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72)
선지자(3)
엉망이다.
대충 듣기만 한다면 이 선지자라는 놈들이 굉장히 유용할 것 같다마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들린다면 함정이다.
자기가 가진 정보가 얼마나 유효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미래인?
자기가 아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안내했는데, 다음번 선지자가 이미 그 지식을 홀라당 써먹고 도망친 뒤라면?
그런 게 물고 물리듯이 빙글빙글 돌아 봐라. 어떤 게 진짜 쓸 수 있는 정보고, 헛된 정보인지 구별하는 게 더 어려울걸.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설프게 알아 봤자 더 엉망이 될 수도 있고.
날 보라고.
애초에 난 미래에서 왔다는 이점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껏해야 이 시대의 나는 열 살짜리 꼬맹이였고,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 그 나이 때 나는 보육원에서 간식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나 굴리고 있었다고.
차라리 뭐, 5년 전 정도의 과거로 돌아갔더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뭔갈 해 보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매하게… 아니, 애매하지도 않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시간대로 와서 기껏 누리는 미래 지식이라고 해 봤자 누가 나중에 대마법사가 되니 마니 하는 정도지 않나.
함께 딸려 온 마력 시계의 관리청 데이터베이스도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이래서 과거 데이터 백업도 중요하다니까….
그렇다고 알렉스 호프의 말이 정말 아무 쓸모가 없냐, 하면 그건 아니고.
최소한 내가 과거로 온 게 무작위 주사위를 굴린 결과가 아니라는 건 알게 되지 않았나. 아니, 뭐. 아버지와 누나가 이걸 계획할 수 있었다는 걸 안 이상 무작위야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두 사람이 그런 무모한 계획을 시행하게 될 만한 근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냐고. 아버지와 누나가 그래도 생각이란 걸 했다는 거니까.
-그래서 더 질문 없냐니까? 진짜? 이런 얘길 듣고도 별생각이 안 들어? 나 진짜 엄청엄청 중요한 얘길 했는데?
“그렇게 말해도.”
홍석영은 부루퉁하게 앉아 있는 갬블을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그러다 아차, 했는지 김채민도 한 번 보았다.
아, 뭐…. 그래. 생각이란 걸 하고 있기는 해서 다행이다.
“자네 말대로 말이지.”
홍석영은 천천히 모니터 안의 알렉스 호프를 보았다. 최소한 손바닥만 한 휴대폰보다는 보기가 편했다.
“내 앞에… 이렇게 말하면 너무 별거 아닌 것 같다마는.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지껄이는 놈들을 몇이나 잡았다고 생각하나?”
-아, 역시!
“그러니까 놀랍지 않네. 그만큼 튀어나오는데 명칭 하나 없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네.”
호프는 홍석영의 말에 넉살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한 말에 어울리지 않게 태연자약한 꼴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점은 있었다.
과연 내가 몇 번째… 선지자? 아니, 난 놈들의 선지자 같은 게 아니지. 어쨌든 내가 몇 번째인지도 알 수 없다 보니 내 뒤로도 과거로 돌아온 놈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둘째 치고.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내가 다 알고 있다고는 못 하고, 솔직히 설명을 잘하고 있다고도 하기 힘들고, 어, 모르는 게 더 많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아는 건 최대한 말해 줄게!
“…….”
그냥 다 모르는 거 아닌가.
그래도 그렇게 조금이나마 설명해 주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몇 가지 있는데.”
-응! 일단 말해 봐! 들어 봐야 나도 말해 주지!
“먼저.”
나는 눈을 찌푸렸다.
내가 주운 그… 과거로 날 보낸 그 아이템은 정황상 몬스터를 죽이고 튀어나온 거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지네 사체가 떠오른다.
쯧.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그놈들은 던전 안에 있어.”
-그렇지.
“그런데 죽어야만 그 아이템이 나온다며. 던전끼리는 소통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걸 사용하여 또 다른 선지자… 과거로 돌아올 수가 있지?”
같은 던전에서 선지자가 우후죽순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 그거.
호프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게 나와서 다행이라는 얼굴이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나도 전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던전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다른 던전에 기어들어 갔겠지?
“그게 가능해?!”
나 대신 김채민이 버럭 고함을 외쳤다.
그러나 호프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어? 그, 그거야.”
-각성자들도 던전에 얼마든지 드나들잖아. 거야 처음에 탑승한 포트는 보호 기능 때문에 나가는 절차가 복잡하다지만… 일단 밖에 나간 다음에 다른 곳에 들어가는 건 쉽지. 통행세만 지불하면 되는걸.
그 통행세가 몬스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바깥에 한번 나갔다 들어간 거니까 얼마 못 사는 건 똑같아.
“…….”
-그게 아니면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던전이 터져서 지구라는 낯선 땅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쳤다?
거기에 운명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게 뿅 하고 사라져서 뿅 하고 다음 선지자 앞에 나타나진 않아. 그게 궁금한 거라면.
“……좋아. 그러면.”
나는 눈을 찌푸렸다.
“네가 말했던 몽생미셸에 있는 그놈.”
