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3)
방법(3)
한태경의 얼굴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황금색 눈은 이질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
생김새는 평범하다. 뭐, 몬스터처럼 괴상한 형태도 아니고 그냥 사람 눈이다. 색도 뭐… 서양인 중에는 밝은색 눈도 있지 않은가? 노란색 눈도 없진 않을 거다.
그러나 선글라스 뒤에 있는 한태경의 눈은 뭐랄까, 그런 느낌이 아니다. 흑백으로 사진을 찍어 놓으면 이 이질적인 기분도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평범했다.
황금색으로 반짝이지만 않았다면.
박서현의 마법 속에서 쉽게 길을 찾아냈던 한태경을 떠올려 보자. 선글라스가 빛났었지. 그래서 그 선글라스가 아이템이구나, 싶었었다.
“아!”
나와 마찬가지로 할 말을 잃고 있던 김채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거죠?!”
“네?”
“요술 램프!!”
“…….”
“새 걸로 바꿔 준다고 했잖아요!”
나는 재빨리 한태경을 보았다. 저 멀리, 중동 지역의 사막에서 드물게 관찰된다는 던전 안의 소원을 들어주는 몬스터.
커다란 날개를 가진 지능이 높은 몬스터는 충분한 대가만 준다면 잘린 팔다리도 돋아나게 해 준다고 했다.
‘눈알이 빠져 굴러다녀도 말만 잘하면 새걸로 바꿔 준다고요.’
이상하게 사례가 구체적이라고 느꼈었는데.
설마.
“네.”
한태경은 쓰게 웃었다.
“공략하다가 눈을 다쳤거든요.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걸 제 친구가 방법이 있다고 데려갔어요.”
“그 카타르의….”
“자길 구하느라 다쳤으니까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한태경은 여전히 낯선 얼굴로 말했다.
“저한테 새 눈 준다고 그 친구 눈을 바쳤어요.”
“…….”
“이 눈 달아 준 놈이 그러더라고요. 보지 못하던 걸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한태경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눈알을 덮자 반짝이는 황금색 빛 무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자….
“어쨌든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한태경은 선글라스를 다시 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글라스 하나 꼈을 뿐인데 이질감이 사라진다. 평소의 한태경이다.
“선글라스라면 몰라도 제 눈을 뽑아다 줄 순 없잖아요?”
“…….”
“없잖아요…?”
“…….”
“없… 없다고 말해 주겠습니까, 선배님?”
한태경은 갬블에게서 멀어졌다.
“선글라스고 눈알이고 상관없어요.”
“아니, 상관있지 왜 없어요?!”
“저기요, 우 선생님. 저 인간 학교에서 솔직히 할 일 없잖아요? 맨날 애들이랑 놀던데.”
“놀다니! 애들 훈련 봐준 겁니다.”
“충분히 대타 가능하니까 필요하면 가져다 쓰세요.”
“선배님!!!”
갬블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한태경을 보았다. 아까까지 되지도 않는 억지를 쓰며 실랑이를 벌이던 건 그냥 장난이었다는 듯이.
“보지 못하던 걸 볼 수 있게 된다는 말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려보자고요. 게이트 안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맞잖아요?”
“…그, 누가 게이트 통과할 때만 가능하다고요! 늘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네, 네. 알겠어요. 거기서 좀 더 가 보자고요. 게이트 통과할 때 뭐가 달라져서 그 안을 볼 수 있게 된 건데요?”
한태경은 나와 김채민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나나 김채민이나 둘 다 무시했다.
나는 반쯤 고의였지만 김채민은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갬블은 재차 한태경에게 대답을 종용했다.
“네? 뭐가 달라져서 그런 거냐고요!”
“그, 이걸 따로 말하는 용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없어요! 없을 거예요!”
“…저는 편의상 그림자라고 말하기는 합니다만.”
“그림자!”
“그림자… 아니면 잔상? 그게 자극을 받으면 흔들리는데.”
한태경은 더듬거리며 자신이 보는 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우습게도 나는 지금 한태경의 심정이 어떨지 눈에 그리듯 알 수 있었다. 한태경의 모습이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눈에 보이는 마력을 설명할 적과 겹쳤기 때문이다.
한태경에게 문제의 요술 램프에 대해 들었을 때 궁금했었지.
새로이 돋아난 팔과 다리, 눈은 과연 누구의 것이냐고.
이질감이 드는 한태경의 황금색 눈과, 팔이라기보다는 날개에 가까웠던 셈 블룸의 새로운 팔을 떠올렸다.
어쩐지 답을 알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있던 연구소에서 진행하던 연구를 생각했다. 그 연구를 위해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아이들. 그리고 마력을 볼 수 있는 내 눈을.
‘노아는 눈을 안 바꿨거든.’
알렉스 호프가 노아 미셀에 대해 떠들어 대던 말들.
노아 미셀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되돌아온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나는 평생 노아 미셀을 이해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우 선생님.”
“…네?”
“당분간 서현이랑 진우 좀 맡길게요.”
김채민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덕분에 어렵사리 상념에서 깨어났다.
김채민은 한 박자 늦은 내 대답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두 눈이 한태경에게 고정되어 있다.
“…뭐 하려고요? 참고로 산 채로 해부하는 건 안 됩니다.”
“숨을 붙여 놓아도 안 될까요?”
“…….”
“농담이에요. 대마법사 조크.”
김채민은 전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무서운 말을 지껄였다.
“산드라는 공학자잖아요. 역시 마법사의 보조가 필요하겠죠?”
“선생님이 공학자의 보조가 필요한 게 아니라요?”
