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41)
스승과 제자(1)
모처럼 옛날이야기를 해 볼까.
아저씨는 나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했다.
어렸을 때야 나에게 선택권이 있던 나이는 아니었으니 아저씨가 키우는 대로 컸지.
크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아저씨가 날 데려간다고 해서 좋아하기도 했고…. 어쨌든 연구소장을 날려 버린 사람이지 않은가. 보육원에서 꺼내 준다길래 얼씨구나 따라갔지.
그리고 아저씨가 날 입양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날 상담에 데려간 거다. 보육원에서 이미 질릴 정도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는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아저씨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수준을 떠나서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하면 참… 안쓰러운 인생이지 않은가. 내 인생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고.
어쨌든 아저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에게 입양된 운 좋은 고아가 아니라, 열한 살짜리 평범한 남자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것도 내가 그다음 해에 각성하면서 어그러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저씨는 축하해 줬다. 각성한 직후에 찾아온 주말에 뒷산에 데려가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했다. 수갑을 따는 법. 마력을 운용하는 법. 힘을 쓰는 법. 싸우는 법.
처음에야 아저씨가 하자는 대로 다 했지만, 곧 내가 싫은 기색을 좀 보이더라도 아저씨가 날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조금 시험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저씨가 날 어디까지 참아 주는지.
흠.
부끄러운 과거지.
이 얘길 하려던 건 아니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 나 때문에 아저씨도 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그래도 아저씨는 내게 큰소리 한 번 치지 않았다. 연구소장처럼 손을 들어 올리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내 반항기가 조금씩 줄어들었을 무렵, 아저씨는 날 앉혀 놓고 말했다.
‘희재야. 난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줄 거야.’
‘…….’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사 줄 거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게 해 주고.’
아저씨는 내 손을 붙잡고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저씨가 힘내 볼게. 아저씨가 이래 봬도 힘이 좀 있거든. 사람 한두 명 정도는 아무도 모르게.’
‘…그건 됐어요.’
‘혹시 아저씨가 싫어?’
‘…….’
‘아저씨도 사람이라서 칼로 찌르면 아프거든. 그러니까 아저씨가 가르쳐 준 대로 여길 이렇게….’
‘됐어요!’
도대체 애한테 무슨 소릴 했던 건지 모르겠다.
뭐, 나중에 듣기로는 나름 충격 요법을 주려고 했다고 했었다. 소소하게 아저씨한테 반항할 뿐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하지 않았으니 그런 괴상한 소릴 지껄이면 정신을 차릴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나 뭐라나.
…너무 간단하게 넘어가서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뭐, 박서현이나 최진우에게 똑같이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말을 꼬는 것 정도야.
“박서현.”
나는 박서현에게 다가갔다. 룬을 그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룬이 아니다. 물결처럼 흐르는 선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법 수식의 도면이다.
내가 종이를 보고 있자 박서현은 슬그머니 팔로 수식을 가렸다. 요것 봐라.
“어차피 난 봐도 몰라.”
“그, 그래도… 보여 주는 거 아니랬어요….”
수식은 민감하니까, 뭐.
어차피 볼일은 다른 거니까.
“진우 학생이 거절했어.”
“어, 음… 네?”
조금 전, 박서현은 왠지 민망하다면서 나에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냥 박서현을 데려갔어야 했는데. 최진우 같은 성격으로는 박서현이 직접 물어봤다면 거절을 못 했을 거다. 어영부영하다가 조금만 등을 떠밀면 수락하고 말았을지도.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하면 되는 거지.
박서현에게도 단순히 할아버지 마법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걸 넘어서, 제대로 된 책임감을 심어 줄 기회기도 하고.
…너무 하루에 몰아서 하나? 아니, 뭐. 이렇게 강해지는 거지.
“너한테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자긴 너한테 배울 자격이 없다고 하던데.”
“네?”
내 뒤를 따라온 김채민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박서현의 시선을 피해 김채민의 종아리를 가볍게 찼다.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뜻이다.
아니, 그리고 난 거짓말은 안 한다.
…거짓말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닌데, 교차 검증이 너무 쉬운 곳에서 쉽게 밝혀질 거짓말을 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냥 살짝 단어만 바꾸고, 말을 조금만 더 자극적으로 할 뿐이다.
