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81)
보복(1)
“노아 미셀이 너한테 뭘 시켰다고?”
산드라 갬블은 알렉스를 통해 노아 미셀의 심부름을 들었을 때 이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될 독이라는 것을 알았다.
슬쩍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아하니 알렉스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얘가 생각을 안 해서 그렇지 멍청하지는 않다. 그간 열심히 교육한 보람이 있다.
“그래서.”
“그래서….”
알렉스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래, 자기가 해결해 보겠답시고 멋대로 날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이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세상에 무관심, 인형처럼 엄마가 볼 때만 방긋방긋 웃던 애였는데. 이제는 한결 인간 같지 않은가.
산드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애들은 안 돼. 사실 어린애가 아니어도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건 안 돼. 왜 안 되는지는 너도 알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래…. 정말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미셀이 그거 말하면서 조건 같은 건 말하지 않았어?”
“조건?”
“언제까지 하라거나… 뭐 그런 거.”
“아니? 그냥 처리만 하라고 했는데.”
“그렇단 말이지.”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노아 미셀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 알렉스는 그 부분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산드라도 일부러 말하고 다니게 놔두었다. 알렉스 옆에 똑똑한 인간 하나가 붙어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한 명령을 내리면 알렉스에게 해도 될지, 말아야 할지 알려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럼 이번 일은?
과연 노아 미셀은 알렉스가 순순히 어린아이들을 정리할 것이라 생각한 걸까?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어린아이가 수상쩍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목숨을 잃는다면 주목을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산드라가 알기로 한국의 연구소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고위층의 아이들마저 납치한 탓에, 진상을 조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아 미셀이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한 걸까?
산드라는 노아 미셀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 알렉스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고 충동적으로 일을 하는 성격인 것 같지만…. 얘가 하는 말을 다 믿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옛날에 깨우쳤다.
어느 쪽이든 이 일은 함정이다. 정말 어린애들을 정리하든, 아니면 거부하든, 혹은 어떻게든 세 번째 방안을 생각하든 간에. 어느 쪽이든 저지를 걸 알고서 기다린다면 아무리 숨긴다고 하더라도 꼬리를 밟히기 마련이다.
“그럼 어떡하지?”
산드라의 생각이 길어지자 불안해진 알렉스는 몸을 살짝 옆으로 흔들며 물었다.
산드라는 억지로 상념을 끊어 냈다. 복잡하게 생각해 봤자 아이들을 건들 수는 없다.
노아 미셀과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하였으니까.
“일단… 기다려.”
“기다려?”
“미셀이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네가 안 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위험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산드라는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각오를 다졌다.
“예상보다 이르긴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
* * *
약 일 년 뒤, 현재.
“…산드라 갬블의 재단은 이 헌터님이 넘겨받지 않았습니까?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몰라요?”
나는 회의가 싫다.
불려 가는 것도 싫고, 내가 여는 것도 싫다. 회의를 열어 봤자 참석자 중 절반은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것이고, 남은 반의반은 적극적으로 헛소리를 내뱉고, 그 남은 반의반의 반은 아닌 척 졸고 있을 거고, 그러고도 남은 이들만이 그럭저럭 들어 줄 만한 의견을 낸다.
그래, 뭐. 의견. 사내 의견을 듣는 건 좋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지적받을 수도 있지. 그런 생산적인 회의라면 나도 환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고가 일어나고, 그 대책 회의가 열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탓하기에 바빴다.
“저희 쪽에서 정보가 샜는지부터가 아직 확실하지 않잖아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에요.”
미래에서 온 인간과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와 대마법사와 불세출의 천재들도 다르지는 않았다.
“딱 보면 알잖아요! 내가 관리하고 있을 땐 문제없었다고요!”
“문제가 없었던 건지 어떻게 알아요? 그때부터 추적하고 있었을 수도 있죠! 지금 일을 터뜨렸을 뿐이고!”
“그때가 규모가 더 작았으니까 일을 치려면 그때가 더 나았겠죠!! 근데 가만히 있다가 지금? 지그음?! 애초에 전 그거 반대했어요!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위험이 커지니까요!!”
“그럼 그 유령 회사를 그대로 놔둬요?! 애들을 생각해야죠!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그 피해는 애들이 받는다고요!”
“사이코패스에게 걸려서 죽는 것보단 그게 낫죠! 그건 내가 수습할 수 있다고요!!”
“이봐요, 갬블 씨.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솔직히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모든 건 알렉스 호프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헨리 레만이 갬블과 호프가 빼돌린 아이들에 대해 알아냈다는.
우리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영영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알렉스 호프는 초반부터 그 사실을 제법 명확하게 알려 왔다. 셈 블룸에 대해 경고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을 거다.
처음에는 호프를 생각해서 다소 미적지근한 면이 있던 갬블도 최근에서야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한번 건너온 이상 돌아갈 길은 없고, 무언가 얻고 싶다면 그쪽도 포기하는 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김채민을 통해 건네준 마력 측정기 설계도의 영향도 없지는 않을 테고.
