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87)
죽음(3)
헌터 양성 고등학교는 학교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이 점을 항상 기억해 두어야 했다. 여기를 무슨 방주대책본부처럼 사용하고 있다 보니 고등학교치고는 과한 장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갬블이 사용하는 연구실이 그렇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연구실은 학교 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 시설이라고 다를 건 없다. 김채민이 설계에 관여한 강당도 그렇고. 그쪽은 내가 아카데미가 아니라 관리청 명상실 설계도를 빼서 줬으니… 다른 마법사들이 알면 눈이 돌아갈지도.
그 외에 아이들은 잘 모르는 세세한 부분에도 있다.
학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들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보건실이다. 따라서 양성고에도 보건실이 있다. 침대만 열 개가 넘는 으리으리한 보건실이.
심지어 보건실에 근무하는 이는 다선 의료팀에 속한 의사 중 하나였다. 훈련하면서 애들이 입는 부상이라고 해 보았자 가벼운 찰과상이 전부이다. 보건실에 가라고 해도 귀찮다며 대충 물로 한 번 씻고 마는 게 전부였다.
그에 따라 보건 교사… 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급 인력인 보건 교사의 주 업무는 유혜은의 공부 봐주기였다.
한번 물어본 적이 있긴 했다.
‘여기 있으면 지루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 하세요?’
보건 교사 신민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 줄 아는 헌터들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는 거보다 여기가 훨씬 나아요.’
신민서는 반론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듯 강경하게 말했다.
‘다들 절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세요? 이게 로테이션이라서 진짜 너무 슬프다고요.’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은 개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처참히 박살 났다.
“아, 젠장!”
신민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고등학교에 뭐 이런 장비를 다 가져다 놓나 했는데 다 필요한 거였네요?!”
“이유 없는 소비는 없죠.”
“원래 대부분의 소비에는 이유가 없어요!”
항상 느긋하게 허허 웃고 다니던 보건 교사는 잔뜩 인상을 쓴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이나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보건실에도 살균 작용을 하는 룬을 깔아 둬서 다행이지.
쓸 수 있는 룬은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게 해 준다. 이것도 우리의 보건 교사가 좋아했던 것 중 하나다.
‘뭐라고요? 아직 상용화가 안 된다고요? 왜요! 바로 이런 게 세상을 바꾼다고요!’
신민서는 땀에 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려다가 손에 묻은 피를 보고 포기했다. 신민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상태는 안정되긴 했어요. 포션을 그렇게 부어 댔는데 죽으면 그것도 재주가 좋은 거죠.”
신민서는 발치에 굴러다니는 포션 병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빈 포션 병은 데굴데굴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보건실 바닥에 있는 것만 해도 십수 병이다. 운동장에도 수십 병이 굴러다니고 있다.
알렉스 호프의 숨이 붙어 있는 건 운 좋게 오늘 이미선이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운이 좋았던가? 홍석영이 출국하면서 덩달아 일이 생겼는지 이미선은 자기 밑의 직원들만 학교로 보내고 며칠째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 이미선이 아침부터 나온 이유? 사실 난 김채민이 이사장실로 끌고 갈 때까지 이미선이 학교에 나온 줄도 몰랐다.
이미선이 학교에 나온 이유는 뻔하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다. 호프가 싸우고 있다는 보고는 뒤늦게 들었다고 해도, 그곳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모른 체하지는 않을 테니까.
운이 좋든 아니든, 이미선이 있어서 다행인 건 변하지 않는다. 나나 김채민이 들고 있는 포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보건실에 있는 비상용 포션을 다 털어도 부족했다. 이미선이 판촉용이니 뭐니 하며 챙겨 둔 포션에 샘플까지 탈탈 턴 뒤에야 호프의 피가 겨우 멎었다.
“큰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좋아요.”
신민서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저 뱀… 인지 뭔지 모를 몬스터 짓이잖아요. 저거 독 있어요?”
신민서가 아직 운동장에 있는 몬스터를 가리켰다. 내 창에 꿰뚫린 채로도 한참을 움찔거리던 것의 움직임이 마침내 완전히 멎었다. 지금은 시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미선은 부하 직원을 시켜 지켜보게 했다. 김채민도 본인의 마법으로 몬스터를 옭아맸다. 머리만 남은 상태로도 그토록 끈질기게 굴었던 놈이니 경계하는 게 나았다. 아이들에게도 운동장에 나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나는 신민서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처음 보는 몬스터라서.”
“…저도 중독되는 거 아니죠?”
“그랬으면 저랑 다른 분들부터 중독되었죠. 독은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신민서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 선생님이나 다른 헌터들은 각성자잖아요. 전 지능이 조금 높은 민간인이라고요. 몬스터의 독을 소량만 섭취해도 죽어요.”
“김 선생님이 간이 감별 키트를 만들어서 확인했습니다.”
“아, 그 룬?”
“네. 독성이 있는지 없는지만 빠르게 확인했는데, 없었습니다.”
신민서는 다시 의자에 늘어졌다.
“그럼 다행이고요. 구급차는 언제 와요?”
“안 옵니다.”
“…네?”
나는 보건실 안쪽 침대에 누워 있는 호프를 보았다. 일반 학교 보건실에서는 볼 수 없는 복잡한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신민서의 말대로 고등학교 보건실에 있는 장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다. 나도, 이미선도, 심지어 홍석영마저도 이건 과하다며 반대했었는데 김채민이 밀어붙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가 다쳤을 때 일반 병원에 갈 거냐고 해서.
