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5)
반쪽짜리 마법사(2)
“…자, 잠깐. 일단… 음. 그래. 진정해 볼래?”
우희재는 허둥거리며 의자를 끌어다 박서현의 앞에 앉았다.
“왜…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서현 학생?”
“아, 아무리 생각해도….”
박서현은 소매로 눈을 벅벅 닦았다. 눈물이 번진 얼굴이 울긋불긋 엉망이다. 눈에는 여전히 물기가 맺혀 있다.
“저, 는… 전….”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박서현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목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참 뒤에야 박서현은 한결 진정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희재는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전 재능이 없어요.”
“…….”
“마법사가 될 자격도 없어요. 애들한테 더 피해를 끼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만둬야 해요.”
“음….”
우희재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박서현은 자신이 상처받지 않게 우희재가 어떻게든 말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나 같은 애한테도 룬을 가르쳐 주었겠지.
‘와! 멋지다! 나도 너처럼 마법 쓸 수 있을까?’
홍석영을 따라 온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
‘어, 어어, 응? 너도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난 얼마 전에 각성했거든! 마법이라곤 한 번도 써 본 적 없어!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마법사는 자신과 최진우 단 두 명뿐이었다. 그나마도 최진우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간단한 빛 마법에도 최진우는 자신이 대마법사라도 되는 것처럼 감탄했다. 거기에 조금 취해서 분수에 안 맞는 생각을 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명동에서 보지 않았는가.
아직 마력을 움직이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최진우를 대신해서 룬을 그렸다. 그래도 삼 개월 된 초보 마법사보다는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내심 생각했으니까.
모두 착각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자만심이 망쳐 버렸다. 하마터면 소중한 친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민간인들도 큰일 날 뻔했다.
우희재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은 사람은 절반도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 박서현 학생!”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는 예감은 있었다. 그 예감이 있었을 때 바로 포기했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 어린 날, 할아버지가 보여 준 빛 무리를 내 손으로 불러내고 싶어서 억지로나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놓아주어야 할 때다.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마법. 선생님이 그러는 것처럼 차라리 공개해 버릴까. 아무나,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누구나 쓸 수 있게끔.
그러는 편이 할아버지에게도 좋을지도 모른다. 재능이란 쥐뿔도 없는 손녀를 둔 불행한 대마법사로 남기보다는….
“박서현!!”
딱!
우희재는 박서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손가락을 튕겼다.
박서현은 어깨를 크게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잠깐 멈췄던 눈물이 다시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우희재는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기…. 일단 그만 울고.”
우희재는 주머니를 찾는 것처럼 가슴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뭔가 떠올랐는지 짧게 혀를 차더니 교탁 위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 건넸다.
“자… 눈물 닦고. 손으로 그렇게 닦으면 따갑잖아. 물이라도… 물 가져다줄까?”
“킁… 아뇨, 괜찮아요.”
“진정 좀 됐어?”
박서현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릎만 내려다보았다.
눈물에 푹 젖은 휴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머리 위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디서 시작이나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걸까?
“그러니까….”
우희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부터 해 보자.”
“…네.”
“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거니?”
“그, 그야….”
이유가 너무 많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정작 내뱉으려고 하니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
입 속에 맴도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박서현은 우희재의 말대로, 처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말했다.
“…전 마법사 자격이 없으니까요.”
“음….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 마법사도 자격증 같은 게 있던가? 헌터 라이센스 말고.”
“그런 건 없지만….”
우희재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설마 누가 뭐라고 했니? 설마 애들이….”
“네? 아뇨!! 그런 일은 없어요!”
박서현은 깜짝 놀라 우희재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자 우희재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왜 자격이 없다는 거지?”
“그, 그야….”
박서현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꼭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걸 듣고 싶었던 걸까? 선생님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또 우는 건데!!”
“저는!!”
그렇잖아도 잔뜩 젖어 있는 휴지가 찢어진다. 박서현은 찢어진 휴지가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잡은 채 외쳤다.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데! 어떻게 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어요!”
말했다. 말해 버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다 포기하기로 했으면서 아직까지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면 미련을 떨쳐 내지 못했나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것만 붙잡고 살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그 마음을 꾹 참고 떨쳐 내야 한다. 그게 이제 박서현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우희재는 그런 박서현의 절절한 마음이 와닿지 않았는지 기가 막힌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잘만 썼잖아? 룬 내구성 시험한다고 써 댔던 건 뭐야? 그건 마법 아냐?”
“기, 기초 마법이잖아요….”
“기초 마법 무시하는 거야, 지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 네 나이대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데. 실드 하나만 제대로 쓸 줄 알아도 먹고 사는 데에 지장 없어.”
뭔가 생각한 반응과 다르다.
박서현은 더듬거리며 우희재의 말에 반박했다.
“실드는 기, 기초 마법이 아닌데요….”
“뭐? 기초 마법이나 공용 마법이나 둘 다 마법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싶다고?”
“저는 그런 말이 아니라!”
당황했던 것도 잠시, 우희재는 평소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 하는 말이 그거 아냐? 그렇게 들리는데.”
“아뇨….”
“그럼? 그럼 뭔데?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마법사가 될 자격이 없다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박서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재능이 없으니까요.”
우희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도돌이가 되는데, 네 나이에 기초 마법이든 공용 마법이든 그만큼 하면 재능이 넘치다 못해 썩어 흐를 정도라고. 심지어 너 실드 시전 속도마저 빠르잖아. 몇이었지?”
