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27)
귀가(1)
강태우는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더 묻지 않고 놔두었다.
최대한 밝은 면을 생각하자.
적어도 보건실에 몰래 들어가지 않았고, 옛 연구소에 찾아가는 일도 없었다.
물론 학생 수보다 교사진의 수가 많은 괴상한 학교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보건실에 몰래 숨어드는 것은 지금 아이들 실력으론 어려운 일이다.
폐수련원에 있는 연구소는 더하다. 거긴 내가 위치를 알려 준 이후로 이미선의 엄중한 관리를 받고 있다. 솔직히 강태우가 연구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애가 바깥에 몰래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나한테 이실직고하지도 않았겠지.
강태우가 모범생이라는 티는 여기서 났다. 나처럼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고 그러지는…. 집을 나가다니. 큰일 날 소리. 그냥 외출이 조금 길어졌을 뿐이다. 어렸을 땐 다들 그러잖아?
“…….”
침묵 속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들어섰다.
좁은 도로 양옆으로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흔들리는 갈대가 나름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컨테이너 세 개에 비하면 훨씬 학교다운 양성고의 모습이 드러난다. 새하얀 건물, 큼직큼직한 창문. 누가 봐도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건물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김채민이 틔워 낸 잔디가 아직 남아 있다. 김채민은 삭막한 환경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면서 꽃만 거두고 잔디는 그대로 놔두었다. 모랫바닥이든 잔디든 아이들은 그 위를 굴러다닐 거고, 저 잔디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쪽이 보기에 좋다는 김채민의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태우야.”
차에서 내리기 직전, 나는 강태우를 불러세웠다.
“선생님 어디 있는지 알지?”
“…….”
“이야기하고 싶으면 찾아와.”
강태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내가 한 번 더 확답을 해 주고 나서야 녀석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집에 찾아가도 돼요?”
나는 그게 강태우 나름의, 어른을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똑같이 강태우에게 웃어 주었다.
“이제 우리가 친척이 된 건 알지? 이런저런 서류상으로?”
“어… 그렇게 되죠?”
“동생이랑 같이 와도 돼.”
강태우는 뜻밖의 말을 들은 것처럼 잠깐 숨을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네!”
* * *
“보건실엔 어쩐 일로?”
“그냥 확인차요.”
“확인이라고 해 봤자… 딱히 달라진 건 없는데요?”
보건 교사 신민서는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만 뻐끔거리며 대답했다.
“그래도 저 보고서는 열심히 썼다고요? 못 봤어요? 우리 마스터한테 제출하고 있는데.”
“봤어요.”
“그럼 거기서 뭐가 더 궁금하길래 보건실까지 몸소 오셨지.”
“제가 귀찮습니까?”
“아이, 그런 건 아니고요.”
귀찮아 보인다. 신민서는 여전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하고 있나 봤더니 별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알아보기도 힘든 캐릭터들이 난잡하게 화면 속을 뛰어다니고 있다. 그래, 할 일이 없겠지. 없겠어….
이곳이 꿈의 직장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못마땅하다. 이 사람도 다선 소속이고, 이미선이 학교에까지 불러온 걸 보면 믿을 수 있는 인간이란 소린데…. 더 시킬 만한 일이 없나?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신민서는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 액정 속에서 ‘WIN!’이라는 문구가 반짝반짝 빛났다.
“네?”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
신민서는 감이 좋았다. 내 고민이 더 이어지기 전에 보건 교사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일어나더니 안쪽으로 향했다.
“이쪽 볼일인 건 맞죠?”
“네. 아이들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까?”
“아뇨. 건강 그 자체!”
신민서는 지루하다는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신의 편안한 직장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진 않았다.
신민서는 나에게 헤실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진짜 달라진 건 없어요. 큰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제 의견은 그대로지만, 솔직히… 아, 내가 이런 대사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뭐를요?”
“잠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신민서는 우스꽝스럽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왜 일어나지 않는지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족분들이 옆에서 열심히 말을 걸어 주세요.”
“…도대체 언제 적 드라마를 보고 다니는 겁니까?”
“왜요? 생각보다 요즘 사람들한테도 잘 먹혀요. 역사와 전통의 대사라고요.”
신민서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 사람한테 가족이라고 해 봤자 산드라만 오고 있지만.”
“…자주 옵니까?”
“요즘은 일이 바쁘다고 전에 비해선 줄긴 했는데,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오고 있어요. 여기 던져두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 여러 상사분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이고 좋죠.”
그런 말을 들으면 이쪽도 할 말은 있다.
본인의 사망을 위장하자고 제안한 건 알렉스 호프고, 솔직히 그것 때문에 일이 얼마나 늘었는지 아는가?
물론 내가 아니라 이미선이 했다.
아마 신민서도 그 사실을 알 것이다. 나는 그래서 가장 쉬운 핑계를 댔다.
“갬블 박사가 가족인 건 맞잖습니까. 열심히 말을 걸어야 하는 가족.”
“가족이죠.”
“제가 말을 걸어 봤자… 뭐라고 하겠습니까? 차라리 이 헌터님이 할 말이 더 많을걸요.”
“할 말요? 저주라도 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신민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리고 전 이쪽 말고도 할 일이 많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맡겨 놓는 게 더 낫고요.”
