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1)
방법(1)
쾅!!
“한 씨 어디 있어!!!”
“바, 박사님! 일단 진정하세요!!!”
“이거 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갬블은 초인적인 힘으로 나를 밀쳐 냈다. 허무하게 뒤로 밀린 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갬블을 보았다.
저 여자, 헌터로 활동해도 잘할 것 같은데. 재능이 넘친다.
그 박력 넘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한은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빠는 서울에 세 번 연속 가는 바람에 파산하고 말았어요….”
나는 휴게실 테이블 위를 보았다.
한창 진행 중인 보드게임 판이 있다. 저런 건 또 언제 신청했어?
“아니, 나 지금 진지해. 오빠 어디 있어?”
갬블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한은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옆에 앉은 순순진에게 말했다.
“나 진짜 돈 없어.”
“알았어. 은영이가 제일 먼저 파산!”
“나 이런 거 잘 못한다니까.”
“무분별한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지….”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은영이 갬블의 물음에 대답했다.
“서울에 간 건 맞아요. 라이센스 등급 갱신해야 한다고. 우 쌤한테 허락도 받았을걸요?”
“뭐?”
갬블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가 계속 말했잖아요…. 한 선생님 지금 학교에 없다고.”
* * *
산드라 갬블의 반응은 나와 김채민의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기껏해야 요정 타티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며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거라 생각했는데. 김채민도 나와 똑같이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갬블을 던전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논문부터 쓰라고 종용했겠지만.
“한태경이요!”
“아, 알겠다니까요. 등급 갱신만 하면 학교로 돌아올 거니까 좀 기다… 기다리라고요!”
“한태경!!”
“안 온다는 게 아니잖아요!!”
겨우 갬블을 달래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갬블은 지금 학교에 한태경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불만족스러웠는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내리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테이블이 제법 무섭게 흔들린다.
…부서지려나?
이대로 지리산 던전에 데리고 들어가도 통행세를 낼 수 있는 거 아냐?
의심스러운 눈으로 갬블의 주먹을 보았다. 아까 날 밀치던 힘도 그렇고, 잘만 훈련시키면….
“왜 그런 중요한 말을 안 한 거예요!”
갬블은 부루퉁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 본인이 싫다고 하겠지. 나도 귀중한 연구 인력이 갑자기 전투에 빠지면 곤란하니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뭐가 중요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갬블이 무슨 말에 반응했더라?
기억을 되짚었다. 요정 타티에 대해서 설명하고, 아닌 새벽에 지리산까지 불려 나온 김채민이 한태경에 대해서 투덜거렸었지.
한태경… 한태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던전 밖에서 안을 들여다봤다는 말.
당연히 평범한 일은 아니다.
“한 선생님의 아이템 때문에 그럽니까? 무기는 아니지만 솔직히 대단한 성능이기는 하죠. 어딜 가든 눈 좋은 사람은 대접받는 법이니까.”
나중에 아이템에 대해서 재차 물어봤지만, 한태경은 대놓고 말을 피했다.
헌터들은 자신만의 비장의 수단을 꼭꼭 숨겨 두는 편이다. 아버지만 봐도 인식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비밀에 부쳐 두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람을 가려서 말해 주곤 했다. 보통 그러니까 나는 죽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야 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그러니까 나는 죽지 않을 거라고 경고해야 하는 사람들한테나.
한태경에게 그 선글라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박서현의 그림자를 꿰뚫어 보는 아이템이다. 나는 이 시간으로 넘어오기 전 마지막까지 한태경에게 그런 아이템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게 아이템인 줄 알았으면 매번 회의 때마다 선글라스 좀 벗으라고 구박은 안 했겠지.
한태경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템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숨겼다. 아마 그때도 티를 내려던 건 아니었을 것 같긴 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한태경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면이 있으니까. 그것도 세월의 흐름이겠지.
“네! 그게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이래서 비전공자들이란!”
갬블은 다시 테이블을 내리쳤다. 테이블에서 불안한 소리가 들린다.
“던전 안을 봤다잖아요!”
“네.”
“봤다구요!!!”
“네. 아이템으로요.”
“아, 진짜!!”
갬블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가 이번엔 김채민을 노려보았다.
“대마법사라면서, 모르겠어요?”
“네?”
“이래서 마법사도 안 된다니까!!”
“아니, 그렇게 마법사를 탓하면 안 되죠.”
“지금 난 그 얘길 하는 게 아니라고!!!”
갬블은 숫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던전 안을 본다구요!”
“네…. 다른 마법도 꿰뚫어 봤으니까 그 아이템의 본질적인 능력은 아마 마력을 투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 선생님?”
“아, 그쵸. 아마 그럴 거예요. 서현이 마법 안에서 길을 찾았다면서요? 마력 투시나,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두 분도 정확히 모르는 건가요?”
“한 선생님이 거기까지는 얘길 안 해 줬는데. 본인도 정확한 걸 알고 있을까 싶긴 합니다만.”
“한태경, 그 사람도 우리 길드 소속 아니에요? 뭐, 어떻게… 아이템 대여 같은 것도 하던데? 다른 길드들 보면?”
반쯤 걸쳐져 있긴 하지만 아니다. 한태경은 정확히 말하면 길드 미미가 아니라 양성 고등학교 직원이다.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한 선생님 물건이니까 제가 억지로 볼 순 없죠.”
