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26)
복수선언(2)
양성고의 수업 시작은 오전 9시.
현재 시각 오전 8시 13분.
집에서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분 남짓이며, 지금은 딱 그 절반을 왔다.
하와이에서 여동생과 같이 짧은 방학을 보냈다고는 해도 막 한국에 집이 생긴 열여덟 살 어린애를 곧바로 기숙사로 보낼 정도로 나는 냉혈한이 아니다.
딱 이번 주까지만 집에서 등하교해도 좋다고 했다. 어차피 앞집에 살고 매일 아침 우이록이 그 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내가 출근하면서 데려다주면 되는 일이고.
뭐, 그래…. 약 40분간 자동차라는 밀폐된 공간에 있다가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강태우에게 어릴 때 미국에서 지낸 게 맞는지, 기억이 나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고 이 녀석의 정신 상태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양성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건,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강태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강태우를, 연구소의 3호를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강태우의 얼굴을 보는 게 썩 편하지는 않다.
그냥, 나에게 어둡고 꿉꿉한 연구소를 떠올리게 해서.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태우는 명동에서 죽어야 했던 시범고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미래가 바뀐 증거이기도 했다. 원래 3호가 어떻게 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또래 아이들과 마음 놓고 웃었을 것 같지는 않다. 여동생도 없었을 거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
나는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홍석영이 시범고를 인적 드문 곳에 세운 걸 감사히 여기자. 나는 여전히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차를 세운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강태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 여동생이 죽고 난 뒤 우울하고 조용했던 소년은 이승연과의 가출 소동이 있었던 뒤 그래도 조금 밝아졌다. 이승연이 동아리니 길드니 뭐니 요란하게 굴 때쯤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동생 말고도 신경 쓸 일이 생겨서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사람은 취미가 있어야 한다.
여동생이 살아 있다는 걸 안 뒤로는… 그래, 조금 덜떨어져 보이긴 했다. 그래도 죽은 줄 알았던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데 그럴 수도 있지. 나비처럼 폴폴 날아다니는 바보 같은 꼴도 이해했다. 그 음울했던 초반에 비하면 훨씬 사람 같은 모습이잖은가.
그래서 나는 강태우가 이딴…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릴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오현욱 같은 애가 ‘저는 제 옛날 길드 마스터를 죽이고 싶어요.’라고 했으면 각오를 했을 거다.
…잠깐, 비슷한 말은 했었나?
어쨌든, 이래서 얌전한 애가 무섭다.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
“…….”
나는 운전대를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기억하자. 지금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애는 학생이다. 미성년자다. 복수라는 단어가 멋있어 보여서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흥분하지 않으려고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강태우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태연하게 메시지를 확인한다.
이 새끼가, 진짜.
“그게….”
목소리가 쩍 갈라진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를 갈지 않고 최대한 부드러운 소리를 내보려고 노력했다.
“무슨 소리니?”
노력했다. 노력이 성공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네?”
“……방금 말한 거.”
“아. 복수요?”
무어라 메시지를 치던 강태우는 휴대폰을 무릎에 내려놓고 나를 보았다. 내가 알던 3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얼이 나간 바보 같은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아요?”
“…….”
“선생님도 연구소에 계셨잖아요.”
나는 갑자기 길을 잃었다.
강태우가 어이없는 말을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저 말에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뻔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하기에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이런 말에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정답인지 아버지한테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답을 알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만의 정답이 있었겠지.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게 해 줄 거야.’
물론 복수를 허락해 줬을 것 같진 않다.
그저 내가 나서기 전에 본인이 다 정리했을 테지. 실제로도 그랬고.
그건 내가 사용할 수 없는 정답이다.
언제나 알고 있듯이 이 자리에는 아버지가 없다. 홍석영도 없다. 아, 차라리 이사벨라와 로버트가 있었다면 떠넘길 수 있었을 텐데.
젠장.
“어차피 선생님도 계속 연구소 쫓고 있잖아요. 제가 도와드린 것도 있고, 소희가 하는 말을 들어도 그런 것 같고.”
강태우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휴대폰을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학교에서 하는 일도 그거잖아요. 얼마 전에 이록이 쫓아서 온… 마력 덩어리도 그렇고.”
“…보였어?”
“아뇨. 그렇지만 그게 워낙 크다 보니까 잘 느껴지던데요.”
우이록에게만 신경 쓰느라 강태우의 마력 민감성을 잊고 있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순진이 홍석영의 사설탐정이 어쩌고 떠들어 대는 것에 신경 쓸 게 아니었다. 그걸 전한 강태우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잖아.
다 내 잘못이지.
애들이 있는 공간을… 학교는 학교로만 썼어야 했는데.
오늘 학교에 가거든 김채민과 이미선이 뭐라고 하든 운동장에 있는 몬스터 사체부터 치우자. 그걸 언제까지 방수포로 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저는 연구소를… 책임자를 잡고 싶어요.”
“네가….”
나는 말을 골랐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결국 경험은 가장 큰 동기이다. 강태우가 복수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복수라는 극단적인 단어에 내가 너무 당황했을 뿐이다.
