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86)
죽음(2)
대기 중에는 항상 일정 농도의 마력이 분포되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마력 농도는 일정하다. 바다 한가운데든, 사막 한가운데든, 도시 한가운데든.
마력 농도가 달라지는 경우는 인위적인 압력이 있을 때 말곤 없다. 마법사가 마력을 쓰기 위해 대기 중의 마력을 끌고 올 때나, 헌터가 던전에 출입할 때. 혹은 던전 브레이크 직전.
그리고 던전이 소멸할 때.
…하나 더 추가하자면 던전 게이트 발생 시.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던전 게이트 발생을 관찰하는 건 꽤 운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외에는 어지간히 활동한 헌터라면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나와 그런 헌터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마력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내가 마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마력의 움직임을 패턴화하는 거다.
‘그건 네 무기가 될 거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유리함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마력으로 가동되는 던전 속의 함정. 온갖 마력 현상이 일어나는 던전에서 마력의 흐름을 보다 일찍 알아차리면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마력이란 것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각성과 마력을 보는 것 중 무엇이 먼저였는지 알지 못한다. 마력을 본 뒤에야 각성을 했을 수도 있고, 각성한 뒤에야 마력을 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났거나.
‘그다지 신경 쓸 건 아냐. 뭐가 먼저가 되었든 네게 바뀌는 건 없잖니?’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마력을 구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뭐, 그렇다. 중요한 건 순서가 아니었으니까.
‘이건 아무도 모르는 희재만의 무기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면 안 돼.’
마력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내가 유일무이하다시피 하고, 그 사실을 알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사람들도 많다. 어릴 때도 아버지가 그렇게 내게 당부한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가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연구소에 얽힌 걸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겠지.
일부러 그렇게까지 꼼꼼히 자료를 지운 걸 보면.
‘자… 희재가 보고 있는 걸 아저씨한테도 설명해 줄래?’
설명은 어렵고도 쉬웠다. 눈에 보이는 걸 설명하는 건 쉬웠지만, 그게 형체가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어려웠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집중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내 말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 다시 한번 관찰해 볼래? 정말 그렇게 보이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그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가 설명하는 것들을 이미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정확하게 설명할 때까지 몇 번이고 물었으니까. 그땐 뭘 그렇게 귀찮게 구나 했었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마력의 움직임을 패턴화했다. 내가 정식으로 각성자 등록을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 목검을 쥐었을 때는 다른 건 몰라도 마력 민감도만큼은 어지간한 마법사와 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나는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약간의 반칙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쉽게 불러낼 수 있었던 마법사 중 하나는 박서현이었고… 박서현은 어린 내 앞에서 몇 번 마법을 시연했던 적이 있었다. 박서현도 알고 있었을까?
어쨌든 내가 제일 처음 익숙해졌던 건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마법사가 공기 중의 마력을 쓸 때는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마력은 마법사를 중심으로 맴돈다. 마치 자길 써 줄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다음으로는….
던전 주위의 마력에 익숙해졌다. 마법사는 부르면 되고 게이트는 다가가기 쉬웠으니까. 아버지를 따라서도 던전에 많이 들어갔으니 말이다.
던전 브레이크 자체는 가까이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관리청에서 일할 때 그 근접한 단계의 던전은 종종 보아 왔다.
던전에 드나들 때와 던전 브레이크 직전의 마력 움직임은 비슷하다.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파동이 일어난다. 주의할 것은 돌멩이가 아니라 집채만 한 바위라는 거다. 마력이 거세게 움직인다. 갬블은 그 거친 움직임을 측정하여 던전의 변화를 관측하는 장치를 만들었었다.
게이트 발생 시 일어나는 마력은… 좀 더 폭력적이다. 폭탄, 혹은 블랙홀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어느 한 점에 마력이 압축되었다가 갑자기 터진다. 호프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면, 문을 여는 데 필요한 동력을 끌어모으느라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우우우웅….
“……!”
하늘이 울고 있다. 김채민을 붙잡은 채 허공을 떠다니는 마력을 흘깃 보았다.
진공 상태에 놓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력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간 내가 보아 왔던 그 어떤 마력 패턴과도 달랐다.
“우 선생님! 이거 놔주세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요!”
“그걸 확인해야 대책을 세우죠!”
나는 김채민을 꽉 잡았다.
“잠시만요. 잠시만….”
마력이 천천히 위로 떠오른다. 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자연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완전히 낯선 모양새는 또 아니었다.
굳이 비슷한 모양을 찾는다면… 던전이 소멸하기 직전, 던전의 하늘이 부서지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어디 있더라. 교실에 두고 나왔는데. 걔네도 헌터라면, 내가 가르친 걸 조금이라도 마음에 담아 두었다면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나오지 않겠지. 걔네한테 지능이 있다는 걸 믿어 보자.
“…저건.”
조심스럽게 창가로 이동했다. 이미선과 다선의 헌터들도 그런 나를 보고 따라왔다.
마력은 여전히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다. 그러나 운동장 위의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천천히, 작은 구를 만들어서….
“마력이 이상한데.”
