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75)
동전(2)
우이록이 행방을 추적할 수 없는 돈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긴 한데 우선순위가 낮다고 할까. 누가 걔한테서 돈을 뺏어 가는 거라면 절대 가만 안 있을 놈이라는 확신도 있었고.
기껏 해 봤자….
“이록이 너무 귀엽다.”
“…그걸 왜 날 보고 얘기합니까?”
“여자애들은 생일 선물로 뭐 받으면 좋아할지 저한테 물어본 거 아세요? 여자 친구한테 줄 건가 봐요.”
“그러니까 왜 날 보면서 말하냐고요.”
“아, 진짜 너무 귀엽지 않아요?”
“…….”
김채민은 뭐 씹은 얼굴이 된 나를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으면 되었다….
김채민은 실컷 웃다가 내게 물었다.
“우 쌤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저요?”
“네. 여자 친구가 까만색 곰 인형이랑 흰색 곰 인형 중에 뭘 더 좋아할지 고민했던 시절이요.”
“없었습니다.”
“에이. 우 쌤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아! 혹시 그런 과였어요?”
“네?”
김채민은 능글거리며 웃었다. 어쩐지 점점 홍석영을 닮아 가는 눈치다.
이래서 사장의 성격에 직장 분위기를 좌우하는 거다. 회사 복지가 좋아도 상사가 거지 같으면 회사 다니기 싫어지는 이유다.
“너희 같은 애송이들은 내 내면의 어둠을 감당할 수 없어!”
“…….”
“아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저 어릴 땐 그런 애가 있었거든요.”
“김 선생님이 그러셨던 건 아니고요?”
“…….”
“농담입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고요. 이제 시작할 겁니다.”
“시작이라고 할 게 있나요.”
날 놀릴 때와는 달리 김채민의 얼굴이 시큰둥해졌다. 그래도 정작 카운트다운이 나오는 화면을 보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아, 시작해요!”
숫자가 0이 되고, 화면이 밝아진다. 번쩍거리는 무대와 모여있는 사람들. 무대 위에는 사회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다.
일 년에 한 번 진행되는 다연의 신제품 발표회이다.
“…….”
“…….”
아마 10분 뒤에는 몽땅 잊어버리고 말 의례적인 회사 소개들이 지나간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걸 다 보아야 하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연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마력을 가공한 제품도 제품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규모로 성장할 수 없다.
당연히 발표 대부분의 시간은 다연의 주력 제품들을 소개하는 데 사용된다. 나나 김채민이라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차피 마력을 사용하는 제품은 마지막에 나오잖습니까. 나중에 편집본으로 보자니까요.”
지금이라도 그만 보고 각자 할 일 하자는 말이었는데, 김채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실시간으로 봐야 해요!”
“굳이?”
김채민은 휴대폰을 꼭 쥔 채 말했다.
“룬을 선공개해서 안 그래도 시끄럽잖아요.”
“그건 룬이잖습니까. 이건….”
“네, 마력펜이죠!”
그렇다. 우리가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마력펜이었다.
마력 가림막 룬과 마력펜 중 무엇을 먼저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선지자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크게 의미는 없을 거라 보고 연달아 공개하기로 했다. 다선을 통해서 룬, 다연을 통해서 마력펜.
“이번 다연 신제품 발표에 던전 공략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게 공개될 거라고 미리 찌라시가 돌았거든요.”
“…그렇습니까?”
“어차피 우리 이름 확실하게 알리려고 하는 거잖아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그 할 수 있는 게 이런… 이목 끌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마력펜은 원래 길드 미미의 이름으로 발표하려고 했다. 그건 여전하다. 어차피 홍석영과 김채민이 있으니, 다른 수단을 안 써도 일단 던져 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물고 뜯느라 시끄러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력 가림막 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룬은 마법사만이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난 뒤에야 김채민이 소개해 준 마법사 커뮤니티도 소강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서 마법사 없이도 룬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이 나오게 될 줄은 몰랐겠지.
여기서 홍석영이 꾀를 내었다.
‘아마 마법사들의 원망을 많이 받게 될 거네.’
‘그렇겠죠.’
‘그러니 역시 다연을 방패막이로 써야겠어.’
‘네?’
‘욕먹을 거 나눠서 먹어 보자고. 나 하나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네도 있고, 학생들도 있잖은가. 게다가 갬블 박사도 보호해 줘야 하고.’
홍석영에게는 이제 지켜야 하는 것이 늘었다.
‘다연은 원래도 그쪽 학회에서 욕을 많이 먹었으니까 거기서 더 먹는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네.’
‘…그렇게 계산됩니까?’
‘그렇다고 마법사들이 다선을 불매할 건가? 그게 가능하겠나?’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 아니다.
다연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포션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자기 목숨 아까운 줄 아는 마법사라면 불매는커녕 살 수 있을 때 잔뜩 쟁여 놓기 바쁠 것이다.
‘그리고 다연의 변호사들이 일을 잘해.’
게다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흐응, 그래도 이 헌터는 끝까지 반대했었죠?”
김채민은 마지막까지 정말 괜찮냐고 확인했던 이미선을 언급했다. 그 말에 나도 쓰게 웃었다.
이미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쪽이 협회 사정으로 경계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선은 정말 나를 걱정해 주었다. 아마 그건 협회나 홍석영과 관련된 우희재가 아니라, 조카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을 위한 걱정이었을 테다.
그러니 나도 이미선에게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이 헌터님은 모르잖아요. 방주에 내 얼굴 아는 사람 없을 거라는 거.”
