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31)
진흙투성이(2)
진흙 속에서 요정이 끌어 올린 시신은 정확히 열세 구. 이들이 이 던전에서 목숨을 잃은 헌터 전부인가 궁금해졌다.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타티는 인간들의 고민은 알지 못한 채 나뭇가지 위로 포로로 올라갔다. 여전히 저 지긋지긋한 진흙이 다리를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지긴 했지만, 앞뒤로 몸을 흔드는 모습은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비록 자기 집에 시체를 파묻어 뒀었지만 말이지.
그것도 한둘이 아닌.
“으음….”
홍석영은 심각한 얼굴로 시신들을 뒤적거렸다. 진흙이 뒤덮여 있어서 그렇지, 시신의 손상 자체는 크지 않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생전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만히 살펴보던 홍석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걸… 뭐야. 왜 그렇게 멀리 있나?”
나는 한 발짝 뒤로 더 물러났다.
“왜 더 멀어지고 있어?”
“그… 마저 보십쇼.”
“음?”
홍석영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더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던전 들어가 본 거 아니었어?”
“들어갔죠.”
“그 등급이면 제법 자주 들어갔을 텐데?”
“그럭저럭 들어가긴 했죠.”
“그런데 시체는 처음 봐?”
“그건 아닌데요.”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건 다르죠.”
홍석영도 나를 따라 눈을 찌푸렸다.
“그런가? 별로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
“다르다니까요.”
나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홍석영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전투 중에 죽은 건 똑같잖은가?”
전투….
그래. 전투긴 하겠지.
“언제 죽었나를 따지는 건가? 신선도?”
“사람한테 그런 단어를 쓰지 마세요!”
“아니, 뭐….”
홍석영은 잠시 나를 가만히 보다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미공략 던전에 들어간 적 없지?”
“…….”
“생각보다 많은 헌터들이 던전에 남아 있어. 몬스터라고 모두 인간을 먹는 건 아니라서.”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반박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이니까.
나는 바닥을 걷어차며 말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말을 좀 가려서 하라고요. 이제 애도 키워야 하지 않습니까.”
홍석영은 히죽 웃었다.
“역시 아빠 품이 그립지?”
“죽은 사람 앞에 두고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내가 제대로 키운 것 같아서 아주 마음이 놓여.”
홍석영은 무릎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맞아. 원래 이런 건 애들이 보면 안 되지. 잠깐 저기 가 있을래?”
“…전 애가 아닌데요.”
“자식은 부모 앞에선 영원히 어린아이인 법이야.”
이번에도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았다. 홍석영은 그런 날 보다가 피식 웃더니 손짓했다. 나는 주춤거리며 홍석영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피하면 안 되지. 예의가 아냐.”
“…이놈들도요?”
“사람한테 그런 단어 쓰지 말라더니?”
홍석영은 작게 웃었다.
“목적이야 어쨌든 던전에 들어온 이상 인간을.”
홍석영은 나무 위에 있는 타티를 흘깃 보았다.
“우리 세계를 구하기 위해 일조했다고 볼 수 있지. 그런 이들을 피하면 안 돼.”
홍석영이 하는 말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저 요정을 떠보기까지 하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인간이긴 하다. 내가 저걸 따라 할 수 있을지, 배울 수 있을지 덜컥 겁을 먹을 정도로.
등 뒤의 요정을 신경 썼던 눈이 다시 나를 향한다. 내가 이해했다는 걸 알아챈 홍석영은 뿌듯하게 웃었다. 아버지와 똑같은 미소다.
나는 불에 덴 듯 그 시선을 피해 열세 구의 시신을 보았다.
홍석영의 말대로 시체를 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 적도 없지는 않다. 던전 공략이란 그런 법이니까. 내가 아무리 내 한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강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지킬 순 없다.
아버지는 나를 열렬히 보호했다. 그건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버지는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숨김없이 말했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헌터는 제일 먼저 죽기 마련이니까.
‘으. 나 헌터 안 한다니까요.’
‘그래도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야. 옛날에, 그렇게 옛날도 아닌데. 너 어릴 때 기억 안 나? 그땐 던전 브레이크가 자주 일어났잖냐.’
‘지금은 대비할 수 있잖아요.’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네가 할 줄 모른다면 모를까, 할 수 있는데 방심하면 안 되는 거야.’
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오히려 납득할 수 있었기에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던전에도 들어가 보고, 누나와 함께 던전을 돌다가 뒤지게 혼나기도 하고. 누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와 하루 종일 대련하기도 했다.
“게다가 공략만 할 때면 몰라도 지금은 볼 줄 알아야지.”
홍석영은 품속에서 가죽 장갑을 꺼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 나도 어지간해선 시키고 싶지 않지만….”
홍석영은 장갑을 낀 손으로 시체를 뒤집었다. 찾고 있는 게 있어서 그런지 손길에 거리낌이 없었다.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줄 모르는 건 다르잖나?”
홍석영은 가까이 있는 시신의 옷깃을 들쳐 끌어 내렸다. 방어구는 단단했지만 힘으로 우악스럽게 뜯어내자 별수 없었다.
어깨를 지나 날개뼈 사이에 거뭇한 선이 보인다.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태가 좋아 거뭇한 선이 그리는 태양과 그 태양을 떠받치고 있는 손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벌을 받는 아틀라스는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태양과 손, 팔. 어쩐지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이 되었다.
“어이, 타티.”
“응?”
