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42)
너를 축복하여(1)
며칠 전.
부산.
아틀라스 창고 지하.
“…이번 일이 해결되거든 같이 등산이나 갈까, 희재야?”
“등산을요?”
나는 얼굴부터 찡그렸다.
등산이 싫은 건 아니지만, 홍석영이 말하는 등산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건 등산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다.
진짜 등산이라고 해도 좀….
“혼자 가십쇼.”
“등산을 혼자 무슨 재미로 가나!”
“원래 등산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아닙니까.”
“친목 도모를 위해 가는 거지.”
“됐다고요.”
문에는 다른 마법적 잠금이 없었다. 기척도 없었으니 그냥 부숴서 열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그렇지, 이 비밀스러운 창고에 경비원 하나 두지 않는다니.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이것도 함정인가? 아니면?
방주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그냥 헨리 레만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거 아닐까 싶었다.
알렉스 호프는 방주의 운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마는, 어쨌든 나름 주요 인물이기는 했다. 호프는 자기는 복잡한 일에 관여하기도 싫고, 사람 사냥하는 것도 싫어서 필요한 던전 정리에만 주로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마력초같이 자원이 풍부한 던전들.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라고 해도 모두 협조적인 건 아니라고도 했고.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주요 인물인 알렉스 호프는 방주를 없애는 걸 목표하고 있었고, 나머지… 실질적 운영자인 노아 미셀과 헨리 레만도 빈말이라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여기에 알렉스 호프까지 끼면?
도대체 방주가 어떻게 그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사이비 연구소를 운영하는 아틀라스를 흡수한 덕분에? 그렇다면 그건 방주가 아니라 아틀라스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헨리 레만은 또 방주가 아니라 아틀라스에 더 심취한 것 같고?
알면 알수록 그딴 조직에 세계가 멸망한 게 자존심 상한다. 인류는 반성해야 한다.
함정이든 아니든, 지하의 비밀 통로는 더욱 아래로 연결되었다. 용케 공사했다는 생각을 하며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놀랍게도.
“게이트?”
던전이 나왔다.
그래. 게이트다.
푸른색 마력이 넘실거리는 게, 아무리 뜯어봐도 게이트였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아니, 있을 수 있기는 한데 왜 이렇게 숨겨 둔 거야?
“…….”
홍석영은 팔짱을 낀 채 던전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 간간이 나에게 농담을 던지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
홍석영은 게이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 던전이 자네 시계에 등록되어 있진 않겠지?”
“되어 있다면 놀랄 겁니다.”
“…셈 블룸이 게이트를 만든 것과 비슷한 건가?”
“그건, 음. 어차피 소멸할 던전이라서 강제로 문을 부순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던전은 딱 봐도 상태가 안정되어 있는데요.”
홍석영은 손가락을 세워 풀을 두드렸다.
나는 우리가 들어오기 위해 창고에서 일으켰던 소동을 생각했다. 경찰차 뒷좌석에 구겨져 있는 놈도.
경찰들이 익숙하게 움직였던 걸 보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다음에 다시 이곳에 이토록 쉽게 들어올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거 들어가 봐야겠는데.”
“들어갈까요?”
나와 홍석영이 동시에 말했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홍석영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우리는 조용히 무기를 꺼내 들고 게이트를 넘었다.
* * *
인류 역사에 마력이 등장한 이래로 세상의 법칙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대격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리 법칙 말고도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이 생긴 것이다.
던전이라는 정체불명의 골칫덩어리와 함께.
현재.
부산, 아틀라스 창고 지하의 정체불명의 던전.
“역시 내가 잘 가르쳤다니까.”
홍석영은 내 아공간 속에 있는 비상식량을 축내며 말했다.
“이게 미래의 비상식량? 훨씬 먹을 만하군. 이거 어느 회사 건가? 여기에 투자하면 빨리 출시할까?”
“…그게 지금 할 소립니까?”
“지금 해야지. 언제 또 하나.”
홍석영도 비상시를 대비하여 들고 다니는 식량이 있긴 하지만, 본인 말대로 미래의 비상식량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것만 먹고 있었다.
아니, 이건 다시 구할 수도 없다고…. 아까운 눈으로 비상식량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아껴 봤자 뭐 하겠는가. 홍석영의 말대로 회사에 투자하는 편이 낫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글쎄…. 우리가 던전이 있다고 말도 안 하고 들어왔으니 슬슬 이 헌터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자네 생각은?”
“…이록이한테 연락 안 한 게 일주일쯤 되었을 테니 걔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똘똘한 녀석.”
홍석영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칭찬인지 뭔지를 지껄였다.
나는 홍석영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보았다.
지하 복도에 있는 이 던전은 거대했다. 진짜, 말 그대로 거대했다. 며칠 내내 던전을 돌아다녔는데, 핵을 찾지도 못했다. 아틀라스가 이 던전에서 무슨 짓을 하였든, 아니면 뭔가 하려다가 이 던전이 발생하였든 핵만 부수면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가?
그런데 그 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긋지긋하단 눈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노려보았다.
심지어 이 던전에는 괴이쩍은 몬스터까지 나왔다.
끽, 끼익, 끽끽끾….
관절이 꺾이면서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꺾이면 안 될 것 같은 방향이라는 것도 인간의 편견에 불과하겠지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저놈들한테도 문제인 거 아닌가? 하지만 창에 꿰뚫린 몬스터는 마구 버둥거리며 관절만 이리저리 꺾고 있었다.
