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0)
사냥(3)
마법사를 잡을 때 하나.
던전 핵을 부술 때 하나.
공략 금방 끝내고 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인사하고 왔는데. 수년 동안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분으로 걸고 다녔던 아이템을 오늘만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홍석영은 획 두 개가 추가된 인식표를 생각하며 목 뒤로 신음을 삼켰다.
실제 부상과 직결되는 문제다 보니 아낄 생각은 없긴 하지만….
“끄으윽….”
이런 놈한테 획 두 개를 썼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또 아쉬울 뿐이었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우희재에게 미래의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인식표의 획을 추가했는지 확인해 보자. 어차피 쓸 때가 되면 다 쓰게 될 거라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았는데, 인제 보니 그것도 다 자만심이다. 사람이 아무리 튼튼해도 결국 죽게 되어 있다.
이십 년 뒤에도 홍석영이 살아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지 누가 아는가? 적어도 우희재가 겪었을 시간대의 홍석영이 이와 같은 마법사에게 습격당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홍석영은 확신했다.
‘애초에 이 던전 공략도 내가 안 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홍석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착용자의 대미지를 흡수해 주는 어마어마한 성능의 아이템 덕분에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탈력감에 다시 마법사를 챙겨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절한 마법사는 깰 기미가 없어 보였다.
홍석영은 환영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혔다. 던전 속의 가짜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홍석영은 이 고요한 풍경을 좋아한다. 어디 가서 얘기할 게 못 돼서 그렇지. 스노우볼이 깨질 때, 안에 있는 장난감이라면 이런 기분일까.
이런 고요한 던전에 있다 보면 처음 던전에 고립되었던 날이 생각나곤 했다. 언제였더라. 아직 통행세가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아직 짐꾼이라는 것이 던전에 함께 들어가던 시절.
공략대원은 모두 죽었다. 포션을 등에 잔뜩 짊어지고 있던 젊은 홍석영은 그 포션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다. 어차피 여기 앉아 있어 봤자 죽을 거,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 보자 싶어 죽은 사람의 무기를 잡고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날도 홍석영은 던전 핵을 부수고 가만히 앉아 부서지는 세계의 조각을 구경했다. 이대로 던전이 무너지면 자신도 죽겠지.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몸이니 아쉬울 건 없었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홍석영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던전의 마력과는 별개로 어지럽히던 마법사의 마력이 가라앉자 던전 곳곳에 있는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함께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이다.
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몸이 괜찮은지는 두 번째 문제이지만.
일단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홍석영은 던전이 산산조각 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던전이 완전히 무너지자 텁텁한 모래 냄새가 홍석영을 반겼다.
“홍 헌터님!!”
“게이트 소멸 확인! 던전 공략 완료!”
“부상자들 확인해!”
요란하게 자신들을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복을 입은 이들이다. 환영 속에서는 죽었던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보며 홍석영은 히죽 웃었다.
“사망자가 몇 명입니까?”
“이봐. 이놈 좀 데려가.”
“네? 이놈 누굽니까? 우리 쪽 사람이… 아닌데? 뭡니까? 어디서 튀어나왔습니까?”
“던전 안에서 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더라. 이 새끼 아니었으면 피해 안 나왔어.”
홍석영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눈꺼풀이 무겁다. 이런 피로감은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본다.
“왜, 옛날에 자기 스승 죽이고 도망친 그놈 있잖나. 에르베 슈나이더.”
홍석영에게서 마법사를 받아 가던 이가 눈을 찌푸렸다. 주위에서 그 이름을 들은 다른 헌터들도 고개를 돌렸다.
“대마법사 드뇌브의 제자.”
* * *
“일 이야기를 좀 합시다.”
“우 선생님은 참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니까요.”
“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뭘까요?”
김채민은 회의실 테이블 위에 서류들을 가리켰다.
나는 김채민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에게 묻긴 했으니까 대답은 해주었다.
“일이죠.”
“…그런데 일 얘기를 하자고요?”
“이건 학교 일이잖습니까.”
나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십 년 전에 뭐 대단한 걸 바란 건 아니지만 이런 아날로그가…. 하긴, 원래 관공서나 학교는 죄다 구식으로 처리하기는 하지. 아니, 그래도 아카데미는 나름 최신식으로 잘 꾸며 놓았었는데….
아냐. 욕심부리지 말자. 하나씩 바꿔 나가면 되는 거다, 하나씩.
“학교 일은 일 아니에요?!”
김채민도 나를 따라서 서류를 놓았다. 박서현의 시험지이다. 곧 있을 던전 공략 준비를 위해서 치렀던 테스트 결과지였다.
원래는 픽시 던전처럼 아이들을 다 같이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채민이 처음부터 그러지 말고 차라리 던전 등급을 낮추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공략대가 아니라 소수 인원의 파티를 만들어 먼저 던전에 익숙해지도록 하자고.
김채민의 제안은 내게도 익숙하게 들렸다. 아카데미에도 비슷한 느낌의 활동이 있었다. 대신 여기는 던전에 직접 들어가는 대신 시뮬레이션을 활용했지만.
지금 시점에는 시뮬레이터가 없으니 실제 던전을 활용하려면 던전 등급을 최대한 낮춘 다음….
나는 갬블을 보았다.
“…뭐예요? 뭘 봐요!”
갬블은 내 시선에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이래서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니까.
