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96)
유언(2)
“자, 그래. 그 상태에서 마력을 조심스럽게… 아니! 너무 빨라!”
“…으. 이거 너무 어려워요, 선생님.”
아이들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무작정 마력을 일으켜서 위력을 높이는 연습만 했으니 힘들어하는 것쯤이야 예상했다.
“언제까지 쉬운 것만 하려고?”
“그동안 쉬운 걸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예요.”
“진짜 어려운 게 뭔지 보여 줘?”
“아뇨! 지금 저희 수준엔 이게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마법사들이야 곧잘 따라 하고 있었지만 섬세한 마력 작업을 해 본 적이 없는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쩔쩔매고 있었다.
도와줄 생각이야 없지만 그래도 기운이라도 내라는 의미에서 설명했다.
“이건 시제품이라서 다소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한 거야. 차츰 연구실에서 업그레이드하면 나아질 거다.”
“그때가 되면 저희 실력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지.”
뭐, 그리고 아직 마력 패턴으로 사용자를 인식하는 각성자 전용 장치들이 드물어서 그렇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어서 나오기 시작하면 녀석들은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나는 유지은을 보았다. 자그마한 머리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평소에도 속내를 알기 쉬운 아이기는 하지만….
미간을 잔뜩 좁혔다가 고개는 물론, 몸 전체가 왼쪽으로 기운다. 마력을 살살 일으켰다가 멈칫거린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부르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는가 싶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한숨을 푹 내쉰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밌다. 저게 내가 아는 그 유지은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우이록이 우희재가 되지 않듯, 유지은도 홍지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걸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돌아보지 않겠다고 결심도 했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이를 겹쳐 보지 않기로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지 못할 가족들에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미련과 안녕을 고하는 것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으악!!”
끝내 유지은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동생의 비명에 덩달아 놀란 유혜은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으아악!!”
“뭐, 뭐야!”
유지은이 재차 비명을 지르자 처음에는 무시하던 아이들도 하나씩 돌아보았다.
이승연은 목을 쭉 빼고 유지은이 들고 있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망가뜨렸어?”
“아냐! 아냐…. 아닐… 걸?”
유지은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손목에 있는 시계는 파란빛을 화면에 띄운 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유지은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서, 선생님!”
“망가뜨린 거 아니니까 괜찮아. 시계 줘 볼래?”
투박한 생김새.
마력에 반응하여 빛나지만 않았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스포츠 시계 정도로 여길 것이다.
갬블은 훌륭했다.
매번 감탄하는 점이었지만, 찬사를 보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다양한 던전 환경을 이유로 들면서 최대한 마력 시계와 비슷한 스포츠 시계의 사진을 예시로 들었더니 훌륭하게 복사해 주었다. 물론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은 있지만 아이들이 시계 디자인을 비교하고 있을 것도 아니니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봐라. 유지은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내게 시계를 건네주지 않는가.
이건 아이들에게 설명한 대로 던전 내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비상 신호기가 아니라, 이십 년 뒤의 미래에서 온 마력 공학의 총집합체다.
나는 시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직 테스트 중이라고 했잖아. 작동 오류가 난 모양이다. 확인하고 다시 주마.”
“네!”
유지은은 내 말에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힘차게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시계를 품속에 잘 챙겨 넣었다.
마력 시계 시제품은 나와 아버지가 하나씩 차고 있다. 세 번째 시제품은 누나의 것이 될 예정이었다. 본래는 누나가 먼저 가지는 것이 맞겠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 양보했었다.
그때는 뭔가 생색이라도 낼 속셈인가 싶었는데.
아니, 속셈이 있긴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날 끌고 과거로 갈 생각이었으니.
관리청 본부장의 위치로 바쁜 아버지와, 헌터 라이센스가 있지만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나 대신 누나는 마력 시계 개발에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테스트도 모두 누나가 진행했으니까, 뭐.
내 시계나 아버지 시계도 누나의 테스트를 거쳤다. 그러니까 아마도, 있을 거다.
무엇이든 간에.
“나머지는 잘 작동하지?”
“네!”
“조작법은 간단하다. 어차피 대단한 기능도 없어.”
이승연이 딴죽을 걸고 싶다는 듯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앉아 있는 녀석들 중에서는 그나마 던전 공략과 관련된 물품에 익숙하다. 짧은 설명으로도 이게 대단한 기능이 없다는 말로 소개될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게 몇 년이나 앞서 튀어나온 물건인데. 당연하지. 나는 코웃음 치며 설명했다.
