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91)
할 일(4)
“오늘 이상한 아저씨 만났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우이록은 마침 생각났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상한 아저씨?”
“응. 형이 데리러 오기 전에 보육원에 있었을 때 썼던 이름 있잖아.”
박정민.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니, 우이록도 나를 따라 슬쩍 미간을 좁힌다. 어린 게 벌써부터.
“그 이름을 막 부르길래.”
“대답한 건 아니지?”
“날 뭘로 보고? 안 했어.”
우이록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애들도 그런 애 없다고 말했는걸.”
“…그러더니 그 아저씨는 갔어?”
“소장이 어쩌고 얘기하면서 날 붙잡으려고 하길래 형이 가르쳐 준 대로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괴범이라고 애들이랑 같이 고함지르니까 도망가더라고.”
“잘했어.”
“앞모습은 못 찍었는데 뒷모습은 사진 찍어 놨는데.”
“형한테 그거 보내 줘. 앞으로도 혼자서 구석진 곳에 가지 말고. 알았지? 계속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
“알았다니까. 몇 번을 말해.”
“다선 아저씨 전화번호 알지? 아저씨 중 하나는 항상 주위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왜 내 주위에 있는데? 그 아저씨들은 일 안 해?”
…그게 일이라고 얘기하면 애가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거기에 사무실이 있어. 가끔 형이 못 데려다주는 날 왜 아저씨가 데려다주겠어?”
“아.”
“그것도 힘들면 경찰한테 전화하고.”
“흐음.”
“어쨌든 소리친 건 잘했어. 그게 아니더라도 이상한 사람이 오면 무조건 소리 질러. 알겠어?”
“알았다고!”
우이록을 짜증을 내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얌전히 자기 먹은 그릇을 정리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강태우는 여전히 눈치 보고 있지만 이 녀석은 눈치라기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면 강태우는 우이록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언제나 나를 위해 그곳에 있었으니까. 형도 연구소의 다른 아이들을 돌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린 내 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든든한 울타리와는 다르다. 강태우에게는 그마저도 가지지 못한 무언가였을 수도 있지만.
“우이록! 바로 TV 보지 말고 이 닦아!”
“안 그래도 닦으려고 했어!”
우이록은 꽥 고함을 내지르며 욕실로 쏙 들어갔다.
저 나이 때의 나는 울타리고 뭐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나한테 힘이 있다면 형을 찾고 싶다고 염불하고 있을 뿐이었지. 난 강태우만큼 어른스럽지 못했다니까.
지금도 별생각 없을걸?
실제로 내가 이상한 사람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당부할 때도 귀찮아하기만 했었고.
그래. 있는 줄도 모르는 울타리가 단단히 보수까지 되어 있는데 달라질 게 있겠나.
내가 진짜 형이 아닌 줄도 모르고…. 멍청한 놈……. 아니, 이젠 내가 진짜 형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 없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
띠링.
욕실에 들어가서 뭘 꼼지락거리나 했더니 자기가 찍은 그 이상한 아저씨의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허둥거리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낮에 우이록을 살펴보는 다선 헌터가 보내온 사진에 있던 남자와 동일한 놈이다.
우이록이 벌써부터 형에게 비밀을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흠. 또 모르는 일이지. 애들은 금방 크는 법이다.
우이록도 새 학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인지 뭔지 모를 관계에도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 언제는 내게 꼬박꼬박 말해 주더니 지금은 숨기기 바쁘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애들은 금방 자란다….
음. 뭐,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다. 학교에서 생기는 친구 사이의 일은 숨길 수 있지만 옛 연구소와 관련된 이름을 부르며 쫓아오는 아저씨의 존재를 숨기면 안 되지.
그러니까 난 그렇게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다니까. 우이록이 그런 걸 숨길 만큼 멍청하다면 그건 내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쟤의 문제지. 쟨 내가 아니라니까?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찾았습니까?]나는 이미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선은 바로 답장을 했다.
[근처 모텔에서 머물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지금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에요.] [신원은?] [파악 중. 데이터베이스에 나오는 게 없어요.]나는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 쉬웠으면 방주 놈이 아니지.
[한국인이 아니면 찾아내는 데 더 걸릴 수 있어요. 이록이한테는 단단히 주의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혹시 뭐라도 기억나면 꼭 말해 주고요.]“…….”
이거 아무리 봐도 알고도 말 안 한다고 의심받는 건 나인 것 같은데.
대충 이미선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다음 사진을 재차 보았다.
잔뜩 주름지고 해진 낡은 양복. 사이즈가 맞지 않는지 구겨 신은 단화. 부러진 다리를 테이프로 고정한 안경은 코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아직 서늘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으로 흥건한 머리카락이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아는 얼굴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소에 있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 일단 오래된 일이라 내가 거기 있던 사람들을 전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연구소 사람을 전부 알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연구원들도 매번 보는 사람들 말고는 알지 못하고. 형처럼 가면을 쓰고 있는 청소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딱히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저런 육중한 몸을 가지고 청소부 노릇을 했을 것 같진 않고. 내가 알기로 청소부는 대부분 각성자이다. 헌터와는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육체노동이 많은 이들이다. 무거운 몸을 가지고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소장이 어쩌고 얘기하면서.’
