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7)
개꿈(2)
[유지은 – S급] [주 무기 – 검] [이능관리청 던전공략부 제2팀 팀장] [세계미공략던전공략지원협의회 자문위원] [공략 던전] [경기도화성2던전(B)] [경북울진11던전(C)] [경북군위8던전(B)] [전남영광1던전(A)]…
총 709건.
* * *
유지은의 행보는 말이 많았다.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지은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홍석영의 수제자로, 던전 공략을 위해 힘쓰는 자랑스러운 관리청 헌터니까.
그냥… 유지은은 관리청이 아니라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입을 놀리는 이가 많았을 뿐이다.
이미선도 유지은을 만날 때마다 한 번씩 물어보곤 했다.
‘관리청에 뭐 꿀이라도 발라 놨대? 유지은 헌터 정도면 더 큰물에서 놀아야지. 어때? 우리 길드에 안 들어올래?’
이미선이 제시하는 조건은 매년 갱신되었다. 더 좋은 쪽으로.
그러나 유지은은 한결같이 이미선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선도 예상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말았다.
매년 이미선 말고도 유지은에게 제안하는 길드는 많았다. 유지은이 처음 단독으로 S급 던전을 공략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거절이 십 년 넘게 이어지자 뜸해졌다. 관리청을 자주 오가는 이미선 정도만 끈질기게 물어봤다.
유지은이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었다면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갔겠지.
하지만 유지은은 그러지 않았다. 유지은은 관리청 2기 헌터가 되었다. 1기 헌터가 아닌 건 관리청이 유지은의 고3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지은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관리청 헌터가 되었다.
그렇게 관리청에 들어오고 나서 유지은은 떠나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관리청에서 일 년여 정도 일한 뒤 길드로 스카우트되어 떠나는 게 일종의 관례로 자리 잡게 된 뒤에도.
그래서 말이 많긴 했다.
유망한 헌터 하나가 관리청에만 묶여 있다고.
하지만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이 그러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해고해? 유지은이 관리청 앞에서 부당 해고로 일인 시위라도 하게 되면 그게 더 큰일이다.
그렇게 유지은은 십 년 넘게 관리청에서 소처럼 일했다.
뭐, 그러다 보니 나도 본의 아니게 유지은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우리 언니 구해 줬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유지은의 인사 기록 어딜 보아도 가족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죽은 언니가 있다는 말은 더더욱.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런 사실을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짚이는 것은 단 하나. 본부장.
유지은의 죽은 언니, 유혜은이 시범고 학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아저씨가 손을 쓴 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린 유지은은 뒤통수가 보일 정도로 내게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속이 불편해졌다.
잠깐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래도요! 요즘 세상엔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많다고요. 우리 아빠만 해도….”
“유지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유혜은이 기겁해서 끼어들었다. 유지은은 언니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복잡한 가정사에 끼어드는 건 질색이다. 미래의 유지은이 죽은 언니가 아니더라도 가족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을 거다. 나는 못 들은 척 넘어갔다.
게다가.
“…유, 지은이라고 했지?”
“네!”
적응이 안 된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유지은이라니? 나에게 존댓말을 하는 유지은이라니?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해서 괜찮은 걸까?
입가가 비틀리는 걸 억지로 억눌렀다. 옆에는 김채민을 비롯해 아이들이 많다. 수상하게 굴지 말자. 평범하게. 평범하게….
이 상황에서, 평범한 교사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여긴, 무슨 일로 왔니?”
나는 유혜은을 흘깃 보았다.
“언니 보러 왔다고?”
“언니 보러 온 건 맞긴 한데요!”
유지은은 발랄하게 말했다.
“선생님께 인사도 드리고 싶고, 아! 이럴 땐 음료수 같은 거 사 와야 된다고 했는데! 다음에 제가 꼭 사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
유지은이 사 주는 걸 먹었다가는 체한다. 백 퍼센트 체한다.
“아, 근데, 저, 그? 뭐지? 상담? 상담 같은 거 받을 수 있어요?”
