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09)
사냥(2)
“우욱… 컥, 커헉!”
“이건 또 묘한 마법인데.”
홍석영은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마법은 어두웠다. 뭐, 불길한 기운이 어쩌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물리적으로 어두웠다. 홍석영은 다시 까맣게 뒤덮인 던전의 하늘을 보았다. 뭔가 먹물 같은 것에 가려진 모양새인데….
홍석영은 왼손을 들었다. 눈높이까지 쑥 들어 올리자 비쩍 마른 사내 하나가 함께 딸려 왔다. 퍼석퍼석한 갈색 머리, 창백한 피부…. 남자가 제 목을 쥐고 있는 홍석영의 손을 주먹으로 치고 손톱으로 긁고 난동을 부렸지만, 홍석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케헥!”
“음….”
목을 잡긴 했지만, 아직 죽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 힘을 풀진 않았다. 딱 간당간당하게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만.
이 정도면 대마법사 할애비가 와도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오랜 경험으로 알게 된 유용한 사실이다.
“으으음….”
이건 진짜다. 환영 같은 게 아니다.
마법사가 제구실을 못 하고 있으니 마법이 깨지면 좋을 텐데, 마법은 확실히 시전 되었다. 지금도 마법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제대로 완성된 마법일까?
홍석영은 그 점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잔잔하지만 홍석영은 마력이 기이하게 뒤틀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풍이 오기 직전, 꿉꿉하게 가라앉은 공기 같았다. 피부에 질척하게 달라붙는다.
그리고 증거가 그 뒤틀린 마력이다.
불안정한 마력이 흔들린다. 진득하게 늘어지는가 하면, 갑자기 빨라지는 구간이 있다. 흔들리는 잔상은 단순히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그 정도로 내가 좋아?’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홍석영이 아는 목소리다. 꿈에서도,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아주 일등 신랑감이야.’
“…흐아, 이, 거, 놓, 끄으윽!”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죽은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뿌득, 홍석영은 뼈가 어긋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니.
아까 그 환영 마법 탓인가. 이렇게 동요해선 안 되지.
환영 마법에만 걸리면 죽은 아내를 보게 된다. 고마운 노릇이다. 혹시라도 이쪽이 미미의 얼굴을 잊을까 싶어 이렇게 되새기게 해 주다니.
…물론 정말 고맙지도 않고, 마법사도 자신이 볼 게 무엇인지 알고 마법을 걸진 않았을 것이다. 이건 그냥, 그 증거다. 홍석영의 미련. 홍석영의 삶이 아직도 누구에게 달려 있는지 확인시켜 줄 뿐이다.
‘아빠!’
그 작은 아이마저도.
환영인 걸 알면서도 순간 넋을 놓는다. 먹물처럼 시커먼 마력이 아이의 얼굴에 뒤덮여 있다. 팔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홍석영에게 달려오며 물처럼 녹아내렸다가 저 건너편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홍석영은 의식적으로 왼손에서 힘을 뺐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기껏 무력화시킨 놈을 죽일 것 같았다. 붙잡지 못했다면 모를까, 손안에 들어온 놈을 허무하게 죽인다면 아까운 일이지 않은가. 분명 잔소리가 쏟아질 거다.
‘똑바로 하라고요. 나한테 일 넘기지 말고.’
퉁명스러운 얼굴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목소리가 들린다.
“…호오.”
홍석영은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건 평범한 마법이 아니라 고유 마법이다. 대마법사의 고유 마법. 이런 재밌는 기능이 없다면 아쉽지.
‘모리! 모리, 내 동생한테 청혼했다고 들었는데!’
“…엥?”
그러나 홍석영은 곧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떤 드레스가 어울려? 리지, 이것 봐! 이거 너무 예쁘다!’
‘패트리샤, 어머니가 이걸 네게 남겼어.’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라이언, 넌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다고!!!’
‘넌…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목소리와 인영이 스쳐 지나간다.
기억을 건드리는 종류의 마법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나?
당황하던 홍석영은 곧 목소리들 사이에서 아는 이름을 짚어 냈다. 모리, 리지, 패트래샤, 라이언….
모두 이번 공략대에 속해 있는 이름이었다.
‘마법에 휘말린 거야!’
마법사를 상대할 때 맡았던 피 냄새 때문에 살아 있을 가능성을 크게 점치지 않았다. 홍석영을 위해서 함정을 팠는데, 다른 놈들이라고 해도 방해만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처리해 봤자 홍석영의 분노만 일깨울 뿐이지만.
물론 이런 놈이 처음은 아니다. 그중에는 다른 이들을 인질 삼아 홍석영을 잡아 보려는 이도 있었다. 홍석영을 뭐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정 넘치는 자애로운 최강자?
그럴 리가.
홍석영은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죽은 아들을 위해 히어로로 남아 있으려고 했지만… 원래 영웅이 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자신의 목숨이든, 타인의 목숨이든.
뭐, 그래도 살아 있는 걸 알고 있다면 일부러 모른 척할 정도로 매정한 성격도 아니긴 하다. 홍석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결국 공략대도 자신의 사정에 휘말린 꼴이니 기왕 구할 수 있다면 구하는 게 이쪽도 면이 산다.
“이봐.”
“…….”
“기절 안 한 거 알아. 정말 기절시켜 줘? 다음에 깨어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홍석영은 마법사의 목을 쥔 채 이리저리 흔들었다. 마법사는 종이 인형처럼 파드득거리면서 버둥거렸다. 잠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손을 풀었다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 다시 힘을 주었다.
그래도 영 불안한데.
홍석영은 입을 쩝쩝거리며 창으로 마법사를 훑었다.
어디 몇 군데 부러트려 놓는 편이 나을까?
“커헉!”
마법사가 숨을 터트렸다.
