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4)
반쪽짜리 마법사(1)
홍석영은 오랜만에 교실에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다가 모처럼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그럴싸했다.
이미선이 아이들에겐 교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래서였다. 하긴, 소속감을 주기에 공통된 옷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다.
홍석영은 시선을 옮겼다.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에 비해서 교실 뒤에 서 있는 남자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아마 자신의 생각을 들었더라면 이딴 폐허에서 교복만 입는다고 그럴싸해지는 줄 아냐면서 빈정거렸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표정만 보면 그러고 있었다. 잠시 킬킬거리던 홍석영은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공지할 내용이 있다.
“학교가 개교한 지도 벌써 삼 개월이 되지 않았냐, 얘들아.”
학생들의 눈빛이 오묘해진다. 이렇게 앉혀 놓고서 한다는 말이? 뭔가 심상찮은 것이 올 거라는 징조였다.
“우리도 어찌 되었든 교육 기관이다 보니… 흉내를 내기로 했다.”
“흉내요?”
“그래. 시험이다.”
* * *
박서현은 눈을 깜빡였다. 머리카락 끝이 눈을 찌르고 있다.
“물론 우리가 평범한 학교는 아니지.”
거대한 폭탄을 떨어뜨린 것치곤 교장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그래서, 평범한 시험 대신 던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던전!
시험이라는 소리에 쥐 죽은 듯 조용히 눈치를 살피더니, 던전이라는 말에는 모두가 술렁거린다. 박서현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너희 중에 제대로 던전 공략을 해 본 애는 없는 거로 아는데.”
던전에 들어가 본 게 아니라 공략이 기준인 건 서로 사정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범고에 남은 아이들 중 던전에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건 유혜은과 최진우밖에 없다.
이승연과 순순진은 다선의 마스터가 조기 교육 겸 데리고 다녔다. 한은영 또한 나이 차 많이 나는 오빠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오현욱과 서한성은….
박서현은 묵묵히 책상을 내려 보았다. 룬을 연습한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박서현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던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A급 던전이었다.
어린 손녀를 데리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무시무시한 던전이 아닌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나름 고심해서 던전을 고르긴 했다. 위험한 몬스터가 없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보다는 차원을 굴절시킨 복잡한 미로와 함정으로 헌터를 잡아먹기로 유명한 던전이었으니까.
이른바 앨리스 던전.
동화처럼 알록달록한 벽과 장식은 어린아이가 웃음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손녀를 품에 안고서도 여유 있게 던전을 공략했다. 제아무리 어지러운 미로라도 ‘길 밝히는 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마법사의 앞길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명동에서의 일 때문에 실습이 자꾸 밀려서… 그걸 겸해서 가기는 하는데.”
아이들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장 선생님은 설명을 계속했다.
평소 같으면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었겠지만.
“…….”
박서현은 룬이 가득 그려진 종이 위에 연필을 가져갔다.
빼곡한 룬이 아니었다면 연필로 그려진 섬세한 그림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유 마법.
마법 수식은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그리지 않는 것이라 배웠다. 하지만….
‘어차피 쓸 수도 없는걸.’
뭉툭한 연필 끝에 종이가 걸려 찢어졌다.
“다만 명동 이후로 거의 두 달이나 지났잖니.”
“아, 쌤이 그렇게 얘기하면 뭔가 불안한데….”
“헌터의 감?”
“우 쌤이 헌터의 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교장 선생님도 따라 웃었다.
“어쨌든, 그 두 달만큼 너희 실력도 늘었을 거라 본다.”
“쌤. 진짜 불안한데요.”
“이번 던전은 너희들끼리만 공략한다.”
“저희들끼리요?”
“공략하는 던전은 바로 이 옆에 있는 던전인데….”
“그거 B등급 아니에요?”
“아니. 그거 말고.”
“그래도 C등급인데?”
“자신 없어?”
교장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던전이잖아요….”
“진짜 저희만 가요?”
“우리가 C급에 들어가도 돼요? D급이나 E급은요?”
“E급은 몬스터가 안 나오잖아.”
“그러니까 하는 소리죠!”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교장 선생님의 웃음이 진해졌다.
“크흠.”
교실 뒤쪽에서 작은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박서현은 뒤를 흘깃 보았다.
우희재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처럼 사담이 많진 않다. 과묵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하는 말은 늘 필요한 말뿐이었다.
그래서 다들 우희재의 수업이 힘들다고 투덜거리긴 해도, 싫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희재는 아이들이 가족과 홍석영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만난 믿을 수 있는 헌터였다. 그것도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는.
“우 선생님이 같이 갈 거다.”
“우 쌤이랑요?”
“던전 내부도 파악해 뒀어. 따라서 지금부터는 던전을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는지 아이들 사이에 긴장이 감돈다.
“우 선생님은 너희가 제대로 하는지 채점한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도와주지 않으실 거다. 우 선생.”
교실 뒤쪽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눈으로 교실을 훑어보았다.
“지금부터 너흰 공략대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박서현은 찢어진 룬과, 마법 수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먼저 던전 정보부터 확인한다.”
교장 선생님이 우 선생님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던전 공략 경험이라면 이 자리에서,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만큼 우희재 선생님의 수업이 도움이 된다는 말이겠지.
우희재 선생님의 가르침은 도움이 된다. 시큰둥한 얼굴로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귀중하다. 실제로 교장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동안 실력이 향상된 아이도 있었다.
