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32)
진흙투성이(3)
지리산 깊은 산중에 있는 던전. 정부가 아무리 관리한다고 나서더라도 이런 던전은 애초에 관리가 되지 않는다.
관리청의 지침은 바로 닫아 버리는 거다.
자원… 이 나오긴 하지만 그다지 값진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대체가 된다. S급이라 공략이 힘들지도 않은데 굳이 놔둬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냥 닫아 버리고 잊어버리는 게 마음 편하다.
봐라, 지리산의 이 던전도 우리가 왔을 때 불법 침입 흔적이 많지 않았는가. 지금 보면 이… 시체들이 남겼던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몰래 들어와서 수확만 하고 나갔던 이들도 있을 거다. 요정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쪽이겠지.
우리도 타티가 아니었으면 던전을 둘러보고 핵을 파괴했을 것이다. 굳이 수상쩍은 던전을 남겨 둘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던전이 닫히고 나면 누가 던전을 공략했는지 알 수도 없다. 자연 소멸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나 타티의 말은 상황을 조금 바꾸었다.
“이게?”
“응!”
나는 놈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그림 그릴 줄 알아?”
“…갑자기 왜요?”
“던전 안에서는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이 안 되잖아. 아니면 그걸로 촬영은 안 되나?”
홍석영은 내 마력 시계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촬영은 안 됩니다.”
그것도 계획에 있긴 했다. 구상으로만 끝났다마는. 아마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거기까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마력 시계 하나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차라리 갬블을 닦달하는 쪽이 더 빠를 거다.
“미술은 해 보고 싶었던 적 없나?”
이 아저씨가 끈질기게.
“못 해요.”
“아니….”
“이 얼굴을 제대로 그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차라리 미국 가서 레만의 갱단원 중 신원을 파악한 놈을 훑어보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홍석영은 내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했다.
“좋은 방법이군.”
“이놈 지갑이 검은색에 금장 장식이 있는… 네, 그거요. 안에 신분증도 있겠죠.”
“좋아.”
이 던전에 들어오고 나갔을 헌터들 중, 타티는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이들을 죽였다.
차라리 몬스터라서 던전에 들어오는 인간을 죽인 거라면 이야기는 쉽다. 하지만 타티는 희재, 즉 우리 형을 쫓아온 놈들만을 처리한 것이다.
도대체 형은 저 몬스터에게 뭘 가르친 거지?
…라는 생각이 솔직히 제일 먼저 들었고.
두 번째는, 형이 왜 쫓기고 있었냐는 거다.
아니, 쫓길 이유야 많지. 형이 사라진 게 뭐, 가만히 잘 있다가 갑자기 사라진 건가. 방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김 군에게 협력하다가 그렇게 된 거지.
김 군도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심질환 같은 걸로 죽은 건 아닐 거잖은가.
김 군은 들켰다. 내부 협력자도 들켰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건… 연구소, 그러니까 방주 내에도 그런 일을 도맡아 하는 청소부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자식이 형을 쫓고 있었던 걸까?
“타티.”
내가 미묘한 얼굴로 죽은 인간이나 바라보고 있자 홍석영은 나 대신 타티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제일 처음 들어온 건가?”
“응?”
“네 친구를 제일 먼저 쫓아온 놈이냐고.”
“아… 제일 처음. 응. 처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 이 녀석의 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몬스터에게 이런 말을 쓰는 것도 영 안 어울리기는 한데, 타티는 유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히재, 인간이 있다고 했어.”
“인간? 어떤 인간?”
“쫓아오는 인간.”
“이놈?”
“응.”
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저 몬스터에게는 마법의 단어나 다름없었다. 타티는 진흙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처음 보였던 경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 뒤로도 자꾸… 자꾸 왔어.”
“형은? 형을 쫓아서 들어온 거야?”
타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히재, 말했어. 인간들, 또 올 거라구. 그리고.”
“그리고?”
“그냥, 죽이면 된대.”
정말로 김유화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형?
“형도 계속 던전에 왔어?”
“왔었어. 왔었는데.”
타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국 발길이 끊겼던 거다.
알렉스 호프가 이 던전을 적어 준 이유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헨리 레만이 극동아시아의 웬 던전에 자꾸 사람을 보내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알렉스 호프라고 하더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 알 수 없다.
도대체 형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이고 있었는지, 다시 형을 만날 수만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복잡한 내 심경을 알았는지 홍석영은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장갑은요?”
“아.”
“방금 뭘 만졌는지 알죠?”
“씻으면 돼, 씻으면.”
이 아저씨가 진짜.
도저히 내가 처져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 * *
“히재, 찾아 줘.”
타티는 우리를 게이트 근처까지 배웅했다. 조금 잠잠해졌던 진흙이 다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진흙이 샘솟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 보았을 때는 ‘요정’이라는 명칭이 주는 편견에 어울리는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본래 모습을 알지 못했다면 요정은커녕….
“타티.”
몬스터의 외견이 급격히 바뀌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몬스터 생태학자도 아닌데 알 게 뭐야.
“응?”
“네 진흙. 저번엔 안 그랬잖아.”
“진흙?”
“그래. 지금 흘러내리고 있는 거.”
타티는 내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모공에서라도 빠져나오는 건지, 온몸을 뒤덮은 진흙이 바닥에 짙은 얼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타티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아.
머리에 바로 전해지는 목소리.
새소리처럼 맑은 음성. 타티는 빙긋 웃었다.
“그래서야.”
“…뭐?”
“안녕.”