“마법을 풀면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우해 주려고 노력해 보지.”
“…켁, 풉, 크히힛.”
남자는 툭 튀어나온 눈알로 홍석영을 노려보며 웃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홍석영의 팔뚝을 어떻게든 떼어 내려고 손톱으로 긁으면서도 비웃으려고 하는 꼴이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아니면 그냥 미친놈이거나.
차라리 미래에서 왔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편이 더 깔끔하다. 적어도 그놈들은 목적만큼은 분명했다. 홍석영을 죽여서 복수를 이루겠다는.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홍석영은 짧지 않은 헌터 생활 동안 만났던 범죄자들의 동기를 대다수 이해하지 못했다.
돈? 권력? 그런 걸 가져서 뭐 해?
음.
이렇게 말하면 분명 희재, 그 녀석이라면….
‘본인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죠.’
라고 말하겠지.
“……?”
“크힉.”
홍석영은 사라진 목소리와 끽끽거리는 마법사를 번갈아 보았다.
우연인가?
…어쨌든, 자신도 가진 거 없이 살아 본 적도 있고 남의 것이 탐났던 시절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악독한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욕심을 내진 않았었는데. 그놈들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노아 미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제정신이 아닌 놈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정상인이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요.’
…그래. 한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홍석영은 비척거리는 검은 인영을 묘한 눈으로 보았다. 여전히 먹물을 뒤집어쓴 듯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검은 그림자를 보고 박서현의 마법과 비슷한 종류인가 싶었는데, 역시 아니다. 그쪽은 이런 식으로 기억과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건 오히려….
홍석영은 눈을 찌푸렸다.
아주 낯설지 않은 걸 보면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데.
“나, 큭, 나도, 못 풀어.”
마법사는 다 쉬어 빠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너, 다, 당신, 커헉, 때문, 크, 에, 제어를, 제어에 시, 실패했다고.”
“…마법이 불안정하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제어에 실패했다는 말은 또 처음 들어 보는데.”
다른 마법이라면 모를까, 고유 마법을?
피에 새겨진 본능적인 마법이잖은가?
홍석영은 마뜩잖은 얼굴로 마법사를 보았다. 마법사는 다시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정말 못 써먹겠구나.’
그때, 바로 옆에서 노인의 인영이 솟아났다.
마법사의 웃음이 멈췄다.
‘멍청한 놈.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쯧.’
“아아아악!!!!!!”
마법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홍석영은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단단히 붙잡았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아서 되레 홍석영이 긴장했다.
마법사의 주위에서 마력이 모여든다. 이 상황에서도 마법을 쓰려고 한다. 어차피 본인이 제어를 못 한다고 말했으니 정 안되면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을 때.
마력이 파스스 흩어졌다.
“……?”
“으아아아악!!! 으악!!! 아아아아악!!!!!!”
‘그래서 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홍석영은 슬쩍 힘을 풀었다. 마법사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다시 마력을 모아 마법을 쓰려고 기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마력은 공기 중에 다시 흩어졌다. 그게 이 불안정한 마법 속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마법사가 여전히 홍석영에게 붙잡힌 채라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법사 본인에게는 마법이 실패했다는 사실만 중요한 모양이었다.
얼굴에 먹칠을 한 노인이 마법사에게 계속해서 속삭였다.
‘한심하기는.’
노인의 말이 계속될수록 노인의 얼굴을 덮고 있던 먹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홍석영도 아는 얼굴이었다.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지 말거라.’
“아아아아아아!!! 보지, 마! 닥쳐, 시끄러워!!!!!”
‘에르베.’
* * *
“아이고. 이렇게 정신머리가 약해서야.”
홍석영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니 이 모양이지.”
“…….”
“아닌가? 이 꼬락서니라서 정신머리가 약한 건가?”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마법사를 흔들었다.
본인의 마법에 본인이 정신 공격을 당하면 어쩌라는 건지. 처음에 득의양양하게 공격하던 모습이 거짓말 같다.
차라리 그때가 더 잡는 맛은 있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정도라면 이쪽 세상에 발을 들이면 안 되었지.
이래서 곱게 자란 마법사들은 안 된다니까.
어쨌든 그 호기롭던 모습이 이런 반폐인이 되었으니 김이 다 빠진다.
‘말했잖아. 자만하지 마.’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득달같이 검은 인영이 솟아나 속삭인다.
“…아, 진짜 눈앞에 나타났으면 죽였겠는데.”
홍석영은 재빨리 사라진 먹물 덩어리를 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말 안 해도 안다고.”
아빠 놀리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보이는 아들 녀석이 그 뒤로도 매번 말해 왔으니까.
그런 홍석영의 주위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제어에서 벗어난 마법이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놈 팔다리를 다 부러뜨린 건데….”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지.
홍석영은 잠시 방해되는 마법사를 내려놓은 채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차피 기절해 있으니 공격하진 못할 거다. 지금은 이 마법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더 중요하다. 괜히 미적거리다가는 인식표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홍석영은 창을 꽉 쥐었다. 마력이 피어오른다. 드라이아이스처럼 옅게 깔리는 마력이 홍석영의 몸 전체를 감싼다.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던전 내부에 있으니까 그것만 주의해서….
창이 움직였다.
느리고, 동시에 빠르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창은 던전을 가로질렀고, 그 끝에 달하였다.
아니, 창은 그저 초석에 불과하다. 창에서부터 대포처럼 쏘아진 마력이 던전을 꿰뚫었다. 둘러싼 마법을 내부에서부터 송곳처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나아가더니, 공간을 꿰어서….
챙캉!
“…역시 이건 너무 힘이 많이 든다니까.”
던전 가장 안쪽에 있는 핵을 부수었다.
“두 번은 못 써먹겠어.”
홍석영은 부서지는 던전 하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