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44)
교사의 도리(1)
연차가 쌓인 뒤로는 각성자 의무 교육에 불려 나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대신 관리청의 신입 헌터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곤 했다. 아무래도 관리청에서 열심히 던전을 공략해야 할 이들이다 보니 나도 제법 성의를 다해 가르치곤 했다. 초반에 길을 잘 들여 놔야 나중에 일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관리청에 들어오는 헌터들은 대부분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어린애들이다. 던전 공략 경험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아는 풋내기들.
유지은은 보통 그런 신입들을 던전에 던져서 강제로 현실을 깨닫게 했다. 뭐, 유지은 옆에 있으면 누근들 별 볼 일 없는 헌터가 되겠지만… 아카데미에서 콧대 높게 살던 신입들에게는 꽤 큰 충격이 되었을 거다.
그러면 나는 이제 박살 난 신입들을 주워서 오붓한 교육 시간에 들어간다. 그때 내가 신입들에게 강조하는 건, 앞으로에 대해서였다.
각성하고,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헌터가 돼서 관리청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무얼 할 것인가?
아저씨나 유지은처럼 나름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면 괜찮다. 던전을 소처럼 공략해서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이바지한다는 것에 만족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왜 헌터가 되었나.
돈? 힘?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우월감?
왜 헌터가 되기로 했는지, 왜 헌터를 계속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관리청을 들어올 정도라면 대부분은 모범생이다. 시킨 대로 잘한다. 하지만 가끔 톡 튀어나온 신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놈들은 내가 헌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되면 꼭 묻더라.
‘실장님은 왜 헌터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라이센스도 있고, 그 실력이시라면….’
‘난 말입니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무식한 노동은 질색입니다.’
나는 지금이 딱 좋았다. 던전 따위에 들어가지 않고 안전한 데다가, 귀찮은 일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떠넘길 수 있다. 간혹 문제가 터지면 본부장한테 떠맡기면 된다.
완벽하지 않은가.
연구소에서 구출되었던 강렬한 경험 이후, 이십 년.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날 보았던 양복쟁이 아줌마의 말.
연구소에서 아이들을 선동하여 소장을 괴롭혔던 일.
그렇지만 보육원에서 연구소장의 얼굴이 1면에 박힌 신문을 보던 날, 나는 깨달았다.
힘과 책임은 다른 문제다.
남들에게 명령하는 힘이 클수록 책임지는 것도 많아진다.
연구소장을 봐라. 솔직히 연구소에는 소장보다도 더한 놈들도 없진 않았지만 총책임자는 연구소장이 되었다. 단순히 연구소장이 연구원에서 제일 높았기 때문이다.
그 양복쟁이 아줌마처럼 나보다 강한 사람을 부려 먹고는 싶었다. 나 대신 일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연구소장처럼 내 잘못도 아닌 일을 책임지긴 싫었다. 연구소장이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
그리고, 기왕이면.
내 잘못도 남이 책임져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동생을 잘 보살펴야지!’
‘동생한테 모범이 되어야지!’
보육원의 어린아이들이 잘못하면 나이 많은 아이들이 혼나던 것처럼.
그런 내가 아저씨한테 입양되었던 것은 분명 뭔가의 신호였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음, 희재야. 아저씨가 네가 숙제한 걸 봤는데.’
입양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네가 장래 희망 쓴 거 말이지… 그거 무슨 뜻이니?’
‘아저씨는 헌터라면서 그것도 몰라요?’
‘아니… 희재한테 설명을 듣고 싶어서 그렇지.’
되바라진 아이였던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대답했다.
‘안정적인 직업이 좋아요.’
‘그건 그렇지.’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소리 듣기 싫거든요. 그럼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데, 사기업은 고용이 불안정하잖아요.’
‘불안정… 그건 어디서 들었니?’
‘뉴스 보면 다 나와요.’
‘그, 그래….’
‘그래서 공무원이 될 거예요. 그때 그, 양복쟁, 양복 입은 아줌마가 그랬다고요. 연구소장 같은 사람 혼내 주려면 나라에서 여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요. 그게 공무원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
‘대통령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그건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이거든요. 전 적당히 남들한테 일 시키고, 적당히 책임을 떠넘기는 중간 관리직이 되고 싶어요.’
‘…….’
‘기왕이면 돈도 많이 벌면 좋겠는데…. 공무원 월급은 박봉이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원래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아저씨는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커서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러운 말이었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고 좀 더 둘러서 잘 포장해서 말해도 되었을 텐데…. 하긴. 열두 살짜리 애한테 뭘 바라겠나.
그래도 아저씨는 내 말에 웃거나 혼내지 않았다. 대신 턱을 매만지던 손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네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이 아저씨가 희재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줄게.’
추억이지.
어쨌든 그래서 나는 헌터가 되지 않았다. 공무원이 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날 지지해 줬다.
‘야, 우희재.’
하지만 그런 나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사람이 있긴 했다.
‘왜.’
‘너 왜 아카데미 입학 안 했냐?’
유지은.
관리청 소속을 뜻하는 금속 배지가 옷깃에서 반짝거린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난 헌터 안 할 거야.’
‘왜?’
‘내 맘인데.’
‘헌터 안 하려면 뭐 하고 살려고.’
‘공무원.’
‘공무원?’
‘공무원 할 거야.’
‘너 뭔 개소리하냐? 헌터 해야지, 공무원은 개뿔. 선생님은 너 개소리하는 거 아냐? 나와. 나랑 대련이나 하자.’
‘싫어! 다음 주 시험이라고!’
‘야. 헌터 하면 시험 안 쳐도 돼.’
‘대신 누나처럼 멍청해지잖아!’
