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47)
던전 공략(1)
“안녕하세요. 저는 행정안전부 던전관리실 소속 김소정이라고 합니다.”
홍석영이 예고한 대로 감찰관이 파견되었다.
겨우 한 명. 시범고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시범고가 지금 학교로 제대로 인정받고 있던가?
솔직히 홍석영의 이름값이 있어서 이 정도의 관심이라도 받고 있는 거다.
그런 어른들의 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아이들은 잔뜩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저렇게 각져 있는 양복은 위압감을 주기 딱 좋다.
“선생님?”
“저는….”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하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감찰관의 얼굴이 왠지 낯익었기 때문이다.
“…우희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공략 서류는 전부 준비하셨습니까?”
“네. 던전 공략 신고서가 여기 있고… 여기, 학생들 라이센스도요.”
“선생님 라이센스도 주셔야 하는데….”
“여기 있습니다.”
감찰관이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지간하면 사람 얼굴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익숙한 기분이 든다면 분명 본 적이 있다는 말인데.
“…….”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아뇨. 공략을 앞두니 조금 긴장되어서요.”
“홍석영 헌터가 학생들 실력이 좋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던데….”
“그렇다고 긴장을 풀면 안 되잖습니까.”
어디서 만났을까.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아니!”
그때, 홍석영이 끼어들었다.
“나한테는 고함만 내지르더니 우 선생한테는 왜 그렇게 사근사근 굴어?”
차분하게 대답하던 얼굴이 홍석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와락 구겨진다.
“홍석영 헌터가 똑바로 하면 제가 고함지를 일도 없겠죠!”
나지막하게 내리깔았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자치고 낮았던 목소리는 조금만 높아져도 끝이 갈라져 날카롭게 울렸다.
그래, 이 목소리!
얼굴은 바로 떠올리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다르다.
“……!”
그 아줌마다!
아저씨가 연구소를 습격하던 날 있었던 감사관!
지금 생각하면 각성자도 아니면서 아저씨한테 목소리를 높이는 게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저걸 다 받아 주는 아저씨 탓도 없는 건 아니지만.
“확인은 다 했고… 비상 상황이 생기거든 던전에서 바로 나오세요. 무리하지 말고요.”
이 아줌마도 풍파가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이겨 내고 퇴직했다. 부러운 인생이지. 역시 내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원래 이런 시험에서는 그럴 때를 대비해서 헌터들을 대기시켜 놓는데… 요즘 손이 남은 헌터들이 많이 없어서 말입니다.”
확인한 서류를 돌려주며 아줌마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홍석영과 김채민이 있는데 헌터가 무슨 소용인가.
아니나 다를까 홍석영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있는데 다른 헌터를 부르려고 하는 겁니까, 김소정 감찰관님?”
“절차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홍석영 헌터?”
“아니, 우리 사이에 그런 절차가 왜 필요합니까.”
“홍석영 헌터니까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도 좋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나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긴장해서 얼굴이 허옇게 떠 있다.
저런 상태일 때는 차라리 빨리 던전에 들어가는 게 낫다.
나는 아직도 감찰관과 입씨름을 하고 있는 홍석영을 지나쳐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던전에 진입하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한참 정신없을 텐데 괜히 시간만 뺏었네요.”
아이들이 비틀거리며 봉고에서 내렸다.
출발하기 전 학교에서 김채민이 했던 말이 잠깐 떠올랐다.
…공략법을 제대로 안 가르쳐 줬다고?
원래 애들은 강하게 키우는 법이다. 교장부터가 저 모양이잖아.
기운이라도 북돋아 주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외부인이 있는 데서는 제대로 말하기도 힘들다.
“2021년 6월 15일. 경기도화성-20190527-0002호 던전. 진입 인원 아홉 명.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 교사 우희재. 학생 박서현, 서한성, 순순진, 오현욱, 유혜은, 이승연, 최진우, 한은영. 현재 시각 10시 12분.”
던전 진입 직전 절차는 과거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서 한 번씩 눈을 마주치니 아이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던전에 진입합니다.”
* * *
던전과 던전 게이트가 어떻게, 왜 생기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기는 하다.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한 신의 천벌이나, 이세계의 지구 침략이나… 미래인이 멸망을 막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단련시키기 위해 만든 수련장이라거나.
…지금 생각해 보면 미래인이 어쩌고 하는 건 꽤 신빙성이 있는 소리이지 않은가?
물론 미래인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수련장은 개뿔 맨몸으로 과거에 떨어진 자신만 있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이유는 몰라도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은 위험하다.
이유는 몰라도 던전 안에 있는 것들은 돈이 된다.
그래서 인류는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우, 우와아….”
던전에 처음 진입한 아이와 아닌 아이는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다.
넋을 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이가 있는 반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위를 경계하는 아이가 있다.
잠깐 정도는 괜찮다, 주변 경치를 보게 놔두는 것도.
“주목.”
여덟 명의 아이들이 나를 본다.
오늘은 교복이나 체육복 차림이 아니다. 똑같은 디자인이긴 하지만 공략용으로 제작한 방어구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고작 C등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치고는 준수한 성능이다. 아닌 척해도 그 아저씨, 걱정이 많다니까.
누차 말하지만 다선에서 솎아 낸 던전이다. 실질적인 등급은 D라고 봐야 한다. 내가 유지은의 검을 들고 있는 것도 과하다. 이런 요정 숲 타입의 던전은 특히나 유지은의 검과 상성이 좋다. 공략이 쉽다는 의미에서의 상성이다.
하긴, 오늘 공략대는 내가 아니라 애들이다. 공략이 처음이니만큼 방심할 순 없겠지만 그건 쟤네 사정이고. 난….
“말했던 대로 난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할 거다.”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나한테도 들린다.