어쨌든, 본인에게 썩 협조적이지 않은 알렉스 호프가 산드라 갬블을 이쪽에 붙여 놨으니 언젠가는 들킬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더군다나 호프의 부모가 운영하는 길드와의 협업이 공개된다면.
…그래. 인정하자. 그 모든 회의에서 아이들의 신원을 걱정하는 말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무신경했다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대는 죄 없는 애들을 처리하라고 말하는 이들이었는데 안일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산드라 갬블이 신경 써서 꼭꼭 숨겨 두기도 했었다.
산드라 갬블이 죽음으로 위장한 아이들은 연고자가 없는 고아였다. 연구소에 속한 보육원에서 자랐거나 강태우처럼 연구소 출신이거나.
납치당한 아이들은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부모가 찾고 있는 아이라면 그렇게 빼돌렸다가는 영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보육원을 고발하는 식으로 그 애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었다.
이십 대 중반의 대학원을 갓 졸업한 이가 이만했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 거다. 심지어 잘했다. 미국 땅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우리가 살펴볼 수야 없지만, 그걸 고려해도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는 걸 아예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이미선을 비롯한 다선의 헌터들은 그 사실에 꽤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노아 미셀과 관련되었을 거라고 예상했지, 설마 헨리 레만이 일을 칠 줄은 몰랐다.
“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협회에 애들 정보를 넘겨주자마자 이 난리가 났잖아요!”
결국 목소리가 커지는 건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거다. 그게 정말 잘못이든 실수든,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었든 간에.
“그건…! 우리도 지금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에요.”
“파악하는 중? 언제 파악할 수 있는데요? 레만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확신도 없으면서 어설프게 레만을 들쑤셔서 보복하는 거잖아요!”
갬블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이미선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회의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미선에게 일 처리가 어떻게 된 거냐며 추궁했지만… 이렇게까지 되면 오히려 내 머리는 냉정해진다.
“그만… 갬블 박사? 진정하세요.”
“…….”
갬블은 나를 노려보았다. 핏발이 선 눈이 나를 찢어 죽일 것처럼 살벌하다.
“이 헌터님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요?”
“이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건지 확인하긴 해야 하죠. 하지만 헨리 레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틈을 파고들려고 계속 시도했을 겁니다.”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쁜 조직이다.
노아 미셀이나 헨리 레만이나… 거기에 알렉스 호프까지 셋 다 서로를 엿 먹이겠다고 상대의 면전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쪽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더라도 어떻게든 정보를 얻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호프와의 통화를 되새겼다.
“아직 레만이 뭔가 저지르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다들 진정하고 대책부터 세워 봅시다.”
다행히 갬블도 내 말에 수긍했다.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이미선은 못마땅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냉정을 되찾고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우리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파악하는 중이라. 문제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 줄게요.”
“…아뇨. 저도 너무 흥분했어요. 레만이 미친놈이지 그쪽 잘못도 아닌걸요. 애들한테 제가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갬블은 이미선의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덩달아 눈치를 보고 있던 김채민이 한시름 던 표정을 짓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채민은 반쯤 손을 들어 주위를 환기했다.
“자, 그러면 우리 다 같이 생각해 보자고요. 헨리 레만이라는 작자가 이 정보로 뭘 하면 우리가 제일 화날지요.”
“…애들을 건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죄 없는 아이들을 건드리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한 화잖아요?”
김채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방주와의 관계를 고려해야죠. 헨리 레만이 죽었어야 할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정보로 뭘 할 수 있을까요?”
“…노아 미셀에게 고자질한다?”
“아이들을 죽이라고 한 건 노아 미셀이었죠?”
“그럼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하지만 레만도 미셀과 사이가 좋진 않아요. 아뇨, 나빠요. 아무리 그래도 레만이 미셀에게 좋은 일을 시켜 줄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
갬블도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알렉스가 명령을 거부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미셀이 알렉스에게 제재를 가하기 쉬워질 거예요. 처음에 내걸었던 조건을 이쪽에서 위반한 거니까.”
“하나만 확실히 하자고.”
가만히 이 혼란을 지켜보고 있던 홍석영이 드디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
“미셀이 자네들한테 물리적으로 무언가 악영향을 끼칠 방법이 있나? 인질 빼고. 뭐, 원격으로 호프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다거나.”
“…아뇨. 제가 알기론 그런 건 없어요.”
“그럼 호프의 가족들의 안전이 문제라는 거지? 참고가 됐어.”
“…….”
솔직히 홍석영이 헨리 레만이고 뭐고 다 죽이면 아이들을 건드는 사이코패스 따위는 없어지지 않겠냐며 난동을 피울까 봐 걱정했었다.
“그리고 헨리 레만 건은.”
그러나 홍석영은 평소와는 달리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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