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19)
동생의 의무(4)
대마법사는 유능하다.
유능함을 넘어서 솔직히 말하면, 편리하다.
김채민을 봐라. 공격이면 공격에, 방어면 방어. 못 하는 것이 없다.
사실 이건 김채민이 특이한 거다. 보통 대마법사는 주력 마법이 확실한 만큼 그에 특화되어 있다. 마법에 따라서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모든 대마법사가 김채민처럼 할 수 있었다면 이미 지구는 마법사에게 점령당하고 남았을 것이다.
이건 아마 김채민의 속성과 관련되어 있을 거다. 식물을 키우고, 강화하는 마법. 왜 식물 속성이 아니라 굳이 드루이드라는 명칭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유럽에서 먼저 등록한 속성이겠지.
학교 건물을 감싸는 장미는 우리 발밑에도 피어났다. 딱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다.
김채민의 싱그럽고, 동시에 화려한 마력이 대기 중에 번진다. 마력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그 흐름이 명확히 보인다. 김채민은 특별히 공격력이 강한 장미 넝쿨을 만들거나, 튼튼한 장미를 피워 내는 게 아니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강한 마력의 장미를 피워 내서 그걸 자기 원하는 대로 쓰고 있을 뿐.
지금처럼.
“만개하는 장미 넝쿨이 당신을 축복하여.”
건물에 매달린 장미가 흔들린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폭풍을 만들어 낸다.
꽃잎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날아간다. 막 양성고에 도착하여 잔디 앞에서 발을 멈춘 마력의 형체를 향해.
우이록이 처음 말했을 때는 기껏해야 성인 정도 되는 크기였다. 그러나 차로 이동하는 도중 푸른 형체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우이록은 그걸 욕설과 함께 나에게 전했다. 그쯤에서야 다선의 헌터도 쫓아오는 마력을 느끼고 속도를 높였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푸른 형체는 인간의 형상이라고도 하기 힘들다. 두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네 발로 달리고 있다. 웅크린 몸은 버스만 하다. 두 발로 선다면, 음. 명동 던전에서 나왔던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한 크기가 아닐지 싶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작으려나?
뭐,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안 들어오네?”
김채민이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선생님도 느껴지죠? 지금 쟤 교문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거죠?”
“지능이 있다는 얘기겠죠.”
“아니면… 흐응. 조종하는 놈이 따로 있다거나.”
교문을 경계로 김채민의 영역이 나뉜다.
김채민은 지휘자처럼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꽃잎이 낮게 하늘을 날았다.
“마력 질이 너무 나쁜데요. 저런 마법이 있습니까?”
“아마 원격으로… 인형 마법을 개조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인형이라.”
“감시하는 것만으로는 저렇게 정밀하게 움직이지 못하죠. 아마 저기 어딘가에 핵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골렘처럼?”
“네! 몇 가지 마법을 더 덧대었을 수도 있어요. 아마 대기 중 마력을 사용하여 여차할 때 덩치를 키울 수 있게요. 이건 마법을 분해해야지 알 수 있어요.”
그러나 김채민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이유야 뻔했다.
“하지만 저걸 분해하는 건… 음, 힘들고, 역시 바로 없애는 걸로 해요.”
형체는 아직도 교문 근처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할 수 있죠?”
나는 거리를 가늠했다. 사실 워낙 자주 오가던 곳이다 보니 가늠할 것도 없긴 했지만, 그냥 양심상.
“마법이 몇 개나 중첩되었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고민을 끝냈는지 푸른 형체가 팔을, 혹은 앞발을 내디딘다. 팔다리가 길다. 네발로 기며 휘적거리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소름 끼치기도 한다.
싱그러운 잔디에 발이 닿자마자 김채민의 장미 꽃잎이 놈을 감싼다. 다리를 휘적거리며 꽃잎을 치워 버리려고 하지만 실패했다. 장미 꽃잎은 순식간에 놈을 뒤덮었다.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이 꽃잎으로 형상화되었다. 김채민은 짓궂게 웃었다.
