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08)
사냥(1)
‘자, 그동안 배운 걸 복습해 보자.’
‘…뭐 합니까?’
‘복습하자니까. 아니지, 어디까지 배웠나 진도 확인?’
우희재는 딱 잘 시간이 넘었으니 얼른 자러 가라는 말을 들은 우이록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그 표정이 보고 싶어서 한 번씩 툭툭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희재는 질색하며 말했다.
‘그걸 알아서 뭐 하냐고요.’
‘뭘 하냐니? 당연히 보충 수업이지.’
‘선생님 흉내라도 내려고요?’
‘어허. 이래 봬도 교장 선생님인데.’
‘말세다, 말세….’
하지만 우희재는 홍석영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고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유가 있다면 고집이라고 하면 안 되지 않나?
오히려 홍석영이 억울해할 만도 한데 홍석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물론 우리 희재가 열심히 배운 건 알지!’
‘누가 우리 희재입니까.’
‘그래도 이 아빠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누가 아빠냐고요.’
‘우리 희재… 마법사 잡아 봤니?’
‘그러니까 누가 우리… 네?’
‘앞으로 알아 둬야 할 것 같은데.’
마법에 대해서는 마력 이상으로 할 말이 많다.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힘이라는 의미에서. 물론 마법사에 대한 험담도 조금 섞여 있기는 하지만.
던전 안에서 마법을 쓰는 몬스터는 드물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던전 전체가 환각이나 환영으로 뒤덮여서 공략대를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인간이 쓰는 마법과 몬스터가 쓰는 마법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마법사에게 물으면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섞어서 대답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홍석영은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력 쓰는 게 다르다.
물론 홍석영도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그냥 다르다고밖에 대답을 못 해 주겠지만 말이다.
홍석영은 우희재가 미래의 자신에게서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환영과 환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환영과 환각은 생각하는 존재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처음 한 번은 걸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빠르게 빠져나와서, 더 손쓰지 못하게끔 빠르게 몬스터를 죽이기.
그래. 몬스터라면 쉽다. 하다못해 게이트로 도망치거나 던전 핵만 죽어라 노리면 되니까.
‘하지만 노아 미셸도 그렇고… 셈 블룸도 그렇고. 다른 인간 마법사가 또 나타날지도 모르잖니?’
‘…저는.’
‘아니, 아니. 마법사를 죽이는 법이 아니라 제압하는 법이야. 이건 알아 두는 게 좋아. 굳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의외로 쓸 일이 제법 되거든.’
자, 그렇게 현재의 홍석영도 우희재를 가르쳤다.
미래의 홍석영만 아들을 가르치게 내버려 둘 수 있나. 지금의 홍석영에게도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꼼수 한두 개쯤은 남아 있다, 이 말이다!
…뭐, 미래의 홍석영이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은 내용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거 말고도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은 많다. 하지 못한 걸 해 볼 시간도 많이 있다. 이번에는 아들 두 명과 함께.
‘근데요.’
‘음?’
‘이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하하하.’
‘…왜 그렇게 웃어요?’
역시 순진한 면이 있다니까. 이쪽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
홍석영은 짓궂게 웃으며 우희재에게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영화학과 나왔다는 애가 왜 그렇게 상상력이 없어.’
‘…….’
기분 나쁘다는 티가 확 나는 얼굴.
애들이나 다른 헌터들 앞에서는 안 그러면서도 한결 풀어진 얼굴이 드디어 자신을 편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 실전이지, 실전.’
‘실전.’
‘그래. 크크큭, 세상에 나쁜 인간은 참 다양하게 있거든.’
‘…그렇겠죠.’
똑똑한 아들 녀석은 그 뒤로는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미래의 홍석영과의 일을 곱씹다 보니 대충 짐작 가는 것이 있었을 테지.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은 건 그 홍석영이나 이 홍석영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이 죽을 위기에 놓인다면 차라리 다른 사람을 죽이고서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자길 공격하는 사람으로부터 방어하라는 게 잘못된 일인가?
정말 만약에, 만약에 홍석영이라는 인간이 죽더라도 자기 몸 하나만큼은 지킬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하하.”
홍석영은 웃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렇게 말하는 등장인물이 꼭 죽던데.
하지만 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아들에게 마법사를 어떻게 하면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는지 떠들어 댔지 않은가. 이쪽에서 실패할 수 없다. 아무리 귀여운 아들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비웃음을 당하면 꽤 아픈 법이니까.
아니, 아들이 아니더라도 최강의 헌터라는 자부심에 금이 간다.
“이이익!!”
“어이쿠.”
“으아아아아!!!!”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하는군?”
마법사를 제압하는 첫 번째 단계.
마법을 못 쓰게 한다.
“그렇게 휙휙 움직이면… 정신 사납지!”
그렇다면 어떻게 마법을 못 쓰게 하느냐?
“기다리고 있으면 유리할 것 같았나?”
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으면 된다.
마법이란 결국 마력을 끌어다 쓰는 일이다. 기껏해야 신체에 있는 마력을 돌돌 말아 쓰는 다른 각성자에 비하면 마법사는 연비가 좋지 않은 직업이다. 근처의 마력까지 모조리 끌고 와야 한다. 마법의 위력이 클수록 소모되는 마력이 많고, 그건 어떻게 해서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지간한 헌터라면 그런 마력의 흐름 따위는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평범한 헌터라면 마력의 흐름에서 본능적으로 약한 부분을 읽고 끊어 내거나, 모습을 숨긴 마법사가 있을 중심부에 창을 꽂아 넣는 짓 따위는 하지 못하겠지만, 홍석영은 그런 보통의 헌터가 아니다.
