영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보통은 그쪽에서 분석한 걸 받아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미리 달라고 해야겠군. 자네도 한번 보게.”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그, 사망했다고는 해도 다른 나라 헌터 아닙니까.”
“내가 나 혼자 봤는지 아들이랑 같이 봤는지 그쪽이 알 게 뭔가. 싫으면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하면 안 되지.”
“…….”
잠깐. 그것도 이상한데.
“…이 던전에 뭐가 있어서 선생님한테 공략을 도와 달라고 하는 겁니까?”
“음?”
“지금 시계에 남아 있는 던전 보고서로는 선생님이 필요할 만큼 위험한 던전처럼 보이지 않는다고요.”
한태경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2032년의 한태경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재능을 꽃피웠을 헌터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라고 손꼽히는 홍석영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홍석영의 몸값은 단순히 ‘헌터 여러 명 쓰는 것보다 홍석영 하나에 투자하자’라고 말할 수 없다. S급 던전의 통행세를 감당할 수 있는 헌터 100명을 불러도 홍석영 하나에 못 미친다.
거듭 말하지만 한태경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태경과 그에 엇비슷한 실력자 스무 명으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에 홍석영을 부른다?
“…….”
홍석영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긴 한데, 나도 더 들은 건 없어.”
“…이게 함정일 가능성은?”
“내가 무사히 나오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노아 미셀도 홍석영을 직접적으로 건드는 건 피하고 있었다.
이건 자만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안 갈 수도 없으니.”
홍석영은 무어라 작게 웅얼거리다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 아니면, 자네도 나와 같이 가 보겠나?”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홍석영을 보았다.
* * *
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길드 미미에는 나름대로 체계가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체계 따윈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이미선은 가끔 어떻게 길드가 굴러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아니, 다선과 비교하면 억울하지. 길드 인원수부터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어쨌든, 이 길드가 체계 같은 건 개나 준 모양새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다섯도 안 되는 길드원 때문일 수도 있다. 길드는 사업장이다. 5인 이하 사업장은…….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길드 규모가 작은 탓도 있긴 하지만, 홍석영이 오랫동안 1인 길드로 굴린 버릇이 남아서 그런 것도 있다.
혼자서 대충 세무서를 끼고 일하는 것과, 몇 명 안 되는 직원이라 하더라도 월급을 챙겨 줘야 하는 입장은 확실히 다르다.
“아, 그렇지. 희재 군.”
“네?”
“자네가 부길드장이야.”
“…네?”
“하는 일은 딱히 다를 건 없을 거고…. 나중에라도 미국이나 미국, 아니면 미국 같은 해외에 나가게 된다면 내 이름을 팔아먹는 게 낫지, 이 헌터한테 손을 벌릴 수는 없잖은가.”
“미국 안 간다니까요.”
“그러니까 나중에.”
분명 사막에 있는 문제의 던전에 같이 안 간다고 했는데 홍석영은 한 번씩 툭툭 나를 찔러 왔다.
정작 내가 간다고 하면 농담이었다고, 안 가도 된다고 당황스러워할 거면서.
“됐고요.”
나는 홍석영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개학하기 전에 마력펜부터 공개할 겁니다.”
“룬은?”
“그 직후에요. 룬은 이전과 동일하게 다선을 통해서 발표할 거라서요.”
“김 선생이 있으니까 파로스에서 해도 괜찮지 않나?”
“다음번부터는 파로스에서 할 겁니다. 이번에는 가림막 룬이 포함되어 있잖습니까. 귀찮은 일은 다선에 떠넘기려고요.”
홍석영은 내 계획을 듣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대기업과 일하면 이런 게 좋지. 그쪽 덕을 보자고.”
반대로 다선도 홍석영과 김채민 이름을 팔아먹을 생각으로 즐거운 모양이지만.
이게 바로 모두가 이기는 길 아니겠는가.
앞으로 길드 미미가 규모를 키운다면, 그건 길드가 아니라 부속 연구실인 파로스가 커져서일 것이다. 당장 마력펜을 공개했을 때의 파장이 어떨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다연에서 마력펜을 찍어 냈을 때 어땠더라? 그땐 내가 아직 어려서 관심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주변에 더 신경을 쓰고 했을 텐데.
우우우웅.
“잠시만요.”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인 줄 알았는데, 메시지다.
액정 위에 떠 있는 이름은 김채민.
[호프가 던전에서 나왔대요]짧은 메시지는 딱 필요한 말만 담고 있다. 나는 메시지를 홍석영에게 보여 주었다.
홍석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리산 던전에서 나와 양성고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짓은 파로스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이미 해가 뜨고도 남은 시간이었지만, 불쌍한 마력 공학자 산드라 갬블은 이제 막 잠이 들었었다. 숙소 문을 쾅쾅 두드리는 고용주를 이기지 못한 갬블은 비척비척 걸어 나와 상사의 요구에 대응했다.
‘알렉스요? 걔 지금 던전 들어가서 연락 못 받아요.’
인간인지 요정인지 모를 주제에 은근 성실한 놈이었다. 소속된 길드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시키면 얌전히 던전에 들어간다는 설명까지 듣고 있으니 이쪽도 긴장이 풀렸다.
갬블은 대놓고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
‘예, 예. 나오면 바로 말해 드릴게요. 저 더 자도 되죠?’
‘그렇게 밤낮 바꿔서 생활하는 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아, 예…. 밤에 집중이 더 잘돼서 일하다 보니까 그만.’
‘저희 원래 9시 출근 6시 퇴근인 건 알지요? 이제 30분 남았습니다.’
‘…오늘 아파서 쉰다고 해요!’
그 뒤로 일주일.
드디어 알렉스 호프가 던전에서 나왔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직접 호프에게 연락할 순 없었다. 홍석영과 나는 연구실로 달려갔다.
“으.”
갬블은 서서히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게 되었다. 우릴 보며 겁을 먹거나 긴장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좀.
하긴, 나도 관리청에서 일할 땐 아버지가 돌아다니는 걸 괜히 싫어했다. 원래 높으신 분은 자기 사무실에 박혀서 안 나오는 게 제일이라고 구박하기도 했었지.
나는 질색하는 갬블의 반응을 무시한 채 말했다.
“호프와 연락하세요.”
“호주와의 시차는 생각 안 해 주나요?”
“얼마나 차이 난다고요.”
“샨샨도 막 공략을 마치고 와서 피곤할 텐데….”
“피곤? 부상은 없나 보군요. 얼른 전화해요.”
갬블은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호프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호프는 금방 받았다.
[산드라? 샨샨은 씻고 있는데.]그러나 화려한 머리 색을 가진 소년 대신, 검은 머리에 단아한 인상의 여인이 액정 속에 나타났다.
산드라는 우리를 슬쩍 보더니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Hi…. 이쥔.”
이쥔. 알렉스 호프의 모친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