“어느 쪽이든요.”
내가 안 된다고 해 봤자 들어 먹을 얼굴이 아니다.
나도 한태경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한태경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한태경을 들쑤셔 봤자 노아 미셀이 툭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단 이 두 사람한테 한태경을 양보하자. 적어도 나보다는 무엇을 알아봐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김채민에게 귀띔은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 선생님. 셈 블룸 기억하죠? 그 날개요. 아마….”
김채민은 잠시 한태경에게서 눈을 떼고 나를 보았다. 두 눈에 이채가 감돈다.
“…아. 그렇게도 연결되는군요. 알았어요. 그쪽도 염두에 둬서 살펴볼게요.”
“부탁하겠습니다.”
김채민이 갬블에게 합류하자 한태경은 더욱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운명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였는지 조금 전처럼 자포자기하는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내가 구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이제야 실감한 모양이다.
“저기, 다 좋은데… 아니, 사실 안 좋은데. 그래도 아까 그 제안은 남아 있는 거죠?”
“어떤 제안이요?”
“체이시….”
“아아. 그거요.”
갬블은 활짝 웃었다.
“선글라스 대여용이었는데, 선글라스가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없는 얘기죠!”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이거 사기꾼 아냐!”
“아닌데요.”
“선배님!! 이 여자가 날 괴롭혀요!!!”
“파이팅입니다, 한 선생님.”
한태경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정리했다.
…이 애들을 어떻게 조를 짜서 던전에 넣지.
잠깐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홍석영이 건네주고 떠난 두툼한 보고서를 들었다.
이 아저씨는 던전 공략을 어떻게 하고 있길래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거야. 그렇게 빨리 끝내고 오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 * *
“에르베 슈나이더라고요?”
세 시간. 세 시간 잤다.
홍석영은 시계를 확인하고 한숨부터 쉬었다. 평소라면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무리해서 던전 핵을 부순 여파는 오래 갔다. 아직도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홍석영은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CIA에서 나온 요원을 바라보았다.
“딱 보면 알잖은가.”
다 알아봤으면서 떠보는 건 이쪽 사람들의 직업병이다. 홍석영으로서는 귀찮기만 했다.
“아니… 그놈이 왜 여기서 튀어나옵니까?!”
“나도 모르겠는데.”
“정말 모릅니까?”
“아니, 사실 짐작 가는 곳은 있어.”
홍석영과 함께 던전에 들어간 공략대 중 3분의 1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도 절반은 중상이었고, 남은 절반도 몸만 멀쩡하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피로한 홍석영은 크게 감흥이 없었다. 아니, 죽은 이들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세 시간 지났잖아, 세 시간. 기절한 놈들이 깨는 데 적어도 반나절은 시간을 줘야지.’
고상한 척은 다 하면서 성질이 다들 급하다니까….
홍석영은 연신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피로가 풀리지 않으니 사람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홍석영은 대충 몬스터 탓을 하며 얼버무렸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몬스터가 습격했다거나 하는.
그러나 이건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었고, 미국도 피해를 크게 본 입장이다. 이럴 때는 숨기기보다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양심에 도움이 된다. 미국 측에서 나서게 되면 더 좋고.
‘아니, 근데 어차피 미국에서도 쫓고 있던 놈 아니었나?’
전부 얽히고 얽힌 관계이다….
“나와 사이가 나쁜 놈이 하나 있는데, 아마 자네도 알 텐데?”
“누구요?”
“아니, 재작년부터 나랑 같이 작업했던 거 있잖나. 암시장, 그거.”
“…헨리 레만이요?”
바로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놈. 내가 요즘 이능 협회 측이랑도 일하면서 고놈을 살살 약 올렸거든.”
“…….”
요원의 낯빛이 달라졌다.
“자네들이랑도 그때 조직 하나 날려 버렸잖나. 협회 요청으로도 일을 몇 개 했는데,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놈 작업장이었던 모양이더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은.
그러니 양심이 아플 일도 없다.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게 조용하길래 경계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은 나도 몰랐어. 죽은 이들은 안타깝게 되었어.”
“……아뇨. 홍 헌터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에르베 슈나이더 그놈이 던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
“따지면 저희 측에서 던전 관리를 못한 탓이기도 하죠….”
입맛이 썼다.
홍석영은 죽은 이들이 던전의 몬스터 때문에 죽은 것인지, 아니면 에르베 슈나이더가 죽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양쪽 다일 수도 있다.
“그럼 슈나이더는 어떻게 할 건가? 대마법사 드뇌브의 유족들에게 연락을 했나? 슈나이더 목에 현상금을 꽤 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쎄요….”
요원은 말끝을 흐렸다. 유족들에게 연락이 갈 일은 없어 보였다.
“레만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야죠. 안 그래도 저희도 계속 피해를 보고 있어서요. 얼마 전에 놈의 근거지를 습격했는데, 건물째로 날아가 버리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요.”
“정말 다행이군.”
“…레만을 계속 쫓을 겁니까?”
“아마.”
“그 일 때문에?”
“음.”
홍석영은 쓰게 웃었다. 미미의 양동생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찾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홍석영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범인들을 잡는 것이다.
‘이러면 너무 착하게 들리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사적 복수지, 뭐.’
“그럼 경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탁하네.”
“아뇨, 저희 쪽에서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요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빈말로라도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건 정말 피곤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요원이 가 버린 뒤에도 홍석영은 휴식을 취하는 대신 눈을 끔뻑이며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할 가족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니까.”
홍석영은 익숙하게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렸다. 무사히 던전 공략을 끝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