이건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보고 환경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고, 학대당하는 강아지를 보고서 동물보호가가 될 수도 있다. 뺑소니 피해자를 보고서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꿀 수도 있고.
강태우도 마찬가지다.
“…네 말대로 선생님이 이미 하고 있는데도?”
“아직 잡은 건 아니잖아요.”
“…….”
“선생님.”
학창 시절의 모험은 결국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강태우가 들을까? 혹시 멋대로 뛰쳐나가는 건 아닐까?
소피아가 있으니 그런 멍청한 짓을 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반대로 소피아에게 보호자가 생겼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거 아세요?”
“…뭐를?”
“연구소에서 저를 졸업시키기로 한 사람들 있잖아요.”
“…….”
“우리 엄마도 거기 있었어요.”
강태우는 웃고 있었다.
“사실 엄마라고 하기도 뭣하죠. 그래도 옛날에는… 아니다. 엄마가 왜 그랬는지는 앞으로도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
“선생님. 그 뒤로 우리 엄마 본 적 있어요? 잡았어요? 아마 얼굴은 알 텐데.”
“네 어머니를… 잡고 싶은 거니? 처벌을 받았으면 하는 거야?”
제발 그렇다고 해. 그렇다고 해라.
네 복수는 그 인간들이 적합한 법적 처벌을 받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해.
강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원래는 소희, 소피아를 죽인 그놈을 잡아서 죽이고 싶었거든요.”
“…….”
“얼굴은 기억하니까. 제가 마력을 느낀다는 사실에 집착했잖아요? 그래서 뭐, 나중에 헌터가 된 다음에 어디 인터뷰라도 하면서 그 사실을 밝히면 찾아오지 않을까 했어요.”
나는 잠시 앞선 대화를 잊고 질린 눈으로 강태우를 보았다.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어렵다.
“근데 사실 그 사람이 도와줬다고 하니까 그 계획은 폐기했어요. 소피아한테도 물어봤는데 보스턴에 있을 때 다시 만났었다고 하더라고요. 예쁜 오빠라면서.”
아.
“선생님이 영 신경을 안 써서 그냥 저도 가만히 있었는데…. 그 사람이잖아요? 계속 시끄러웠잖아요, 요즘. 저 얼굴 기억한다니까요. 알렉스 호프.”
이건 진짜 실책이다.
“보건실에 있는 사람 맞죠?”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내 얼굴에 그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태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 제가 보건실에 몰래 들어가서 칼로 찌르거나 하진 않아요. 아마, 어. 소피아를 구해 준 사실을 몰랐다면 그랬을 것 같긴 한데.”
“……말해 줘서 고맙구나.”
할 수만 있다면 차에서 내리고 싶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원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렉스 호프가 강태우를 습격했을 당시 그 자리에 다른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떠올렸다.
“…혹시 이승연도.”
“승연이 형이요? 당연히 기억하죠.”
“…….”
“그 얼굴이 어디 쉽게 잊을 만한 얼굴인가요.”
“그래….”
“형은 소피아 일을 몰라서… 이미선 헌터님한테 따지러 간다는 거 말리느라 힘들었어요.”
“그렇구나….”
이미선에게도 말해 줘야겠군.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계속 도로에 이러고 있을 순 없다.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태우야.”
“네.”
“그래. 네 말대로 연구소를 쫓고 있는 건 맞아. 납치되었던 아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고, 연구원들 중 붙잡힌 사람도 꽤 있어.”
그간 정말 아이들만 가르치며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네가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그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면 도와줄 거다.”
“…합법적인 수단이라면.”
“개인적으로 쫓아서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수사기관을 통해서 재판받게 하는 거.”
강태우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천천히 강태우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나중에 이런 범죄를 쫓는 각성자 전문 수사기관을 만들고 싶어.”
“…지금도 있지 않아요?”
“전담 기관은 아니지. 턱없이 부족해.”
나는 처음 내가 과거로 떨어졌을 때, 잠시 구금되어 있었던 각성자 수사실을 생각했다. 기껏해야 수사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적은 인원들.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인력을 빌려 와야 하는 처지.
기존에 아버지가 관리청을 만들었던 때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홍석영은 관리청의 필요성을 아버지처럼 절실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던전 공략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건 여전하지만 그때처럼 폭력적으로, 급진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아도 된다. 그걸 경험해 본 내가 있으니까 그때 부족했던 점을 채워서 지금은 더 확실히 준비할 수 있다. 이승연이나 오현욱도 있다. 그 아이들이 한순간의 충동으로 지금 하는 일을 팽개칠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세계에 시급히 필요한 건 관리청이 아니라 경찰 같은 각성자 수사기관이다. 던전 내의 범죄를 추적하고, 각성자 범죄를 처리하는 곳.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곳.
…아버지가 만들려다가 끝내 실패했던.
“아니, 만들 거야.”
“…선생님이요?”
“꼭 내가 만들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나서야 하니까.”
강태우는 이마를 찌푸렸다. 저게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다.
내 말을 이해했나? 아니면?
“그걸로는 할 수 없니? 네 복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