“각자 공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채점을 할 거다. 교장 선생님이 말했지? 이게 기말고사다.”
“…저, 선생님.”
이승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시험 성적이 있어 봤자… 어, 저희한테 어떻게 도움 될까요?”
“스스로의 수준을 알 수 있겠지.”
얼마나 처참한지 깨닫도록 해라.
“윽….”
얼굴이 구겨진다. 혈색이 조금 돌아왔나? 음. 아직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반 학교처럼 시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다는 건 안다. 어차피 헌터가 되기로 마음먹은 애들이고, 헌터의 실력은 공략한 던전의 수와 목을 딴 몬스터의 수가 말해 준다. 제대로 학교로 인정받는지도 모르는 학교의 성적은 아무래도 좋다.
“하위권부터.”
그런 꼴이지만 학교는 학교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교사의 권위는 살아 있어야 한다.
“교장 선생님과 면담 후 나와 보충 학습이다.”
이 거지 같은 학교는 방학도 없다. 홍석영에게 확인했다. 이래서 계약서에 사인은 함부로 하면 안 된댔는데.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이 계약서에 사인을 시켰으니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성적이 낮을수록 날 오래 보고 싶다는 뜻으로 알겠다.”
나는 가볍게 박수를 한 번 쳤다.
“잡담은 끝. 이제 공략 시작. 난 따로 갈 테니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해.”
“어, 서, 선생님!”
당황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모습을 숨겼다. 빼곡하게 나무가 심긴 던전이니 아이들은 금방 내 모습을 놓쳤다.
좋아. 이제 어떻게 하나 볼까.
“…그.”
“이, 이제 어떻게 하지?”
“던전 공략은 던전 핵을 부숴야 하는 거니까… 던전 핵부터….”
어쩔 줄 몰라 하며 부산스럽게 굴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정리된다. 내가 그래도 아주 기본적인 건 가르쳐 줬다니까.
유혜은이 중앙에 있다. 가장 보호받는 포지션이다. 그 양옆에 마법사들이 붙어 있고, 나머지는 그 세 명을 둘러싸듯 자리를 잡는다.
원래 힐러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비각성자보다야 튼튼하다지만 전투 능력은 없다시피 하다. 던전 등급이 한 단계만 높았더라도 유혜은은 공략에서 제외되었을 거다.
그럼에도 홍석영이 굳이 유혜은을 던전에 들여보낸 건 경험의 차이 때문이겠지.
던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힐러들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
아이들이 고장 난 장난감처럼 멈췄다. 서로 눈치를 보며 미적거린다. 시간이 금 같은 던전에서 저러면 안 되지.
전원 1점씩 마이너스를 하려던 찰나.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탐사 정보에 따르면 던전 핵은 숲의 동쪽에 있다.”
오현욱이다. 우리의 새끼 돼지.
“던전 핵에 가려면 픽시 무리를 통과해야 해. 픽시의 특징은 기억하고 있지?”
“응.”
“박서현, 최진우.”
“여기 있어.”
마법사들이 준비한 룬을 나눠 준다. 마력 가림막 룬이다.
픽시는 다른 몬스터처럼 마력 냄새에 민감하며, 무리 지어 먹잇감을 사냥한다. 고공을 비행할 정도는 아니지만 엄연한 비행 타입 몬스터에다가 무리 짓는 습성 때문에 초보 헌터들이 당하기 좋은 몬스터였다. 가림막 룬을 사용하면 최소한 마력 냄새를 맡고 습격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출발하자.”
가림막 룬을 활성화한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숲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별이 총총 박혀 있는 밤이다. 하늘은 분명 밤인데도 밤 같지 않게 밝다.
인류에게 던전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였지만 공교롭게도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어디서 들어 본 것들이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특징을 얘기하면 아, 그거! 하고 아는 체할 수준은 되었다.
신화, 전설, 민담 따위에 나오는 괴물들.
명동 던전의 보스처럼 소머리를 달고 있는 거대한 인간형 몬스터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 붙었다. 거미 실로 아름다운 비단을 만들어 내는 몬스터에게는 아라크네라는 이름이 붙었고, 노래로 사람을 홀려 대는 여성형 몬스터는 세이렌이 되었다.
결국 인간은 미지의 것도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느긋하게 아이들의 뒤를 따라갔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요정 숲 타입의 던전은 숲이다. 물기라곤 하나도 없는 비쩍 마른 나무들이 가득하다. 잎사귀가 반짝거리고 달콤한 향이 난다고 해서 요정 숲이라고 불리지만 그래 봤자 숲이다. 그것도 불이 붙으면 잘 타는 숲.
이 던전에는 수원지가 없다.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픽시도 불이 나면 물을 가져와 끈다. 하지만 여긴 그 물이 없다, 이 말이다. 전부 다선에서 가져온 탐사 보고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냥 불을 질러 버리면 된다. 불과 연기에 공략대가 피해를 보지 않게만 주의하고.
이걸 눈치채면 만점이다.
당연히 만점자는 없다.
“…….”
어느새 선두를 차지한 오현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멈추라는 신호다.
픽시 한 마리가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다. 놓치면 무리로 돌아가서 친구들을 데려올 거다.
오현욱은 꽤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8시 방향. 한 마리. 정찰. 너. 나. 잡는다.
잘하고 있는데.
마법사까지 나설 것 없이 전방에 서 있던 오현욱과 서한성만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날아서 도망치지 못하게 날개에 상처를 먼저 준다. 땅으로 픽 고꾸라지는 걸 잡는 건 쉽다.
픽시를 처리한 오현욱이 다시 아이들을 정렬시킨다. 새끼 돼지가 잘해 주고 있는데…. 이십 년 뒤의 돼지 새끼를 떠올리면 감개무량하다.
일단 새끼 돼지한테 플러스 1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