갑각류를 떠올리게 하는 몬스터가 바닷가 풍경을 가진 던전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오히려 바다에서 뭔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타티의 던전에서 알 수 있듯, 아무리 최강의 헌터라고 해도 숨을 못 쉬면 죽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저게 과연 몬스터가 맞을까?
“…김 선생님이 와야 할 텐데.”
“김 선생에게 먼저 이야기가 들어갈 테니 올 거야. 자네 눈에는 어때? 저게 몬스터로 보여?”
홍석영은 아공간에서 공산품 창을 꺼냈다. 그걸 가재처럼 보이는 몬스터의 몸통에 꽂아 넣고, 처음에 꽂아 놨던 자신의 창을 수거했다.
끼이이익….
게 다리처럼 보이는 팔이 마구 움직인다. 내가 이걸 팔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다리 끝에 손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에, 손톱까지 달려 있는.
손.
홍석영은 팔을 잘랐다.
몸통에서 떨어져도 팔은 한참을 펄떡거렸다. 금가루가 섞인 것처럼 반짝거리는 투명한 피가 주위에 흩뿌려진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겠어요.”
“밖에 있던 놈들과 똑같아?”
“걔넨 좀 더 몬스터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지하로 들어오는 통로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바다도 넓어 보이지만 숲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바다보다는 저 숲 어딘가에 핵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해변을 정리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이때 이미 이 던전에서 금방 나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석영이 말한 것처럼 김채민이 우릴 찾으러 올 확률이 높으니, 바닥에 방향도 남겼다. 애먼 놈이 그걸 보고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은 거 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그럼 뭐 어떠냐 하는 홍석영의 의견도 있었다.
“걔넨 랍스터처럼 생겼었지.”
“…그렇게 설명하지 마세요.”
“던전 나가면 랍스터나 먹으러 갈까?”
“미국 안 가도 됩니까? 한국에서 시간 많이 뺄 수 없다면서요.”
“……꼬우면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면 안 됐지!”
홍석영은 내 시선을 외면했다.
“어쨌든 밖에 있는 놈들보다 이게 위화감이 더 심해요. 그건 선생님도 그렇다면서요.”
“뭐… 베는 맛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몬스터를 잡는다는 기분이 없어. 실제로 저놈들, 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지 않나.”
제멋대로 꺾이고 휘는 관절로는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문제의 몬스터 주위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마력이 잠잠하다. 잠잠하다 못해 하나도 없다. 저 주위만 진공 상태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아직도 바닥을 기어다니는 팔을 발로 콱 눌렀다. 몸통과의 물리적 연결은 끊겼지만, 가느다란 실처럼 연결된 마력은 아직 남아 있다. 나는 검으로 그 마력의 실도 끊어 냈다.
툭.
그제야 팔이 조용해졌다.
이게 몬스터라고? 잘 모르겠다. 이게 몬스터라면 이놈은 일종의 군체이고, 실제로 조종하는 놈이 따로 있어야 한다. 그게 좀 더 말이 된다.
정체 모를 던전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조직의 품에 놔둔 채 나갈 순 없다. 아직도 핵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마법사를 데려오지 않은 걸 후회하며 던전 지하 속에서 비상식량이나 까먹고 있었다….
“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나?”
“방금 마력이….”
흔들렸다.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하기만 하던 던전의 마력이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력?”
“움직임이 이상해졌는데.”
꿈틀거리는 마력의 정체는 금방 알게 되었다. 지하 천장에서 웬 식물의 뿌리 하나가 빼꼼 내려왔기 때문이다.
방금 끊어 냈던 몬스터의 마력의 실처럼 한없이 가늘고 연약한 뿌리.
그리고 그게 품고 있는 익숙한 마력.
홍석영도 알아보았다.
“아. 이거면….”
연약했던 뿌리는 금방 자랐다. 뿌리가 줄기가 되고, 작은 봉오리가 맺힌다. 붉은 장미꽃이다.
“김 선생이잖아!”
“김 선생님이요? 빨리 왔네요.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늦게 왔다고 할 수 있지.”
“아까와 말이 다른데요….”
“다 그런 거야.”
장미 꽃잎이 파르르 떨린다. 김채민의 마력이니 김채민을 닮은 것도 당연하지만, 어쩐지 그 얼굴이 곧바로 그려진다. 짜증을 내면서 마법사를 뭐로 생각하는 거냐고 소리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홍석영도 김채민이 반가운 눈치였다.
“드디어 이 상황도 해결할 수 있겠군.”
몬스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괴이한 괴물들과, 꽁꽁 숨겨진 핵.
우리가 발로 뛰어서 이 던전을 살피는 것보다 김채민의 마법을 이용하는 쪽이 시간도 단축되고, 저게 무엇인지 제대로 살필 수도 있을 거다.
뭐, 그리고 대마법사다. 나와 홍석영은 이 수상쩍은 던전에 홀로 들어온 김채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는 길에 던전을 청소했던 것도 있었고, 김채민도 이런 던전에서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무능한 마법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던전 천장에 피어난 장미꽃이 갑자기 메말라 시들어 버렸을 때. 그리고 다시 피어나길 반복했을 때.
그렇게 안이하게 있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에, 김채민이 죽었던 곳도 이처럼 바다 근처였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이다.
장미꽃은 신호처럼 일정 간격으로 피고 졌다. 옛 시대의 헌터답게 홍석영은 아날로그적인 면에 강했다. 다행이었다. 나 혼자 있었다면 저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니까.
“…모스 부호야.”
“모스 부호요?”
“이름 같은데.”
홍석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헨리 레만.”
더 돌아볼 것도 없이 우리는 지하에서 뛰쳐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