“이제 잘 보이죠?”
“…그렇군요.”
없어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을 무시할 건 아니다. 게다가 보이는 편이 낫긴 하지.
몸체가 붉은 꽃잎에 휘감기자 놈에게서 뻗어 나온 파란 마력의 실 하나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마력이 어지럽게 흔들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인형 마법은 잘 모르겠지만 골렘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가 편하다. 저게 일종의 안테나겠지.
“저 마법을 누가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지금도 조종하고 있을 텐데.”
“아, 차라리 무슨 마법을 썼는지 알아내기가 더 쉬워요.”
김채민은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하다고는 안 했어요!”
대마법사의 자존심이 삐죽거리며 튀어 올랐다.
“핵에서 시전자의 마력을 뽑아내야 하는데….”
“핵을 부수는 걸로는 안 되고요?”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저 정도로 정교한 움직임을 처리하려면 핵에 본인의 마력을 일정 이상으로 주입했을 거예요. 핵을 부수면 아마 그게 흩어질 거고.”
“그걸 추적한다?”
“바로 대기 중에 녹아 버려서 안 돼요.”
대마법사의 자존심으로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다.
김채민은 고개를 저었다.
“핵을 온전히 빼내면 그 마력 패턴을 제가 따로 기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만한 놈한테서 핵을 빼낸다? 불가능… 하진 않겠지만, 힘들어요. 안전이 제일이잖아요.”
“그렇죠….”
꽃잎을 털어 내는 것을 포기한 형체는 곧바로 목표물을 잡았다.
김채민의 마력이 듬뿍 담긴 꽃잎이 놈의 마력을 분쇄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마력을 모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요, 우 선생님.”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했다.
“그 마력 패턴 말입니다.”
“네?”
“아무런 조치 없이 핵을 부수기만 해도 나오는 겁니까?”
김채민은 내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착실히 대답했다.
“나… 나오기는, 하겠죠?”
“그래요? 그럼 됐습니다.”
“네?”
나는 푸른 형체를 향해 달려갔다. 장담하건대, 김채민은 내 움직임을 보지 못했을 거다. 등 뒤에서 얼빠진 소리가 들린다.
곧바로 형체의 위에 올라탔다. 물리적인 형체가 없는 마력 덩어리 상태였다면 발이 그대로 푹 꺼져서 정체불명의 마법사에게 꿀꺽 삼켜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꽃잎이 나의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준다.
꽃잎을 밟고 움직인다. 고양이처럼 부풀어 오른 등에 창을 꽂아 넣는다. 그대로 휘두르는 대신 물을 휘젓는 것처럼 끝만 살짝 움직였다.
창끝에 장미 꽃잎이 걸린다. 붉은 꽃잎이 내 창으로도 옮겨 붙는다. 창날에 엉긴 꽃잎은 여전히 걸리는 모든 것을 분쇄할 것처럼 날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잎으로 가려진 시야가 로맨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재밌잖아. 이게 대마법사와 함께 하는 몬스터 사냥?
다음번에는 김채민과 던전 공략을 해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한태경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밌는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으니.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방금 제가 똑바로 말했나요?’
태양처럼 화려한 금발이 흔들린다.
노화가 느린 각성자는 외모와 실제 나이가 다른 경우가 많다. 눈앞에 있는 대마법사도 다르지 않다.
나이를 알고 있는데도,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은 기껏해야 이십 대 초중반처럼 보였다. 순박하게 웃는 얼굴 때문인지도 몰랐다.
‘네. 따로 한국어를 배우셨습니까?’
‘일상 대화 정도는요. 한국에는 유망한 헌터들이 많잖아요. 조금 배워 두면 도움이 될지 싶어서 배워 봤어요.’
‘영광이네요. 같은 의미로 저희 쪽에도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아하하, 저, 음.’
‘실례했습니다. 우희재라고 합니다.’
