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39)
전능하신 마법사님(3)
“윽.”
게이트를 넘자마자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느껴졌다. 김채민은 저도 모르게 잇새로 신음을 내뱉었다. 동시에 몸 주위에 실드를 쳤다.
이런 중압감은 김채민도 자주 느껴 보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 비슷한 감각을 느꼈던 건…
세이렌 던전이었다.
S급 던전.
다행히 던전을 들어오자마자 덮쳐 오는 공격은 없었다. 지리산의 그 던전을 잊으면 안 된다. 어떠한 던전이라도 헌터가 제일 취약해지는 타이밍은 게이트 진입 직후다. 지리산 던전의 등급은 낮았지만, 그 요정이 저질렀던 일은 S급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베테랑 헌터라도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위험했다.
앞으로는 안전하게 실드를 치고 들어오자. 특히 이런 정체 모를 던전에는.
“…….”
게이트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다.
그러나 김채민은 경계를 완전히 늦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항구에서 가까운 위치라서 혹시나 했는데, 바깥과 마찬가지로 바다 짠 내가 먼저 느껴졌다.
쏴아아….
파도가 치는 하얀 모래사장이다.
불길하게 맴도는 마력이 느껴지지만 않았더라면 어느 휴양지라고 생각됐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도 그런 감상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겨우 그깟 풍경에 한눈을 팔 정도면 김채민은 대마법사가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바다에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한 김채민은 시선을 돌렸다. 세이렌이 나왔던 던전은 발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마는, 원래 바닷가 근처의 던전과는 그다지 상성이 좋지 못했다. 바다에서 나는 식물은 김채민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바다의 반대편에는 가장 흔한 던전 타입, 숲이 있다. 숲 또한 크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 지불한 통행세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어마어마한 넓이로 인해 초기 등급을 꽤 높게 판정받았을 것이다.
홍석영과 우희재가 이 던전에 들어온 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두 사람이 이 던전 어디에 있을까, 인데.
두 사람이 던전을 공략해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 크기를 보았다면 분명 생각을 하긴 했을 것이다. 홍석영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던전 공략에 한해서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곳에 던전 핵이 없고,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도 모르고…. 연락이 끊기면 누군가가, 어느 특정 대마법사가 자신들을 찾으러 올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채민은 두리번거리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혹시 모르니 편한 옷으로 갈아입길 잘했지. 김채민은 걸을 때마다 발밑이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채민은 찾고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 모래에 새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있었다. 기름을 뿌리고 그 위를 태운 것처럼 불에 탄 자국은 가느다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우희재가 검을 들고 불을 붙였을 때처럼.
“…흐응.”
선이 모여 화살표가 완성되었다.
화살표는 숲을 가리키고 있다. 김채민은 그게 가리키는 방향을 한 번 보고는 화살표에 다가갔다. 탄 모래에는 아직 마력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김채민은 코를 씰룩거렸다. 희미하게 탄내가 난다.
우희재의 검은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의 마력을 불꽃으로 바꾸어 주는 것에 가깝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검으로 낸 불꽃에는 우희재의 마력이 진하게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간 김채민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정도 마력이 느껴지는 건….
‘…생각보다 오래전에 여길 지나갔는데?’
우희재와 홍석영이 부산으로 내려간 게 일주일 전. 우이록이 형에게서 연락이 안 온다며 불안해한 것도 그 정도 된다.
그리고 지금 김채민의 눈앞에 있는 희미한 마력도 일주일 전쯤에야 선명했을 것이다. 자신이 우희재의 검과 그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알아보는 거지, 아니었으면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에 내려오자마자 바로 창고를 조사했고, 여기에 들어왔다는 건데….’
이만한 규모의 던전을 일주일 만에 공략하는 것은 어렵다. 이건 이해한다.
하지만 게이트는 뻥 뚫린 공간에 있고, 게이트를 막고 있는 몬스터도 없다. 공략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잠시 나왔다가 재정비한 후 다시 들어가도 될 일이었고, 그도 아니라면 미신고 던전이 있으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주위에 말할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홍석영은 그렇다 쳐도, 우희재가 동생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건 의외다.
어째서일까.
금방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던전이 커서 타이밍을 놓쳤나?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거나?
김채민은 발끝으로 모래사장에 남은 화살표 주변 모래를 걷어 냈다.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마력에 예민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미처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김채민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새하얀 모래는 햇빛도 없는데 잘도 반짝인다. 그래서 그 반짝임이 순전히 모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김채민은 모래를 걷어차던 발을 들어 올렸다.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모래인데, 밟고 나니 신발 밑창에 풀처럼 진득하게 끈적거리며 달라붙었다.
그걸 모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채민은 진짜 모래에 신발을 문질러 닦아 냈다.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으나 저것은 피다. 몬스터의 피.
김채민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대마법사 김채민의 기준으로, 바다에는 식물이 살지 못한다.
대마법사 김채민의 기준으로, 던전에서 자라는 식물은 식물이 아니다.
