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02)
장래 희망(3)
순순진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종이를 챙겨 교실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영 불안하기는 했지만, 넘어지는 일 없이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
다소 거창하게 말했다마는 결국 내가 하려는 말은 ‘취미 좀 만들어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잖아. 헌터의 일이 무엇인가? 던전 공략과 몬스터 사냥. 그거 말고 더 있겠는가?
관리청에서는 공략 여부에 상관없이 던전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의무적으로 휴가를 가진다. 집에서 쉬어도 되고, 심심하면 누나처럼 관리청 내부를 배회해도 상관은 없다.
그게 왜냐.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던전 안에서 퇴근이 있겠는가?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야근했으면 당연히 쉬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아직 이 녀석들이 학생이기 때문에 모르는 거다.
헌터도 결국 인간이고, 휴식이 필요하다. 나중에 실제로 헌터 노릇을 하게 된다면 알아서 남는 시간을 보낼 거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못 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교외 활동을 추구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
오현욱의 종이를 정리했다. 아마 오현욱 성격에 이걸 순순진이 봤다는 걸 알게 되면… 음.
뭐, 별일이야 있겠어? 걔가 나한테 뭘 하겠나. 어디서 술이나 마시고 굴러다니지도 않을 테고.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그래, 5년 뒤에 우리 동창회 꼭 하자 소리나 듣고 말겠지.
그리고 아까 순순진의 반응을 보면 애들한테 말하고 다니지도 않을 것 같고. 이승연이었다면 걱정했을 테지만….
교탁 위에 올려 두었던 나머지도 다시 자세히 살폈다. 일단 제일 신경 쓰이는 놈부터.
서한성.
서한성은 원래 협회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정황상 순순진은 협회에서 일하다가 죽었고.
원래 시간대에서 서한성은 협회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고 있지 않은가.
헌터도 사망률이 높은 직업 중 하나이긴 하지만 사람 기분이란 게 참… 그렇다. 순순진이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서한성이랑 얘기했을 때도 협회 대신 다른 길을 추천했을 텐데.
하지만.
흠….
열심히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5년 뒤 서한성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이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차라리 오현욱이랑 잘해 보라고 할까. 그 돼지도 원래 이런저런 자선 활동을 하지 않았나.
솔직히 그 오현욱이 길드를 꾸리면서 칼 맞았던 걸 떠올리면 서한성이 아무리 죽을 쒀도 오현욱보다는 운영을 잘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둘, 보기보다 꽤 친하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친분 역학 구조는 복잡하다. 전교생 수가 10명밖에 안 되는 이 작고 작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사이 나쁜 애들은 없지만, 아무래도 유난히 사이가 좋은 애들은 있기 마련이다. 박서현과 최진우야 스승과 제자이고 마법사니까 어쩔 수 없이 붙어 다니지만,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이승연과 순순진이 같이 다녔는데, 최근에 이승연은 강태우와 딱 달라붙어 있다. 순순진은 의외로 한은영과 죽이 맞았는지 함께 얘기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한 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지낼 것 같았던 오현욱은 서한성과 짝을 이룬다. 악덕 길드에 붙잡혀 있었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서한성의 사정은 그보다 더 복잡하지만, 그것까지 오현욱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오현욱과 친하니 그 애랑 어떻게 잘 붙여 보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이번엔 이승연이 있는데 오현욱이 길드를 만들까? 같은 길드 출신인 애들까지 데리고 이승연한테 가지 않을까.
이승연은 종종 강태우와 함께 내게 길드와 관련된 질문을 하러 온다. 빽빽한 진로 계획서처럼 대학에 갈 것이고, 지금은 기껏 만든 동아리도 이렇다 할 활동은 못 하고 있지만 그 열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심이다.
유혜은이나 한은영도 무난하고.
박서현이나 최진우도… 딱 예상 범위 내였고.
문제는.
“…얠 진짜 어쩌면 좋을까.”
창을 들고 설치고 있는 유지은의 그림이다.
누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버지도?
과거의 업보를 확인하는 건 우이록만으로 충분한데.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 홍석영이 던전에서 나오면 즐거워할 거리가 늘었군.
* * *
“아이고!”
홍석영의 입에서 곡소리가 튀어나왔다.
가까스로 게이트 밖으로 굴러떨어지자 입 안으로 버석한 모래가 잔뜩 들어왔다. 기침으로도 모자라 수통으로 입을 연거푸 헹구고 나서야 입 안이 깨끗해졌다.
주위에 있는 이들도 죄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콜록! 콜록콜록콜록!!!”
“우웨엑!!!”
“케헥! 켁, 켁!!”
…오히려 모래만 뱉고 있는 홍석영의 상황이 나을 지경이었다.
“다들 살아 있나? 부상자는? 모리 군? 모리 군, 어디 있나? 괜찮아?”
“괜찮습니다!”
“다리는?”
“붙어 있습니다!!”
“그래도 거기… 본부에 연락해서 빨리 치료사 보내라고 해. 아니, 원래 여기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홍석영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찌푸렸다.
던전 내부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보냈다. 하지만 등급 높은 던전이라는 게 다 그렇잖은가. 원래 계획한 대로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그건 던전이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은 던전 공략이라면 당연히 게이트 주위에는 항상 대기 인원이 있다. 던전 공략을 마친, 혹은 실패하고 나온 헌터들이 어떤 상태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을 수도 있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게이트 바로 앞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헌터들이 있다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헌터들도 있고.