“3초요….”
“실드 하나만큼은 어지간한 현역보다도 훨씬 낫네.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불만이라니.
자신이 얼마나 고민하며 내린 결정인데.
…선생님이 마법사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게 마법사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박서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천천히 설명하면 선생님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해 줄 테다.
“저는, 대마법사가 될 수 되어야 해요.”
“대마법사?”
“하지만 저는 대마법사가 될 자격도 없고, 재능도 없어요.”
박서현은 슬쩍 고개를 들어 우희재를 힐긋 보았다. 살짝 눈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겁이 나서 서둘러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혹시 내가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한 게 부담됐어?”
“…네?”
“아니면, 김 선생님 때문에? 김 선생님이 대마법사니까? 대마법사가 너무 쉽게 보였어?”
“네? 아뇨! 그럴 리가요!”
“음…. 나도 솔직히 말해도 될까?”
지금도 이미 솔직히 말하고 계신 것 같은데.
우희재는 박서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세상에 대마법사가 얼마나 될 것 같아?”
박서현은 눈을 깜빡였다.
“마법사 십만 명 중에 대마법사는 한 명도 없어야 정상이야.”
“그건… 그렇겠죠.”
“알고 있었네?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지.”
우희재는 짧게 혀를 찼다. 박서현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대마법사가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있어. 우리나라에 대마법사가 몇 명인지 알아?”
“여, 열 명이요.”
“아. 지금은 열 명밖에 안 돼? 설마. 너 열 명 안에 네가 들어가려고 했어? 네가 들어가면 열 명은 아니겠지. 그래. 네가 열한 번째가 되고 싶었어?”
“…….”
“대마법사. 대마법사 되면 좋지. 그런데 대마법사가 못 되는 마법사가 훨씬 많아. 그런 마법사들은 다 마법사 관둬야 하나? 다 마법사 자격이 없어? 네가 김 선생님이랑 했던 건 뭐야? 김채민 선생님은 그동안 마법사도 아닌 애한테 마법 수업을 한 거야? 무료 봉사도 아니고?”
사실 무료 봉사에 가깝긴 했지만, 그 사실까진 박서현은 알지 못한다. 우희재도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우희재의 말이 날카롭게 꽂힌다. 박서현은 푹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눈물은 멈춘 지 오래다.
우희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아니면, 역시 기초 마법은 마법도 아니다?”
“아뇨!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말이 그렇잖아.”
우희재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듣고 있으니, 묘하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아하. 그럼 최진우 학생도 마법사 하면 안 되겠네. 진우 학생도 부를까? 여기, 박서현이 말하길, 넌 마법사 자격이 없다고.”
박서현은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걘 상관없잖아요!”
“그게 네가 하는 말이라니까?”
“왜 그게 그렇게 돼요?!”
“그럼? 걘 왜 괜찮고, 넌 왜 안 되는데?”
“그건!”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우희재가 보인다. 체구에 비해 작아 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심지어 다리까지 꼬고 앉아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냥 어디 한번 지껄여 보아라, 고 하는.
짜증 섞인 얼굴.
“걔는 각성한 지 반년도 안됐고, 전 십 년이 넘었단 말이에요!”
그 모습 위로 할아버지가 겹친다.
“그리고 전!!”
“넌?”
“고유 마법도 알고 있는데!”
“흠.”
우희재가 다리를 풀었다. 몸이 앞으로 기운다. 심드렁한 얼굴이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바뀌었다. 박서현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속에 담긴 말을 쏟아냈다.
“수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두 아는데! 알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이해하고 있는데!”
박서현은 주먹을 꽉 쥔 채 악을 써댔다.
“이해하고 있는 수식을 쓰지도 못하는 게 무슨 마법사냐고요!! 이건 그냥 처음부터 안 되는 거였어요!!!”
“…….”
“…안 된다고요. 저는.”
고개가 다시 꺾인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새어 나오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어서, 박서현은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 보려고 했다. 잘 한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박서현.”
그러나 내려가는 머리를 막는 손이 있었다.
“……아?”
우희재가 손가락으로 턱 끝을 받쳤다. 박서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스스한 앞머리가 흔들리면서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우희재는 평소처럼 삐딱하게 웃지 않고, 싱긋 웃었다. 미래의 누군가가 낙하산 주제에 건실한 척하지 말라고 했던 미소였지만… 박서현은 그 사실을 몰랐다.
“고유 마법을 알고 있다고?”
“네… 네?”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어?”
“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른 마법들이랑 알려 주셨어요.”
“할아버지라고….”
억지로 목을 든 자세가 불편했는지 박서현은 눈을 도르륵 굴리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우희재는 그런 박서현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서, 선생님?”
“아… 그래. 할아버지 성함이, 아니… 혹시 계열이?”
“계열, 이요?”
“그래. 계열.”
박서현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대답했다.
“빛… 이에요. 할아버지는, 길잡이 마법을 주로 쓰셨거든요.”
“빛에 길잡이? 어쩐지.”
우희재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빠르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선생님?”
“그래서… 응?”
“손 좀, 내려 주시면 안 될…”
“박서현.”
“손을, 그….”
“넌 대마법사가 될 수 있어.”
꼼지락거리던 박서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넌 재능이 있어.”
우희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널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마.”
이십 년 뒤의 누군가가 들었더라면 애를 상대로 사기 치지 말라고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물론, 박서현은 여전히 그 사실을 몰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