“상담?”
유지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는 바보처럼 유지은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헤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냐,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이건 내가 아는 유지은과 이 유지은은 완전히 다른 생명체라고 봐야 한다.
“네! 저 각성했거든요!”
“뭐?!”
비명은 옆에 있던 유혜은에게서 튀어나왔다. 유지은은 언니를 바라보며 한 번 더 말했다.
“나 각성했어!”
“각… 언제?!!”
“오늘 아침에!”
“너… 너…!”
유혜은은 말문이 막혀 입만 뻐끔거렸다.
보통 각성은 유전된다. 부모가 각성자면 자녀도 각성할 확률이 높다. 형제가 나란히 각성자가 되는 일도 적지는 않다.
“아침에 체육 시간에 각성했어.”
“그래서 선생님이 언니 보러 가라고 한 거야?”
“응! 언니한테 얘기해서 빨리 등록하러 가래.”
유지은은 언니에게 조잘조잘 각성할 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축구공을 찼는데 공이 갈기갈기 찢어졌다나 뭐라나.
그러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슬금슬금 다가와 유지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친구의 동생이다 보니 이미 아는 사이였는지 유지은은 어색해하지 않고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축구공을 찢었다고? 그럼 힐러는 아니겠다.”
“난 언니처럼 그런 거 못 해서 괜찮아!”
“몸 쓰는 게 더 적성에 맞을 것 같긴 해.”
한은영과 유지은이 깔깔 웃었다. 그러다가 유지은이 고개를 돌려 오현욱에게 물었다.
“오빠는 각성할 때 어땠어?”
오빠? 오빠아아?
유지은이 오현욱을 부르는 명사가 돼지 새끼가 아니라니?
“나? 난 평범했는데.”
나한테는 거의 말을 안 하거나 어쩌다 말을 해도 툭툭 내뱉는 게 다였던 오현욱은 제법 상냥한 어조로 대답했다. 소름 끼쳤다.
뭐지? 유지은과 오현욱은 사이가 나빴는데? 그건가? 어릴 땐 사이 좋았지만 커서 나빠진 그런 달콤쌉싸름한 관계?
속이 안 좋아졌다.
그래… 유지은에게도 청춘이 있을 수 있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두침침하고 퀭한.
아. 그렇군.
언니가 죽었으면 눈이 뒤집힐 만했지. 그래서 관리청에 들어온 건가?
유지은은 왜 관리청을 떠나지 않느냐의 질문에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었다. 유지은을 오랫동안 보았던 나는 대충 본부장 곁에 있고 싶어서였다고 짐작했다.
아마 그게 완전히 틀린 추측은 아니었을 거다.
박서현이 명동 이후로 멘탈 관리에 실패해서 마녀가 되었다면 지금 해맑게 웃고 있는 유지은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명동 던전을 관리했던 길드는 그동안 해 먹었던 게 걸려 와해되었지만,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유지은의 복수심은 멈추지 않았던 거다. 유지은이 던전 공략뿐만이 아니라 길드들의 불법 행위 적발에도 열을 올렸던 걸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 같다. 본부장 곁에, 관리청에 계속 붙어 있으면 모든 걸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냥 내 짐작이다. 아닐 수도 있다. 이게 맞는지 물어볼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런데 각성자 등록할 때 미성년자는 보호자랑 같이 가야 해.”
서한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말에 유지은은 언니를 돌아보았다.
“언니는 그때 누구랑 갔어?”
“나? 난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갔는데….”
“나도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갔어.”
“난 우리 마스터랑.”
순순진도 한마디 보탰다.
“보호자가 아니어도 C급 이상의 헌터가 같이 가 주면 돼.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괜찮아.”
“그래?”
“응. 마법 쌤이나 우 쌤도 될걸? 우 쌤 등급은 잘 모르겠지만 저 악독한 손속을 보면 절대 D급은 아냐.”
악독한 손속이라니. 말이 심하네.
“너희 미래를 위한 선생님의 다정한 배려지.”
