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6)
반쪽짜리 마법사(3)
[박서현 – S급(대마법사)] [계열 – 그림자] [스승 – 없음] [제자 – 없음] [고유 마법 – 늪덩이에 가라앉는 등불(?*변형)] [1인 길드 등불** 소속]*현재 확인된 변형은 다섯 가지
**조부인 대마법사 박노경의 길드와 동명의 길드
[박노경 – S급(대마법사)] [계열 – 빛] [고유 마법 – 우리 모두의 항해사] [길드 등불*의 마스터] [2013년 드레이크와의 전투 중 사망]*2005년 해산
* * *
“픽시는 비행이 가능한 데다가 무리 지어서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게 측정되어 있다. 하지만 각 개체 하나하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무엇보다 뼈가 약해서 약한 충격에도 으스러지지….”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옛날이라고 해 봤자 겨우 두 달 하고도 조금 더 전이다.
휴가 직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공략 계획서를 작성하고, 공략 브리핑을 했다.
보통 작성한 계획서는 제일 먼저 본부장에게 확인을 받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다 작성했다고?’
이름도 붙지 않는 C급 던전이다. 심지어 솎아 내기도 한 번 거쳤다. 그런 던전의 공략 계획서는 눈 감고도 작성할 수 있다.
계획서를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홍석영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잘 썼는데?’
‘왜요. 잘 써도 불만입니까?’
‘아니, 너무 잘 써서 말이지. 많이 써 봤나?’
‘이 정도야 누구나 할 줄 아는 일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할 줄 아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홍석영은 계획서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끝까지 다 읽고 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우리 애들도 이런 걸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계획서 쓰는 거요?’
‘계획서 자체는 대신 써 줄 사람이 많지. 하지만 던전 분석은 다르잖나. 다선에서도 가이드를 자세하게 작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자네가 한 걸 보니 그것도 발로 쓴 거구먼.’
딱히 할 말이 없어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었다.
짧고 이해하기 쉬우라고 본부장의 비서실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실제로도 그렇게 취급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게 바로 내가 원래 하던 업무였다. 던전공략종합상황실의 주요 업무.
위험도가 한 번 높아진 던전이 다시 낮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험도 2급부터는 즉시 공략 대상이 되기 때문에 3급만 되어도 공략 가이드를 작성한다.
조사대를 보내어 기존의 상태와 달라진 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바뀐 정보가 있으면 그걸 반영하고….
위험도 변동이 없더라도 던전 생태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오래된 던전들은 주기적으로 조사대를 보낸다.
사실 본부장이 총괄해야 하는 일이지만 본부장이 바빠 직원들끼리 대충 돌아가던 일을 내가 체계화시켰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쉬엄쉬엄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차피 다 망했지 않나. 내 연금도 날아갔고.
어쨌든 관리청에서 작성했던 계획서를 생각하면 홍석영이 읽고 있는 건 정말 낙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거라도 열심히 읽고 있는 홍석영을 보고 있으니….
‘…브리핑이라도 해 드릴까요?’
‘음?’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었다.
그냥, 계획서를 읽고 있는 얼굴이 너무 아저씨와 닮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애들 걱정하지 말라고요.’
‘언제는 던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애들을 괴롭힐 것처럼 굴더니?’
‘괴롭히는 건 지금도 하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홍석영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니지만, 짜증 나게도 여전히 그리운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 너희 실력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날 이후로 처음 하는 브리핑.
나도 인간인데 좀 감성적으로 굴 수도 있지. 홍석영도 있고, 박서현에 오현욱도 내 말을 듣고 있다. 유지은은 없지만 유지은의 언니인 유혜은도 있고…. 알고 나면 내가 왜 못 알아봤나 싶을 정도로 자매가 닮았다.
그러니까 대충 유지은이라고 치면.
평범한 관리청 브리핑 시간이라고 착각을 해 볼 수도 있는 거다.
인간이란 그런 미련한 동물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다.
“대략적인 설명은 이 정도고…. 점심 먹고, 오후에는 개별 면담이다. 각자 픽시를 상대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 오도록.”
그래도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는 건 없던 일이다. 관리청 헌터들은 몇 명 빼고는 나를 그리 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날 추억에 잠겨 있는 것도 오늘까지다. 어차피 애들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다 보면 바빠서 울적해질 시간도 없을 거다.
오늘까지다. 딱 오늘까지만….
라고 생각했었다.
정확히,
“저, 저…. 학교, 그만둘래요….”
박서현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지껄이기 전까지.
* * *
내가 박서현에 대해서 오판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멘탈이 약할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애초에 박서현이 강철같이 튼튼한 멘탈을 자랑했다면 마녀라고 불릴 일도 없었을 테니까.
가끔 마녀 박서현처럼 음침하게 중얼거릴 때가 있어서 그렇지, 박서현은 헝클어진 머리로도 자기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최진우가 룬을 그리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고. 그래서 방심했던 것 같다.
…지나간 일로 후회해 봤자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일단 박서현을 어떻게 달래 보자 싶어서 입부터 열게 해 보았다.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데! 어떻게 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다.
나는 또다시 내가 심각하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박서현은 단순히 멘탈이 약한 게 아니다. 엄청나게 약한 데다가 사고가 좀 이상하게 튄다.
제 딴에는 나름 논리적으로 고민한 끝에 저런 결론을 낸 것 같은데….
애초에, 그러니까… 그 논리란 거 자체가 잘못되었다.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애가 왜 이 모양으로 컸지?
