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7)
동생의 의무(2)
삶은 공평하지 않다.
우이록을 비롯한 연구소의 아이들은 그걸 빠르게 배웠다.
그래서 그 사실에 분노했는가?
글쎄, 그걸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 또한 공평하지 않은 것이니까.
그 감정을 알 만큼 아이들은 세상을 알지 못했다.
우이록보다 앞선 번호들, 좀 더 나이가 많은 형이나 누나들은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강태우처럼 바깥에서 살다가 들어온 이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게 콘크리트 벽뿐이라고만 아는데, 그 이상 뭘 바라겠는가.
그래서 우이록도 형이 그토록 말하던 몇 가지 단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우습게도 형이 사라진 뒤였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아빠가 나 찾으러 올 거야.’
엄마와 아빠를 찾으며 울던, ‘바깥’에서 온 아이들.
꼴 보기 싫었다.
좀 더 나이 든 우이록은, 십 대 후반만 되어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질투였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우이록은 아직 열한 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감정을 덜 자란 아이들을 향한 비웃음으로 여겼다.
자, 보아라.
삶은 공평하지 않다.
그러니 ‘바깥’에서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들도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않은가.
역시나 좀 더 나이 든 우이록은 자기도 어린애면서 무슨 이상한 소릴 지껄이냐며 부끄러워할 것이다.
어쨌든 그 우이록과 이 우이록은 다른 길을 걷는다. 그 길이 겹칠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한 번 갈라진 길은 같은 길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이 열한 살의 우이록은 그 우이록이 되찾을 수 없었던 형을 되찾았다. 그 형이 진짜 그 형인가? 하는 문제는 둘째 치고, 우희재는 우이록의 형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 점에서는 또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이록은 우희재를 형으로 생각하는가?
“이록아, 너도 형이 있댔지?”
“이록이 형은 헌터라고 했어!”
“헌터? 진짜?”
“응.”
이록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우이록의 형에 대한 증언이 마구 튀어나왔다.
“저번에 이록이 데리러 왔을 때 봤어.”
“맞아! 키도 엄청 크던데.”
“이록아, 그럼 너도 헌터 될 거야?”
“그건 잘….”
“야, 헌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줄 아냐! 일단 각성부터 해야 한다고!”
우이록은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가만히 놔두었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헌터에 관한 이야기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형뿐만이 아니라 그 아저씨도 헌터였고, 형이 바쁠 때 자길 돌봐 주러 오는 아저씨들도 헌터였지만….
헌터와 친근한 것과는 별개로 우이록은 헌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각성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그 연구소에서 만들려고 했던 건 각성자이지 않은가.
형에게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우이록은 각성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록아.’
하지만 형은,
‘혹시 이상한 게 보이거든 형한테 말해야 해.’
‘이상한 거?’
‘공기 중에 파란색 먼지 같은 게 떠다니는 것 같으면…. 알았지?’
‘파란색 먼지?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지금 설명해 줘! 그게 뭔지 알아야 나도 피하든 말든 할 거 아냐? 나쁜 거야? 이상한 거?’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혼자서 만지려고는 하지 말고.’
‘그냥 형한테 말하라고?’
‘그래. 네가 각성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형은, 마치 자신이 금방이라도 각성할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부분도 많겠지.’
알고 있다.
삶이 공평하지 않은 건 형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공평하지 않은 삶에서 우이록은 남들보다 빠르게 어른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형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묻지 않고, 몰랐으면 하는 눈치인 것을 모르는 척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형은 형이니까.
형이 약속을 지켜 줬으니까.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우이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근데 너넨 각성하고 싶어? 난 싫어.”
“왜? 헌터들 완전 멋지잖아.”
“으, 싫어. 괴물들이랑 싸워야 하잖아. 너 저번에 부산에서 나왔다는 몬스터 뉴스에서 못 봤어?”
“뭐? 어떤 거?”
“쥐! 나보고 그런 커다란 쥐 잡으라고 하면 못 해.”
“겨우 쥐 가지고?”
“그 쥐가 우리 아빠 차만 하찮아!!”
헌터가 멋있다느니 하는 친구들도 막상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니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난 쥐는 괜찮은데….”
처음 말을 꺼냈던 아이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난… 거기 나왔던 거 싫어.”
“어느 거?”
“일본에서 나왔다는 그 모기 던전….”
“아, 진짜 싫어!!”
“완전 끔찍!!!”
어느 나라에서든 곤충형 몬스터는 인기가 없는 법이다.
우이록은 주제가 자신의 형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이 형에 대해서 물어 봤자 귀찮기만 하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가족 얘기가 뒤따르는데 엄마와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도저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떤 몬스터는 강아지처럼 생긴 것도 있대.”
“귀여운 외양으로 사람 잡아먹고 그런 거 아냐?”
“몬스터니까 당연하겠지!”
“역시 헌터는 안 된다니까.”
“그래도 멋지잖아! 돈도 많이 벌고!”
“목숨은 하나뿐이라고!”
우이록은 친구들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오늘은 태권도장에 가지 않는 날이다. 아침에 형이 못 온다고 했으니까 아마 헌터 아저씨 중 한 명이 데리러 올 거고.
