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
상한 고기(1)
엄밀히 따지면 국제범죄조직이라는 말이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맞는 말이지.
방주가 어디 골방에서 도 닦는 사이비 동호회도 아니고, 지하 5층짜리 비밀 연구소를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게 다 돈이다, 돈.
그렇다.
무슨 조직이든 운영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다.
관리청에서 매번 청문회에 불려 나갔던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도 다 돈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어쩌고저쩌고. 정작 관리청은 국민의 혈세보다는 던전 부산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굴러갔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방주는 한국에만 있는 조직이 아니다.
동아시아가 주요 거점이긴 했지만, 유럽이나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도 활동을 안 한 건 아니다. 주로 그쪽에서 자금 조달을 한 다음 연구소로 흘러들어 오니까.
어떻게 보면 그쪽이 규모 면에서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니 홍석영의 오해 아닌 오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홍석영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우 선생. 내가 어디서 방주를 알게 됐을 것 같나?”
“…어디서 알게 됐는데요?”
“남미에 있는 암시장에서.”
홍석영의 이야기에 따르면, 2년 전 미국에서 공략대 하나가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홍석영은 피해자 중 하나와 아는 사이였고, 유족들은 고인의 유해만이라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흔적을 쫓고 쫓다가 남미의 암시장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방주를 목도한 거다.
그 과정에서 미국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던 던전 몰살 사건이 방주의 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주의 행패가 점점 더 심해지자 미국에서는 특별 수사대를 만들었다.
“나도 도와주기로 했지.”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아저씨가 썼던 보고서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관리청으로 자료를 옮기면서 누락됐거나, 아저씨가 삭제한 거다. 그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숨겼거나.
“그런데 파고들어 가니까 예상보다 덩치가 훨씬 컸고, 피해국에서 저마다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더라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이미선 헌터도 그중 하나였습니까?”
“음. 여기 김 선생도 마찬가지고.”
김채민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뭘까? 왜 이런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거지?
“저….”
“음?”
“……아닙니다.”
김 군이 언제 조직에 잠입했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기껏 믿음을 얻었는데 다시 의심받을 수도 있는 짓을 감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뭔가… 그랬다.
뭔가…….
만약, 홍석영이 쫓고 있던 방주와 내가 아는 방주가 전혀 다른 조직이라면?
우연히 방주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범죄조직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방주에서는 자금 조달과 연구를 따로 진행했다. 점조직의 특성상 연구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을 쫓는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붙잡은 범죄자들을 털어 봤자 본인들도 모르는 사실은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홍석영이 모르고 있었다면?
“뭔가? 왜 말을 하다 말아.”
“…그럼 애들을 납치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홍석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몸값?”
왜 뒤가 의문문이야.
“확신이 없었습니까?”
“몸값 달라고 접촉하는 이들이 없었거든.”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그동안 내게 숨기고 있었던, 혹은 다르게 알려 주었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그래서 초동 수사가 많이 늦었어. 부모들도 납치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기다렸거든.”
“기다리다가 안 오니 신고를 하고?”
“음.”
“수련원에서 연구소를 봤을 때는요? 그걸 보고도 의심 안 했습니까?”
“의심이라기보다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나.”
홍석영은 눈을 찌푸렸다.
“불법 각성자와도 관련이 있었고, 남미 쪽에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이 이놈들에게서 나오는 상태야. 난 그쪽 관련이라고 생각했어.”
“마약?”
“그거 말고도 놈들이 취급하는 건 많았으니…. 아이들도….”
홍석영은 말끝을 흐렸다.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진 알겠다.
이렇게 듣고 나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대뜸 사이비 동호회를 쫓는 것보다는 범죄조직을 수사하다가 얻어걸렸다는 쪽이 말이 된다.
경찰이었던 김 군, 김유화가 잠입했던 것도 이해가 되고.
눈앞에 있는 홍석영이야 내가 지금 말해 주고 있으니 알게 되었다 치고.
우리 아저씨는 이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을까. 연구소를 습격하기 전에? 연구소를 습격한 다음?
나를 입양한 뒤에야 알게 되었을까?
…….
아니면.
영영 알지 못했을까.
국제범죄조직으로서의 방주만 소탕하고, 다른 쪽은 놓쳤을까.
그래서 남은 놈들이 방이동 던전의 지네에게 계속 먹이를 주었던 걸까? 시체를 먹고 자란 지네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걸까?