박서현과는 관리청 일로 몇 번 보고 말던 사람이라 잘 모른다. 직원들이 돌려 보던 보고서에 경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 보라고. 그 사람들도 반쯤은 유지은한테 다 맡기지 않았던가.
작전을 변경했다. 잘 달래 보려던 걸 포기하고 살살 속을 긁었다. 아직 완전히 마녀로 바뀐 것도 아니라서 움찔거리는 손이나 어깨에서 티가 난다.
“마법사가 될 자격이 없다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래서 평소보다도 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녀 시절에도 고집이 있어서 남들 말하는 거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내가 실컷 가이드를 짜서 줘도 보는 시늉도 안 했다. 그때 울분이… 아주 안 들어갔다고는 말은 못 하겠지만.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아. 또 어깨가 움찔거린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때문에 눈은 안 보이지만 입은 보인다.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악다물린 턱이 삐걱거리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웃겼다.
아니, 내가 어린애 고민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저는, 대마법사가 될 수 있어야 해요.”
“대마법사?”
“하지만 저는 대마법사가 될 자격도 없고, 재능도 없어요.”
아닌 척하면서도 내 말에 하나하나 움찔거리고 있는 게.
오 년 뒤에 대마법사가 될 애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자비한 마법으로 몬스터를 학살하던 박서현이 이렇게 어릴 때도 있다니.
그래서 신나서 더 찔러 보았다. 조금만 더하면 끝날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역시 기초 마법은 마법도 아니다?”
“아뇨!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말이 그거라고.”
박서현이 나를 똑바로 노려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떠나가라 울던 애가.
“걔는 각성한 지 반년도 안됐고, 전 십 년이 넘었단 말이에요!”
명동에서의 일이 없었으면 박서현도 그런 마녀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도 딱히 명동 때문은 아니잖아.
“그리고 전!!”
보아하니 명동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고민한 것 같은데. 자. 얼른. 그 조그마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게 말해 보라고.
“고유 마법도 알고 있는데!”
이거다.
박서현을 괴롭힌 원인.
“수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두 아는데! 알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이해하고 있는데!”
나는 미래의 박서현을 안다. 일종의 정답지이다.
박서현은 오현욱을 제외하면 곁에 아무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박서현 자체가 워낙 튀기도 해서 이래저래 관심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관리청 정도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도 알고 있고.
내가 알기로 박서현에게는 스승이 없다.
박서현이 쓰는 고유 마법은 박서현이 스스로 개발한 것이다. 불과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데 수식을 알고 있다고?
“…안 된다고요. 저는.”
그 마녀가 다른 사람의 수식을 두고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고유 마법을 알고 있다고?”
“네… 네?”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른 마법들이랑 알려 주셨어요.”
“할아버지라고….”
내가 김채민의 집안사는 몰라도 박서현의 집안사는 안다. 워낙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남은 손녀가 마녀가 되는 바람에 포근한 동화는 되지 못했다.
아들이 남긴 손녀딸을 키우던 대마법사 할아버지.
그래서 박서현이 고유 마법을 쓴다고 알려졌을 때, 당연히 할아버지를 따라 빛 계열 마법을 쓸 거라고 점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박서현은 전혀 새로운 마법을 선보였다. 그것도 할아버지와는 정반대 계열인 그림자 마법.
박서현의 할아버지인 박노경의 마법은 오랫동안 화자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던전 핵까지 다이렉트로 안내해 주는 마법은 박노경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박서현이 그림자 계열로 확정 나면서 그 마법도 소실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박서현이 알고 있다고?
“박서현.”
박서현이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 수식만 알고 있다면, 재능 있는 빛 계열 마법사한테 익히게만 한다면…!
“넌 대마법사가 될 수 있어.”
꼼지락거리던 박서현이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올려보았다.
말로는 자격이 없다, 재능이 없다, 자퇴가 어쩌고 포기하느니 마느니 했지만 저 눈을 보고 누가 얌전히 마법을 놓을 거라고 생각할까.
“넌 재능이 있어.”
자신의 마력으로는 절대 쓸 수 없는 수식을 이해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마법사가 아닌 나도 아는데, 박서현은 모르는 걸까?
고유 마법이란 마법사가 자기 피에 녹아 있는 마력에서 뽑아내는 마력의 방출을 마법의 형태로 정제한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가족을 제자로 받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같은 피가 흐르면 같은 마법을 물려받을 확률이 높으니까.
물론 같은 핏줄이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고유 마법은 당사자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3대를 거쳐 내려온 김채민의 마법도 같은 마법이더라도 시전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래서 마력의 성질이 비슷하다면 혈연이 아니어도 마법을 쓸 수 있기도 하다. 반대로 혈연이어도 마력의 성질이 판이하면 물려받을 수 없다. 박서현이 이 케이스다.
“내가 널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마.”
어차피 박서현은 알아서 대마법사가 되는 애다. 계열만 미리 알려 주고 방향만 잡아 주면 그 시간은 더 단축될 것이다.
박서현에게도 좋은 일이지.
“서, 선생님이… 요?”
박서현은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은 마법사가 아니시잖아요….”
“마법사가 아니라고 마법에 대해서 아주 모른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 지금 네게 룬을 누가 가르치고 있는지 잊어버렸니?”
“어….”
박서현은 입을 우물거렸다.
“너한테 마법을 가르쳐 준다는 게 아냐. 대마법사가 될 길을 알려 주겠다는 거지.”
“…….”
“넌 충분히 할 수 있는 애야.”
나는 박서현의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뗐다. 그래도 박서현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나를 보았다.
“어쨌든 난 마법반 담임이거든.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려주는 것 정도야….”
쉽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