타티는 내 등을 밀었다. 그다지 경계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밀리고 말았다.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시야가 흔들렸다.
“…….”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몬스터한테 이렇게 당해 보는 건 처음이네. 너무 경계를 안 하고 있었던 건가? 제길. 홍석영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은데.
다시 던전에 들어갈까, 싶었지만 홍석영이 내 뒤를 이어 게이트를 나왔다. 홍석영은 나를 보며 무어라 말하려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기분 나쁘게 히죽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지?”
“…던전 안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있으라고요.”
“말이 통한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잖나.”
“그런 것치고는 선생님도 잘 대해 주고 있지 않았습니까?”
홍석영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얻어 낼 정보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정보가 없으면?”
“솔직히? 자네와 자네 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입을 열자마자 날려 버렸을걸.”
능글맞은 목소리와는 달리 두 눈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내가 아는 홍석영이다. 홍석영은 가지고 나온, 시체에서 수거한 물건들을 확인했다. 대부분 지갑 형태를 하고 있다. 그게 눈에 띄지 않고, 품속에 넣고 다니기에 부피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지갑에다 연결해 놨으니까.
“여기서 그놈들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마찬가지야. 이렇게 시체를 꺼낼 줄 몰랐지.”
“그렇죠.”
“자네 형에게 뭔가 들은 게 있을 거라 짐작하긴 했는데….”
홍석영은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얼굴로 절 봅니까?”
“아니. 내 생각에 자네 형은. 음.”
“죽었다고요?”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네.”
“그렇겠죠.”
나는 장갑을 벗었다. 이걸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기는 찝찝하고, 다시 쓰기도 좀.
“저도 처음부터 말했잖습니까. 형을 찾고 싶다고. 살아 있는 형을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
“형이 살아 있을 거라고 조금이라도 믿었으면 이록이에게 형 노릇 안 했을 거라고요.”
“…그렇긴 하겠군.”
홍석영은 처음 타티에게 잡혔다는 놈의 아공간을 열었다.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번쩍거린다. 제일 먼저 홍석영이 꺼낸 건….
“이건 방주 물건인 것 같은데.”
새까만 가면이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청소부들이 쓰고 다녔던 겁니다. 동물 모양으로요.”
“자네 형은 까마귀랬지?”
“네.”
홍석영이 꺼낸 건 사자 가면이었다. 조잡한 갈기가 우스꽝스럽다.
홍석영은 가면을 옆에 내려 두고 아공간을 뒤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여권?”
“뭐야. 그 녀석 설마 정식으로 입국한 건가?”
“갱단이라고 해도 범죄 기록이 없으면 공항으로 들어오는 건 무리가 없을 테니까요….”
“어떤 의미로는 허점을 찔렀군.”
“그놈 여권은 맞습니까?”
홍석영은 내게 여권을 던졌다. 사진을 보니 대충 맞는 것 같다. 타티가 워낙 험하게 했었어야지.
나는 여권을 뒤졌다. 이 시대의 출입국 관리가 내가 알던 것과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는진 모르겠다. 그래도 각성자가 입국할 때의 절차는 엄청나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민간인보다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 녀석이… 이름이 뭐였지? 스티븐 파울러?
스티븐 파울러라는 마피아인가 갱인가 하는 놈이 정말 정식 절차를 밟아서 한국에 들어온 거라면.
“뭘 찾나?”
당연히 심사가 끝난 뒤 출입국 도장을 받았을 것이다.
“2019년 7월 2일.”
“음?”
“스티븐 파울러가 한국에 들어온 날짜요.”
“그게 나와?”
홍석영 같은 특별 케이스는 프리 패스겠지만 일반 헌터는 당연히 나온다. 출입국 도장에는 날짜가 함께 찍힌다고.
나는 여권을 팔랑팔랑 넘겼다. 부지런하게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흔적이 보인다. 이걸 내가 조사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미선에게 말해야 하나?
어느새 홍석영이 다가와 내 옆에서 여권을 보고 있었다.
홍석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놈 라이센스는 있겠지?”
“여권 등급 보니까 헌터인데요.”
“…그러면 그놈인가?”
“네? 아는 사람입니까?”
홍석영이 내게서 여권을 가져갔다. 출입국 도장이 찍힌 페이지와 사진, 이름을 유심히 바라보던 홍석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놈은 아닌데, 들은 적은 있어. 시기가 맞으니까 그놈인 것 같군.”
“……?”
“저 때쯤 미국에서 온 헌터 하나가 실종되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거든.”
“…아.”
“던전 공략을 하러 온 건 아니고, 그냥 관광차 온 거였어.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으니… 귀찮은 일이 많이 일어났지.”
“어떻게 결론 났습니까?”
“어떻게 나긴. 서로 책임지기 싫어서 개같이 싸우다가 묻었어.”
나는 멀뚱히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내 눈빛에 지레 찔리기라도 했는지 펄쩍 뛰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겠나!”
“별말 안 했습니다.”
“별말 안 한 얼굴이 아닌데….”
홍석영은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어디 던전에 들어갔다는 증언이 있으면 몰라,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졌더라면 또 다르지.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관광하러 간다고 떠벌렸고, 와서도 관광만 했어. 그런 인간이 갑자기 사라졌다? 무슨 생각을 하겠나?”
“살해되었다?”
“…민간인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는데, 헌터잖은가.”
홍석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창 러시아가 헌터 이주 정책을 펼치고 있었거든. 거기로 갔다면 골치 아파지니 조용히 넘어가기로 한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