…아저씨가 이랬던가? 이게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제자는 스승보다 뛰어나야 하는 법.
“음. 그럴 만도 하지. 어찌 되었든 진우 학생은 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갑자기 고유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 봤자…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사실 이런 건 시간이 지나서 박서현 스스로도 마음의 정리를 다 끝났을 때 해야 더 잘 먹히는데.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자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재능이 없다고, 네 제자가 되기에는 너를 볼 낯이 없다나 뭐라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나에게 울고불고 고해했던 누군가가 하던 말과 비슷하지 않던가?
김채민이 옆에서 목 졸린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진짜 거짓말은 안 했다고?
최진우가 했던 말이 이거잖아. 가르쳐 주는 마법을 잘 배울 자신이 없으니까 안 하겠다는 거.
얘가 관리청 공략팀이었으면 어? 지금 가루도 안 남았을 거라고. 내가 가루를 내기도 전에 유지은이 불에 태워 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못 하겠다고 하던데.”
“…서, 선생님께서 설득해도요?”
금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던 박서현이 겨우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선생님이 말해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격이 없다고?”
흐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냐.”
박서현의 눈동자가 떨린다.
“하, 하지만, 선생님은… 저한테는….”
자기한테는 대마법사를 만들어 주겠다느니 했는데 왜 최진우한테는 안 했냐, 이 말이겠지.
당연히 안 하지. 박서현은 내가 정답지를 보고 왔는데, 최진우는 없잖아. 난 복권은 사지 않는 주의다.
나는 끙끙거리는 김채민을 조용히 시키며 대꾸했다.
“너는 내 학생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을 더 받아야 한다.
“하지만 걘 네 제자야.”
물론 최진우도 내 학생이긴 하다. 하지만 교원 자격증도 없는 무늬만 교사와 마법사의 제자는 무게가 다르다. 법적 구속력도 다르고.
“제자….”
“아직은 아니지만. 제자를 설득해야 하는 건 스승의 역할이지.”
어차피 최진우가 저렇게 나온 이상 내가 억지로 시켜 봤자 의욕을 불러일으킬 순 없다. 이건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나는 약간… 양념을 가미할 뿐이고.
나는 손가락 끝으로 박서현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자, 스승으로서의 첫 번째 숙제다. 가서 제자를 설득해. 네 제자가 되어 달라고.”
“거, 거절, 했다고….”
“그래서 포기하려고?”
“…….”
“네가 가서 솔직하게 말해. 왜 걜 제자로 들이려고 하는지. 네 제자잖아.”
박서현은 멍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숨기려는 게 아니라 그리고 있던 수식을 보기 위해서다.
“…….”
박서현은 아무 말 없이 수식을 그렸던 종이를 마구 구기기 시작했다. 손으로 종이를 꾹꾹 눌려서 작은 공 모양을 만든 박서현은 그걸 입에 넣었다.
꿀꺽.
종이 공을 삼킨 박서현은 벌떡 일어났다.
“저 갔다 올게요.”
씩씩하게 최진우가 있는 교실용 컨테이너로 향하는 박서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평생 마법사라는 족속들을 이해할 일은 없을 거다.
* * *
또 다른 옛날이야기를 해 볼까.
‘희재야.’
‘왜요.’
‘희재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나랑 무슨 이야기를 해요? 저는 할 얘기 없어요.’
‘희재야.’
‘진짜 아들도 아닌데.’
‘우희재!!’
아저씨가 나에게 큰 소리를 냈던 건 그때가 유일하다. 내가 아저씨의 창을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렸을 때도, 아저씨가 열심히 썼던 보고서를 날려 먹었을 때도 그냥 허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는데.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피로가 가득한 손짓이다.
하지만 손을 내렸을 때, 아저씨의 얼굴에는 피로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넌 내 아들이야.’
‘왜요?’
‘왜냐니?’
‘입양, 그거 때문에 그래요? 성인만 되면 나가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희재.’
‘이름 좀 그만 불러요. 아저씨가 부르라고 있는 이름이 아니거든요.’
‘그럼? 이 기회에 성 바꿀래? 내 성으로?’
