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29)
귀가(3)
[홍 헌터님이 한국에 잠시 들어올 거래요.]이미선이 홍석영의 귀국 소식을 뒤늦게 알려 왔다. 도대체 언제 말을 전한 거야? 어이없다는 얼굴로 홍석영에게 묻자, 홍석영도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공항에서?”
“…어느 공항이요?”
“…….”
홍석영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대충 뭐라고 할지 예상이 갔다.
“인천?”
“…….”
이 아저씨가 진짜.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했다고 해서 짜증이 안 나는 건 아니다.
홍석영은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어깨를 폈다.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살폈다. 어차피 처음부터 자기가 딱히 잘못한 게 없다는 몸짓이었다.
그래. 잘못은 아니지, 잘못은.
나도 진정했다.
“다음번에는 그 차 아예 태워 버릴 겁니다.”
“…….”
홍석영은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애들은 잘 지내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온 걸 어떡하나. 집에 왔다고 쫓아낼 수도 없다. 나는 홍석영의 장단에 맞춰서 넘어갔다.
어차피 애들 상태에 대해서 말해야 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홍석영은 이 학교의 교장이다.
…쓸모가 있는진 잘 모르겠는데. 교장이란 게 필요한가? 이 학교에?
체육 교사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네, 뭐. 강태우, 걔가 좀 문제이긴 하지만요.”
“걔가 왜?”
나는 문제의 강태우가 언급한 복수에 관해 설명했다. 홍석영은 깜짝 놀라는 듯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겼다.
홍석영은 커피가 다 식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괜찮을 거야.”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미 복수를 한 번 포기했잖아.”
“…….”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는 맛이 없었다.
“여동생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호프에 대한 건 깔끔하게 포기했어. 나름대로 본인의 기준이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하지만….”
“포기하는 건 어렵지. 그러니 그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성장하는 거야.”
홍석영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
“우리 모두가 그러듯이.”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나는 거의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강태우도 겉으로는 얌전하게 있어도 속으로 갑자기 돌아 버릴 수도 있다.
그걸 지금 걱정해 보았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아직 배운 것이 적은 아이들이라면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그렇게 성장하는 거다.
정 힘들어하거든 도와주면 되지 않는가. 강태우에게는 이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있으니까. 아들을 되지도 않는 사이비 연구소에 실험체로 밀어 넣는 쓰레기 대신.
홍석영은 그런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본인의 커피도 깨끗하게 비웠다.
“그럼 가 볼까!”
“…어딜요?”
“그 요정한테 물어볼 게 있다니까!”
나는 설마 하는 눈으로 홍석영을 보았다. 방금 전의 감동이 모두 깨졌다.
“지금 가자는 겁니까?”
홍석영은 언제나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얼굴을 보니 차마 내뱉지 못한 욕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홍석영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빨리 지리산 갔다가, 이록이도 보러 가야 하고, 입양 절차도….”
“마지막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입양, 그게 시간이 좀 걸릴 거란 말이지. 지금 있는 동안 준비는 해 두는 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겠나.”
“못 들은 걸로 하겠다니까요.”
그렇지만 홍석영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일어났을 때도, 상담실을 나왔을 때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성인 입양 절차는 또 다르려나? 그것도 알아봐야겠군.”
“…못 들은 걸로 합니다.”
결국 내가 짜증을 내며 홍석영을 돌아보았다. 홍석영은 내가 뭐라고 하기 전 선수를 쳤다.
“이록이가 좋다고 하면 괜찮다며?”
나오려던 말이 턱 막혔다.
홍석영은 얄밉게 웃었다.
“기억하지?”
젠장.
“…이록이한테 물어봤습니까?”
“음. 글쎄?”
홍석영은 휴대폰을 흔들었다. 아무것도 띄워져 있지 않은 새까만 화면이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휴대폰 액정은 방금 도착한 메시지 창을 반짝거리며 보여 주었다.
무슨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보냈는지는 보였다.
우이록.
홍석영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마치 약을 올리는 것처럼 느리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홍석영은 피식 웃었다.
“이록이 녀석. 욕심은 많아서.”
“걔가 뭐라고 했습니까!”
“가족이 생기는 건 참 즐거운 일이야. 그렇지 않나?”
“뭐라고 했냐고요!”
“자, 내 차는 뉘 집 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사이드미러를 박살을 내서 안 되고… 이 헌터네 자동차 하나 빌리자고.”
“저기요!”
“이제 아빠라고 불러야지.”
“무슨 개소리를!”
“부끄러우면 아버지로도 괜찮아. 내가 아직 그 단어로는 불려 본 적이 없거든.”
“그…!”
“자, 할 일이 많으니까 빨리 가자고! 이사벨라에게 오늘은 못 들어간다고 말하는 거 잊지 말고.”
홍석영은 휘적휘적 나를 지나갔다. 나는 홍석영의 뒷모습을 후려치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참았다.
참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 *
경상남도 지리산.
해가 아슬아슬하게 하늘에 걸려 있을 무렵, 문제의 요정이 있는 지리산에 도착했다.
이번에 김채민은 따라오지 않았다. 한태경도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누구 한 명은 항상 학교에 남아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김채민은 그렇게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던전 게이트 앞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 바뀐 것이 없었다. 김채민의 알람 마법도 그대로다. 홍석영은 김채민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마법을 이루고 있는 마력이 느슨해진다.