“솔직히 던전 밖에서는 휴대폰이라는 좋은 현대 문명이 있잖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건 던전 내부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한 거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녀석들이 아니다. 그렇게 멍청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마력 시계를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잊어버릴 일은 없지만, 그래도 잊어버리지 않게 미리 챙겨 두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이 교실을 뛰쳐나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마력 시계에 발이 달려서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 짧은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 * *
자,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은 어떨까.
대부분의 헌터들은 본인들의 삶이 죽음과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던전에 들어가고, 괴물들과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하게는 부와 명예를 좇는 이가 있고, 가진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은 가족을 잃은 복수를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더 적은 이들이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달콤한 환상을 향해 손을 뻗었고.
서른여섯 살의 유지은은 그중 복수를 꿈꾸는 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각성했을 때만 해도 나도….’
언젠가 각성은 할 거라고 믿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그냥 어린아이의 믿음이었다. 각성을 하면 뭘 할지 매일 밤 누워서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고. 가까이에 본받을 만한 훌륭한 어른이 있으니 참고하기도 좋았다. 정작 홍석영은 유지은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으면 기겁하며 본인은 그런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겠지만.
어린 유지은은 언니, 오빠들을 따라 던전에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힘을 원한다든지, 사람을 구하겠다든지.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당연히 복수 같은 한 많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지은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홍석영은 자신이 유지은의 삶에 복수라는 선택지를 집어넣었다고 후회했지만, 유지은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 복수라는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에 유지은은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몇 번이고 자신의 피에 잠겨 죽어 가는 와중에도 일어났다. 언니를 해친 놈들이 남아 있는 동안은 눈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지은도 다른 많은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자신에게 그런 행운이 따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홍석영에게 제의했다.
‘관리청도 그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거?’
‘유언장, 그거요.’
‘아. 그거. 저번에 말은 나왔었지?’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하고 있더라고요. 괜찮아 보여요. 안 그래도 그놈의… 사랑싸움으로 팀 공중분해 된 이후로 애들이 넋이 나가 있어서.’
‘끄으응…. 그렇지.’
소속 헌터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었다. 정부 소속 헌터뿐만이 아니라 사설 길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든 던전에서 돌아오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평소라면 전하지 않았을 말을 여차할 때 전할 수 있도록.
“윽. 유언장을 쓰라고요?”
다만 한국의 이능관리청은 던전 공략팀의 헌터뿐만이 아니라 사무직원들에게도 유언장을 쓰라고 했다.
“그래.”
“아니, 무슨 사무직까지 쓰라고 합니까?”
“넌 던전에 들어가잖냐.”
“…아니, 그래도!”
“공략팀이 아니라도 유언장을 쓰면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할 수 있을 거라는 본부장님의 지시다.”
“…….”
우희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 설명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은은 괜히 우희재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아, 저리 가라고!”
“뭐라고 썼는지 좀 보자.”
“됐다고!!”
“뭐 부끄러운 거 썼냐?”
“남의 유언장을 봐서 뭐 하게?”
“우리가 남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더 보면 안 되지!”
“알긴 아는구나?”
“나가라고!!!”
유지은은 낄낄거리며 우희재의 사무실을 나왔다. 남들 앞에서는 얄미운 말이나 하며 건방지게 굴지만 이럴 때는 처음 만났던 꼬맹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얼굴로 고함이나 바락바락 쳐 댔지….
유지은은 노트북을 들고 와 빈 회의실에 들어갔다.
사실 우희재를 놀리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유지은 빈 메모장을 하나 켜 놓고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낸 것치고는 쓴 게 없다.
쓰고 싶은 말이야 많다.
차고 넘친다.
언니가 죽은 지도 십 년이 넘었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절망하던 것이 무색하게 소중한 것들은 다시 피어났다.
아, 누가 지금 자신을 장례식장에서 상복 입고 복수를 꿈꾸던 소녀라고 생각하겠는가.
유지은은 바닥을 걷어찼다. 의자가 빙글빙글 돈다.
한참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만 깜빡이던 유지은은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래, 셋 중 죽는다면 자신이 제일 먼저 죽지 않을까.
유지은은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빈 메모장에 글자가 하나씩 채워진다.
시작은 단순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구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가 죽은 거겠지.]우희재가 욕하겠군.
유지은은 글자를 지웠다. 어차피 재산이나 그런 문제는 변호사를 끼고 작성할 생각이니 지금 이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몇 안 되는 기회이다.
어차피 죽은 뒤에야 공개된다. 그때까지도 하지 못할 말은 없다.
유지은은 피식 웃었다.
지워진 메모장에 글자가 다시금 써진다.
[이 순간에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못 할 짓이죠.선생님. 언니와 저를 데려온 그날, 저한테 한 말 기억하세요?
선생님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아마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그 인간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을 테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선생님은 제 아버지입니다.
저를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언니에게 어린 시절을 누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