“나 안 그래도 하는 일 많아요! 학교 일인데 난 왜 부른 거죠? 설마 또 일 시키려는 건 아니죠?!”
“…….”
뭐, 잠 좀 안 잔다고 해서 죽진 않지. 갬블도 각성자니까. 튼튼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저기요! 대답하라고요!”
“음…. 학교 일이라면 저랑 김 선생님만으로도 충분했겠죠.”
“이봐요!!”
“아니, 왜 이렇게 사람이 화가 늘었습니까? 불만이 있으면 길드 마스터한테 말하세요.”
“길드 마스터 대리인한테 말하고 있잖아요!”
“대리인한테는 아무 권한이 없거든요.”
“마스터가 당신한테 권한 다 넘기고 간 거 내가 뻔히 아는데!”
“그랬습니까? 전 모르는 일입니다.”
갬블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갬블에게 우리 길드가 못 해 준 일이 뭐가 있는가? 필요한 장비는 다 사 주지, 하고 싶은 연구 다 하게 하지. 심지어 미래의 지식까지 넘겨줘서 본인의 꿈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갈 수 있게 해 줬지….
이만하면 괜찮은 직장 아닌가? 최소한 예산을 어떻게 굴려야 잘 굴린다고 소문날까 하며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고, 청문회 걱정에 날밤 새울 필요도 없고, 포션 하나 아끼려고 공략팀에게 잔소리할 필요도 없는데!
게다가 총무부에 디자인하라고 시키는 둥 업무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애들한테 채워 준 신호기를 더 발전시켜 볼 수 없냐고 했을 뿐이잖아. 던전 내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고, 던전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으며, 기왕이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검색까지 할 수 있는… 쁘띠 마력 시계 같은 걸 만들어 보자고 했을 뿐이지.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한번 해 보겠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고.
안 된다고 했으면 나도 그러냐고, 산드라 갬블이 그 정도라고 알 수 있었으니 만족했을 것이다….
농담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잖은가. 그냥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물어보고 나중에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했을 뿐이다.
“잡담은 그만하고, 진짜 일 얘기 합시다.”
“…어우, 맨날 일이야.”
김채민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자세를 바로 했다. 내가 괜한 장난이나 치겠다고 일부러 이렇게 말을 꺼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우리 사이에 있다.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뭔데요?”
“학교 일 아니면 무슨 일이겠습니까.”
“이거 제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이제 알아야죠. 우리가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으면 말해 주고요.”
귀찮은 표정이던 갬블도 태도를 바꾸어 진지해졌다.
“지금 홍 선생님이 미국에 있는 던전을 공략하고 있잖습니까?”
“네.”
“뭐… 다른 나라에서 제발 와 달라고 비는 일이야 그 인간에게는 자주 있는 일인데요.”
“자랑인가요?”
“이번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습니다.”
나는 홍석영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받았던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아이들이 김채민과 함께 화단을 가꿀 때 보고 있었던 그 보고서다.
표지에 있는 제목을 읽은 갬블의 눈이 가늘어졌다.
“창고… 여기에 뭐가 있는데요?”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이 좋다. 다른 설명을 길게 안 해도 되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가 봐야 압니다.”
“…그럼 왜.”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여기 있는 창고가 수상하다는 정보를 얻은… 출처거든요.”
“출처요?”
김채민이 옆에서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눈치 빠른 사람이 좋다. 김채민은 내가 왜 갬블을 앉혀다가 이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네요. 어떻게 보면 산드라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요.”
“거의 유일한 전문가죠.”
“거의? 하나뿐인 전문가가 아니라?”
“그 말이 더 정확하겠군요.”
창고에 대한 정보를 건넨 건 다름이 아니라 던전 안의 몬스터.
인간의 말을 하는 몬스터이다.
호프에게서 별다른 정보를 빼낼 수 없는 지금, 산드라 갬블은 인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더군다나 호프처럼 얼빠지지도 않아서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 정보인지 헷갈리지도 않는다.
이건 꽤 난도가 높은 재능이거든.
나는 차분하게 지리산 던전에 있는 요정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 던전을 찾아갔는지에 대한 건 제외했지만, 갬블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기는 했다.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건 어렵다니까.
“모종의 정보 제공자의 도움으로요.”
“네. 모종의.”
“누군지는 밝힐 수 없는.”
“네.”
“좋아요. 알아들었어요. 그래서요?”
그리고 당연하지만, 몬스터에게 말을 가르친 사람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괜히 정체를 알려 줘 봤자 혼선만 늘겠지. 지금 당장은 우이록의 형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갬블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입을 꾹 다물고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가, 다리를 덜덜 떨며 몸을 뒤척였다.
“…그래서 지금은 김 선생님이 주위에 마법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 뒤로 던전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죠?”
“네.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한 선생님을 괜히 데려갔나 싶기도 하다니까요. 딱히 쓸모도 없었고.”
“던전 안이 진흙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봤다면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경고나 해 주든지….”
“구하러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뭐, 그랬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겠지만.”
“그러니까요. 내가 있으니 괜찮아 보였다? 그게 뭐예요?”
“실제로 괜찮긴 했잖습니까.”
“자, 잠깐….”
용케 내 말을 끊어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결국 갬블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몬스터한테 이름도 있더군요. 호프한테도 몬스터 시절 이름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방금 한 말요!”
“네?”
“던전 안을 봤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