서한성과 순순진은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너희 아직 걸어 다니고 있잖니.”
“……어쨌든! 쌤한테 말해서 빨리 등록하러 가. 일주일 안에 안 하면 벌금 내야 해.”
“벌금도 있어?!”
유혜은이 깜짝 놀라 순순진에게 물었다.
“나 각성하고 엄청 뒤에 했는데?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갔다며?”
“으, 으응.”
“교장쌤이 냈거나 해결해 줬겠지. 서한성, 너도 교장 쌤이 네 사정 다 처리해 줬댔지?”
“응. 길드 고소하고 합의금 받아 내고.”
유지은의 각성자 등록을 얘기하던 아이들은 홍석영이 해결해준 자신들의 개인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이승연과 순순진을 제외하곤 다들 어떻게든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얘길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김채민을 보았다.
김채민도 나를 보았다.
나는 입술만 움직여 김채민에게 물었다.
‘쟤 데려가서 등록하고 오세요.’
김채민도 입술만 움직여 대답했다.
‘제가요?’
‘그럼 제가 가요?’
‘전 마법사라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등록만 잘하고 오면 되지.’
김채민의 손이 파드득 움직인다. 헌터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수신호까지 합쳐지자 대화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저 S급인데요?’
자랑하나?
‘제 이름이 보증인으로 올라가면 시끄러워질 수 있어요. 기자들이 이런 거 잘 찾아본단 말이에요…. 홍 헌터님이 시범고에 있는 동안은 주목받는 일을 피하라고 했어요.’
김채민은 손바닥에 원을 그렸다. 룬을 뜻하는 마법사들의 수신호다.
…김채민이 하고자 하는 말은 뭔지 알겠다.
시선이 쏠리면 룬에 대해서도 말이 나올 테고, 그럼 이미선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홍석영 이름으로 공개하라니까….
‘우 선생님이 갔다 오세요.’
하지만….
이 여자, 지금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진짜 직장 동료로 여기고 있는 건가?
아니, 나야 경계를 늦춰 주면 좋은 일이다마는 이래도 괜찮은 건가? 대마법사잖아? 좀 더, 그, 생각을 하라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찬가지로 룬을 뜻하는 수신호를 그린 다음 입술을 움직였다.
‘방주.’
주목을 피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게 아니더라도 난 지금 내 신분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잘 모른다.
홍석영이 보증해 줬다고는 하지만 이게 말 그대로 보증만 해 준 건지, 아니면 헌터 우희재의 신분을 새로 만들어 줬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야말로 내 이름을 올려서 장래의 관리청 노예, 아니, 창창한 S급 헌터의 미래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
김채민도 뒤늦게 떠올렸는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럼 홍 헌터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그 던전에서 나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연락 한번 해 봐요.’
‘그래도 방해하기가 좀….’
‘아니, 던전 공략하러 갔습니까? 공략하러 갔대도 지금쯤 나왔을 거라니까요?’
‘우 선생님이 한번 해 보세요.’
‘못 합니다. 김채민 선생님이 하세요.’
‘우 선생님은 못 하면서 왜 저는 해야 하나요?’
‘휴대폰 없어요.’
‘…….’
김채민은 내게 한 번 더 사과했다.
“…….”
그리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 주위가 조용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묘한 눈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아뇨… 그냥 편하게 대화하시라고요.”
“…….”
“…….”
아이들이 우릴 두고 되지도 않은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동안.
유지은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저, 선생님.”
“…어. 왜.”
“제가 여기로 오는 동안 생각을 해 봤거든요.”
유지은은 홍석영의 애제자다. 당연히 스승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면 좋지 못한 결론을 낸다.
“홍 아저씨… 아니, 교장 선생님이 여긴 고등학생만 입학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렇겠지. 이름부터가 고등학교다.
“그런데 전 아직 열여섯 살이고….”
예정대로라면 유지은은 내년에 시범고에 입학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불길하다.
“선생님이 저 등록할 때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
“학생. 잠깐….”
“그리고 절 제자로 받아 주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