이승연은 묘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솔직히 교장 선생님 설명은 너무 막연하다고.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된다니. 그게 뭐야? 오현욱, 너 정도만 알아들을걸.’
‘…나도 그냥 감으로 때려 맞히는데.’
‘그게 되는 게 어디야. 그에 반해 우 쌤은… 손속에 자비가 없긴 한데, 그래도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해 준다고.’
자신과 최진우라고 해서 다르진 않다
‘이런 거 우리가 그냥 배워도 될까?’
명동에서야 정신이 없었으니 자신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룬의 가치가 무겁게 다가왔다. 왜? 왜 이걸 아무 대가 없이 가르쳐 주는 걸까?
박서현은 우희재가 자신에게 매번 하는 말을 떠올렸다.
‘넌 대마법사가 될 거야.’
‘그만한 재능이 있어, 너는.’
당연히 그 말을 믿진 않았다. 룬 수업에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마법에 문외한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마법사가 아니다. 마법사는 마법사만이 알아본다.
‘서현아. 너는 이 할아버지를 뛰어넘는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란다.’
…그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하는 칭찬 같은 거였으니까.
게다가 우희재가 했던 말들은 칭찬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혼내기 위해서 했던 말들.
‘쉬엄쉬엄해도 돼.’
할아버지는 네가 너무 마법에만 신경 쓸까 걱정이 되는구나.
‘잘하는데?’
꼭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단다.
‘잘했네.’
최선을 다하면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네 능력이라면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서현이를 믿는단다.
‘미래의 대마법사.’
할아버지가 없어도 서현이는.
‘될 거라니까?’
괜찮을 거란다.
‘넌 할 수 있어.’
그러니.
‘넌.’
서현아….
우드득.
꽉 깨문 턱이 어긋나면서 이가 갈렸다.
박서현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다른 아이들은 듣지 못했는지 우희재의 설명은 계속되고 있다.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한 종류다. 가장 기본적인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지금 너희 실력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진다.
알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모두가 협동한다면 말이지.”
우희재는 칠판에 막대로만 이루어진 사람 모양을 그렸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점은 그 뒤에 우희재가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요정 날개를 그렸기 때문이다.
시범고 근처의 C등급 던전.
요정 숲 타입의 노네임 던전. 등장 몬스터는 픽시.
녹색 피부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픽시는 여러 마리 무리 지어 다닌다. 공격성은 높으며 한번 인육에 맛 들인 개체는 인간의 살점에 집착한다.
크기는 어린아이 정도며, 흉측한 생김새는 요정이라기보다는 고블린에 가깝다. 하지만 등에 있는 한 쌍의 날개는 장식용이 아니며, 비행 또한 가능하다.
박서현은 점점 더 몸을 움츠렸다. 삐걱거리는 걸상에 몸이 거의 파묻혔을 때 즈음.
“대략적인 설명은 이 정도고…. 점심 먹고, 오후에는 개별 면담이다. 각자 픽시를 상대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 오도록.”
“윽.”
“쌤. 밥 먹다가 체하겠는데요.”
이승연이 우는 소리를 냈다.
우희재는 코웃음 쳤다.
“헌터라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지.”
“쌤 말 듣고 있으면 헌터는 약간… 초인 아닌가요? 완전 다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대신 감은 안 맞고.”
“운도 없고.”
“친구도 없고.”
“쌤 친구 없죠.”
“…….”
우희재는 기가 막힌 얼굴로 이승연을 보았다.
“너흰 친구 있니?”
“그럼요. 다 친구들이잖아요.”
이승연은 활짝 웃으며 교실에 앉아 있는 동기들을 가리켰다.
“말고는?”
“어….”
“너흰 친구라고 해도 클래스메이트잖아. 8명밖에 없는데 싸우면, 뭐. 자퇴라도 하게?”
“와. 쌤 그렇게 말하면 진짜 정 없이 들리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 친구 있어?”
“…….”
이승연은 입을 쭉 내밀며 조용해졌다.
우희재는 득의양양하게 웃다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됐고, 밥이나 먹어라. 오늘은 교장 선생님이 도시락 챙겨 왔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을 따라 교실을 나가는 동안.
박서현은 교실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희재는 교실을 나가려다 말고 박서현에게 다가왔다.
“…뭐 하니?”
어색함이 느껴진다. 선생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당연하다. 명동에서 선생님이 위험에 처했던 것도 자신 때문이지 않았던가….
룬만 제대로 그렸어도.
원래도 반푼이였는데.
고유 마법을 알고 있으면 뭐 하나.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든 마법을 기억하고 있으면 뭐 하나.
할아버지의 마법은 하나도 쓸 줄 모르고, 기초 마법만 겨우 해낼 줄 아는데.
“어… 어, 박서현 학생?”
볼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예전에는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꼭꼭 숨겨서 그럴싸한 마법사의 모습을 꾸며 냈을 것이다.
“무, 무슨 일 있어?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나?”
“서, 선생님.”
“내가, 아니… 왜 그래? 교장 선생님 불러 줄까? 아니면 김채민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시범고에 입학하지 않겠냐며 물으며 뭐라고 말했더라.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지. 학교는 그러라고 있는 건데.’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마법.
박서현은 할아버지처럼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박서현은 세상에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던전에 들어갔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다.
“저, 저….”
“그래. 무슨 일이니?”
“학교, 그만둘래요….”
당연하지만 우희재에게는 참으로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