모른다. 이젠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내가 있었던 일들, 혹은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어림짐작해 봤자 정답을 알아낼 길은 영영 없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일은 있다.
만약 그렇다면. 방주에서 정말 지네에게 먹이를 줘 키운 거라면.
그렇게 키운 몬스터가 한둘이 아니었다면.
서울을 불태운 놈도 그중 하나였다면.
“…….”
막을 수 있다.
지금, 이 시간대라면 막을 수 있다.
* * *
과거로 온 지도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싶다가도, 이제 겨우 두 달이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저 왔어요!”
노란 스포츠카가 운동장에 진입했다. 김채민은 스포츠카에서 짐을 내리며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얘들아! 점심시간이야. 밥 먹으렴!”
흙바닥을 뒹굴고 있던 좀비 떼들이 벌떡 일어났다.
“밥!!”
“아니, 얘들은 왜 또 몰골이 이래요?”
김채민은 기겁하며 나를 보았다. 나는 목검을 내려놓으며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 공략과 홍석영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다는 거다.
홍석영은 이야기가 마무리되자마자 서울로 갔다. 이미선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역시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나 뭐라나. 유지은에 대해서는 별말 없었지만… 알아서 하겠지.
사실 호프집에서 쫓겨났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다고.
오늘도 학교에는 홍석영이 없다. 정확히는 나뿐이다.
아무리 최종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도 나 같은 놈을 아이들과 있도록 내버려 두다니. 심지어 김채민도 아침에 나와 아이들을 내려다 주더니 운동장 구석에 있는 스포츠카를 끌고 나갔다.
아무리 내가 부탁한 게 있다고 해도 말이지… 미친 거 아닌가?
“표정이 왜 그래요?”
“제 표정이 어떻습니까?”
“벌레 먹었어요?”
“…….”
“단백질 보충했으니 얼굴 좀 펴요.”
“…….”
김채민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해진 건 홍석영뿐만이 아니다. 그 아저씨야 원래 이상했다지만, 김채민도 어쩐지 텐션이 높다.
보이지 않던 탐색전이 다 끝났으니 이제 편하게 굴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날 이렇게까지 믿어 주다니 정말 눈물 나게 고맙지만, 동시에 정말 눈물이 났다.
이걸로 정말 괜찮냐고.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서 되겠냐고.
홍석영이나 김채민이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난 절대 저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다. 물론 되지 않았다. 이게 중요한 거지.
정말 나라서 다행이다.
역시 아저씨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도시락만 가져온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김채민은 뿌듯한 얼굴로 내게 봉지를 내밀었다.
“제대로 잘 사 왔다구요.”
나는 김채민이 내미는 봉지를 확인했다.
근처 마트의 로고가 그려진 비닐봉지다. 사 온 게 사 온 거다 보니 꽤 묵직하다.
슬쩍 내용물을 확인하니 아직 냉기를 품고 있는 고깃덩어리들이 보인다. 어차피 먹을 것도 아니니 제일 싼 것들로 대충 사 오라고 했었는데… 왜 하나같이 소고기인 건지. 이래서 마법사들은 안 된다니까. 금전 감각이 엉망이야.
내 돈 나간 것도 아니고, 본인 돈 쓴 건데 뭐라 하기도 그렇지. 나는 파라솔 테이블 위에 김채민이 사 온 고기들을 꺼내 놨다.
그리고 김채민에게 노트를 건넸다.
“뭐예요?”
“이거 그리면 됩니다.”
“룬?”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트에 그려진 룬을 확인했다.
“사진에 있던… 그거죠? 그런데 여러 개네요?”
“룬이 정확하지가 않아서요. 대충 이거겠거니 싶은 모양들입니다.”
“와… 우 선생님, 사실 우 선생님이 룬 만든 거 아니에요?”
“아는 마법사가 그린 거라니까요. 전 마법사 아니라서 룬 못 씁니다.”
“왠지 우 선생님이라면 마법사 아니더라도 룬 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
예리하기는.
나는 못 들은 척 김채민의 말을 넘겼다.
“어쨌든 룬이나 빨리 그리세요. 어렵지도 않잖아요.”
“흐응…. 이거 무슨 효과일 것 같아요?”