마력에 민감한 마법사인 만큼 김채민은 기이함을 금방 눈치챘다.
그 짧은 사이에 마력의 구는 점점 크기를 키워 갔다.
혹시 던전이 만들어지려는 건가? 하지만 아카데미 위치에서는 던전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
“저게 뭐예요?”
“…네?”
이미선이 창문에 바짝 붙은 채로 입을 열었다.
“꼭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이 생겼는데. 마법인가?”
나는 이미선을 보았다.
“어떤 거요?”
“저기, 운동장 위에요. 동그란 거.”
“…보여요?”
“혹시 우 선생님한테는 안 보이나요? 얘들아, 너희 저거 보여?”
“보입니다.”
“보여요, 마스터.”
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저한테도 보입니다.”
마력이 아닌가?
아니다. 저건 분명 마력인데.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이는 거지?
언제나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기에 도리어 보인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력인데? 마력이 맞잖아?
“어? 어어어….”
김채민이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마력의 구가 거칠게 튀어 오르고 있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쿠우우우웅!!!
조금 전처럼 하늘이 울기 시작한다.
소름 끼치는 진동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젠장, 이럴 때 홍석영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인간은 항상 필요할 때 없다.
필요할 때 없어.
난 언제나 필요한데.
파지지직!!
마력의 구가 갈기갈기 조각났다.
쨍그랑!
무언가 깨진다.
소멸하기 직전의 던전에서 하늘을 덮고 있던 유리창이 깨질 때처럼.
그러나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단 한 번만 들렸고… 찢어진 마력의 구 안에서 피에 젖은 깃털이 툭 떨어졌다. 깃털 주제에 팔랑팔랑 소리 없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묵직한 쇠붙이가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 화면으로 하얀 깃털을 달고 있는 몬스터를 보아서인지 그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쿠우우우우….
그러나 찢어진 마력의 틈 사이로 깃털 뭉치가 튀어나오자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깃털 뭉치가 엉망으로 엉켜 굴러가는 가운데, 다시 피에 젖은 깃털과 함께 시뻘건 피로 뒤덮인 뱀의 머리가 나왔다.
금빛 비늘 사이사이 하얀 깃털이 솟아 있다. 화질이 나쁜 동영상으로는 금색 고리처럼 보였는데, 그게 뱀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뱀은 입을 꽉 다문 채 바둥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고통에 겨워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쿵!
머리는 그 상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의 몸통은 없다. 누군가가 찢어발긴 것처럼 너저분한 절단면이 보였다.
한참을 꿈틀거리던 뱀의 머리는 서서히 움직임이 멎었다. 다물린 주둥이도 그제야 힘이 풀려 벌어졌다.
“어!”
김채민이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말릴 새도 없었다. 나도 같이 일어나 창문을 뛰어넘어 달려갔기 때문이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품속을 뒤졌다.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내는 건 헌터의 기본 소양.
유지은의 검?
아니. 지금은 손에 달라붙지도 않은 무기를 쓸 때가 아니다.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는 익숙한 자루를 쥔다. 한때 홍석영이 분신처럼 사용했던 창. 아들에게 물려주고 난 뒤에도 그 위력이 쇠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의 아버지가 똑같은 창을 쓰고 있어서 꺼내지 않았었는데. 비상시에 그딴 걸 따지고 있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나는 창을 꽉 쥔 채 대가리만 남았음에도 먹잇감을 재차 노려 꿈틀거리는 뱀에게 달려들었다. 내 상체만 한 이빨을 쳐 내고 놈이 움찔거리는 틈을 타 바닥을 걷어차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창을 아래로 던졌다. 아버지의 창은 손쉽게 뱀의 주둥이를 관통했다. 입천장과 턱이 창에 꿰뚫린다. 뱀은 창을 뽑기 위해 꿈틀거리지만, 몸통 없이는 힘을 내는 것도 무리였는지 조금씩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뱀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나는 뱀이 물고 있던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젠장, 삼십 분 전만 해도 잘 싸우고 있었다며!!
“호프!!!”
“……커헉!”
숨은 쉬고 있다. 이빨에 관통당한 상처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 뒤늦게 달려온 김채민이 호프의 상처를 향해 포션을 들이부었다. 이미선과 다른 헌터들도 포션을 있는 대로 꺼냈다.
그러나 호프는 피를 왈칵 뱉어 냈다. 검은 피다.
“호프! 정신 차려. 지금 기절하면 안 돼!!”
“…아, 으, 사, 산드라.”
“산드라? 갬블?”
“……아니.”
호프는 내 팔을 붙잡았다. 다 죽어 가는 주제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옷이 호프의 피로 더러워진다. 호프의 손에는 살점이 붙어 있다. 저 피가 전부 호프의 것 같지는 않았다.
젠장,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희재.”
호프는 나를 불렀다.
가물가물하던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잘 들어.”
“…….”
“난 죽었어.”
“…뭐?”
“난 죽은 거야. 그런 걸로 해.”
“뭐라고?”
그러나 호프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급하게 숨을 확인했다.
“…….”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하지만,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