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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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갬블의 하루는 느직한 시간에 시작된다.
어차피 시간 맞춰서 출근하는 근무처가 아니고, 숙소에서부터 연구실까지도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더 늦게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 호화스러운 펜션에서 학교로 옮겨진 이후 식당 개방 시간에 제한이 생겼다. 몇 명 되지도 않는 교직원과 학생 수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교직원 숙소에도 주방이 있긴 했지만 주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물 끓이기밖에 없는 산드라에게는 너무 가혹한 조건이었다. 심지어 여긴 배달도 안 된다! 반쯤 강제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일하게 돼서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그런 가혹한 근무 환경에서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식당 운영 시간에 맞추어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아침은 도저히 무리였기 때문에 최소한 점심시간에는 일어나려고 했다.
뭐, 그래 봤자 식당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었지만.
몇 명 되지도 않는 아이들은 어찌나 기운이 넘치는지. 한번 일찍 왔다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이후로 산드라는 그 시간을 피했다. 한국어는 이제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청소년기의 은어와 속어는 어렵다.
내가 저 나이였을 때도 그랬던가?
자신의 십 대는 알렉스의 충격적인 고백 이후로 거의 날아간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 더 기틀을 잡았어야 했는데. 조기 졸업으로 시간을 일 년이라도 더 벌었어야 했다….
“산드라!”
산드라는 어깨를 움츠렸다.
“윽.”
수업이 시작되고도 남은 시간이었으니 평소라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쩐 일인지 대마법사가 식당에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대마법사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얼른 밥 가져와요.”
“어….”
“자요!”
대마법사는 직접 의자까지 빼 주며 손짓했다.
차라리 식당에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도망칠 텐데, 이 더럽게 넓은 식당에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산드라는 식판을 든 채 주춤주춤 대마법사의 곁에 앉았다.
다른 사람과 밥을 같이 먹는 게 싫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혼자 먹든 누구랑 같이 밥을 먹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입에 넣어서 씹고 삼키면 소화되는 건 다 똑같은데.
그저 누구와 같이 먹느냐의 문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학생들이나 그 재수 없는 우희재도 견딜 수 있다. 홍석영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같은 인간이지 않은가. 거기도 괜찮다.
하지만 마법사? 그것도 대마법사?
거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한국 생활은 어때요?”
대마법사 김채민은 방긋방긋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음식은 입에 잘 맞아요?”
산드라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김채민을 보았다.
갑자기 연구실로 출근하게 됐다던 그날 이후로 김채민은 부쩍 산드라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마력 공학은 결국 마력을 이용하는 학문이다. 그 어느 그 비싼 장비들도 장비들이지만, 마력 공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마법사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다른 마법사도 아니고 호기심 넘치는 대마법사를 구해다 준 우희재의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네, 뭐.”
“호프한테는 잘만 말하더니. 우리 꽤 얼굴 많이 봤잖아요? 혹시 낯가리는 성격이에요?”
“아뇨, 딱히….”
산드라는 어색하게 대꾸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마법사라는 게 문제라니까?
뭐, 그간 산드라가 보아 왔던 마법사와는 달리 김채민은 좀 더… 아니, 꽤나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법사라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그냥 민간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 그래도 이제 바빠질 텐데.”
“네, 네?”
“우 쌤이 얘기했잖아요? 뭐라도 빨리 발표해야 한다고.”
산드라는 눈을 찌푸렸다. 연구라는 것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 결과가 턱턱 나오는 게 아니다.
그다지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인상이 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걸 본 김채민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김채민은 찻잔을 기울였다. 무슨 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산드라가 식사를 하는 동안 김채민은 옆에서 차만 홀짝였다. 산드라는 김채민이 옆에 쌓아 둔 파일과 종이 더미를 흘깃 보았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파일에는 양성 고등학교가 아니라 길드 미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뭐지?
산드라가 길드에 소속된 건 처음이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연구원과 길드가 어떤 식으로 함께 일하는지는 얼추 알고 있었다.
올리버 호프와 천이쥔의 길드와 홍석영의 길드를 비교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다. 홍석영의 길드가 더 대단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길드 미미가 생각 이상으로 체계가 없는 괴상한 길드라는 말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일인 길드였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위안 삼고 있긴 하지만…. 이 다섯 명도 안 되는 길드에서 자기가 모르는 길드 문서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놓고 나를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건가?
산드라는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찬물만 꿀꺽꿀꺽 마셨다.
김채민의 찻잔에서 나는 단내마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어느 나라에서나 직장 내 괴롭힘이 있기 마련이며, 무려 대륙을 바꾸어 취직한 것이니만큼 이쪽도 나름 각오는 했다마는….
실제로 당하니까 기분이 나쁜데.
‘이거 설마 미래에서 왔냐고 물어봐서 그런 거야?’
며칠 전 우희재와 했던 대화를 곱씹던 산드라는 괜히 젓가락으로 죄 없는 반찬만 헤집었다.
이렇게 나올수록 의심에 확신만 더해 갈 뿐이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양의 룬을 떠올리면… 미래에서 온 사람이 저 대마법사일 수도 있고.
“밥 다 먹었어요?”
“…네?”
“다 먹었어요?”