김채민은 손안에서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내가 그린 룬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불행히 마력 시계에는 시체에 그려진 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래도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벌레를 꾀어 내거나 부패를 빠르게 하는 용도겠죠.”
“으, 썩은 시체를 먹는 몬스터라니. 너무 싫어요.”
“던전 공략하다 보면 더 한 놈들도 많이 볼 텐데요.”
“전 던전 공략보다는 던전 브레이크 뒤처리를 더 많이 하고 다녀서요.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보통….”
“신선한 고기를 더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김채민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손은 착실하게 룬을 그리고 있다.
“거기 틀렸어요.”
“아, 진짜!”
김채민이 끙끙거리며 룬을 그리고 있는 동안, 나는 도시락을 확인했다. 홍석영이 가져오는 도시락은 고기가 가득했고, 이미선이 가져오는 도시락은 용기부터가 때깔이 고운 고급 도시락이었다.
반면 김채민이 가져오는 도시락은….
속이 꽉 찬 샌드위치와 예쁘게 정리된 과일, 샐러드.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게 우습기도 했다.
“됐다! 보조 룬도 그릴까요?”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룬을 똑같이 해 봐야죠. 보조 룬을 그리면 룬 효과가 더 강해질 수도 있어서….”
내가 그려 준 룬은 총 다섯 개. 이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으면 귀찮아진다. 이 이상으로 복잡한 룬은 역설계하기 까다로운데.
김채민이 제대로 그렸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룬을 소고기 위에 올려놓았다.
“바로 작동시켜요.”
“선생님,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김채민이 룬을 작동시킨 직후, 목소리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거 룬이에요? 무슨 룬이에요? 우리 이거 배운 적 없죠? 어, 생긴 게 좀 비슷비슷한데요.”
최진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김채민이 그린 룬을 살펴보았다.
“근데 왜 고기에 이렇게 붙여 놔요?”
최진우 뒤로 쭈뼛거리고 있는 박서현이 보였다. 차마 더 다가오지도 못하고 맴돌고 있는 게… 오려면 오든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괜히 마음이 안 좋아서 부르려고 했더니 도망가 버린다.
정말 어쩌라는 건지.
대학 때 교양으로 아동심리학 같은 거라도 들어 둘 걸 그랬다. 관리청에 들어갈 생각이었으니 안 들었는데, 역시 뭐든 배워 두면 도움이 되는 날이 온다. 동기 중 하나가 그 수업을 듣는다고 했을 때 비웃었던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선생님?”
“…음. 실험해 볼 게 있어서.”
“실험요? 룬이요?”
최진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로운 룬이라도 개발하고 있는 거예요? 아, 그래서 다 모양이 비슷비슷한 거구나!”
어린애한테 이게 무슨 룬인지 말해 줄 수도 없다. 저 좋을 대로 떠들어 대는 최진우의 말에 부정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아! 혹시 채민 쌤이 만든 룬이에요? 그러고 보니 룬은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이거 도형마다 무슨 의미가 있고 그래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이어지는 말들.
…차라리 날 어려워하던 때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김 선생님 아직 식사 안 하셨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서 놀아.”
“앗, 아직 안 드셨구나. 죄송해요, 선생님.”
“응? 아냐, 괜찮아.”
상냥한 대마법사 선생님 김채민은 비어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진우는 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주위에 어른 마법사는 안 계셨고?”
“넵. 저희 가족, 친척 통틀어서 각성자는 제가 처음이에요.”
“어머…. 마법사들은 보통 가족 단위인데. 그럼 마법 배우기가 어려웠겠다. 그래서 시범고에 들어온 거야?”
“원래 헌터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마법사는 마력 제어 방법을 안 배우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잖아요. 무슨 다큐멘터리에서 봤어요.”
“그렇지. 마력이란 게 아주 민감한 아이들이거든.”
“자고 일어났더니 방이 엉망이고…. 아니, TV를 보다가 웃긴 게 나와서 좀 웃었더니 TV가 폭발하지 뭐예요? 그래서 아, 이거 안 되겠구나 싶어서 알아보던 찰나에! 교장 선생님이 와 주셨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최진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코를 찡긋거렸다.
“근데요, 선생님.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응?”
김채민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나는 최진우보다 빨리 원인을 찾아냈다.
각성자의 예민한 감각에 걸리는 퀴퀴한 냄새.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룬을 작동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섯 개의 소고기 덩어리 중 하나가 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