홍석영이 이 사막 던전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도 게이트 주위에는 그러한 작전 본부가 있었다.
지금은….
“뭐야? 다들 어디 갔어?”
아무것도 없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이들이 홍석영을 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홍석영은 던전 안에서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바삐 던전을 공략하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생명을 경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잘난 아들내미도 그런 아버지를 바랄 것이다.
덕분에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다. 그나마 중상자라고 할 수 있는 모리도 포션으로 대충 응급 처치를 한 덕에 다리가 절단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포션은 포션이고 치료는 치료니까 서둘러….
“어이, 벤! 자네가 연락 담당인가? 누구든 연락 좀 해 봐! 게이트 주위를 안 지키고 뭐 하는 건가?”
“잠시만요, 홍 헌터님. 안 그래도 연락하고 있습니다.”
홍석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모래에 발을 문질렀다. 버석하고, 뜨거운 공기.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이….
“…홍 헌터님.”
불길하다.
홍석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본계 미국인인 이자벨 모리는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홍석영을 불렀다.
홍석영은 빈 수통을 옆으로 팽개친 채 모리에게 다가갔다. 모리의 주변에 있는 다른 헌터들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석영은 덜컥 겁을 먹었다. 던전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나? 내가 미처 못 본 것이 있는가?
모리가 옆으로 비켜섰다.
홍석영은 숨을 멈췄다.
바람으로 인해 모래가 걷혔다. 홍석영은 서둘러 고개를 들어 게이트와의 거리를 확인했다. 원래 게이트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이곳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 자리였다.
“…이거, 아무래도.”
모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홍석영의 눈이 차가워졌다. 마침 기지와 연락을 시도하던 헌터가 마찬가지로 어두운 얼굴로 홍석영에게 다가왔다.
“홍 헌터님, 연락이 안 됩니다. 기지 쪽 문제가 아니라 뭔가 신호를 방해하고 있… 뭡니까? 이거 핏자국입니까?”
“자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홍석영은 검붉은 모래를 노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창을 바닥에 꽂았다. 서서히 불안한 분위기가 공략대원들 사이로 번져 나간다. 하나둘 숨을 죽이고 홍석영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홍석영은 그대로 땅을 헤집었다. 바닥을 파고 들어갈수록 모래는 점차 붉어졌다. 축축하고, 붉은. 마치 진흙처럼 느껴지는 덩어리들이다.
“윽.”
그리고 마침내 창대가 무언가를 건드렸다.
모래가 아니라 어떠한 형체.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에 홍석영은 그게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시체 따위는 헌터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으니까.
“…….”
홍석영은 조심스럽게 피에 젖은 모래 속에서 시체를 꺼냈다. 시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겨우 팔 하나였다. 그것도 팔꿈치까지만 남은.
찢긴 옷가지는 군복이다. 게이트 주위에는 미군 소속 헌터들이 있었다. 신원을 증명할 건 없었지만 홍석영은 이 팔의 주인이 그 헌터들 중 하나라는 데에 자신의 창을 걸 수 있었다.
“홍 헌터님. 그….”
모리는 이를 악물었다.
“절단면이.”
“그래.”
절단면은 엉망이다. 단순히 땅에 파묻혀 있었다고 해서 이렇게 상하진 않는다.
엄청난 힘으로 찢은 것처럼… 아니. 무언가가 물어뜯은 것처럼 짓이겨져 있고, 덜렁거리고, 알아보기 힘들었다.
각성자라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이렇게 만들기는 힘들다. 홍석영은 팔을 조심스럽게 내려 두고 땅을 조금 더 헤집었다.
다른 시체는 쉽게 발견되었다. 하나같이 무언가에 물어뜯긴 것처럼 조각조각 나 있었다.
이 시체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미 공략대원들 모두가 깨달았다.
그리고 홍석영은 언제나 그걸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모두 경계 태세로.”
홍석영은 거의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그에 공략대원들 또한 소리 내어 답하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다. 물로 입을 헹구던 이들도, 속을 게워 내던 이들도. 던전 내에서 있었던 일에 투덜거리던 이들과 상처를 돌보던 이들까지도.
모두 고요히 무기를 들었다.
홍석영도 피 묻은 모래 알갱이가 달라붙은 창을 잡았다.
“이 사막 어딘가에 있는 던전 하나가 터졌다. 몬스터는 인간을 먹고 시체를 숨길 정도로 지능이 있다.”
“…….”
“지금부터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기지가? 근처에 도시가 있나?”
“…그, 하나 있기는 한데, 아주 가깝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놈의 속도를 모르지.”
“…네.”
“기지와 연락은 계속 시도하도록. 우리는….”
홍석영은 하늘을 보았다. 눈부실 정도로 새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 버석한 모래.
불길하다고 했었지.
그래.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기도 했고.
“식량과 식수는?”
“충분합니다.”
홍석영은 한국에 있는 두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돌아갈 곳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다르지 않다.
사람을 구하고,
살아서 돌아간다.
히어로가 할 일은 그뿐이다.
“이놈이 도시를 덮치지 않도록 추적한다.”
공략대원들은 홍석영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길드였다면 다른 반응이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 소속 헌터들이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던전에 들어가길 원하는 이들.
그리고 대부분 몬스터에… 가족을 잃었던 적이 있는.
홍석영의 포함한 40명의 헌터는 핏자국을 따라 행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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