‘요게!’
눈을 깜빡였다.
유지은의 모습이 사라진다. 강의실에 앉아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신입들의 멍청한 얼굴도 흐려진다.
내 숙제를 봐주던 아저씨도.
모든 것이.
“…….”
뭐, 됐다.
지금은 작은 유지은이 이상한 헛소리에 홀리지 않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자매가 같이 사는 곳에 성인 남성이 대뜸 찾아가기도 그렇고…. 김채민도 같이 데려올 걸 그랬다.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부를까? 아까 학교가 끝나고 김채민이 여자애들을 데리고 가는 걸 보았다. 여자 어른이 있으니 나나 홍석영이 신경 써 주지 못하는 부분까지 챙겨 주는 건 편하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애들을 신경 쓴다는 말은 아니지만.
원래 헌터는 혼자 사는 생물이다. 왜 내가 관리를….
작은 유지은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시범고 애들은 방주의 헛소리에 홀리지는 않을 테니까.
역시 김채민을 부르자.
하지만 금방 문제점을 깨달았다.
아직 휴대폰을 개통하지 않았다. 김채민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다.
그전에는 내 신원이 없으니 만들 수가 없었고, 홍석영이 만들어 준 이후에는….
뭔가 내키지 않았다. 어디서든 인터넷을 확인할 수 있으니 정보를 모으는 데는 최적화 되어있지만.
그건 내가 원치 않은 정보도 볼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물론 언제까지나 미룰 수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아.”
억지로 거칠게 이어지는 생각을 끊어 냈다.
하교하는 시간이 겹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은 유지은이 다니는 중학교 근처까지 와 봤는데, 다행히 하교하는 중학생들 사이로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하나 있다.
작은 유지은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손에 든 종이에 정신이 팔려서 신호도 못 보고 빨간불에 건너가려다 뒤늦게 발을 멈췄다.
인상을 찌푸렸다.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닌데.
작은 유지은이 서 있는 횡단보도 맞은편으로 나도 발걸음을 옮기다가, 유지은이 보고 있는 종이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혈액 속의 더러운 기운을 정화하는 법!’
‘마력은 노폐물이 깃들지 않은 정순한 정기(正氣)를 말하며….’
쟤 아직도 저 헛소리를 버리지 못했어?
어처구니가 없어 이마를 짚었다. 저번에 학교에 찾아왔을 때 단단히 타일렀다고 생각했는데.
신호등을 흘깃 보았다.
언제 바뀌려나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유지은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는 중년 여성 하나가 보였다.
눈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하교하는 학생들의 소란스러움 사이로 간드러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저기, 학생?”
작은 유지은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학생, 혹시 그거 관심 있어?”
“네?”
“아니, 학생이 너무 열심히 보고 있어서…. 아줌마가 여기 다니고 있거든. 괜찮으면 아줌마가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이런 건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워야 안 다치고 잘 할 수 있거든.”
저, 저, 저!!
나는 다급하게 신호등을 보았다. 마침 파란불로 바뀌었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나는 길을 건너며 유지은을 불렀다. 예전처럼 아줌마라고 부를 순 없다. 누나라고는 더더욱 불러 줄 수 없다.
“…유지은!!”
* * *
유지은.
16세.
가족이라고는 두 살 위의 언니 하나.
주민등록상으로는 한 명 정도는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을 아빠라고 불러 주기는 내키지 않는다.
역시 가족은 언니 하나뿐이다. 어차피 요만한 어린 시절부터 언니와 둘이서 지내지 않았던가.
기억하고 있다.
겨우 두 살 차이인데도, 항상 자신을 돌봐 주었던 언니. 수업이 먼저 끝난 자신이 언니를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뒤늦게 언니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손을 꼭 잡고 집에 가고 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렸던 건 언니도 마찬가지였는데.
언니가 각성했을 때도 뭐라고 했더라?
‘지은아. 언니가 지은이 먹고 싶은 거 이제 다 사 줄 수 있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대개 철이 일찍 든다. 유지은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니가 자길 돌본다고 무얼 포기했는지, 무얼 포기하려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며칠 전 자신이 각성했을 때 머릿속에 밝은 전구가 하나 켜진 기분이었다.
‘유지은! 언니 학교에 그렇게 찾아오면 안 돼!’
‘하지만….’
‘어휴, 못 살아, 진짜. 거기다가 제자가 또 뭐야? 맞아, 너 그 마력? 그건 또 뭐야?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이상한 소릴 들어 와서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언니의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래도 유혜은은 헤실헤실 웃었다.
‘내가 유명한 헌터가 되면 언니한테 맛있는 거 잔뜩 사 줄 수 있을 거야!’
그런 헌터가 되면 맛있는 게 문제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언니가 각성했을 때 처음 했던 말이 그거였으니까.
대한민국에서 미성년자 자매가 부모 없이 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홍 아저씨가 도와준 뒤로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고생했던 사라지는 건 아니다.
누구보다도 성공하고 싶다. 그래서 언니가 고생하지 않게 해 주고 싶다.
친구들과 시내에 놀러 갔을 때 받았던 종이가 떠올랐다. 언니네 학교 선생님은 그런 건 헛소리니까 절대 해 볼 생각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언니를 구해 준 건 고맙지만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그래서 유지은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단지를 들춰 보았다.
그래도 아직까진 전단지에 나와 있는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볼 용기까지는 없었다.
“학생, 혹시 그거 관심 있어?”
어떤 친절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는.
유지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건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워야 안 다치고 잘 할 수 있거든.”
전문가!
다시 한 번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유지은!!”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유지은은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남자가 횡단보도를 건너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