약속의 강 연구소 마지막 연구소장의 행방은 묘연하다. 원래대로라면 홍석영이 아이들을 구출하면서 소장도 함께 체포한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소가 일찌감치 도망간 상태다. 아이들은 갬블이 빼돌리거나, 보육원에 있는 걸 이미선이 추적해서 되찾고 있는 중이고.
아이들이 무사한 건 다행이다마는 연구소의 중추들을 붙잡지 못한 것은 타격이 크다. 갬블도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고…. 다선 측에서 아이들을 쫒으면서 몇몇 놈들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발 빠른 놈들은 진작 한국을 떠난 걸로 추측되곤 있었다. 아마 헨리 레만 측에 합류한 놈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우이록에게 접근한 놈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모르는 얼굴이 아는 얼굴이 되진 않겠지만, 기억은 해 두어야지.
어쨌든 모처럼 나타난 연구소에 관한 단서다.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 * *
“그래서 던전에서는 마나 농도를 끊임없이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 룬 배웠지? 그려 봐.”
“네?”
“쪽지 시험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아이들은 끙끙거리며 룬을 그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 봤자 내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알 정도의 시간은 되었지.
박서현이 망설이지 않고 선을 긋고 있는 옆에서, 오현욱은 덜덜 떨면서 룬을 그리고 있다. 그래도 룬 자체는 제대로 그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점점 선이 이상한 곳으로 향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보았다. 아직도 운동장에는 몬스터 사체가 남아 있다. 그나마 심신과 미관에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김채민이 방수포를 가져와 가림벽을 세웠다.
방수포로 만든 가벽 아래로 땅에 흡수되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붉은 피가 잔뜩 고여 있다. 솔직히 이쪽이 좀 더 조경을 해치고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
그런데 방수포 주위에는 평소에 보기 힘든 남자 하나가 기웃거리고 있다.
가죽 재킷, 부스스한 머리카락. 핑크색 선글라스.
보통 학교에서 아이들의 전투 훈련을 맡고 있는데, 운동장을 못 쓰니 덩달아 할 일도 없어진 한태경이었다.
한태경은 가벽 안쪽을 향해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새삼스레 몬스터가 궁금해지기라도 했나.
정작 김채민은 몬스터 분석이 잘 되지 않는지 요 근래 저기압이었다.
뭐라고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말았다, 한태경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뭔 시답잖은 얘기나 하고 있겠지. 체이스가 얼마나 똑똑한 고양이인가 하는.
그러나 아이들의 룬을 채점하고 운동장으로 나갔을 때 김채민은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무장갑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네? 뭐라고요?”
“왜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냐고요.”
“아. 아니….”
김채민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김채민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려다가 고무장갑을 보고 멈칫했다. 김채민은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시야를 방해하는 머리카락을 치운 후 입을 열었다.
“한태경 선생님이요.”
“원래도 이상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거야 그렇겠죠. 나중에는 멀쩡했다고 하면 그게 더 무섭다고요.”
김채민은 손을 쫙 편 채로 땅과 평행하게 허공에 선을 그었다. 김채민의 마력이 우리 주위로 투명한 벽을 세웠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한 선생님은 방주와 관련되지 않았던 게 확실한가요?”
“그건….”
김채민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제가 모르는 곳에서는 어땠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선생님도 별로 아는 건 없었잖아요?”
“…….”
“미안해요. 너무 정곡을 찔렀죠.”
김채민은 전혀 미안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사과했다.
“…미국으로 자주 출장을 갔으니 홍석영에게 뭔가 임무를 받았을 수는 있습니다.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죠….”
“왜요?”
“그럼 한 선생님을 믿을 순 있는 거죠?”
“못 믿을 인간이었으면 애들 옆에 가져다 놓지 않았을 겁니다.”
“미래에요?”
“미래에도요.”
김채민은 짧게 신음을 냈다.
“한 선생님은 왜요?”
“아니, 그게.”
김채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만 더요. 한 선생님이 실력 좋은 헌터인 건 맞죠?”
“네. 성격이 그 모양이라서 그렇지, 홍석영의 뒤를 이을 만한 실력자로 점쳐지기는 했습니다.”
“유럽에서 활동도 많이 했고요?”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이십 대까지는요. 홍석영의 부탁으로 아카데미… 그러니까 양성고에서 교사 노릇을 한 뒤로는 한국과 미국에서만 활동했어요.”
“저번에도 들었지만 홍 선생님과 한 선생님 둘만 있는 학교라니. 진짜 상상하기도 싫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진짜 한 선생님은 왜요?”
“한 선생님이 조금 이상한 소리를 해서요.”
“이상한 소리?”
김채민은 결국 피에 절은 고무장갑을 벗고 머리를 다시 묶었다.
“이런 놈이 던전 밖으로 나오는 일은 드문데 도대체 무슨… 거래를 했길래 나온 거냐고.”
“…….”
나는 김채민의 말을 곱씹었다.
“……뭐라고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나는 김채민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수상하고, 찝찝하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실을 깨닫게 된.
“완전 수상하죠?”
“수상합니다.”
“한 선생님 불러올까요?”
“잡아오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