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2)
상한 고기(2)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자 소고기의 상태는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김채민이 사 왔을 때만 해도 생생했던 붉은빛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시커먼 색상과 무너진 형체, 코를 찌르는 악취까지.
“어떤 효과인지는 알겠는데… 너무 효과가 좋은 거 아니에요?”
김채민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면 이렇게까지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던전에 시체를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 되었나 보죠.”
“…좀 더 성의 있는 가정은 없나요?”
“좀 더 징그러운 가정은 있는데요.”
“징그러운?”
나는 씩 웃었다.
“시체가 다 썩기 전에 몬스터가 파먹은 거죠.”
“으으….”
김채민이 인상을 썼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 저희가 쓴 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기도 하고요. 게다가 날씨도 무덥고…. 룬도 셔츠에 대충 그린 것보다는 똑바로 정리해서 그렸잖습니까?”
나는 상한 소고기에 붙어 있던 룬을 팔랑거렸다.
“그 시체를 언제 던전에 가져다 놓았는지 알려면 그런 것들을 실험해 봐야 하는데, 그럴 정도의 시간은 없잖습니까. 당장은 무슨 효과인지만 알면 충분하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확인하지 않았나.
이놈들, 정말 던전에 먹이를 주고 있다.
인공적으로 던전을 키우는 일 자체는 관리청에서도 하곤 하는 일이다. 주로 등급이 낮되 던전 부산물들의 값어치가 뛰어날 때 한다.
예를 들면, 아라크네가 나오는 대구 던전.
아라크네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몬스터도 아니고, 다른 생명체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먹이만 충분하다면 거미줄을 뽑아 집만 쉬지 않고 짓는데, 이게 또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다. 온순하다고는 해도 대형 몬스터가 직접 마력을 뽑아 만들다 보니 강도가 남다르다. 가공이 힘들어서 그렇지 아라크네의 옷감은 헌터들의 방어구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일도 아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라크네 던전이 몰려 있는 그리스는 물론, 비슷한 양상의 던전이라면 비슷하게 굴러간다.
하지만 어쨌든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놔두는 일이다.
당연히 관련 법도 빡빡하고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해 놓는다. 관리 절차도 복잡하다.
방주는 몬스터를 키워서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던전 브레이크가 목표였나? 아니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모든 던전을 한순간에 터트릴 수 있을까?
미래에 일어나는 일은 알지 못하지만 김채민도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글쎄요. 제가 그걸 알았더라면 진작 뭔가 수단을 냈겠죠.”
“그래도 우 선생님은 들었던 게 있지 않아요?”
“들었던 게 있으면 저도 여기서 같이 룬을 들여다보고 있진 않을 겁니다.”
김채민은 할 말이 없었는지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썩은 고기에게 잠깐 시선을 뒀다가, 가방을 챙겨 들고 운동장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보았다.
저놈의 책가방. 어차피 여기서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하교부터 시키고 이야기하죠.”
* * *
아이들을 데려다준 뒤.
“알겠어요!”
“네?”
김채민은 나를 끌고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한 음료가 막 나왔을 무렵. 김채민은 작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 우 쌤이 말한 곳 있잖아요! 태극! 거기요!”
“네. 거기가 왜요.”
“거기에 우리가 잠입해 보는 게 어때요?”
“…….”
“방주라면서요?”
“그렇다고…. 안 됩니다. 잠입 같은 거 꿈도 꾸지 마세요.”
“아니, 왜요!”
김채민은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며 반발했다.
“직접 가 보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또 어디 있어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아니, 내가 넘어가면 안 되지.
이런 고집불통을 상대할 때는 정론이 최고다.
“해 보셨습니까?”
“네?”
“해 보셨냐고요.”
“어….”
김채민이 지금 몇 살이더라? 스물다섯? 스물여섯?
헌터 나이 스물여섯이면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나이다. 게다가 김채민이 활동을 시작한 것도 성인이 되고 난 뒤다. 한창 세상이 밝고 아름답게 보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경험이 부족하다.
그리고 본인도 말했지 않나. 던전 공략 경험이 부족하다고. 잠입 수사는 던전 공략과 궤가 다르긴 하지만 사람을 상대한다는 입장에서는….
나는 가만히 김채민을 보았다.
늘씬한 팔다리와 달리 얼굴에는 아직 어린 티가 묻어난다. 반짝거리는 장신구와 화사한 원피스를 보고 있으면 대마법사라기보다는 꾸미기 좋아하는 대학생처럼 보인다.
홍석영이 대충 시장에서 주워 온 추리닝을 입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이런 시골 동네에서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
게다가 김채민이 몰고 다니는 차가 오죽 눈에 띄는가?
“김 선생님은 너무 눈에 띄어요.”
“…욕인가요? 칭찬인가요?”
“둘 다 아닙니다. 그냥 사실이죠.”
모르긴 몰라도 이미 김채민은 근방에서 유명할 거다.
헌터들이 모여서 뭔 학교니 뭐니 하는 공사판에 오가는 여자로.
그런 눈에 띄는 여자가 대뜸 전단지 하날 들고 찾아가면 누구라도 의심한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다. 시범고라는 특수한 장소가 문제가 됐을 뿐이다.
유지은이 타고 왔던 택시 기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들을 아침저녁마다 태워 주고 있다 보면 눈에 띄기 싫어도 눈에 띈다.
지금도 보아라. 호프집과 마찬가지로 촌스러운 인테리어의 카페에 앉아 있는… 추리닝 차림의 남자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여자?
