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39)
그림자와 빛(2)
우르드 샘의 파수꾼인 백조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백조와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우르드 샘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공격도 하지 않는 온순한 성격이다.
얼마나 온순하냐면, 헌터들이 깃털을 마구 뽑아 가도 얌전히 있을 정도이다.
생명체보다는 마력 덩어리에 가까운 파수꾼 백조들의 깃털은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재료 중 하나다.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이런저런 실험을 할 때도 좋고, 던전 공략 시 함정의 유무를 판단할 때도 쓰인다.
게다가 그렇게 깃털을 마구 뽑아 가도 다음 날이면 백조의 깃털들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화수분처럼 샘솟으니, 마법사들도 어지간하면 몇 장 정도는 늘 챙기고 다니는 편이다.
여기에 마력 전도율이 높은 미미르의 샘물과 일시적으로 마력을 증폭시키는 드워프의 금가루를 적시면 백조의 깃털은 마력에 미미하게 담겨 있는 속성을 증폭시켜 드러나게 해 준다.
바로 지금처럼.
“어, 어어!”
김채민의 손안에서 넝쿨이 한 아름 피어난다. 넝쿨 사이사이에서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새빨간 장미가 되었다. 장미 넝쿨은 명동이나 수련원에서 보았던 김채민의 고유 마법과 비슷하게 보였다.
이건 한순간 마력을 증폭시킨 마력 신기루에 가깝다. 곧 깃털과 함께 먼지로 바스라 들겠지만, 계열을 확인하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김채민은 입을 뻐끔거렸다.
“자, 김 선생님 하는 거 봤지? 너희도 마력을 부으면 돼. 많이 넣을 필요는 없어.”
“우 선생님!!”
장미 하나가 똑 떨어졌다. 그게 신호가 되었는지 넝쿨이 바스러졌다. 김채민은 손에 남은 가루를 털어 내지도 않고 나에게 외쳤다.
“선생님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시잖아요.”
“그래서 더 모르겠는데요!”
“자, 너희도 빨리 안 하고 뭐 해?”
“우 선생님!!”
“애들 하게 나와 봐요.”
“선생님이 아는 그 마법사에 대해서라도 설명해 주세요!!”
“박서현. 너부터 해 봐.”
“룬을 만들었다는 그 사람이랑 같은 사람인 거죠?!”
“얼른.”
“모르는 척 넘어가지 말고요!”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아니라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아는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미지의 존재로 남아야지 나도 설명하기 편하다.
룬과 마력펜이 나오면서 마법사들의 위상이 줄어들지 않았는가. 줄어든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법사들은 자신들끼리 모여서 연구를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 연구회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폐쇄적이라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하나같이 마법 연구회였다. 더 나은 마법을 개발하고, 수련하는 연구회.
아무 성과 없이 사라진 곳들이 더 많긴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마법 사회를 뒤흔들 만한 발견을 한 곳도 있긴 했다. 프랑스의 대마법사처럼 친절하게 무료로 공개하는 곳은 없었지만 학술지나 던전 공략을 통해서 발표한 이론이나 마법들은 마법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마법사들의 인성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육체파 헌터들이 열심히 몸을 단련시키는 동안 마법 이론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나는 마법사는 아니어도 관리청의 일원으로서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했다. 그리고 걸핏하면 그런 건 마법으로 할 수 없다고 뺀질거리는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마법 이론을 달달 외웠다.
내가 마법을 못 쓸 뿐이지 이론만 따지면 대마법사급이다, 이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마법 이론들을 전부 내가 생각해 냈다고는 할 수 없고. 이론들을 정립한 마법사들을 각각 알고 있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잊으면 안 된다. 난 어디까지나 방주에서 탈주한 불쌍한 피해자다.
그러니 미지의 마법사 하나를 두고 온갖 설정을 다 몰아주는 게 낫다.
“제발! 누군지 좀 알려 주세요!”
그리고 누가 끈질기게 물어 온다면.
“죽었어요.”
“아.”
아련한 과거가 있는 척하는 거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거에 약하거든.
김채민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나는 다시 박서현을 닦달했다.
“해 보라니까. 뭘 가만히 있어.”
“…네.”
얘도 마음이 복잡하긴 하겠지. 이제야 자신이 빛 계열로 밝혀질까 봐 두렵기도 할 테고. 빛 계열이 아니면 그건 그것대로 씁쓸할 거다.
그러나 박서현은 마음을 다잡고 집중했다. 할아버지에 관한 생각보다도 마법에 대한 열망이 더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다. 천생 마법사다.
박서현의 마력이 움직인다. 금가루가 묻은 깃털이 흔들린다.
“…아무 변화가 없어요, 선생님.”
“기다려. 마력 계속 넣고 있지?”
“네.”
박서현의 자신감이 조금 줄었다.
그러나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 깃털에 변화가 생겼다. 박서현이 쥐고 있는 뿌리부터 눈처럼 하얗던 깃털에 검은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은 무늬는 곰팡이처럼 깃털을 얼룩지게 하더니 금방 새까맣게 변했다. 그 어떤 빛도 깃털에 닿지 못한다. 깃털만 색을 빼앗긴 것처럼 검다. 심지어 주위마저 어두워 보이는 착각이 든다.
…착각이 아니다. 주위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건, 무슨 계열인가요?”
박서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깃털을 보았다. 깃털을 쥐고 있는 박서현의 손도 어두워져 있다.