김채민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선생님이 그 선글라스를 벗고 다니는 걸 봤습니까? 그 인간은 밤에도 끼고 다녀요. 아마 귀속 아이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속?”
“주인을 가리는 놈들이요. 제 검처럼. 제 검도 다른 사람이 잡으면… 좋은 꼴 못 보거든요.”
이어지는 나와 김채민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갬블은 한결 차분해졌다.
변화가 너무 극명해서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렇게 흥분했던 건데?
“그 아이템 능력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중요하긴 한데, 지금 저한테는 우선순위가 조금 밀려요.”
다행히 차분해진 갬블은 그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떤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이건 아마 저랑 보는 관점이 달라서 그런 걸 수 있어요. 거기 두 사람, 외부에서 던전 내부를 관측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당연히 좋죠.”
“편하죠.”
“어떤 의미로?”
“어떤 의미로라니…. 안전하잖습니까.”
던전 공략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게이트 부근이다. 특히 등급이 높은 던전일수록.
던전 등급이 높다는 말은 내부의 몬스터도 위험해진다는 뜻이며, 이는 몬스터들의 지능이 높다는 말과도 동일하다.
지리산의 그 요정처럼, 홍석영 앞에 나타났다던 미래에서 온 몬스터들처럼 의지만 있다면 인간의 말을 배울 정도로 지능이 높은 놈들이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는 헌터들이 제일 취약할 때가 게이트를 막 통과했을 때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지리산 던전 건도 마찬가지다. 요정 타티는 아예 게이트를 진흙 속에 담가 버렸다. 김채민이 아니었다면 무사히 나오는 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걸 미리 알 수만 있다면.
공략대의 생존율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한태경에게 아이템에 대해 물을 때 그 건도 같이 물어보긴 했다.
‘그러면 좋긴 한데, 안 될 것 같습니다.’
‘한 선생님 몸은 하나라서요?’
‘하. 하. 하. 그것도 그렇고, 이게 보기보다 조건을 따지거든요. 그래서 안 됩니다.’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는 꼴이 얄밉기는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갬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차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뭐가 그렇게 답답한지 좀 말해 달라니까요.”
“보세요. 던전 밖에서 던전 내부를 봤어요.”
“네.”
“우 선생님이 저한테 물었던 거 있지 않아요?”
“워낙 많아서….”
으득.
갬블은 이를 한 번 갈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거, 던전 내부와 외부에서 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거요.”
“…그게 지금 무슨 상관입니까?”
“들어 보세요, 좀! 던전 내부와 외부가 단절된 게 어째서인 것 같나요?”
“다른 세계잖습니까. 다른 건 당연하죠.”
“아니…. 네, 그렇죠. 다른 세계요. 다른 환경이라는 말이라고요. 마력 농도, 대기 농도, 모든 게 다 다른 환경. 그래서 간섭할 수가 없어요. 던전 내부에서 바깥으로, 던전 바깥에서 내부로.”
나와 김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갬블은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외부에서 내부를 잠시나마 관측했다는 건… 여기서 던전 내부와 연결되었다는 말이라고요. 어떤 식으로든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거라고요!”
“…한 선생님은 그냥 보았다고만 했는데.”
“그건 이제 알아 가면 돼요! 저한테 중요한 건 내부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니까!”
쾅!
갬블은 연거푸 테이블을 내리쳤다. 용케 테이블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미선이 꽤 좋은 걸 가져다 놨다.
관리청에서도 테이블이 자주 부서졌었지….
“노아 미셀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안과 밖을 잇는 단서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이 뒤로 갬블이 흥분해서 내뱉는 전문 용어와 복잡한 수치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김채민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갬블이 이토록 한태경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알았다.
“볼 수 있잖아요! 이걸 발전시키면 뭘 할 수 있을지 누가 알아요? 바깥에서 편하게 던전 내부를 관측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모습은 내게 어쩐지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언젠가 내 앞에서 이와 비슷한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이가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와 누나의 앞에서.
‘이것도 초기 단계입니다! 앞으로는 더 발전해 나갈 거라고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던 젊은 박사였다. 여러 유명 대학이나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모두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 명성에 비하면 푼돈을 받고 있다던 박사. 산드라 갬블의 뒤를 잇는 차세대 마력 공학자로 점쳐지고 있었다.
한국마력연구소 소속인 그 남자가 마력 시계를 개발했다.
던전 내부와 외부를 연결했다.
‘본부장님이 그걸 차고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데이터를 얻으면 그걸로 연구를 더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던전 공략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거라고요!’
‘그래, 그래. 강 박사. 조금 진정하고…. 미래를 보는 건 좋지만,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자고. 우리가 요청한 기능은 전부 들어간 건가?’
아마 그 남자가 꿈꾸던 변화가 지금 갬블이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알 방법은 이제 없지.
그러나 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이미 바뀌어서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미래를 고민하는 것보다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넵, 이 한태경! S급 헌터가 되어서 귀환했습니다!”
“잘됐군요.”
“하하, 이것 보십쇼, 선배님! 자축하는 의미로 체이시 인형을 새로 샀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새로 나온 에디션인데….”
“당장 따라와요.”
“네?”
나는 한태경을 잡아다 갬블에게 바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