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85)
죽음(1)
헌터 양성 고등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교실 문 앞에 걸려 있는 표찰만 3-1로 바꾸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어쩐지 신이 잔뜩 났다.
“기분이 중요한 거라고요!”
“너희도 10년만 지나 봐라.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모를걸.”
“에이.”
“선생님, 그렇게 말하니까 완전 나이 많아 보여요.”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웃긴 지 까르르 웃어 댔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아니, 됐다. 웃는 게 낫지. 웃는 게 낫다.
어쨌든 양성고의 학생 수는 겨우 한 명 늘었다. 1학년 신입생이다.
그러나 반은 여전히 하나다. 1학년에서부터 3학년까지 모두 한 반에서 수업을 듣는다. 수업 내용이 딱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니 문제 되는 것도 없다.
아, 물론 완전히 똑같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년들은 나름대로 선행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가. 전투 훈련도 꾸준히 받아 왔고. 그걸 금방 따라잡으면 다른 학년이 허무하지 않을까.
유지은의 재능이 어떻든 간에. 다른 애들도 더 하면 더 했지, 전혀 부족하지는 않은 재능이다.
…그런데 한 학년 위라면,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1학년보다 잘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걸 선행 학습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나도!! 나도 던전 들어갈래요!!!!!”
유지은은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다.
“쟤는 왜 들어가는데요?!”
“유지은! 태우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너보다 오빠잖아! 태우야, 미안해.”
“괜찮아요, 누나.”
열 명밖에 없어도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강하다. 한 명이 떠들기 시작하니 금세 시끄러워졌다.
유지은은 자기 언니를 한 번 노려보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4월쯤 강태우를 포함한 3학년들이 던전에 들어갈 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이 모양이다.
유지은은 자기만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재빨리 불만을 표했다. 정확히는.
“쟨 들어가는데 왜 난 못 들어가냐구요!”
강태우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하고 있지만.
“던전 들어갈래요!”
“안 된다니까.”
“왜요!!”
누나라면 괜히 돌려 말해 봤자 못 알아듣는다. 오히려 직설적으로 말해야 물러날 것이다.
“네 실력이 부족하니까.”
유지은한테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유지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와 유지은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근처에 있는 몇 명이 유지은의 눈치를 살폈다. 정작 유지은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유혜은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하고 있었는데.
나는 표정을 조금 풀고 유지은에게 말했다.
“전투 훈련 더 해야 해.”
“그치만…!”
유지은의 기세는 한풀 꺾여 있다. 방금은 괜한 자존심 때문에 한번 반항해 본 거다.
“던전 실습은 2학년부터로 정했어.”
“…언제요?! 지금부터요?”
“아니. 교무 회의를 통해서.”
유지은은 내 말을 영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내가 이걸 가지고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이건 진짜다.
1학년은 기초 훈련, 2학년 2학기부터는 실습 병행, 3학년은 본인이 선택한 분야를 중점으로 심화 과정.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참고하긴 했다. 아직 학생 수가 적고 그만큼 교사 수도 적으니까 어설픈 면이 많긴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네 언니도 2학년 때야 겨우 던전 한 번 들어갔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
“한 번의 실수가 사람 목숨과 연계되는 직업이야. 네 고집대로 할 수는 없어.”
“…네.”
유지은은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포기하고 물러났다.
표정에 서려 있던 반항기는 사라져 있다. 본인의 실력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법이지.
“훈련부터 열심히 하도록.”
“네….”
자, 유지은은 처리했고….
홍석영도 없으니 당분간은 학교에서 얌전히 지내면 되겠지. 어차피 아직도 양성고에 쏟아지는 관심이 여전하다. 무리해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심하는 편이 낫지. 갬블이 준비되는 대로 또 세계를 뒤흔들 만한 발표가 이어질 테고…. 그 전에 지리산 던전 안에 있던 요정 타티가 말했던 곳을 조사하는 게 좋겠지.
물론 홍석영이 공략을 끝마치고 돌아온 뒤의 이야기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채 떠나긴 했지만.
지금쯤은 던전에 들어갔겠지.
홍석영은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미국으로 떠났다. 우이록에게 미국에 간 김에 그… 미친 분홍색 고양이 인형을 구해다 주겠다고 약속하고서. 그깟 고양이 인형에 넘어갈 것 같냐고.
…요즘은 진짜 넘어갈 것 같아서 무섭다.
고개를 저었다. 걔가 나중에 인형을 싹 불 질러 버리든 어쩌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자, 주목.”
요란하게 떠들어 대던 아이들은 내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하나씩 얼굴을 살폈다. 눈이 마주치자 생글생글 웃는 애들이나 가볍게 긴장하는 애들이나. 다 안색은 밝았다.
좋아. 그러면.
콰앙!!
“우 선생님!!!!”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김채민이 들이닥쳤다.
“김 선생님?”
“지금, 빨리요!!!”
김채민은 뭐라고 설명하지도 않고 나를 붙잡았다. 얼굴이 창백하다. 아이들이 당황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채민은 나를 끌고 교실을 나갔다.
뿌리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큰일이요?”
“네. 진짜 큰일이요.”
* * *
김채민은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사장실?
김채민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럴 것 같진 않았다. 김채민은 그대로 이사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이사장실 안에는 이미선과 다선의 헌터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이미선은 심각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다가 나를 보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김채민만으로도 충분히 불안한데, 이미선까지?
“…무슨 일입니까?”
다 같이 뭐라도 보고 있었는지 모니터를 둘러싸고 모여 있었다.
이미선은 나를 보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이것부터 보세요.”
“뭡니까?”
화면에는 뭔가가 재생되고 있다. 낮은 화질과 흔들리는 카메라 덕분에 알아보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엉망이 된 도시과 하늘에 떠 있는 웬… 몬스터를 알아보는 일에는 문제없었다.
