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51)
새끼 돼지(2)
‘뭐야.’
언제였더라.
아저씨가 급하게 던전 공략으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날이 있었다.
‘급한 일이라고 해서 왔는데….’
‘현욱아! 너밖에 없다!’
‘이 애는 뭡니까?’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희미하게 나는 술 냄새. 살집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진 출렁거리는 지방 덩어리는 아니었다. 듬직한 덩치 아래에는 단단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얘? 내 아들.’
‘아들요? 어디서 납치했어요?’
‘납치라니! 내 아들이라니까! 내 아들 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저씨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챙겨 둔 짐에 마지막으로 신발 하나를 욱여넣은 다음 벌떡 일어나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꽉 붙잡았다.
‘최대한 빨리 공략하고 돌아오마. 그동안 잘 부탁한다.’
‘예?’
‘지은이도 던전에 들어가 있고, 이 헌터는 외국에 나가 있어서 곤란했던 참이거든.’
‘예?’
‘그런데 딱! 네 생각이 나지 뭐냐. 얼마 전에 A급 하나 공략했다며? 네 성격상 최소 일주일은 쉴 거 아냐.’
‘그렇긴… 한데요. 잠깐만요, 선생님. 설마.’
‘우리 애 잘 부탁한다. 식탁 위에 내 카드 있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사고. 알았지?’
‘아, 잠깐만요, 선생님!’
‘현욱아. 너밖에 없다.’
‘제가 그 말에 넘어갈 것 같습니까?’
‘넘어갈 것 같은데.’
‘…….’
‘그럼 잘 부탁하마!’
아저씨는 그대로 짐을 챙겨 들고 나갔다.
이때만 해도 돼지보다는 야생 멧돼지 같던 남자는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보았다.
‘그… 난 선생님 제자인 오현욱이라고 하거든. 넌 이름이 뭐니?’
* * *
‘꾸웨에에엑….’
남자는 브리핑 내내 코를 골며 자더니 기어이 속을 게워 냈다.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였다.
‘쿠어억, 퉤. 어으, 이제야 시원하네.’
길드 메모리얼의 전투원들은 익숙한 광경인 듯 등을 돌리고 던전 내부의 기상과 지형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게 더 기가 막혔다.
‘얘들아. 여기서 뭐가 나온다고 했었지?’
‘마스터. 물 드세요.’
‘어어, 그래.’
저게 대한민국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헌터이자, 길드 마스터다.
저딴 게, 무려, 그렇단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
남자는 출렁거리는 뱃살을 긁적였다. 그렇잖아도 곤두선 감각에 토사물의 역겨운 냄새가 느껴졌다. 남자가 다가오자 냄새는 더 심해졌다.
‘카악!’
물로 입안을 헹구고, 그대로 뱉어 내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았을 거다. 한때 헌터 아카데미의 기대주, 총명했던 수재가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돼지 새끼라니.
…한때의 기대주에 걸맞은 명성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저 돼지 새끼를 인정할 수 없었다.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 홍석영의 제자라는 이름을 팔아 경력을 쉽게 쌓았다. 갓 졸업한 애가 길드를 세우기까지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는가? 겨우 2년이다, 2년!
길드 메모리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기까지는? 불과 1년밖에 안 걸렸다!
즉, 헌터 데뷔한 지 약 3년 만에 오현욱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헌터가 되었다.
‘그래서… 관리청 헌터? 이름이 뭐더라?’
인정하긴 싫지만 대단한 남자이긴 하다. 비록 지금은 이런 꼴이어도.
‘잠깐,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 맞지? 왠지 익숙한 얼굴인데.’
‘처음 뵙겠습니다. 우희재라고 합니다.’
‘우희재? 우희재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분명.’
남자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꺽, 하고 트림을 했다. 방금 토사물을 뱉은 입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났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허! 그렇게 빡빡하게 안 굴어도 된다니까. 나한테 맡겨 놓으면 다 알아서 해. 날 못 믿어?’
지방 덩어리에 파묻힌 눈이 히죽거리며 웃는다.
남자는 품속에서 알루미늄 수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알코올 향이 훅 났다.
‘그거 술입니까? 제정신이세요? 저희 게이트 넘어왔습니다!’
‘관리청 헌터님도 마실래?’
