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8)
동생의 의무(3)
-그게, 그게 점점 다가오는데? 이거 어떡해?!
우이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아직 패닉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아주 위험한 상황도 아니다.
이럴수록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쥔 채 이사장실로 향했다. 젠장, 복도에서는 이미 이미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발도 빠르지.
“우이록. 너 지금 어디야.”
-나? 나 편의점!
“어디? 학교 앞 사거리?”
-응!!
“사람처럼 생겼다고?”
-뭉툭하게? 그냥 형체만?
“속도는?”
전화하는 목소리가 조금 겁을 먹긴 했어도 숨이 가쁘지는 않다. 도망치겠다고 뛰는 중이 아니라는 말이다.
-속도는, 어, 느려.
“뛰어서 도망칠 수 있어?”
-으, 으음, 어, 도망칠 수 있어. 엄청 느려.
내 경험상 이런 종류의 공황은 쉽게 번진다.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빠르게 울기 시작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러니 여기서 나까지 당황하면 안 된다. 속은 어쨌든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차분하게 상황을 묻자 우이록도 나를 따라 진정했다.
나는 그런 우이록에게 몇 가지 더 확인했다.
“혼자 있어?”
-아니. 애들이랑.
“편의점? 그게… 그 파란 게 친구들도 봤어?”
-자, 잘 모르겠는데…. 잠시만.
수화기 너머로 우이록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야! 나 형이랑 전화해야 해. 들어가 있어.
-엉!
-입구 막지 말고 얼른 들어가!
몇 번 들어 본 적 있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조용해졌다.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까. 순간적으로 할 수 있는 영리한 판단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걸 열한 살짜리 어린 내 동생이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썩…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도 우왕좌왕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낫지. 좋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그 나이 또래 아이처럼 굴면 곤란했을 거다.
…왜 아버지가 내가 아이처럼 굴 때마다 좋아했는지 알겠다. 그래도 지금의 우이록은 나보다 훨씬 그 나이대의 아이 같다. 이래서 사회화가 중요한 거다.
괴상한 감회에 젖어 있는 동안 우이록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나를 불렀다.
-형?
“그래.”
-애들 안 봐. 나한테 계속 오는데.
“아직도 속도는 그대로야?”
-응.
때마침 나도 이사장실에 도착했다.
평소의 달리 문을 두드리는 일 없이 그대로 열고 들어갔다.
“우 선생님?!”
“그럼 학교 교문으로 빨리 가.”
-교문?
“교문 근처에 하얀색 승용차 하나가 있을 거야. 번호판이….”
숫자 네 개를 불러 주고 이미선을 보았다. 내가 누구와 통화하는지는 몰라도 그 번호판을 이미선이 모를 리가 없다. 우이록을 지켜보는 다선 헌터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다.
이미선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 형 와서 먼저 갈게! 내일 봐!
-어? 벌써 가?
-형 왔어!
그 와중에 우이록은 친구들한테 꼼꼼하게 인사를 했다.
공황에 빠지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저런 짓을 하진 않겠지. 애써 위안 삼았다.
집에 오거든 단단히 말해 둬야지.
“이록이 하교 담당 헌터도 지금 학교 근처예요. 합류하라고 말할게요. 무슨 일이에요? 또 누가 쫓아와요? 친구들이랑 편의점 문 앞에서 얘기만 했지, 누가 접근했다는 건 못 봤다는데요.”
이미선이 그새 헌터들과 이야기를 했는지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 스피커로 돌린 휴대폰에서는 이어서 설명했다.
-지금 이록이 보고 있습니다. 김 헌터가 내려서 데리러 가고 있어요.
“이록아, 앞에 헌터 아저씨 있지?”
-응!
“아저씨랑 차 타고 바로 와. 아직도 쫓아와?”
-어…. 근데 좀 빨라진 것 같아.
“빨라졌다고?”
-어어. 처음에는 제대로 못 걸었는데, 걸을 때마다 몸이 막 무너졌거든? 지금도 무너지는 건 똑같은데 돌아오는 게 빨라졌어.
“그럼 더 빨리 뛰어!”
-김 헌터가 이록이와 합류했습니다!
“하교 담당 기다리지 말고 바로 출발해요! 양성고로 와요!”
눈을 찌푸렸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이록이 보았다는 그 형체는 마법이다. 다행이다. 마침 우이록이 마력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그게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왜 갑자기 우이록을 노리는 거지?
“이록아.”
-응?
“전화 끊지 말고, 계속 살펴봐. 알았지? 쫓아오는지 안 쫓아오는지.”
-…그게 자동차 쫓아오기엔 많이 느릴 것 같은데?
“그래도 또 모르니까.”
우이록을 노리는 게 누구지?
그간 알게 된 정보를 되짚어 본다.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헨리 레만인가? 하지만 놈은 홍석영에게 신경 쓰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호프와 갬블이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헨리 레만을 잡으려는 움직임은 각국의 경찰 기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세계적인 범죄자라는 신분 덕분이다.
그리고 그런 신원 때문에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노아 미셀은 원래 시간대에서도 만나 본 적 있는 마법사였으니까 그래도 현실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천사 같은 얼굴로 사실은 악당이었다, 하는 상황 자체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장면 아닌가.
하지만 범죄자? 범죄자라니. 마피아 보스 같은 건 내 담당도 아니었단 말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홍석영과 이미선에게 맡겨 놓은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우이록을, 내 동생을 건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아, 젠장! 우이록한테 박정민을 거론한 놈은 또 연구소 관련일 것 같은데. 그럼 노아 미셀의 짓인가? 호프도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미셀의 눈이 돌아갈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씨발, 별 거지 같은 사이비 새끼들이 난리 쳐서 왜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냔 말이다.