홍석영은 타티를 불렀다.
“나머지 인간들한테도 다 이 그림이 있었어?”
“응!”
“그래….”
타티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홍석영은 꼼꼼히 시체를 확인했다.
비위가 약한 건 아니고, 죽은 사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런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홍석영이 왜 굳이 나를 옆에 불렀는지는 안다. 내가 못 알아들을까 싶어서 친절하게 설명했잖은가. 그래서 가만히 홍석영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일부러 나 보란 듯 천천히 하는 것을 못 알아볼까. 나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홍석영의 손을 주시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홍석영은 각성자 수사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홍석영과 실력이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 헌터들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몇 명 더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홍석영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냐, 하면… 다른 이야기지. 반대도 마찬가지고.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르다.
솔직히 관리청에서 일했던 나로서는 아버지가 너무 뛰어난 헌터라서 답답했던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런 헌터가 고난도 던전 공략에 가지 않고 각성자 범죄를 수사하고 있는 것도 인력 낭비였다.
물론 관리청에서는 각성자 범죄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헌터가 사고를 치면 관리청으로 책임이 넘어오기 마련이다.
간혹, 특히 해외 던전에서 사고가 나면 책임자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면 보통 자국 헌터가 아닌 이에게 떠넘기기 마련이다. 같은 이치로 관리청은 자국의 헌터를 보호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강태우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수사기관을 만들고 싶다. 처음에는 막연히 관리청을 다시 만들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각성자 담당 수사기관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나중을 생각해도 마찬가지고.
그러려면 이런 것에 꺼림칙함을 느끼면 안 되겠지.
“사실 이렇게 막 뒤지면 안 되는데.”
홍석영은 그런 내 결의를 비웃는 것처럼 갑자기 진 빠지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것치고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홍석영의 손길에는 거침이 없다.
“잘하는데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김유화의 시신을 뒤질 때도 망설임이 없었지.
“비상 상황 아닌가? 시간을 질질 끌면 안 되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건 아니고요?”
“무슨 소릴! 원래 절차대로면 발견 당시의 상황을 다 기록해야 해. 가능하다면 사진도 남기고. 안 되면 그림이라도 그려서. 그렇지, 미술 학원은 다녔나? 나라면 보냈을 것 같은데…. 이록이도 미술 학원에 보내 볼까?”
“다른 이야기로 새지 말고요.”
“커흠. 어쨌든 꼼꼼하게 다 봐야 한다는 거지. 주변까지. 인간 짓인지 몬스터 짓인지부터 확인해야 하거든.”
목덜미 확인을 마친 홍석영은 헌터의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투박한 가죽 지갑. 아마 아공간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가끔 자기가 죽여 놓고 몬스터한테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없지는 않거든. 조심해야 해.”
“…뭐. 그렇죠.”
“이 경우는 원인이 확실하지만 말이지.”
홍석영은 버릇대로 머리를 벅벅 긁으려다가 장갑을 보고 멈췄다. 아무리 홍석영이라고 해도 시신을 만지던 것으로는 좀 그렇지.
“원래는 수습을 다 해야 해.”
“범죄자라도?”
“범죄자라도.”
홍석영은 강하게 말했다.
“다만, 지금은… 우리도 던전에 몰래 들어온 처지잖나? 이 사람들을 꺼내 가기도 힘든 상황이지.”
“그래서 아공간만 털어 가는 겁니까?”
“던전에 들어왔는데 손에 덜렁 들고 다니진 않을 거 아닌가. 하다못해 휴대폰이라도 넣어 놨겠지.”
아직은 내 아공간처럼 잠금장치가 있지도 않으니 타인이어도 쉽게 열어 볼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나도 장갑이 어디 있을 텐데.
평소에는 잘 끼지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일이 생기는 게 장갑이다.
나는 홍석영을 도와 아공간으로 보이는 것들을 죄다 수거했다.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쌓여 있는데. 홍석영도 한국에 오래 있을 수 없다고 말했고.
홍석영은 아공간 더미를 수거한 다음 손을 탈탈 털었다.
“타티.”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용의자이자 증인에게 정황을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놈들이 언제 던전에 들어왔어?”
“흐응?”
타티는 눈을 깜빡이다가 힘차게 대답했다.
“옛날에!”
“…….”
밤낮이 없는 던전에서 그걸 체크하는 건 무리지. 홍석영은 끙, 소리를 내더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놈들이 한 번에 들어온 거야?”
“으응? 아니!”
“나눠서?”
“응.”
“누가 누구와 함께 들어왔는지 기억해?”
“아니!”
타티는 해맑게 대답했다.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하기는 하는데, 착실하다고 해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나와 홍석영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심문 아닌 심문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왔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이 몬스터가 여전히 우리에게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우이록보다도 사회화가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타티는 우리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으, 으응, 쟤네….”
홍석영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도 그때였다.
“뭐든 좋아. 이놈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있어?”
한참을 끙끙거리던 타티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기 시작했다.
“맞아! 그래, 쟤. 쟤 그거야.”
“쟤? 누구?”
“걔.”
타티는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시신을 가리켰다. 유난히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였다.
검게 죽은 피부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 입 안쪽은 진흙으로 막혀 있다. 타티가 게이트를 진흙에 담갔던 걸 생각하면 아마 진흙 속에서 죽지 않았나 싶다.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비교되었다.
타티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살기가 넘실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던 진흙이 위로 솟구친다.
“걔, 히재, 쫓아왔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