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93)
요술 램프(2)
“요술 램프라기보다는 다른 이름이 붙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거요?”
“아니, 소원을 이루어 준다기보다는 치료해 주는 거잖습니까. 대가도 알뜰하게 챙겨 가는 모양이고.”
“그게 문제예요?”
“생각보다 사람은 말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똑바로 불러야….”
나는 김채민에게 대충 대꾸하며 포럼 당시 셈 블룸이 뭔가 수작을 부렸던 던전의 몬스터를 떠올렸다.
큰 덩치. 새하얀 깃털.
셈 블룸의 팔에서 돋아난 깃털까지.
새것으로 바꿔 준다는 말이 걸렸다.
…셈 블룸의 팔도 새것으로 바꾼 것인가? 하지만 깃털이 달린 팔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태경이 말해 준 요술 램프의 도움을 받은 헌터들의 새 팔과 다리는, 혹은 내장과 눈은.
진짜 그 헌터의 것이 맞는가?
* * *
2021년 9월 16일.
세계미공략던전 포럼 2일 차.
호프가 사라지고서 홍석영은 창을 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우희재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이거 너무 무식한 방법 아닙니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말하게.”
우희재는 슬쩍 발을 뺐다.
“계속하시죠.”
홍석영은 그런 우희재를 보고선 코웃음 쳤다.
“어차피 부수는 건 나인데 자네가 왜 질색하는 건가?”
“너무 무식하잖습니까.”
“원래 던전 공략은 육체노동이네.”
홍석영은 바닥을 향해 창을 세웠다. 창은 케이크를 자르는 칼처럼 바닥을 손쉽게 갈랐다.
“내 제자라면서 그거 하나 모르는가?”
쿠웅!
우르르 무너지는 바닥 겸 천장을 보던 우희재는 질린 얼굴을 했다.
“몬스터가 없어서 망정이지…. 혹시라도 나오면 어떡합니까? 이 밑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잖아요.”
“어허. 내 제자라면서 그것도 몰라?”
“…….”
“제자면 스승에 대해서 알아야지.”
홍석영은 혀를 차며 웃었다.
“다 죽이면 된다니까.”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발밑.
정체 모를 던전의 가장 아래. 어두컴컴한 공동.
공동의 중앙에는 새하얀 깃털을 달고 있는 황금색 거대한 눈알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맡아지는 것은 피비린내.
“갑시다.”
홍석영와 우희재는 부순 바닥 구멍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다소 급하게 움직이느라 밑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유럽에서 온 젊은 마법사가 어떤 준비를 해 놓았는지 알았다면 조금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래도 똑같이 아래로 내려갔을 수도 있다. 홍석영의 말대로 다 죽이면 되니까.
그물처럼 촘촘히 뻗어 있는 마법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이들이 휘말린다. 인간의 취약한 정신을 파고드는 환영 마법은 노련한 두 헌터를 오래 붙잡지는 못할 테지만 잠깐의 시간을 벌어 주기만 하면 충분했다.
젊은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에 누가 걸렸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 시선을 줄 시간마저 아까웠다. 마법사는 그저 깃털 뭉치를 마주 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거대한 눈 또한 느리게 깜빡이며 마법사를 마주했다.
마법사는 온몸을 울리는 목소리에 답했다.
이미 자신의 뜻은 전달하였다.
“어차피 저는 이 모습으로 살아갈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헌 피를 바쳐 가장 높은 자의 육신을 받을 수 있다면 영광이지요.”
[그 런 가>“네. 그렇고말고요. 저의 믿음은 불변. 영광은 영원. 삶은 지속되고 죽음은 정복됩니다.”
[그 렇 다 면>“뜻은 계속되며, 의지는 전해집니다. 거룩한 희생은 기억되며 별은 지켜지며 하늘은 열립니다.”
[그 렇 다 면>“네.”
[손 을>마법사는 무릎을 꿇는다. 신에게 기도하는 신자처럼 경건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
“더러운 육신을 정화하여 새로운 몸으로. 더 나은 세계로.”
거대한 눈은 마법사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법사는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사 보았다고 해서 인간의 잣대로 단정하는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능이 높고, 다른 세상의 종족에게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 줄 만큼 동정심이 강한 ‘눈’이 표현하는 감정은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보다 많은 것을 쥘 수 있게. 보다….”
거대한 눈은 마법사의 기도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욕심 많은 생명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이곳도 곧 영원히 닫힐 것이고, 깃털도 사라질 것이다. 비록 원하는 방향은 아닐지언정 한 영혼이라도 만족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멀쩡한 자신의 몸을 포기한다는 선택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마 영영 이해하게 될 일은 없을 테다.
마법사가 중얼거리는 말은 깃털 뭉치와 눈에게는 닿지 않았다. 쓸모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원하니 이루어 주지만 그것은 순전히 선의에 의한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심술궂은 마음을 담아 좀 더 많은 대가를 챙겼다.
피가 흐른다. 생명의 근간이 더럽혀진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영혼이니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 많은 생명. 욕심 많은 영혼. 욕심 많은….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감정만큼은 즐겁다. 이 세계에도 불처럼 세상을 태우기 위해 달리는 이들이 있다는 뜻이니까.
거대한 눈은 마법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다음에는 마법사의 마법이 부서지고, 화를 내는 생명이 등장했다.
빠르게 주고받는 말은 거대한 눈에게 닿지 못했다. 공동이 무너질까 싶어 마지막 남은 동력을 끌어모아 보호에 힘썼다. 다른 생명들과 마찬가지로 최후만큼은 평온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정도 소란이 가라앉은 적당한 타이밍에, 안으로 들어온 다른 세계의 생명들을 차례대로 밖으로 내보냈다. 저 욕심 많은 인간이 자신을 찾아오겠다며 억지로 열어젖힌 문으로 휘말린 가여운 영혼들이었다.