“내가 누군지 제대로 못 들었나 봐?”
마법사를 제압하는 두 번째 단계.
마법사를 도발한다.
이게 선행되어도 상관없다. 그간 홍석영이 마주한 마법사들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존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고집 센 인간이었다. 대충 마법을 무시하는 말을 던지고, 마법 몇 개 못 쓰게 만들면 놈들은 쉽게 흥분한다. 그리고 싸움에서 흥분은 곧 실수를 뜻한다.
‘그거 좀… 굳이 마법사를 잡는 방법이라고 안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이건 댁만 쓸 수 있는 방법 같은데요?’
‘어허. 나는 희재 군을 그렇게 약하게 키운 기억이 없는데.’
‘그야 안 키웠으니까요.’
뭐, 좀 더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다.
마법사를 잡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차피 마법사들이 몬스터도 아니고, 인간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마법은 한정되어 있다. 인간은 몬스터처럼 눈먼 마법을 가만히 맞고 있을 만큼 덩치가 크지 않다. 비각성자도 아니고, 작고 날랜 헌터를 상대로 무슨 마법을 쓰겠는가. 범위가 큰 마법을 써서 한 번에 잡으려고 하고 말지.
마법사들의 범죄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보다 몬스터 부산물의 불법 유통 따위에 몰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마법사들의 마법은 인간을 노리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니 마법사들이 인간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마법만 알고 있으면 쉽게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지.’
‘…속성 마법도 있잖습니까.’
‘거기서부터는 응용이야. 어차피 이쪽에서 쓰는 마법은 저쪽에도 똑같이 있기 마련이니까. 불바다로 만드는 마법? 물 속성에는 똑같이 물바다로 만드는 마법이 있어.’
다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홍석영은 마력이 뒤틀리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꼴에 숨기려고 바닥 가까이에 낮추고 있지만 꿈틀거리는 마력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홍석영을 멈추게 만든 건 그 마력의 스산함이었다.
어렸을 때,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이불에서 나와 불 꺼진 고아원 복도를 지났을 때 느꼈던 두려움. 무서움. 나약함.
꺼림칙함.
음습하게 바닥을 기어가는 마력이 뱀처럼 아가리를 벌린다. 이토록 마법사의 특징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마력?
홍석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지.’
‘하나만 있습니까?’
‘두 개 있으면 그것도 섭섭하지 않나?’
‘누구한테요?’
‘홍석영이라는 인간에게?’
‘아, 네….’
‘…커험. 어쨌든, 일반적인 속성 마법이라면 자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고유 마법이라면 말이 달라.’
‘고유 마법이요? 대마법사와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노아 미셀이 그냥 마법사였나?’
‘…….’
‘노아 미셀의 고유 마법은 잘 알려졌지만… 또 모르지. 숨겨진 한 수가 없을 것 같진 않아.’
홍석영은 우희재에게 단단히 말했다.
‘고유 마법을 쓰는 놈을 만나거든.’
‘…….’
‘일단 도망쳐.’
‘…네?’
‘어떤 마법이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몰라. 괜히 위험을 질 이유는 없잖나? 도망친 다음에, 놈의 마법을 파악한 뒤에 손을 써도 충분해.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법이 시전되기 전에 놈을 죽이든지.’
‘으음….’
‘희재 군도 아는 대마법사가 있을 텐데…. 그 대마법사의 고유 마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도 있죠.’
‘당하면 벗어날 수 있겠나?’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홍석영의 교육 지론은 하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자.
내가 하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치면 그거야말로 우습지 않은가.
시범고 학생들이 따라가기 버거워했던 그 수업들은 홍석영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희재에게 가르쳤던 그 모든 것도 홍석영이 할 수 있다.
당장 이길 수 없다면 도망치라는 가르침까지.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
저건 고유 마법이다.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를 대마법사로 거듭나게 만드는 마법.
‘대마법사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건 노아 미셀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지….
홍석영은 창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마력을 긁었다. 마력이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이미 반쯤 완성된 마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망칠까?
이곳이 던전 밖이었다면 홍석영은 망설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몇 km쯤 순식간에 도망치면 어쩔 건가? 김채민도 그만한 길이의 넝쿨을 쭉쭉 뽑아내진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던전 내부. 심지어 저 마법사가 먼저 들어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도망친다고 해도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아, 이래서.
이래서 놈이 기다리고 있었나.
따라서 홍석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놈을 죽인다.
아까도 딱히 봐주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놈은 홍석영에게서 몸을 숨기기 위해 수십 겹의 마법을 둘렀다. 보이지 않는 마법, 방어하는 마법…. 그걸 일일이 부수고 있었는데, 어쩐지 이상하게 튼튼하다고 했지.
홍석영은 이를 악물었다.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끊어진 힘줄은 고칠 수 있다. 잘린 팔은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은 목숨은 살려 내지 못한다.
홍석영의 창이 수십 겹의 마법을 꿰뚫는다.
팔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대신 홍석영은 짐승처럼 웃었다.
방금 목에 걸고 있던 인식표에 획이 하나 추가되었다.
깨진 마법 사이로 마법사의 경악 어린 얼굴이 보인다. 창을 쥔 반대쪽 손이 마법사의 목을 움켜쥐고…
마법이 완성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