마력펜이 길드 미미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이상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지금 길드 미미에 인원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그게 아니어도 홍석영의 제자랍시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테고.
하지만 비교적 사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소개한 것과 길드 미미의 부길드 마스터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은 다르다.
이미선도 그걸 말하는 것이다. 홍석영, 그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손 빠른 아저씨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내 이름에 대뜸 감투부터 씌워 버려서.
홍석영이나 김채민이야 상관없지만 나는 조금 경우가 다르지. 나를 방주에서 도망친 불쌍한 영혼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미선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기는 했다.
“아! 그렇게 침울해하라고 말 꺼낸 거 아니에요.”
“아뇨, 뭐. 이 헌터님 일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바로 그 정신이에요!”
김채민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아니,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선한테 밝힐 생각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금방 잊어버리고 나아가야지.
“오늘 이후로는 양성고에서 안 나가야지. 여기가 다 사유지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주위에 건물도 없어서 누가 접근하면 다 보이잖아요.”
그래도 내 기분 풀어 주겠다고 이러는 건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나는 김채민의 말에 맞장구쳤다.
“게다가 김 선생님의 마법도 있으니까요.”
“저보다는 홍 선생님이 무서워서 못 올걸요? 홍 선생님은 기자라고 해서 안 봐주니까요.”
“오히려 기자라서 더 안 봐주는 거죠.”
아버지는 기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홍석영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거다.
어쨌든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김채민이나 나나 관심도 없는 최신 전자 기기를 보는 건 지루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 관심이 없는 건 내 이야기였고 김채민은 중간부터 집중해서 보기는 했다.
신제품 발표가 끝나고.
무대의 조명이 바뀌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건 발표를 분리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분야가 완전 다르잖아요. 전자 제품이랑 같이 발표하는 것도 좀.”
무려 20년 뒤에도 이어지는 전통이기는 했다. 나는 관심이 없어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보통 후반부에 나오는 마력 사용 제품은 관리청에 따로 보고가 올라오거나 아버지가 시제품을 사용해서 먼저 알게 되었다.
“원래는 따로 했었어요.”
내가 투덜거리자 김채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다연에서는 포션 사업을 크게 하잖아요? 개량도 많이 하고. 민간인들한테 포션이 풀린 것도 다연에서 포션 사업에 뛰어든 뒤니까요.”
“…….”
“…알죠?”
“압니다. 안다고요.”
김채민은 내 말을 영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계속 설명해 주긴 했다.
“처음에는… 무슨 캠페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제품 발표회 끝나고 뭐만큼 아동 병원에 기부한다고요. 그걸 어쩌다 보니 매번 하게 되었고, 기부에 더해서 포션 홍보도 겸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는 동안 무대 위의 사회자가 바뀌었다.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다. 이미선 뒤를 쫓아다니는 헌터 중 하나.
“그러다 보니 꼭 포션이 아니더라도… 민간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은 마지막에 나오게 되었어요. 포션이나 마력석을 이용한 의료 장비 같은 거요.”
“그런 목적이라면 이해는 갑니다만, 마력펜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마력펜 원리를 발표하는 거잖아요?”
김채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헌터가 그러는데, 다연에서 마력펜 고급 버전을 만들었대요. 아마 우 쌤이 사용하는 그거 초창기 모델이 아닐까 싶어요.”
“다연은 기업이니까 무상 노동은 안 하겠죠. 거기까지는 저도 뭐라고 안 합니다.”
애초에 다연에서 개발한 거니까. 내가 홀라당 가로채긴 했지만 실제 다연이 개발했던 거보다… 몇 년이나 이르지? 대충 그걸로 되겠지.
“마력펜 시제품은 이거 끝나고 광고로 나올걸요?”
“굳이 그렇게 나눴다고요?”
“우리는 공익 목적으로 마력펜을 알리고 있다, 절대 물건 팔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 뜻이겠죠?”
“그럴 거면 마력펜을 만들지 말았어야죠.”
“그래도 매번 던전 안에서 일일이 써먹으려다가 피 볼 수는 없잖아요.”
김채민은 깔깔 웃었다.
그러는 동안 발표회의 차례는 하나씩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연의 로고와 길드 미미의 이름이 함께 겹친다.
나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몇만 명이 같이 보고 있죠? 이렇게 보니까 기분이 좀….”
“본인 길드명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어쨌든 우리가 아는 사회자는 능숙하게 마력펜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설명도 빼먹지 않았다.
길드 미미의 파로스 연구실에서 개발한 것. 던전 공략하는 헌터의 생환율을 올리기 위해 아무 대가 없이 공개하기로 하였고, 다연에서도 이를 도와주기로 한 것.
“…마법사들이 뭐랍니까?”
나는 키득거리며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김채민에게 슬쩍 물었다.
김채민은 활짝 웃으며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다연 저것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다선에서 룬 발표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어] [저 미친]“…여긴 욕설 제재는 안 합니까?”
“마법사들이 입이 얼마나 험한데 그걸 제재해요. 욕먹을 일 있어요?”
“…….”
“자요, 이거 봐요. 노아 미셀도 글 올렸다고요.”
김채민은 게시글 하나를 눌러서 보여 주었다.
처음 룬을 공개했을 때는 찬사를 보냈고, 마력 가림막 룬 때는 조용했다.
그리고 마력펜에 대해서는….
[새 시대가 열렸다]그 새 시대를 노아 미셀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일언반구도 없이 딱 그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