“그림자.”
“…그림자라고요?”
“역시 계열 문제가 맞았어. 네 할아버지 마법은 네가 부족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상성이 맞지 않아서다.”
“…….”
박서현은 가만히 쥐고 있는 깃털을 보았다. 햇빛 아래서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새까만 깃털.
“자, 최진우. 너도 해 봐.”
“넵.”
박서현의 깃털이 바스러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최진우는 바짝 기합이 든 얼굴로 깃털을 잡았다.
홍석영이 얜 어쩌다가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했던 말을 돌아보면 헌터가 될 생각도 없고, 가족 중에서도 처음 마법사로 각성했던데.
길 가다가 우연히 보고 데려왔나? 아저씨 성격을 생각하면 가능해 보였다.
“해, 했어요!”
“잠시 기다….”
최진우의 깃털은 박서현보다 반응이 더 빨랐다.
화륵!
깃털이 타올랐다. 불 속성!
“놔!”
저 불은 신기루가 아니다. 진짜다.
젠장, 이런 것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혹시 모르니 소화기라도 옆에 가져다 놨어야 했다.
“어, 어라?”
하지만 최진우는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손에서는 여전히 깃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너무 태평한 반응이라 손을 쳐서 깃털을 떨어뜨리려던 나도 움직임을 멈췄다.
불 속성이라면 지금쯤 깃털이 재가 돼야 했는데.
“이거 안 뜨거운데요?”
“안 뜨겁다고?”
나는 눈을 찌푸리며 깃털 위에 넘실거리는 불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열감이 없다.
그렇다면 이게 말하는 계열은 하나뿐인데.
저도 모르게 박서현을 보았다. 박서현은 잠깐 주춤거리다가 최진우의 깃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모양만 불인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너도 안 뜨겁지?”
박서현의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할아버지의 마법을 곁에서 봤을 박서현이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선생님. 이건 뭐예요? 전 무슨 계열인 거예요?”
“…….”
이걸… 대단한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시원찮은 불운이라고 해야 하나.
“빛.”
나는 최진우의 질문에 답했다. 부디 박서현이 마음에 담아 두지 않기를 바라면서.
“넌 빛 계열이다.”
* * *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갔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누군들 괴상한 사이비 집단에 들어가고 싶었을까. 누군들 홍석영에게 입양을… 이건 나쁘지 않았다. 그 뒤에 따라오는 시선과 관심, 수군거림이 싫어서 그랬지.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평화로운 집안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지. 아저씨한테 유감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가능성도 있지 않았나 하는 거다.
내 인생의 굴곡 중에서는 아저씨한테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게 더러 있다. 아저씨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 거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은혜도 모르는 막돼먹은 자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다.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남들한테는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고통이더라도 나한테는 대못이 박힌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내 인생에 대해 그렇게 느꼈다. 날 청문회에 끌고 간다면 에둘러 말을 했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걸 수도 있다.
아저씨를 봐라. 아저씨도 처음에는 관리청을 만들고 대한민국 헌터 사회를 뜯어고치려고 헌터가 된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한 거지.
그래도 그렇게 해 보니까 막상 할 만했는지 잘했다.
나도 봐라. 그 역경을 딛고 성공 했지 않나.
인생이란 다 그런 거다. 뜻대로 풀리지는 않지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 너도 어떻게든 될 거다…….
라고 박서현한테 얘기할 순 없었다.
나도 그 정도는 고려할 정신머리는 있다. 박서현의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라… 이건 홍석영급이 아니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자기는 계열이 안 맞아서 할아버지 마법을 쓰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마법을 고민도 했었는데.
뭐? 각성한 지 일 년도 안 된 반 친구가 자기가 그토록 원하는 빛 계열이라고?
이건 대마법사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그러니 박서현이 쉬는 시간에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며 찾아온 거 아니겠는가.
“크흠.”
날 앉혀 두고 박서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미 쉬는 시간은 끝난 지 오래다.
누가 날 찾아와 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수업 시간 하나만큼은 빌어먹게 자유로운 학교 특성상 사람 좀 안 보인다고 신경 쓰고 그러지 않았다. 최진우가 김채민을 붙들고 뭐라 떠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선생님.”
“…….”
“…….”
어색한 침묵이다. 나는 박서현한테 손짓했다. 먼저 말하라는 뜻이다.
박서현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생각을 해 봤어요.”
“으음.”
“저는 할아버지 마법을 못 쓰는 게 맞는 거죠.”
나한테 묻는 게 아니다. 그냥 알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뿐이다. 박서현도 아주 모르진 않았을 거다. 그 사실을 오늘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뿐이었을 거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우가…… 아니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생각보다 박서현의 목소리는 가볍다.
최진우가 테스트를 막 끝냈을 때만 해도 박서현의 앞머리는 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솔직히 눈이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머리를 걷었다. 드러난 얼굴도 차분하게 가라앉긴 했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생각을 많이 했구나.”
“네.”
심지어 박서현은 작게 웃기까지 했다.
“제가 할아버지 마법을 못 쓰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 마법을 이대로 묻고 싶진 않아요. 채민 쌤도 그렇게 사장된 마법에 대해서 말해 주더라고요. 아까운 게 너무 많아요.”
…어쩐지 이야기가 잘 풀릴 것 같다.
그래. 인생이란 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안 그래?
“…그러면?”
나는 기대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박서현의 말을 기다렸다.
“제가 진우의 스승이 될래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