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28)
귀가(2)
달려오는 차를 유심히 보았다.
다선에서 애용하는 검은색 SUV나 승용차도 아니고, 김채민의 노란 스포츠카는 더더욱 아니다. 참고로 김채민의 스포츠카는 학교 주차장에 있다. 그 화려한 차가 귀찮다고 세차도 해 주지 않는 주인을 만나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꼴이 안쓰럽기 그지없었지만.
낡은 감이 없잖아 있는 하얀색 승용차는 느린 속도로 다가왔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잠시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자.
‘항상 평정을 유지해야지.’
‘아저씨도 못 하면서?’
‘뭐? 내가 왜 못 해?’
‘사이드미러 날린 거 지은이 누나가 그런 거예요.’
‘유지은!! 유지은, 고게 진짜!!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도움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네.
낡아 빠진 하얀색 승용차는 금방 학교로 들어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대신 잔디를 짓밟고 근처까지 그대로 밀고 왔다.
낡은 승용차의 번호판은… 아는 번호다. 누나가 사이드미러를 부숴 놓고서는 이 아파트는 이웃 주민들이 예의가 없다며 떠넘겼던 자동차.
홍석영의 오랜 동반자였다.
“아빠 마중 나왔어?”
홍석영은 차에서 내리며 히죽 웃었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홍석영은 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빠각.
“내 차!”
사이드미러가 박살 났다. 여긴 저걸 박살 낼 누나가 없으니까 대신 해 줘야지.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들, 환영이 너무 격한데?”
이번에도 홍석영은 쉽게 피했다. 물론 나도 홍석영이 맞아 줄 거라는 믿음은 없었다. 내가 노리는 건….
“불! 불!!”
홍석영은 옷자락에 붙은 불꽃을 보고 펄쩍펄쩍 날뛰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모처럼 검을 들고 있는 모습에 무슨 일을 할지 짐작이 갔는지 1층 교실 창문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뭐, 아침에 주의를 주긴 했지. 태워 버릴 거니까 운동장에 나오지 말라고. 구경하는 것까진 막을 생각 없다.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마력에 민감한 강태우나 마법사 애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한창 불놀이에 열광할 나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있는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편 방수포를 살짝 걷었다.
절반의 사체가 드러난다. 나머지 절반은 보스턴에서 처리되었다. 방수포 안쪽의 바닥은 여전히 흙이다. 지워지지 않은 몬스터의 피가 어지러이 떨어져 있다. 부자연스럽게 끊긴 자국은… 알렉스 호프가 있던 자리다.
불을 불러내는 건 쉽다. 명동에서부터 그랬다. 누나가 살아 있었을 땐 나도 검을 쥐는 게 불가능했다. 누나는 이 검을 처음부터 쥘 수 있었을까?
불이 붙는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푸른 불꽃은 몬스터를 쉽게 집어삼켰다. 사체는 불꽃 속에서도 형체를 한참을 유지하고 있었다.
“…….”
당연히 태워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당당히 말하고 왔다고. 안 태워지면 곤란한데.
몬스터의 깃털로 실험도 해 보았다.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이놈이 사실 불과 밀접할 수도 있잖은가? 하지만 깃털은 탔다. 살점 덩어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안 타는 거지.
“불!!!”
“음….”
조금 더 기다렸다.
깃털이나 떼어 낸 살점도 바로 타 버리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크기가 커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잠깐 몬스터를 노려보며 마력을 조금 더 불어넣었다. 이 이상 집어넣으면 나도 컨트롤하기 힘든데…. 김채민과 불은 상성이 좋지 않다. 전지전능한 대마법사를 부르기도 애매하다.
다행히 마력을 넣자마자 변화가 생겼다.
기이한 광경이다. 나는 눈을 찌푸리다가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을 촬영했다.
푸른 불꽃 속에서도 단단히 형체를 유지하던 깃털이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심지를 태우고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촛농처럼. 깃털 하나를 태울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녹은…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체액? 무어라 하든 녹은 사체는 땅에 닿기 전 사라졌다. 마치 거대한 밀랍으로 된 인형이 녹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나가 몬스터 태우는 건 종종 봤는데 이런 식으로 녹아내리는 건 또 처음 본다. 대부분은 재도 남기지 못하고 깡그리 타 버렸고… 마력 저항이 높은 놈들이나 재를 남길까 말까 했다. 아니면 아예 불에 타지 않거나.
한번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그 뒤는 금방이었다. 몬스터 사체에는 고여 있는 마력이 없었고, 불에 타면서도 주위의 마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혹시 모르니 꼼꼼하게 살핀 후에야 불꽃을 모두 거두었다.
모두.
홍석영의 옷을 태우고 있는 것까지.
“…불장난은 하면 안 된다고 내가 안 가르쳤어?!”
“걱정 마세요. 집을 태운 적은 없습니다.”
“…….”
“농담입니다. 불장난은 안 하죠. 그건 유지은 담당이었거든요.”
홍석영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의 작은 유지은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지은이가?”
“그래도 사람을 태운 적은 없…….”
“뭐야. 왜 불안하게 말을 멈춰?”
“…뭐. 그럴 겁니다. 그 인간이 뒤에서 뭘 하고 다닐지 제가 어떻게 다 압니까.”
“뭐?”
홍석영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한테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래도 아빠한테 왜!”
“머리카락도 태워 드릴까요?”
“…희재 군의 마력 컨트롤이 우수한 걸 보니 아주 기쁘군.”