내가 비난을 듣는 것도 억울하지. 저 녀석 얼굴을 보고 있어 봤자 내가 뭘 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병문안 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갬블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수상하다는 듯 쳐다볼지도 모른다.
보건실에서 모바일 게임만 하느라 인간이 고팠는지 자꾸 말을 붙이려는 신민서를 무시한 채, 나는 보건실에 온 첫 번째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이 보건실에 자주 옵니까?”
신민서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보건실 이용률이 처참할 정도로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쪽 방에 대해서 물어본다거나?”
“어, 아뇨. 물어본 애들은 없었는데. 보건실에 온다고 해도 가끔 무릎 까진 애들이나 여자애들이… 아니, 보건실에서 냄새나요?”
“…네?”
“나 때는 수업 좀 듣기 싫으면 보건실 와서 낮잠 좀 자고 그랬는데. 얘들은 왜 바로 도망가는 거죠? 아니, 반창고 좀 붙였으면 앉아서 놀다 가도 되잖아요!”
“본인이 모범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도 됩니까?”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앞가림 자기가 잘하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주의라.”
신민서는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을 팔락거렸다.
“앞가림 잘했잖아요?”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욕먹어요.”
“그것도 앞가림에 속하죠.”
신민서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보건실 안쪽에는 문이 하나 더 있다. 침대 몇 개와 고집스럽게 추가한 비싼 의료 장비가 가득한 방.
신민서는 침대를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었다.
“아무 문제 없어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째서인지 신민서는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보세요.”
“……네. 보입니다.”
“제가 계속 말했잖아요?”
신민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매일 환자 상태를 업데이트하는데 안 본 건 아니죠?”
“큼, 문제가 없다고 듣긴 했지만….”
“문제야 있죠. 일어나질 못하고 있는데. 아, 하지만 문제가 없기는 하죠? 자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자는 게 아니면 뭔지 모르겠어요.”
“진짜 자고 있는, 아니, 정신을 못 차린 게 맞습니까?”
“믿기지는 않지만요. 네, 의식 불명의 환자랍니다.”
나는 신민서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알렉스 호프를 보았다. 흔히들 의식 불명의 환자를 말할 때 떠올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호흡기나 뭐 그런… 중환자실의 의료 장비라고는 하나도 없다.
알렉스 호프는 혈색 좋은 얼굴로 몸을 뒤척이고 있다. 평범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정말로?”
“맞다니까요!”
신민서는 못마땅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잘 이해가 안 가요. 호흡도 제대로 하고, 방금 봤죠? 몸도 뒤척거린다니까요! 혹시나 해서 검사든 뭐든 해 보려고 의료 장비를 연결해 두면 잠깐 눈 돌린 틈에 다 떨어져 있어요.”
“음….”
“산드라는 그냥 놔두래요. 원래 그랬다고, 어렸을 때부터 병원을 안 좋아해서….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 있는 거 보면 너무 신경 쓸 거 없다고. 혹시 뭐 문제 있을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래서 헌터들이란…. 죄다 이상하다니까.”
신민서가 작게 투덜거렸다.
이건 헌터라기보다는… 알렉스 호프가 정말 백 퍼센트 인간인지조차 모른다. 육체는 인간이라고 해도 그 속이 어떤지는 모르지 않는가. 실제로 인간은,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집채만 한 몬스터를 든 채로 대륙과 대륙 간을 이동할 수는 없다.
갬블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갬블은 호프처럼 귀찮은 성격이 아니다. 만약 호프가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신체에 있다면 뭐라도 말해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호프가 인간의 몸은 챙겨야 할 게 많아서 귀찮다고 했던 걸 봐서는 신체가 인간과 다르지는 않을 거다.
나는 신민서에게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왔다. 신민서는 커튼을 쳐서 침대를 가리고 재빨리 내 뒤에 따라붙었다.
나는 그런 신민서에게 당부했다.
“저 사람한테 무슨 변화가 있으면 바로 말해 주세요.”
“넵.”
“그리고….”
나는 작게 신음을 삼켰다.
“혹시 애들이 보건실에 몰래 들어오려고 하거나… 저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더라도 저한테 말해 주시고요.”
“저도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나요?”
“안 됩니다.”
“에이.”
이승연과도 말해 봐야 하려나.
그게 낫겠지.
그래야겠지.
…이미선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안 되겠지.
이승연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개심한 범죄자다? 사실 우리 측 사람이었다? 아니면, 홍석영에게 다 떠넘길까?
이승연이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겠다마는…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언질을 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최소한 호기심으로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는 주겠지.
복잡한 마음에 검을 뽑았다. 누나가 가끔 등급이 낮은 던전에 들어가서 불 지르는 걸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던전에 들어가진 않겠지만 운동장에는 내가 처리해야 할 물건이 하나 있다. 썩지도 않고, 죽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몬스터의 사체. 김채민과 이미선이 분석을 하고 있다마는 아직 건진 건 없다. 샘플은 충분할 테니까….
부우웅.
검에 마력을 두르는 순간, 귀에 희미한 차 소리가 잡혔다.
고개를 들자, 진입로 저 끝에서 자동차 한 대가 양성고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