이게 눈에 안 띄면 뭐가 눈에 띄겠는가.
차라리….
흠.
“뭔가요? 그 표정은? 좋은 방법 있어요?”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하면 안 되는 선은 분명하다.
“왜요? 말이라도 해 줘요.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구.”
“아니….”
김채민이 눈썹을 치켜떴다. 나는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의심을 안 받을 만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너무 위험해서요.”
“뭔데요?”
“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럼?”
“…유지은 학생이요.”
“지은이요?”
그새 유혜은 자매와 친해졌는지 김채민은 친근하게 유지은을 불렀다.
천천히 김채민의 얼굴에 이해의 빛이 퍼진다.
“와, 우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날 무슨 파렴치한 보는 눈이다.
억울해졌다. 누가 한다고 했나? 위험하니까 안 할 거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제격이긴 하지 않은가.
막 각성한 중학생. 보호자는 없고, 언니와 둘이서 지낸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듣고 찾아왔다고 하면….
정신 차리자. 지금 내가 말하는 애는 새끼 유지은이다. 어른 유지은이었으면 망설이지 않고 보내 버렸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자는 안 되지.
“위험해서 저도 시킬 생각 없어요.”
“어떻게 어린애를 데리고 그런….”
“말해 달라고 한 건 김 선생님이잖습니까. 안 한다니까요.”
실실 웃고 있는 김채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채민은 유지은과는 다른 의미로 나를 괴롭힌다.
관리청에는 이렇게까지 나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어서 색다른 기분이기는 했다. 본부장이나 유지은 말고는 어쩐지 다들 나를 어려워했으니까.
아. 이미선도 나를 편하게 여기긴 했다.
아니, 편하게 여겼다기보다는….
‘어머나. 네가 그 꼬맹이였니? 홍 헌터님이 하도 자랑하길래 어떤 앤가 했는데…. 흐흥.’
처음 만났을 때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한 번 훑어보고 갔더랬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그건 편하게 여겼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다에 가깝다. 유지은한테는 볼 때마다 다선에 들어오지 않을래? 하면서 질척거린 주제에.
내가 유지은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무식하게 검만 휘두를 줄 아는 그 여자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물론 나도 길드에 들어가서 헌터로 활동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나 정도면 솔직히 다른 길드에서도 모셔 가려고 난리를….
……달갑지 않은 추억을 떠올리니 조금 흥분했다.
“우 선생님?”
김채민과는 이제 직장 동료라고도 할 수 있는 사이다. 서로 어려워하는 것보단 훨씬 낫긴 하지.
“교장 선생님께 이야기는 했으니까 알아서 하시겠죠. 이미선 헌터의 도움을 받거나요.”
“다선에서요?”
“적당한 사람을 보내서 들어가게 하거나….”
내 말에 김채민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다선은 헌터 길드예요. 우 선생님. 다선을 너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녜요?”
평범한 헌터 길드가 부검도 하고 그러겠나.
다선은 아저씨의 만능 심부름꾼 같은 거였다. 관리청 본부장이라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일들. 아저씨는 그런 걸 이미선에게 부탁해서 해결하곤 했다.
단순히 불행하게 죽은 아저씨의 제자이자 이미선의 조카인 이승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두 사람의 인연이 깊어 보이기는 한다. 보아하니 이승연이 명동에서 죽기 전부터 방주를 쫓느라 협업했던 모양이니.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김채민을 보았다. 부족한 직장 동료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이겠지.
“김 선생님이야말로 다선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마법사니까 어쩔 수 없겠다 싶기도 했다.
원래도 마법사의 수는 적은데 쓸 만한 마법사의 수는 더 적다. 한 길드에 정착하기보다는 용병처럼 이 길드 저 길드 고용되어 모셔지는 마법사의 특성상 길드 내부의 일이나… 길드 간의 세력 다툼, 혹은 정치 싸움은 알 길이 없다. 이래나저래나 마법사는 외부인이니까.
“다선은 다연입니다.”
“네? 이미선 헌터가 그쪽 집안이긴 하죠. 하지만 다연은 길드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이렇게 순진해서야.
하긴, 이런 성격이었으니까 다른 헌터들을 구한다고 죽었겠지.
“…우 선생님 한 번씩 눈빛이 되게 이상해지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고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 주면 안 될까요?”
“제 눈빛이 어때서요?”
“어릴 때 마법 실패할 때마다 우리 아빠가 절 보던 눈빛이요.”
비유가 왜 그 모양이야.
“전 김 선생님의 선고장을 뵌 적이 없어서 그게 무슨 눈빛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딸이니까 내가 이 멍청이를 가르치고 있지만 역시 시간 낭비가 아닐까?”
“…….”
“그러고 나면 되게 다정하게 웃으면서 저보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거든요.”
“…….”
“세상 최고 멍청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죠….”
난 그 정도로 사람을 멍청이 취급하진 않는다.
그냥, 뭐… 좀 답답하면 안쓰러울 수도 있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는 거잖은가.
“아, 또 그런 눈빛!”
“착각입니다.”
“우리 아빠도 똑같이 말했어요.”
“…….”
나는 말을 돌렸다. 이쪽은 길게 얘기할수록 내가 불리해지는 주제다.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아무리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도 길드 마스터가 이미선인 이상 다연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가족이라서요?”
“다선이든 다연이든 공공사업이 아니니까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이승연 학생과 이미선 헌터의 사이를 보면 사이도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까?”
“…….”
“한 번쯤은 고려해 보세요, 김 선생님. 괜히 많은 기업이 길드를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다들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보기 마련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