그놈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딴 걸로 고민하고 있을 이유도 없고, 애초에 과거로 날아올 일도 없고, 지구가 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우 선생님? 괜찮아요?”
“…네. 이록이가 걱정돼서요.”
“그쵸…. 그런데 정확히 무슨 일이에요? 누가 이록이를 쫓아온다는 거예요?”
이미선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록이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갑자기 테이블이라도 부수지 않을까 살펴보는 눈치다.
내가 애도 아니고, 책상 부숴 먹을 나이는 진작에 지났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일렁거리는 마력을 가라앉혔다. 우이록보고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고 걱정한 주제에 반대로 내가 흥분하면 안 되지.
나는 이미선과 내 휴대폰을 음소거했다. 우이록이 헌터와 이야기하는 소리는 들린다. 뭔가 보이면 나한테 얘기할 테니, 이쪽의 이야기가 넘어가지 않았으면 했다.
“아마… 마법일 겁니다.”
“마법이요?”
“눈에 안 보이는 감시 마법. 이록이가 자길 향해 쫓아온다고 했으니 감시에서 안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
“접촉 시 속박과 투명 마법을 같이 걸어 버리면 헌터들이 이록이를 놓칠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피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미선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묻고 싶은 게 있는 눈치다. 뭘 묻고 싶어 하는지는 뻔했다.
나는 말을 멈췄다. 물어보라는 의미다.
“마법… 은 둘째 치고, 그걸 이록이가 알았다고요?”
“그것도 애가 오면 봐야 하기는 하지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각성했을 겁니다.”
“…이록이가요?”
내가 각성했던 게 이맘때쯤이었던가?
아니다. 조금 이르다. 나는 여름에 더 가까워졌을 때 각성했다.
우이록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또 다른 증거.
뭐, 사실 내가 볼 수 있게 된 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나는 우이록처럼 매일같이 헌터를 보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 누나나 오현욱이 돌봤을 때 말고는 그 나이에 헌터를 가까이 볼 일은 없었다.
내가 우이록보다 보는 게 늦었다고 해서 나도 이 시기에 보지 못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사소한 그 하나하나가 차이점을 만든다. 그게 모일수록 안도했다. 나와 다른 사람이 될 테니까.
우이록의 아버지를 뺏은 것은 여전히 미안하다.
하지만 걔한테는 내가 빼앗겼던 형이 있다. 어쩌면 아버지도 생길지도 모른다. 누나는… 없겠지만.
나는 그 아이가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아무도 죽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내게 바란 것처럼.
“저도 각성했는데요.”
“어, 음.”
이미선은 할 말을 찾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방주 출신에, 인체 실험을 통해 탄생한 건 이미선도 알고 있다. 우이록도 똑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어도 각성은 유전 확률이 높잖아요. 생모와 형이 각성자니까요.”
“어, 그래서 마법을 느낀 건가요?”
이미선은 이 주제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는지 서둘러 말을 돌렸다.
“막 각성했을 때는 감각이 예민하잖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죠. 아니었으면 그대로 당할 뻔했으니까.”
“…어느 쪽일까요?”
“네?”
“헨리 레만? 노아 미셀?”
“…….”
나는 가만히 이미선을 보았다.
“알 수 없죠. 하지만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요?”
“김 선생님 좀 불러 주겠습니까?”
나는 휴대폰을 흔들었다.
“이록이 때문에 제가 움직이는 건 좀 힘드네요.”
* * *
우이록을 태운 하얀 승용차는 하교 담당 검은 승용차와 함께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10분 빨리 학교에 도착했다.
푸른 형체를 우이록밖에 볼 수 없었다고는 해도 저만큼 흉흉해진 마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헌터를 그만두어야 한다.
미끄러지듯 운동장에 주차한 차 안에서는 헌터 하나가 우이록을 둘러메고, 다른 한 명은 우이록의 책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내렸다.
“형!”
나는 우이록을 뒤로 보냈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이미선이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뒤늦게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 봤는데요.”
“네?”
김채민이 학교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결계를 활성화시켰다. 아이들과 함께 가꾸었던 화단에서 넝쿨이 뻗어 나와 건물 외벽을 감쌌다.
“이거 여기로 불러왔으면 안 됐을 것 같습니다….”
“애들 때문에요?”
“안 좋아요. 여긴 어쨌든 학교잖습니까. 이걸 본부처럼 사용하면 안 됐어요.”
“애들은 좋아하던데요.”
“그러니까 더 문제죠.”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안 그래도 없는 인원 더 분산시킬 수도 없고요.”
김채민의 손짓에 맞추어 넝쿨에서 피어난 장미꽃이 창문을 가린다.
“그리고 제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이상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없어요. 제가 허락 안 해요.”
흙먼지로 가득한 운동장에 푸른 새싹이 가득 돋아난다. 싱그러운 잔디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간 김채민이 죽어라 심어 놓은 씨앗이다. 김채민은 할아버지의 마법과 결합하여 자신을 거의 무적으로 만드는 공간을 구축했다.
“그것참 믿음직하군요.”
“아, 전혀 안 믿는 말투!”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멀리서 우이록이 말한 푸른 형체가 나타났다. 어린애 발로도 따돌릴 수 있었던 느릿하고 어설픈 마력은 없다. 눈이 아플 정도로 짙은 마력은 거의 질주하다시피 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어느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귀찮은 걸 잘도 조종하는구나.
나는 창을 꺼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