이미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입원이라도 하게 된다면 숨기는 것은 힘들다. 홍석영이나 김채민이나 병원에 입원하면 이미선이 제아무리 돈을 뿌린다고 해도 완전히 숨길 수 없다.
그래서 김채민은 끝까지 주장했다. 양성고처럼 시선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내가 김채민의 손을 들어 주었고, 내가 넘어가자 홍석영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않냐는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가면 이미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그때 김채민의 말을 들어서 잘되었다. 물론 김채민도 이 보건실에 입원하는 첫 번째 환자가 알렉스 호프가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혜은이는요?”
나와 같이 가만히 호프를 지켜보던 신민서가 불쑥 물었다.
각성자도 아닌 민간인 의사지만 다선 소속인 신민서는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 사람도 협회 소속인가? 그렇다고 듣지는 않았는데.
“최소한 외상을 치료하는 데는 혜은이가 도움이 될 텐데요.”
“네. 그렇죠.”
“물론 걔가 아직 정식으로 등록된 치료사는 아니지만 위급 상황이고… 제가 감독하면 되는데.”
“안 그래도 김 선생님이 물어보러 갔습니다. 조금… 민감한 사항이라서.”
“민감한? 사람 목숨에 그런 건 없어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알렉스 호프는 우리의 조력자다. 나도 녀석을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뱀 대가리를 막기 위해 창을 들지도 않았다. 포션을 쏟아붓지도 않았고.
이 일에 아이들을 끼우지 말자고 말했지만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까지 그걸 따질 생각도 없었다.
“알렉스 호프는 죽어야 하거든요.”
“네?”
“혜은 학생이 어디서 말하고 다닐 애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조심해야 하니까요.”
“…진짜 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죠?”
“당연하죠. 어차피 내일쯤이면 죽었다고 발표가 날 겁니다.”
호프가 붙잡은 팔이 저릿하다.
다 죽어 가는 놈이 힘은 좋아서.
그게 유언이 되지 않길 바랐다. 지금 초조하게 복도를 서성거리는 산드라 갬블을 위해서라도.
* * *
[지난 13일, 미국 보스턴시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였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몬스터의 등장으로…]갬블은 뉴스 화면을 껐다.
눈가가 시뻘겠지만 의외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간 호프를 구박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갬블이 호프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분명했다.
혹시 갑자기 난동이라도 부리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건 내가 갬블을 알지 못해서 생긴 착각이었다.
갬블은 그 누구보다도, 나나 김채민, 이미선보다도 훨씬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샨샨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네.”
“알렉스는 어때요?”
“안정되었습니다.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혜은 학생이 도와줬다고요? 걔가 그 치료사, 였죠?”
“네.”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야겠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다. 그러나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산드라 갬블은 깊이 가라앉았다. 깊이, 깊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참고 있는 거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
그래도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까?”
“안 괜찮을 게 뭐 있어요?”
갬블은 뾰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곧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뇨, 아뇨…. 죄송해요.”
“아닙니다. 제가 괜한 걸 물었습니다.”
“아니…. 하. 아니요. 이게 다 알렉스 때문이잖아요.”
갬블은 흐리게 웃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짙은 피로감이 그 미소에서 묻어 나왔다.
처음으로 이곳의 갬블에게 내가 아는 산드라 갬블이 겹쳐 보였다.
“걔가… 그렇게 말한 것도 이유가 있겠죠. 아니, 이유를 알아요. 알겠어요. 오히려 걔가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는 거에 감탄했어요. 드디어 뇌를 사용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갬블은 여전히 웃고 있다.
“봐요. 이건 분명 헨리 레만이 한 짓이에요. 알렉스를 죽이려고 한 거겠죠. 던전 브레이크를 틈타서. 알렉스와 내가 한 짓이 그거였으니까, 헨리 레만 식의 농담일 거예요. 그 자식 성격 진짜 더러워 보였거든요.”
“…네. 그렇겠죠.”
“그러니까 헨리 레만이 원하는 대로 알렉스가 죽으면 돼요. 죽으면… 오히려 행동 제약이 풀려요. 나는 복수를 명분으로 당신들한테 협력할 수 있고, 이쥔이나 올리버는 노아 미셀에게 이용 가치가 없으니 잊히겠죠. 레만은 건들지도 모르겠어요. 알렉스가 진짜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갬블은 숨도 쉬지 않고 이어 말했다.
“그래도 반응하면 안 돼요. 진짜 죽이진 않을 테니까. 시체가 없으니까 레만은 알렉스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거예요. 섣불리 죽였다가는 귀찮을 수도 있으니 죽이진 않고 살살 간만 보겠죠. 그걸 참으면 레만도 결국 포기할 테니까. 레만은 그렇게 인내심이 긴 놈이 아니에요. 남자가 다 그렇죠.”
“…….”
“그러니까 알렉스가 죽는 게 맞아요. 걔가… 여기까지 일부러 온 것도 그거 때문일 거예요. 시체를 남길 수 없으니까. 그만한 거리를 이동하면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도 반동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갬블은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소리가 물기에 젖었다.
“그래서 궁금해요.”
“…무엇이요?”
“자길 죽었다고 생각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는지.”
“…….”
“자기가 진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설마 그랬겠습니까.”
“걘 그 정도로 바보니까요.”
갬블의 어깨가 떨린다. 위로를 해 주어야 하나 싶어 입을 열려는데, 김채민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문을 닫기 전,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