김채민의 마법이 없었다면 이곳에 누가 몰래 들어왔다고 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몰래 들어가는 처지에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좋지 않다. 정부에서 던전을 관리하기로 나섰는데도 아직 이 모양이라니. 제대로 일을 하고 있기는 한 건가.
“바로 들어가지.”
홍석영은 마법이 거두어지자마자 말했다. 나는 홍석영을 따르는 대신 잠깐 망설이며 물었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어떡하려고요?”
“저번? 아, 진흙?”
그땐 김채민 덕분에 큰 문제 없이 해결했다지만 지금은….
“그 요정… 이름이 뭐더라?”
“타티요.”
“그래. 우릴 아니까 공격하진 않겠지. 공격하더라도 우리란 걸 알면 바로 멈출걸.”
“공격을 한다는 사실이 문제잖습니까….”
그걸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둘째 치고, 피할 수 있는 일을 괜히 겪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김채민이 이곳에 없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데려올 걸 그랬나. 김채민도 할 일이 많으니 놔두었다마는 역시 대마법사만큼 편리… 유능한 이도 없었으니까.
홍석영은 내 말에 공감은 못 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들어 주긴 했다.
“그게 정 싫으면 검이라도 먼저 던져 넣게.”
“검이요?”
“그래, 자네 검. 그걸 먼저 알아봤으니까 이제 와서 못 본 척하진 않겠지.”
홍석영의 말을 고려해 보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던전이었으면 이게 얼마짜리 아이템인 줄 아냐고 반대했을 텐데, 여긴….
고민은 짧았다.
경기도에서 경상도까지 자동차로 오가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아는가.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는다고 해도 기꺼이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비행기나 기차로 이동하는 편이 정신적 피로는 덜하지만, 사람들 눈에 덜 띈다는 이유로 자동차를 이용했다.
몇 시간 동안 자동차에 갇혀 여기까지 오는 길에 홍석영이 왜 직접 여길 와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피로하기도 했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곧바로 누나의 검을 꺼내 던전 게이트로 던져 넣었다.
“어!”
나는 눈을 찌푸리며 홍석영을 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고 있습니까?”
“아니, 내가 던지라고 했지만 나한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겠나?”
“댁 물건도 아닌데 무슨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까.”
“저게 얼마짜리 아이템인데!”
그걸 알면서 던져 넣으라고 한 건가. 나는 홍석영에게 코웃음을 쳤다.
게이트를 보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든 바깥에서는 관찰할 수 없다.
한태경이 던전 안을 볼 수 있었다는 건 확실히 충격적인 일이긴 했다. 하지만 아이템 하나에 의존해서 던전을 공략할 수는 없다. 김채민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갬블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대로 지나갔을 것이다. ‘별 특이하고 편리한 아이템이 다 있구나’, ‘탐나지만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따위의 생각이나 하며.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아이템의 능력이 아니라 눈 때문이라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아이템이라면 분해라도 해서 분석할 수 있지만 눈은 그게 불가능하잖나.
천재 마력 공학자와 대마법사의 조합이 기적을 일으키길 바랄 수밖에.
적당히 시간이 지났을 때, 홍석영에게 말했다.
“들어갑시다.”
“도대체 자넬 어떻게 키운 건지…. 희재 군, 그렇게 아이템 아까운 줄 모르면 안 돼.”
“뭐라는 겁니까.”
미국에 갔다 오더니 이 아저씨 헛소리가 늘었다. 외로웠나….
하나하나 받아 주면 나만 힘들어진다. 나는 홍석영을 옆으로 치우고 게이트를 지나쳤다. 어차피 이 던전 안에 있는 요정, 타티는 홍석영이 아니라 우희재를 알고 있는 몬스터이다. 내가 아니라, 우희재. 사라진 형.
“아이고, 이렇게 겁이 없어서야!”
홍석영은 호들갑을 떨며 내 뒤를 따라왔다. 시야가 흔들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바뀐다.
요정 타티의 던전엔 나무가 가득하다. 나무와 진흙, 그리고 가시를 두른 요정. 내가 이 던전에 가지는 인상은 그렇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들어온 이 없는 던전의 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무는 여전히 빽빽이 들어서 있고,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진흙이 신발 밑창에 달라붙어 질척거린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던전을 둘러보았다. 게이트 주위에 깨진 도자기 조각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다. 이건 아마 요정 타티의 골렘일 거다. 나도 많이 부수었으니 조각이 던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던전 꼴이 왜 이래?”
나를 따라 던전으로 들어온 홍석영도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어딜 보아도 생명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푸른 잎사귀가 달려 있던 던전의 나무에….
“왜 죄다 앙상해졌어?”
잎이라곤 하나도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골렘이 튀어나오는 숲도 괴기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B급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메마른 나무들로 가득한 숲의 모습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던전의 환경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히재!!”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던전에는 대화가 통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아마도 던전의 유일한 몬스터일 요정.
타티는 말라비틀어진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형의 검을 꼭 쥔 채로.
“안녕!”
머리에서 진흙을 뚝뚝 떨어뜨리며 요정은 활짝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