모든 생명이 사라지자 공동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눈은 가만히 마지막을 기다렸다. 바닥에 쏟아진 생명, 붉은 피는 평온이었다.
그러나 그 고요를 깨는 이가 있었다.
“안녕.”
붉게 물든 영혼 하나가 눈앞에 툭 튀어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던 생명 중 하나였다.
눈은 영혼을 보았다. 가까이서 보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깜빡거리는 희미한 날개.
본디 별처럼 반짝였을 날개는 구멍이 잔뜩 뚫린 채 너덜너덜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에이. 그렇게 놀라지 말고. 사이가 안 좋다고 듣긴 했지만, 그건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난 마지막 세대거든. 그리고 지금은 인간이야. 이쪽 세계의 생명. 알지? 보이잖아?”
깃털이 파르르 흔들린다. 고요 속에서 알렉스 호프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응, 응. 맞아. 인간이라고 해, 여기 생명들. 아니, 난 여기서 살 거야. 상관없어. 오히려 다 망했으면 하는데.”
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감하게 됐다고! 알아? 나이 먹을 대로 먹어서 남들 하는 말 다 들어주고 다니지 말라고. 걔가 바꾼 눈으로 뭘 할지 생각하면… 에이. 말해 주러 가야겠네. 나 또 맞을 것 같은데.”
손바닥으로 가슴 언저리를 문지르던 호프는 입 안에 고여 있는 피를 퉤 뱉었다. 깃털이 뾰족하게 날이 섰다.
호프는 코웃음 쳤다.
“좋아하는 피잖아. 먹어. 그리고 내 부탁도 좀 들어주라.”
깃털이 멈췄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아니, 어려운 건 아니고. 음, 아니. 날개는 안 돼! 발도 안 되고! 아직까진 이동할 일이 많아서… 안 된다니까! 쓰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많아서는!”
호프는 혀를 쯧쯧 차더니 말했다. 그러나 한풀 기가 꺾인 채였다.
“…능력이 약해지고 있어. 인간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일러. 아직은 안 돼. 써야 할 일이 남아 있어.”
잠시 깃털이 속삭이는 말에 귀를 기울이던 호프는 남아 있던 웃음기마저 싹 지우고 답했다.
“그래. 날개가 조금 더 붙어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 그냥 조금만 더. 내가 엄마랑 산드라를 지킬 수 있게.”
깃털 하나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있는 피와 먼지 따위는 깃털을 더럽히지 못했다.
얄미울 정도로 하얗기만 한 깃털을 바라만 보던 호프는 곧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진짜? 그래도 괜찮아?”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에서는 숨겨지지 않는 기쁨이 묻어 나왔다.
“나도 가여운 영혼으로 쳐주는 거야? 말 바꾸면 안 돼! 진짜지?”
깃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백의 깃털은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호프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수십 장의 깃털은 호프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등에 붙었다. 깃털이 쌓이고 쌓여서 호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멋대로 떨기 시작했다.
깃털은 마치 날개처럼 호프의 등에 붙어 펄럭이기 시작했다. 호프는 깃털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고마워!”
거대한 눈은 천천히 가동을 멈추었다.
어리고 가여운 영혼은 본래의 날개에 비하면 훨씬 투박하고 무거운 날개를 가지고도 즐거워했다.
그 영혼은 저 종족이 오래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으로 충만했다. 어린아이를 이끄는 것은 종족을 막론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호프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 소리에 맞추어 하얀 날개가 펄럭거리다가 사라졌다.
“…어. 간섭까지 강해져? 그건 좀 곤란하려나. 아니지,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좋을지도? 뭐,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거대한 눈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영혼에게 충고했다.
“아냐, 괜찮아. …힘을 쓸 때마다 깃털이 빠질 거라고? 알기 쉬워서 좋네.”
호프는 바닥을 걷어차는 것을 멈췄다. 금방이라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마쳤으면서도, 호프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기, 혹시 다른 이들은 어때? 많이 남아 있어?”
호프는 이 질문을 떠올린 스스로를 칭찬했다.
돌아가서 산드라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산드라가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진 않았다.
‘여기가 아니면 노아가 아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어. 그리고 거긴 악질적인 놈이 있는 곳이라 더 쓰지도 못하고.’
호프는 바닥을 보았다. 겨우 피와 헌 몸을 받고 교환해 주는 마음씨 좋은 날개 뭉치도 없을 거다.
노아가 쓸 수 있는 곳이 더 없다면….
호프는 눈이 말하는 대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없어? 남아 있는 것도 금방 닫힌다고. 알았어.”
그럼 다행이다.
호프는 한시름 던 얼굴로 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호프가 던전을 떠나기 직전, 거대한 눈이 완전히 감겼다. 던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노아는 거래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그건 왕도 마찬가지야. 내가 알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할 거고.’
호프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이점 중 하나였다.
‘남은 이들도 금방 사라질 거라고 했으니까…. 하긴, 그 망한 세상을 떠나기로 한 이들도 많지 않았을 거야.’
노아가 아는 다른 곳에 있는 놈처럼 성질머리가 더러워 아득바득 이 세계에 남아 있으려는 놈도 있겠지만…. 그런 놈들이 기원을 제대로 들어주는 일은 없을 테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호프는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하얀 깃털 덩어리에 대해서는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노아가 남은 놈을 써먹기로 결심한다면 오히려 좋아. 그게 노아의 패착이 될 테니까.’
호프는 멸망한 세계의 조각과 세계 사이의 마력을 넘었다. 등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깃털 하나가 붉게 물들더니 허공에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이제 세미를 처리해야겠네!”
호프는 기운차게 외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