김채민은 처참하게 짓이겨진 떡갈비를 가리켰다.
산드라는 눈을 깜빡이며 식판을 보았다.
“어, 어어….”
“얼른 먹어요.”
“…….”
“살찌워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먹어요, 얼른. 할 말이 있는데 밥 다 먹으면 하려고요.”
김채민은 방긋 웃었다.
반면 산드라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나 해고되는 건가?’
그래. 아시아에 취직한 이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을 보기도 했었지.
‘아시아인들은 인도적인지 비인도적인지 잘 모르겠어. 해고하려고 불렀을 때도 밥은 먹었냐고 꼭 물어보더라.’
몇 개월이나마 홍석영의 길드에 일했다는 것도 경력으로 쳐주려나. 산드라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무리 천천히 먹는다고 해도 식판 위의 음식이 무한히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결국 깨끗이 드러난 식판을 보며 산드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김채민은 여전히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자긴 잘릴 일 없는 대마법사다 이거지.
“자요.”
그러나 김채민은 산드라가 아까 전부터 흘깃거리며 보았던 문제의 파일을 건넸다.
산드라는 눈을 깜빡였다. 안경이 콧등 위를 미끄러졌다.
“내부 회의를 통해서 산드라한테 공개하는 게 좋을 거라고 결론이 나서요.”
“이게… 뭔데요?”
“보면 알아요.”
김채민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파일을 쥔 손이 장난스럽게 흔들린다. 산드라는 화들짝 놀라며 파일을 받았다.
“아마… 음. 계속 말하지만, 우 선생님은 최대한 빨리 해결되길 원하더라고요.”
“이게, 뭔데요?”
“해결이라기보다는… 빨리 정리됐으면 좋겠다? 우 쌤이 말한 것처럼요. 우 쌤은 뭐, 툭 치면 툭 뱉어 낼 수 있지 않냐고 하던데 그건 그 인간이 이런 연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막말하는 거예요. 무시하세요.”
“아, 네…. 그래서 이게 뭔데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하면 좋긴 한데…. 아! 압박을 주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당장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잘 정리해요. 그리고 역사에 한 획을 그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요.”
“그래서 이게… 네?”
뭔가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채민은 자기 할 말만 쏟아 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시던 찻잔을 손에 쥔 채 김채민은 산드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참고로 그거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산드라밖에 없으니까 괜히 나나 우 쌤 찾아오지 마세요. 홍 선생님은 당연하고요.”
“이게 뭔데요….”
“그럼 재밌게 잘 해 봐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들린 이 얇은 파일이 일 더미라는 건 알겠다.
김채민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한결 밝아진 원피스 자락을 살랑거리며 식당을 나갔다. 끝까지 파일이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산드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파일을 확인했다. 해고당한 게 아니라면 되었다. 솔직히 여기서 해고당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 수많은 장비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아쉬웠으니까….
“…….”
산드라는 파일 사이에 잘 끼워져 있는 종이를 보았다.
“…….”
순간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이 되지 않았다. 눈앞이 핑 돌았다.
산드라는 뒤늦게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폐가 아프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보니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종이가 구겨질까 싶어 화들짝 놀라며 힘을 풀었다.
“…씨발. 맞잖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익숙해졌던 욕을 중얼거리며 산드라는 그 몇 장 안 되는 종이를 확인했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숫자. 공식. 이론.
먼 미래에서 온, 중간 과정이 없는 지식은 지금의 산드라가 전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곳이었다.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김채민이나 우희재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아니지, 아니다. 오류를 범하면 안 되지. 지식만 들고 올 수도 있잖아. 그 수많은 룬을 생각하면 역시 마법사 쪽이…. 똑같은 인간이 둘 돌아다닐 순 없으니 하나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하면…….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지?
산드라는 눈을 부릅떴다. 누가 미래에서 왔든 지금 손에 들린 이게 진실이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만 하면…!
산드라는 마지막 장을 보았다.
깔끔하게 인쇄된 앞 장과는 달리 마지막은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화질이 썩 좋진 못하지만, 알아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새벽까지도 몇 번이고 수정하고, 다시 계산했던 설계도의 완성본이었으니까.
산드라는 구석에 있는 낯익은 서명을 보았다. 파로스. 그리고 산드라 갬블.
자신의 서명.
“아. 하하. 아하하하….”
산드라는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모든 게 명쾌해진다.
불투명한 미래의 방향이 조금이나마 정해졌다.
이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숫자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승기를 거머쥐었다는 증거였다.
* * *
“아.”
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알렉스 호프는 벌떡 일어났다.
감각이 뒤엉킨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다. 바닥을 발로 툭툭 걷어차며 이동할 준비를 하던 알렉스는 움찔거리며 발을 멈췄다.
이 일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자존심 상하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지킬 자존심도 없지.’
알렉스는 휴대폰을 들었다.
‘근데 지금 한국이 몇 시더라?’
산드라에게 전화하는 거라면 좀 더 신경을 썼겠지만, 이건 긴급 상황이다. 시차를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다.
다행히 상대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알렉스는 본론부터 말했다.
“누가 우리가 빼돌린 아이들에 대해서 알아냈어. 아마 헨리일 거야.”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지금 당장 애들을 확인해야 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