촬영하는 사람이 주위를 향해 손짓한다. 빨리 도망치라고 외친다. 정작 본인은 끝까지 하늘에 있는 몬스터를 촬영하고 있지만.
흔들리는 화면 속의 저 하얀 깃털은 셈 블룸의 날개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던전 안에 있던 그 정체불명의 몬스터까지.
“두 시간 전에 보스턴에서 찍힌 영상이에요.”
이미선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멈췄다.
보스턴? 보스턴이라면.
“안전 가옥 지붕을 날려 버리면서 나타났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는 이제 기사가 뜨기 시작할 거예요.”
“아이는요?”
나는 이미선의 말을 자르고 다급히 물었다.
보스턴에는 강태우의 동생이 있다. 갬블 본인은 캘리포니아 날씨 좋은 곳에 있었으면서 무슨 애를 그리 멀리 보내냐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추적을 피하려고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고 했었던가.
이번 사태가 일어나면서 다른 아이는 몰라도 소희만큼은 다시 한국에 데려오려고 했다. 문제의 그 연구소 출신이기도 했고, 어차피 우이록도 데리고 있는데 또래 아이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최근 나사가 서너 개 빠진 것처럼 구는 강태우의 안정에도 그쪽이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고.
하지만 이래서야.
“삼십 분 전에야 겨우 연락이 되었어요.”
나는 이미선이 안 좋은… 말을 할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아이는 무사해요.”
한시름 덜었다.
이미선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퀴 달린 의자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나는 반복 재생되는 영상을 보았다. 멀리서 찍은 영상이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몬스터는 주위에 있는 집들과 비교해서도 크기가 작지 않다. 미국의 주택 크기를 생각하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 작은 날벌레 같은 것이 몬스터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다. 뭔가… 사람처럼 생긴.
이미선이 영상을 멈췄다. 까만 점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제야 팔다리가 제대로 보였다.
“저거 호프예요.”
이미선이 툭 내뱉었다.
“아직도 전투를 하고 있다면 두 시간이 넘도록 혼자 놈을 막고 있어요.”
“호프가요?”
“최소한 삼십 분 전에는 싸우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요? 분명 협회 헌터도 같이 갔던 걸로 아는데요.”
“아이 들고 도망쳤죠.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보스턴 전력의 절반이 날아갔고, 덕분에 우리도 파악이 늦었어요. 연락도 조금 전에 겨우 됐어요.”
“던전 브레이크도 발생했다고요?”
“아니면 저 몬스터가 어디서 튀어나왔겠어요?”
“…….”
아니,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정지 화면 속의 몬스터는 몬스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기이한 생김새였다. 몬스터이기는 하지. 하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다.
김채민도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것도 헨리 레만이 한 짓인가요?”
“던전을 터뜨릴 수 있는 방법이 레만에게 있다면 레만이 한 짓이겠죠. 타이밍이 너무 노린 것 같지만요.”
보스턴에 마침 동력이 떨어진 던전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분석은 나중이다. 지금은.
“연락은 지금 가능한 겁니까?”
“아뇨.”
이미선은 고개를 저었다.
“정전에, 인터넷 상태도 불안정해서 보스턴이 거의 마비가 되었다고 보면 돼요. 영상이 올라오긴 하는데, 그런 상황이라 많지 않아요.”
그 몇 안 되는 영상을 모은 게 이거다.
영상 자체는 다 비슷비슷하다. 저 거대한 놈과 싸우는 곳으로는 가까이 다가가질 못하고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던전에서 튀어나온 다른 몬스터를 피하느라 급하게 영상이 끊겼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무사히 몸을 피했길 바란다.
“호프가 아이부터 데리고 피하라고 해서…. 일단 몸부터 뺐다고 했어요. 적어도 아이는 다친 곳 없다더군요. 그게 마지막 보고였어요.”
“…그때까지도 호프는 계속 싸우고 있었고요.”
“지금이야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고, 인터넷도 안 돼서 호프를 구별할 수 없어요. 우리야 보고를 받았으니 아는 거지만.”
“하지만….”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달라요. 호프는 알아보기 쉽게 생겨서요. 심지어 지금 FBI 재킷을 입고 있다고 하고.”
“…….”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나타난 건 주택지구 상공이다. 목격자도 많을 거다.
호프가 이렇게 싸우고 있어도 괜찮은가? 아무리 보아도 호주의 A급 헌터의 실력이 아니다. 심지어 FBI 재킷? 내가 수습할 일은 아니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미선의 얼굴이 그래서 심각했던 건가.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건 전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다.
“두 시간 동안 싸우고 있다고 했죠.”
“아마도요.”
“호프 혼자서?”
“…….”
“호프라면 도망칠 수도 있을 텐데.”
짧은 영상이지만 호프가 어떤 식으로 싸우고 있는지는 바로 보인다. 실제로 내가 당한 적도 있다.
마법사처럼 순간이동으로 기동력을 확보한다. 발이 땅에 닿는 일은 거의 없다. 처음 보는 타입의 몬스터라 이 상태로는 나도 분석할 수는 없지만….
호프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놈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호프는 지친다.
“호프를 도울 수는 없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강 팀장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강하다고 해도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할 순 없다.
“…다음에 헌터들과 연락이 되거든 호프보고 그냥 빠지라고 하세요.”
이미선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살아 있는 게 중요합니다. 갬블은 이 일을 알고 있….”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 선생님?”
김채민이 나보다 빨리 창문으로 달려갔다. 나는 다급히 그런 김채민을 붙잡아 창문에서 멀리 끌어당겼다. 겁도 없이!
“……!”
그 짧은 순간, 마력이 요동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