홍석영은 헛기침을 했다.
어차피 뜨겁지도 않았을 텐데 무슨 엄살은. 기가 차지도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음? 아, 미국에서의 일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한국에 한번 들어왔어.”
“그건 또 무슨 말… 아뇨. 그거 말고요. 먼저 얘기할 게 있잖습니까.”
나는 홍석영의 말을 잘랐다. 아무 연락도 없이 돌아온 것도 돌아온 거지만….
그게 아니어도 홍석영이 저지른 사고가 있지 않은가.
“음? 무슨 얘기?”
홍석영은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저렇게 눈이 반짝 빛나는데 못 알아들었을 리가. 하지만 홍석영은 히죽거리는 면상으로 모른 척했다.
“…….”
“으으음?”
“…강태우와 같이 온 사람들이요.”
“이사벨라와 로버트? 걔 여동생을 혼자 지내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희재 군한테 맡길 수도 없잖은가.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시더라고.”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럼?”
홍석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나는 아직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보았다. 홍석영은 굴하지 않았다. 방금은 그냥 당해 준 거에 가깝고, 사실 두 번은 안 통할 거다. 불꽃을 털어 내지도 않았잖아.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이 아빠는 몰라요….”
휙.
“허억!!!”
홍석영은 운전석 문에 꽂힌 검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음.
가로등을 들이박고 차 문을 걷어차 부수는 바람에 마침내 아버지가 저 낡아 빠진 차를 바꾸게 했던 누나가 지금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대신 해 줄 수밖에 없지.
“내 차!!”
누나를 위해 변명하자면, 그건 운전 연습 중 있었던 일이다. 조수석에는 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누나에게 운전하라고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 * *
“그래서 진짜 무슨 생각이었던 겁니까?”
홍석영은 늘 아이들이 앉아 있던 상담실 소파에 앉아 있다. 손에는 평소와 같이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홍석영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커피를 홀짝였다.
“그 두 사람은….”
“이사벨라와 로버트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말을 멈췄다.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
홍석영은 차분히 말을 이어 갔다.
“셈 블룸을 잡긴 했지만 결국 언젠가 이록이는 표적이 될 거야.”
“…노아 미셀에게요?”
“그쪽이 아니더라도. 너무 좋은 먹잇감이잖나.”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래. 아이에게는 안정된 환경이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
무어라 말하려다가 말았다. 홍석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은퇴를 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헌터였어. 소… 피아였지, 이름이? 그 아이도 각성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잘 돌봐 줄 거네. 이록이는 당연하고.”
“두 사람 모두 헌터였다고요?”
로버트 블레이크는 딱 봐도 헌터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이사벨라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뜨개질을 할 것 같은 작은 체구의 노인이 헌터였다는 것은 믿기가 어려웠다. 각성자인 티도 전혀 나지 않았다.
홍석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즐겁게 웃었다.
“아, 그렇고말고. 이사벨라를 조심해. 내 장모님은 주먹 하나로 미국 동부를 제압한 분이시니까.”
“…….”
“워낙 옛날이라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군. 나중에 이사벨라 할랜드를 찾아보게. 아직도 그 이름을 들으면 벌벌 떠는 미 장성들이 많거든.”
“장성?”
“옛날 미국에서는 헌터들은 모두 군 소속이었어. 그래 봬도 중장이셨네. 할랜드 중장.”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홍석영을 보았다.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각성자라는 티가 정말, 하나도 안 났는데?
입양한 딸을 위해 딸의 고향 음식을 배웠다며 수줍게 웃었던 그 할머니가?
이록이한테 고양이를 소개받으며 즐겁게 웃던 그 할머니가?
세상에선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 된다…. 내가 마력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무적이지는 않다.
이사벨라 블레이크의 충격적인 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사실 나중에 생각할 것도 없다. 그만한 사람이 이웃 주민… 우이록과… 의 조부모가 되어 주기로 했다는 데 감사를 느껴야지.
그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기는 했다.
“그럼 로버트는요?”
“이사벨라의 보좌관이었지.”
“아하.”
“사랑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까.”
홍석영은 부드럽게 웃었다. 낯선 얼굴이다.
“자네도 그렇고, 이록이도 그렇고. 아직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 아닌가.”
“저 서른 넘었습니다.”
“원래 부모 눈에 자식은 항상 어린애인 법이지.”
홍석영의 눈이 흔들림 없이 나를 향한다.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지금은 내가 무얼 말하든 어린애의 짜증으로 취급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사하게.
홍석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킥킥 웃었다.
“자, 어쨌든 내가 미국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사실은 진짜거든.”
“왜 온 겁니까, 그럼?”
“왜기는. 우리 아들은 혼자 오래 두면 이상한 생각을… 검 좀 집어넣고!”
홍석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슈나이더가 뭔가 말하긴 했는데 검증이 필요해. 시간이 좀 걸릴 거라 그사이에 잠깐 들어온 거야. 그래서 여유가 많진 않아.”
“검증이 필요하다고요? 무슨 이야기길래.”
“확인되면 바로 말해 주겠네.”
“아니….”
“한국 들어온 김에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이사벨라와 로버트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고… 그리고 나도 겸사겸사 확인할 게 있어서.”
홍석영은 손톱을 세워 손에 쥐고 있는 종이컵을 두드렸다. 탁, 탁. 거슬리는 소리.
“지리산에 있는 그 요정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