내가 말리기도 전에 남자는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턱을 타고 채 마시지 못한 술이 뚝뚝 떨어졌다.
‘아뇨. 됐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다 마시지 뭐.’
다시 술을 마신다.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그제야 남자는 멋쩍게 턱을 닦으며 웃었다.
‘거 내가 이걸 안 마시면 머리가 잘 안 굴러가서 그래. 공략 전에 이렇게 시원하게 마셔 줘야 한다니까?’
남자는 껄껄 웃었다.
‘후딱 끝내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
어릴 때 나를 잠깐 돌봐 주었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는 없었다.
다음번에도 저 돼지 새끼와 일하라고 시키거든 차라리 본부장을 칼로 찌르고 사표를 쓰겠다.
나는 이를 으득으득 갈며 남자, 오현욱을 따라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잠깐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경력을 쌓던 시기의 오현욱은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오현욱은 언제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걸까. 성인이 된 뒤에? 아니면 시범고 학생이었을 때?
어차피 각성한 이상 술을 물처럼 마셔도 민간인들처럼 죽어나진 않을 거다. 뒤룩뒤룩 찐 살은 어쩔 수 없어도.
그 뒤로 내가 던전에 들어가지 않게 되면서 오현욱과 마주치는 빈도는 확 줄었다. 가끔 관리청에서 볼 때가 있었지만 오현욱은 헌터도 아닌 관리청 직원의 얼굴을 기억할 만한 세심함은 없었다. 만날 때마다 내가 누군지 물어봤고,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셋에 한 번 정도는 ‘아, 우 주임?’ 하면서 아는 척을 하긴 했다. 코 먹는 소리를 내면서 껄껄 웃으며 친한 척 내 등을 내리치며.
“끄읍….”
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괜히 그때 맞았던 등이 아려 온다.
“오현욱 학생.”
“…끅.”
스스로 진정하길 기대하고 기다려 봤지만 눈물이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끅… 끄으윽….”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 싫다.
조금만 나쁜 소리를 들어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애들이 있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든다.
그래. 성정이 여리면 그럴 수도 있지. 안 울고 싶어도 눈물이 줄줄 흐를 수도 있잖아.
정말 싫은 건 자기 잘못도 모르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놈들이다.
그러니까 자기도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이 나거든, 그치려는 시늉이라도 하란 말이다.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하라고.
“…….”
얘가 관리청 직원이었으면 지금쯤 개같이 까였을 거다.
내가 얘를 봐주는 이유는 단 하나.
얠 잘 달래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현욱은 숨을 꺽꺽거리며 울고 있다. 울고 있다라는 건 너무 귀여운 표현이고… 오열하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하는 말도 아주 가관이다.
“저, 저는… 헌터가 되면, 안, 끅, 될, 끄으윽, 놈입니다, 끄윽.”
…애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울고 있는데 울음소리가 돼지랑 닮았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
한숨을 내쉬었다. 느는 건 한숨밖에 없다.
“오현욱 학생.”
“…끕. 네, 네.”
“일단 진정하고….”
나는 앞좌석에 굴러다니는 물병을 주워 오현욱에게 건넸다.
“물 좀 마시고.”
“가, 감사합니, 다….”
“너도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
박서현도 그렇고 왜 죄다 울면서 자격이 없다고 지껄이는 건지. 그 나이대 애들은 다 이런가.
“왜 헌터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데?”
“…….”
오현욱은 물을 꿀꺽 마셨다. 호흡은 진정되었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은 그대로다.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
“…던전에서는 왜 그랬어?”
“…….”
이게 더 어려운 질문인가?
나는 창밖을 가리켰다. 홍석영과 김채민이 이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장 선생님 불러 줘?”
“아, 아뇨….”
홍석영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척 든다.
저 아저씨가 진짜.
“저는….”
“…음.”
“끅, 끄읍. 서, 선생님은 제가 있던 길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
아, 그래도 둘이 있을 때는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구나? 이게 당연한 건데도 왠지 감격스러웠다.
“저, 제가, 그, 들었죠?”
“길드 출신이라는 거? 그래.”
오현욱은 쓰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엄청 그럴싸하게 들리잖아요.”
“…….”
“저는, 미끼였어요. 살아서 움직이는 미끼.”