편의점에 가서 과자나 하나 사 먹으면 딱 시간이 맞을 거다. 이 근처 편의점은 길 건너편에 있는 거 하나뿐….
“…….”
고개를 돌린 우이록의 눈에 희미한 푸른빛이 잡힌다.
처음에는 골목 그림자에 가려서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형 몰래 자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았던 휴대폰 불빛과 비슷한 색이다. 인위적인 파란색.
우이록은 눈을 가늘게 떴다.
푸른빛 너머로 그늘진 골목 사이로 언뜻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본 기분이다.
골목 사이를 자세히 보기 위해 집중해 봐도 달리는 차가 방해된다. 우이록은 횡단보도를 보았다. 어차피 편의점으로 가는 길이니까 길을 건너서 확인해 보면….
‘이상한 게 보이거든 바로 나나 다른 헌터 아저씨들한테 말해. 알았지?’
음.
형의 당부가 떠오른다.
다른 친구들처럼 형이나 누나의 말을 전부 잔소리처럼 여기지는 않는다. 형이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고, 잔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다 자길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라는 건 안다.
특히 최근에 자신을 정민이라고 부르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면.
‘근데 대낮에,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무슨 짓을 하겠어?’
만약 정말 수상한 사람이 있다면 진작 그 헌터 아저씨들이 처리했을 것이다.
형이 얘길 안 하니까 모른 척하는 거지, 주위에 맴돌고 있는 헌터 아저씨들을 모를 리가 없다. 이건 그 헌터 아저씨들이 어설퍼서 열한 살짜리 꼬맹이에게 들킨 게 아니라…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죽은 생모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드는 남자가 있는데 학교에 그대로 다니게 한다?
우이록이 아는 형은 그렇게 무심한 사람이 아니다.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고자 하는 게 분명하다면 그 뒤는 쉽다.
우이록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아저씨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대단한 건 아니겠지. 기껏해야 편의점 알바생 정도가 아닐까.
편의점 가는 길에 한번 봐야지.
아마 우희재가 알았다면 기함할 생각을 하며 우이록은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제 대화의 주제는 헌터와 몬스터를 넘어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거 별로던데.”
마침 투덜거리는 소리에 우이록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냐!”
“못하는 애들이 다 그런 소리 하더라.”
“아니라고!!”
“게임 못할 수도 있지.”
“아, 진짜 아니라고!!”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금방 편의점에 도착한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직전, 우이록은 우연을 가장하며 골목을 보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틈. 평소에는 편의점에서 내어놓은 빈 공병 박스 정도가 쌓여져 있는 공간.
그 공간엔 옅은 푸른빛이 떠다니고 있다. 둥근 모양으로 뭉쳐 있는 것이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래서 잘못 봤나 보다.’
먼지처럼 공중을 느릿하게 떠도는 푸른빛을 쫓던 우이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른색 먼지….
‘형이 말한 게 이건가?’
형이 파란색 먼지를 보면 말하라고 했을 때,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내심 비웃었는데…. 눈앞에 있는 건 정말 파란색 먼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이게 각성의 증거라고?
보통 각성이라고 하면… 힘이 세지거나 하는 거 아닌가?
우이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펜션에 지냈을 때 같이 놀았던 형이나 누나들도 그렇게 말했었다.
물건 한두 개쯤은 가볍게 부쉈다고.
우이록은 손을 보았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스스스….
“이록아? 거기 서서 뭐 해?”
“어? 잠깐만.”
그래도 형이 바로 말해 달라고 했으니 말은 해야겠지. 휴대폰을 꺼내 들던 우이록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스스스스스…….
파란 먼지들이 모이고 있다. 아까보다 빛이 더 진해진다. 알갱이 하나하나는 희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게 나름 모이니까….
좀 더, 사람 같아졌다.
머리와 몸통이 구분된다. 어깨에서 뻗어 나온 팔이 보이고 뭉툭한 손가락이 자라나는 것이 보인다.
파란색 먼지만 있었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이건? 이게 뭐야?
누구라도 이걸 볼 수 있으면 평범한 일이 아닌 걸 알 것이다.
우이록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편의점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이록아? 무슨 일이야?
“형!!”
우이록은 다급한 목소리로 형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푸른 먼지로 이루어진 사람 형체가 골목 밖으로 나왔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형체가 일렁거리며 무너졌다. 그러나 먼지는 다시 엉겨 붙어 어떻게든 모양을 유지하였다.
밝은 대낮. 도로 한복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저것을 보고 있는 것은 우이록뿐이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장난치며 웃기 바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우이록이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인형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손이 자신을 향해 쭉 뻗어져 있다.
우이록은 뒷걸음질 쳤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자 친구들이 말을 멈췄다.
“너 왜 그래?”
우이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록아? 괜찮아?
그래서 늘 따뜻하게 감싸 주는 형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에만 매달렸다.
우이록은 휴대폰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었다.
“형!!!”
-이록아! 무슨 일이야!!
“이, 이상한, 이상한 파란색이 보여! 사람처럼 생겼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