보석이라 불리는 대마법사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사실 알고 있어요. 홍 헌터님의 아들이잖아요?’
‘네. 하지만….’
‘무슈 우도 프랑스어를 배웠나요?’
‘…저도 일상 대화 정도는 할 줄 압니다.’
‘저 때문에?’
객관적으로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물결치는 화려한 금발과 부드러운 푸른색 눈동자는 태양의 딸이라는 수식어대로 마주한 사람을 따스하게 감싼다. 옅게 주근깨가 박힌 얼굴은 연신 웃음을 띠고 있다. 최연소 대마법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해바라기 밭을 거니는 시골 소녀라고 해도 믿을 만하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저 미소 덕분일지도 모른다. 태양처럼 환한 미소가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무슈?’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프랑스의 보석과 대화할 기회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두 눈으로 마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드물지.
‘과분한 칭찬이죠.’
꾸밈없는 미소와는 달리 내미는 손에는 큼지막한 알이 박힌 반지가 있다. 보석일까? 아니면 던전 부산물?
‘그럼 저도 다시 인사할게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마법협의회의 제5차 국제 표준마법 지정 포럼.
초청된 대마법사는 열두 명. 그중 하나가 눈앞에 있는 금발의 여자다.
‘프랑스에서 온 노아 미셀이에요. 잘 부탁해요.’
“……!!”
마력으로 이루어진 형체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팔을 잘라도, 다리를 잘라도. 하다못해 몸통을 반으로 갈라도 아무렇지 않게 마력으로 다시 이어 붙인다.
하지만 명심하자.
저건 몬스터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마법이다. 그리고 마법끼리의 격돌이라면 여기에도 대마법사가 있다.
김채민은 내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넝쿨을 움직였다. 꽃잎으로 강제로 형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넝쿨로 발목을 감아 넘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교문을 넘은 지가 언제인데, 놈은 아직도 운동장을 반도 가지 못했다.
꽃잎은 여전히 마력을 분쇄한다. 떨어진 다리와 몸통 사이에 마력의 실이 엉켜 있다.
마법의 핵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우 선생님!”
김채민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고함을 질렀다.
“왼쪽 정강이요! 무릎 아래!!”
무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김채민의 말에 따라 놈의 왼쪽 무릎을 잘라 냈다. 창을 휘감고 있는 꽃잎이 마력을 분쇄하는 걸 도와주었다.
“아! 아냐, 움직였어! 위로, 허벅지, 아니, 아니, 몸에, 으, 어깨요!!”
“원래 핵이 이렇게, 막, 움직이는 겁니까?!!”
“마법에 따라 다르죠!!!”
내가 남의 시야에 의존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꽃잎이 없었다면 핵을 볼 수 있었으려나?
모른다. 마력을 완전히 숨기는 마법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하지만 이쪽은 속도만큼은 자신 있다. 김채민의 비명을 들으며 재빠르게 손을 놀렸다. 허벅지를 분쇄하고, 몸통을 휘젓는다. 어깨를 잘라 낸 다음 다시 재생되기 시작한 무릎을 한 번 더 날려 버리고 배를 가른다.
“오른쪽 옆구리요!!!”
그리고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빈 구역이 보인다. 날벌레 무리 속에 뛰어든 것처럼 푸른 마력 알갱이들이 번지는 가운데, 누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비어 있는 주먹만 한 공간.
봐. 내가 방금 말했잖아. 마력을 완전히 숨기는 마법도 있다고.
‘오늘 마법 시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 마법을요?’
‘네. 아주 궁금했거든요.’
‘그렇게 기대할 건 없는데….’
금발의 대마법사를 생각한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태양과도 같은 빛을.
나는 마력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마법을 시전할 때 깔리는 마력 패턴을 숨길 수는 없다. 푸른 마력이 황금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노아 미셀의 마력 패턴은 기억하고 있다.
다시 본다면 절대 착각할 리가 없을 만큼 똑똑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