오현욱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첫마디를 하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이 갈 정도로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사기 계약 당한 어린 애들의 말로야 딱 그려지지 않는가.
그렇지만 오현욱에게는 심각한 이야기일 테고, 아무리 흔하고 뻔한 일이래도 열 몇 살짜리 어린애가 겪기엔 부당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저씨는 자신이 던전 안의 모든 일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최소한 저런 식으로 각성자들이 죽어 가는 것은 막고자 했다.
그리고 그건 오현욱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제대로 된 헌터가 되면 저와 같은 처지였던 사람들을 모아서 길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왔다. 울음은 멈췄고, 호흡도 진정되었다. 물기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흔들림 없다. 그만큼 오현욱에게는 이 미래가 소중하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런 일이 더 일어나지 않게 하고요.”
아마 이십 년 뒤의 오현욱도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길드를 세웠던 거겠지.
“교장 선생님이 저 빼 줄 때 같이 빼 준 친구가 몇 명 있거든요. 걔넨 더 이상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준다고 했어요.”
돼지 오현욱의 길드, 메모리얼에 대해 떠올렸다.
메모리얼 창립 멤버 중에는 헌터가 아닌 이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길드 부마스터여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돼지 새끼가 무슨 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냐고 했었는데.
길드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였구나. 알았으면 욕을 안 했을 텐데. 왜 말을 안 해 줘서는.
“그런데!”
오현욱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악문 이 사이로 반쯤 죽어 가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까… 던전에서. 픽시 떼가 덤벼드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무슨 생각?”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미끼로 던져 주면 이 상황을 헤쳐 나가기 훨씬 편하겠다고요.”
“…….”
“절대 그런 짓 하는 인간이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막상 급하니까….”
오현욱이 코를 킁킁거렸다. 눈가가 시뻘겋게 짓무른 게 안쓰럽긴 했다. 더러운 돼지 새끼가 아닌 새끼 돼지라고 생각하면…. 흠. 못 봐 줄 것도 아니지.
김채민이 말해 주길, 오현욱은 길드에 3년이 조금 넘게 붙잡혀 있었다고 했다. 그 길드에서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미끼였다고. 3년 동안 그런 짓을 당했는데 멀쩡한 게 이상하다. 내가 보기엔 얘는 헌터고 나발이고 간에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
날 입양했을 때만 해도 홍석영은 나를 온갖 좋다는 상담에 다 끌고 다녔다. 보육원에 있으면서 질릴 정도로 받았다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현욱이나 서한성을 상담에 데려간 것 같지는 않은데…. 뒤늦게 상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나.
“전 제가 누구보다도 전 길드 마스터를 싫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에게 제일 익숙한 방법이 그… 그런 거더라고요. 그게 너무 혐오스럽고….”
“내가 알던 사람 중에.”
오현욱이 박서현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기 전 말을 잘랐다.
박서현한테는 칭찬을 하면서 자신감을 키워 줬지만… 오현욱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박서현처럼 칭찬보다는.
글쎄.
돼지 새끼. 성격이 나빴지. 지금은 새끼돼지가 질질 짜고 있지만 그 성격이 어디 가진 않았을 거다. 두 달 동안 나한테 말 한 마디도 안 한 걸 봐라.
“너와 비슷하게 자랐던 사람이 있어.”
나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너처럼 뭣 모를 때 계약 하날 잘못해서…. 어느 지나가던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탈출했지. 그 사람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돕고 싶어 했어.”
“…헌터입니까?”
무심코 그렇다고 대답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삼켰다. 마력으로 임시로 소리를 막아 놨지만, 홍석영 정도의 실력자에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고스란히 듣고 있을 텐데 헌터라고 대답하면 아저씨 성격상 찾아볼 수도 있다.
나중에 물어보거든 늘 팔아먹었던 방주나 또 팔아먹자.
“아니. 헌터는 아니었어. 그냥…. 있었어, 그런 사람이.”
솔직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네 발로 기는 꼴을 더 많이 보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새끼 돼지를 보았다. 퀭한 두 눈.
그러니까, 이런 과거가 있었다면 나한테 귀띔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잖아. 애먼 사람만 나쁜 놈 만들지 말고.
“그 사람은 자기처럼 고생한 애들을 돕고 싶어 했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