‘싫어요. 내가 왜 아저씨 성을 가져가요.’
‘내 아들이니까.’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희재야. 누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난 널 그런 이유에서 데려온 게 아냐.’
‘그럼요? 기사 하나 내려고? 우리의 위대하신 홍석영 헌터님께서 불쌍한 고아 하나를 입양하여 타인의 모범이 되셨다?’
‘그런 게 아니잖니….’
‘괜찮다니까요. 우리 서로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갑시다. 네?’
구차하게 변명을 해 보자면, 나는 어렸고 쓸데없이 감수성이 넘쳤다. 주위에서 하도 불쌍하다, 불쌍하다 해 줘서 그에 조금 취해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고. 아무래도 못된 범죄 조직에 붙잡혀 있던 고아는 착한 사람들의 동정을 받기 쉬운 포지션이다 보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날 무시하던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홍석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속해 있었다. 다른 이들을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보통 사람은 끼리끼리 비슷한 수준에서 어울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홍석영도 거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심리적 외상이 있을 수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안정된 주위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던 아저씨의 노력이 있었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노력 덕분에 내 주변에는 불쌍한 고아에게 못된 말을 하지 않을 정도의 체면을 차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 딱 못된 말만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는 몬스터나 잘 죽인다고 헌터 따위가 자신들과 어울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르는 고아가 자신의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에둘러서, 흘러 지나가는 말처럼 슬그머니 말하는 거다.
‘난 그 사람이 아이를 입양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상 모른다니까. 아들이 그렇게 됐는데….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네 얘기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렴.’
그런 말을 각기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듣고 있노라면, 숱한 상담에도 불구하고 애가 돌아 버리는 거다. 그리고 그 돌아 버린 애를 키우고 있는 어른마저 말라 죽어 가게 된다.
‘나는 아저씨 아들이 아니에요.’
‘넌 내 아들이야.’
‘아저씨 아들은 걔고요. 난 길에서 주운 개새끼 같은 거죠. 안 그래요?’
‘네가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애를 대신하려고 널 데려온 게 아냐.’
‘그럼 뭔데요.’
‘난 말이다.’
아저씨는 망설였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나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지 무서웠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희재, 너한테서 날 봤단다.’
‘…무슨 말이에요?’
‘여기 있긴 싫은데, 갈 데도 없고. 누가 날 데려가 줬으면 해서 문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지.’
‘…….’
‘어차피 세상에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어.’
아저씨는 쓰게 웃었다.
‘열아홉 살에 각성하자마자 고아원에서 도망쳤어. 난 네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주춤거리던 손이 내 어깨에 닿자, 아저씨는 날 꽉 끌어안았다.
‘그래서 네 아빠가 되기로 한 거야.’
“있잖아요.”
어깨에서 느껴지던 아저씨의 온기가 흩어지고, 어쩐지 조금 퉁명스럽게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우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멀뚱히 김채민을 보았다.
“저도 김채민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이참!”
김채민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렸다.
“우 선생님이 애들을 아끼는 건지 아닌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 정도면 아끼는 거죠.”
“본인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는데…. 근데 아까 왜 말을 그렇게 했어요?”
“무슨 말이요?”
김채민은 테이블 아래로 내 종아리를 걷어찼다.
“진우가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요, 뭘.”
“심성이 꼬인 사람이 작정하고 꼬아서 들으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박서현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김채민에게 마법으로 훔쳐 듣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바람에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고 있다.
“제 경험상.”
“경험? 애들을 가르쳐 봤어요?”
…내게 불리한 질문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저런 애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옆에서 조금만 찔러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더라고요.”
“흐응?”
“최진우가 걱정하던 게 자기가 박서현을 실망하게 할 것 같아서였잖아요.”
“…그렇, 죠?”
“그럼 실망하든 말든 서로를 놓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로 만들어 주면 해결되는 문제예요.”
“무슨 소리예요?”
김채민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는 사이. 드디어 교실 문이 열리고 최진우와 박서현이 나왔다. 박서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딸꾹질해 대고 있었고, 최진우는…
“흐어어엉!! 그런 사정이 있다고는 얘기 안 했잖아!!!! 나, 나, 열심히 할게!!”
벌게진 얼굴로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