노아 미셀을 홀렸다는 그… 요정.
“그놈도 선지자인가?”
호프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아….
호프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응.
대답은 간결했다.
-응. 맞아. 왕도 선지자야. 나도 완전 잊고 있었네.
그걸 잊을 수 있는 일인지 울컥 짜증이 솟았다.
아무리 사람인 척하고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저놈도 몬스터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엄청 초창기 선지자거든. 그래서 그다지… 선지자로서의 그게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쪽 심기가 불편한 걸 눈치챘는지 호프는 다급히 덧붙였다.
“…초창기?”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계로 도망쳐 오기 전에 탄생했던 선지자라고.
“그러면.”
호프는 어쩐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내가 어릴 때… 본 적이 있어. 아직 사용 제한이 풀리기도 전의 일이니까…. 그 자격 요건을 통과했다는 소리니까 얼마나 대단한 요정인지 알 수 있지?
“그 자격 요건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서 모르겠는데.”
-여기 용어로 치면… 어디 보자. 노벨 평화상을 받고.
처음부터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겠다. 평화를 사랑하고 어쩌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평화를 사랑한다는 종족이 원주민을 죽이겠다는 결정을 내릴 리도 없는데.
-억울하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한다고 해도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비명 지르면서 약 뿌릴 거잖아!
호프는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인간이 바퀴벌레라는 건 아니지만 종의 입장에서 봐야지. 저기 저 아저씨가 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어? 나?”
갑작스럽게 지명 당한 홍석영이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쳇.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온 건지는 나도 몰라. 하도 옛날 일이라 그렇게까지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도 않을 거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왕이 선지자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걸?
호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너희가 지구로 도망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지구 시간으로 계산하면….
호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참을 끙끙거렸다.
-완전 정확한 건 아니고, 대가를 치른 날부터 세서, 어, 던전에 들어간 날까지 치면 300년 정도. 지구에 온 이후부터는 알잖아?
묘하게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것 같은 현실적인 숫자다. 세계를 국가로 치환하자면 침략당한 나라가 멸망하기까지 300년이면 잘 버텼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던전이 나타나고 인류를 위협했던 시간을 또 따로 셈한다면.
호프의 말대로 그만한 시간이 쌓여 있다면 선지자로서의 이점은 없다시피 할 거다.
-그래도 대단한 요정이야.
“왕이라는데 대단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 있지.”
-그 왕이 이쪽 왕과 완전 동일한 의미는 아니지만… 비슷하긴 하지.
호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음 질문?
그 외에도 나는 두어 가지 질문을 더 던졌고, 홍석영이나 김채민도 덩달아 질문하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결론은 내가 처음 느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래에서 왔다는 존재가 변수인 건 맞다. 잘만 사용한다면 유용하게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다.
그래. 나.
나를 죽이고 과거로 돌아가는 이가 있을 수도 있지.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니까.
하지만 글쎄. 아버지가 과거의 자신에게 남긴 말처럼 자만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내가 마지막 순번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보라고.
홍석영을 보았다.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지만 묘하게 홀가분해 보인다. 최소한 자신에게 덤벼들던 미친 몬스터의 정체가 속 시원히 밝혀졌다는 점에서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인류의 구원자라고 점쳐지는 이가 실패한 시간에서 왔다. 지구는 멸망할 것이고,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은 인간도 오래 버티지 못할 시간이었다.
노아 미셀도 자기가 원하던 걸 이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던전이라는 탈출 포트에 타서 도망쳐 온 놈들은 성공했다. 도망친 세계의 혹한의 환경에 적응해서, 원주민을 다 죽여 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알겠는가?
놈들은 성공했다.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놈이 있으면 막아야지. 기껏 힘들게 성공했는데 잘못 건드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겠는가.
호프처럼 놈들이 성공하면 곤란한 입장이면 모를까.
그러니 내가 마지막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마지막에 근접하긴 할 것이다.
그걸 확인할 방법은….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같은 게 두 개 있으면 걔가 미래에서 온 거지.
“…그건 너무 막연하잖아.”
-아니면 자기 입으로 미래에서 왔다고 떠들어 대겠지? 걍 단순히 미친놈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짜잔, 몬스터한테도 정신병은 있답니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에, 감정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던전 같은 한정된 공간 안에 기약도 없이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할 수도 있지….
요정이 우르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라면 더욱 그럴 테고.
-제일 확실한 방법은 걜 죽여서 아이템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하기? 근데 이건 마지막 선지자만 되는 거니까 확실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아.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김채민이 불쑥 끼어들었다.
“타임 패러독스 같은 게 시간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면…. 과거의 자신이 죽어도 미래에서 돌아온 이한테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거… 야?”
-응.
호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봐. 지금 그쪽 마법사 앞에 미래의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 그럼 그 마법사를 똑같은 자신이라고 여길 수 있어? 나의 분신 같은 거라고?
“…….”
-이미 미래에서 돌아온 이상 시간이 인식하기에는 다른 존재인 거야. 각자에게 쌓인 시간이 다르니까. 시간은 모두 같은 선 위에 있는 게 아냐.
호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되 평등하진 않거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