풀을 뜻하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 있긴 해도 마력초가 진짜 풀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랬더라면 지금 들이는 그 짓거리를 전부 치우고 기존에 사용하던 마법으로 기르면 끝이었을 거다.
던전 내부에서 발견되곤 하는 이름 모를 식물들은 김채민의 마법을 듣지 않는다. 김채민은 그게 살아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아니, 살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자연적으로 싹을 틔웠나? 하면… 알 수 없었다. 마력초 같은 거야 특이점이 분명하니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지리산 던전과 같은 대부분의 던전에서 발견되는 나무에서는 생명력이 썩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미니어처 지도에 심어 놓은 가짜 나무처럼.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마법사에 대한 칭찬이 인색한 홍석영이 김채민을 재밌어하며 데리고 다녔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니까.
비록 나쁜 놈을 잡자는 제안은 거절했지만, 김채민 또한 던전 브레이크 처리나 던전 공략 제안마저 거절하진 않았었다. 어느 쪽이든 자기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뽐내고 경탄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김채민은 박수를 치는 것처럼 손을 딱 맞붙였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혀로 입술을 싹 핥았다.
설사 던전 안의 나무가 모두 가짜라 하더라도 땅이 있으면 충분하다. 바닥이 있으면 김채민의 사랑스러운 장미는….
쿠구구구구….
던전 안을 가득 채울 테니까.
“한동안 이렇게 잔뜩 피워 낼 일은 없었는데.”
한 번씩 일부러 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밀린 청소를 해치운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김채민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감각을 장미 넝쿨과 동일화했다. 넝쿨은 수십 갈래로 나뉘어 던전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아무 규칙 없는 것처럼 뻗어 나가고, 때로는 김채민의 의지에 따라 방향을 꺾기도 하면서.
장미가 피어난다. 새빨간 장미. 김채민이 확인을 끝마쳤다는 표식.
순식간에 차오르는 정보값에 머리가 핑 돈다. 그러나 현기증은 한순간이다. 김채민은 기분 좋게 웃으며 넝쿨을 움직였다.
이것이 김채민의 마법이다. 고유 마법.
만개하는 장미 넝쿨.
아무도 장미를 피해 숨을 수 없다.
-왜 그러나?
찾았다.
-방금 마력이….
-마력?
-움직임이 이상해졌는데.
우와.
멀리도 갔네.
던전이 넓은 건가? 아니면?
끝도 없이 뻗어 나가던 넝쿨이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인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지하. 넝쿨의 끝이 땅을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다.
-아. 이거면….
그래도 김채민의 마법을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홍석영은 무언가 눈치챈 듯 반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두 사람의 대화를 정확히 듣고 있는 건 아니다. 마력의 파동을 감지하고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겠지, 하고 뇌 내에서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불가해한 영역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채민은 눈을 감은 채 방긋 웃었다. 흙을 파고든 뿌리 끝에 마력이 맺힌다. 두 사람이 무사하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살아만 있다면 데리고 나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 김채민이 온 것이니까.
대마법사 김채민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김채민은 뿌리 끝에 뭉친 마력을 꽃으로 바꾸었다. 붉은 꽃잎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미꽃을 조심스럽게 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우희재다.
-김 선생님이요? 빨리 왔네요.
-오히려 늦게 왔다고 할 수 있지.
“…….”
저 인간이 진짜.
-우리가 던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일주일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더 일찍 우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홍 선생님이 있잖습니까. 솔직히 일주일이면 빠르죠.
-그런가? 어쨌든 김 선생이 왔으니 드디어 이 상황도 해결할 수 있겠군.
-그건 다행인데….
무언가 곤란한 기색이 느껴진다.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가서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방향은… 여기서 2시 방향. 거리가 조금 멀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에 다른 기척은 없었다. 몬스터가 없는 던전은 아니지만 우희재와 홍석영이 가는 길에 처리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몬스터가 없다면 이쪽도 이동하기는 쉽다. 김채민은 마법과 동기화를 끊었다. 만약 무언가가 넝쿨을 건드린다면 알 수 있지만, 온갖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이동하는 것은 제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대마법사가 전지전능한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넓은 범위로 사용하면 아무래도 본체의 방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까 몬스터 피를 보지 않았나. 우희재와 홍석영이 정리했다고는 해도 또 어디에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게이트를 지나갈 때 느꼈던 중압감을 생각하면 이 던전에 있을 몬스터도 단순한 놈은 아닐 거다.
그러니….
“……!”
김채민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오싹함을 느끼고 몸 주위로 겹겹이 방어막을 둘렀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같은 것은 아니었다.
본능이었다.
어디엔가 나를 노리는 짐승이 있다는.
쏴아아….
던전 안에는 바람 한 점 없다.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도 평온하기 그지없다. 푸르게 빛나는 바다를 보며 휴양지 같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전의 일이다.
그 푸른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있다.
그리고 붉은 바다 안에서 무엇인가 몸을 일으켰다.
잿빛 머리카락에서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기름 먹인 종이처럼 물은 머리카락에 스며들지 않았다.
인간인지 몬스터인지 모를 괴물이 바다에서 기어 나오며 김채민을 향해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