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57)
공략의 정석(3)
1. 공략대는 공략 대장의 말에 복종하여야 한다.
2. 단, 명령이 부당할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등재된 내용은 아니다. 던전 공략 실습 때 가르치는 거다.
공략 실습을 나가는 건 아카데미 2학년부터. 실습은 현역 헌터가 조교를 맡는다. 주로 관리청의 헌터들이다.
관리청에서도 신입 헌터를 교육하는 데 위의 두 가지를 주요시한다. 그렇게 배운 헌터들은 아카데미에 수업하러 가서도 똑같이 가르친다.
요지는 간단하다. 대장의 말을 잘 듣되, 멍청한 소릴 지껄이면 뒤통수를 후려치라는 거다.
“너희가 여덟 명이었으니… 대장과 부대장, 이렇게 두 명 정도만 정하면 충분할 거다. 보통 공략대 인원에 비례하는 법이지. 규모가 커지면 더 세분화해야겠지만.”
아이들은 아까 전보다는 한층 진정된 얼굴로 교실에 앉았다.
이미선이 가져온 간식을 먹여서인가? 역시 어린 애들을 달래기에는 단게 최고다.
“각자 자기가 대장이면 어떻게 공략을 진행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지? 부대장도 한 명 골라. 친해서 골랐다, 이런 건 안 돼. 이유가 있어야 해.”
이걸 아까 시키지 않고 지금에서야 말하는 건 순발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런 임기응변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들의 불만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누구부터 시작해 볼까.”
던전 공략에 정석은 없다.
던전마다 타입이 다르고, 몬스터가 다르니 어떻게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정할 수 있겠는가. 같은 몬스터라도 던전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공략이 달라지고, 난이도가 바뀐다.
그래서 보통 공략대의 대장은 경험이 많은 노련한 헌터가 맡는다.
“없어?”
아이들은 입에 풀이라도 붙은 마냥 조용했다.
얌전하니 수업하긴 편한데 재미는 없다. 회복하려면 며칠 걸리려나. 홍석영이나 김채민이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오현욱을 지목했다.
“오현욱이 대장이다. 부대장은 누구로 할 거지?”
“…서한성이요. 저와 합을 많이 맞춰 봤고, 던전 경험도 있으니까요.”
“좋아. 던전에 진입했다. 탐사 정보에 따르면 핵은 숲의 동쪽에 있다고 한다.”
“핵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먼저 마법사들이 준비한 룬을 사용하고, 대열을 정비합니다. 힐러인 유혜은이 중앙, 마법사들은 양옆에. 제가 선두에 서고 부대장인 서한성은 마지막에 섭니다.”
“진입 15분 뒤. 11시 방향에서 픽시 한 마리를 발견했다. 대장, 어떻게 할래?”
“잡습니다.”
“왜?”
“픽시는 무리 지어서 활동하는 몬스터니까요. 보통 대여섯 마리씩 움직이지만 영역 내부에서는 순찰을 겸해 한두 마리씩 돌아다니는 정찰병이 있습니다. 이대로 보내 주면 무리로 돌아가 다른 놈들을 끌고 올 겁니다.”
오현욱은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슬슬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한테 어떤 걸 요구하는지 감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세워 교탁을 두어 번 두드린 후 말했다.
“픽시와의 거리는 15m. 나무 세 그루가 시야를 방해한다. 픽시는 아직 자기가 발견된 걸 알지 못하고 있다.”
“픽시가 도망칠 낌새가 없다면 시야를 확보할 때까지 움직입니다. 수신호로 픽시의 존재를 알리고, 마법사들을 준비시켜 놓습니다. 시야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다면 선두에 있는 제가 나서서 픽시를 죽입니다.”
첫 순서인 데다가 오현욱이다. 괜히 다른 상황을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 스스로 극복하게 해 줘야지.
나는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읊었다. 첫 번째 픽시를 잡고, 다른 픽시 무리와 조우한다.
몇 차례의 전투. 손쉬운 제압.
그러나 오현욱은 목이 타는지 점차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들도 침을 꼴깍꼴깍 삼켜 대고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의 요란한 시뮬레이션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몰입하고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핵이 있는 방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곧 날뛰는 픽시 무리가 습격한다.”
“…….”
“오현욱?”
“먼저.”
오현욱은 목을 가다듬었다.
“큼. 먼저, 대형을 바로 합니다. 픽시 무리에 휩쓸리지 않게 주의하고요. 저와 순순진이 앞에서 달려오는 픽시를 상대합니다. 픽시가 날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직접적으로 달려드는 놈들은 죽이지만 그 외에는 뒤로 흘려보내도 충분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몇 번이고 곱씹었는지 오현욱의 대답은 막힘이 없다.
나는 오현욱을 압박할까 고민했지만 말았다. 강도를 올리는 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당근. 당근이다. 오현욱에게도 칭찬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적당히 성질머리를 살살 긁어 주면 알아서 열 오른 채 따라붙을 텐데.
“픽시 무리가 지나간다. 덤벼드는 놈들은 없진 않지만… 그건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 다음은?”
“픽시가 날뛰는 원인을 알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공략을 하러 들어온 거니까요. 다른 변수가 생기기 전에 던전 핵을 부수는 게 더 낫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공략 완료.”
오현욱은 크게 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알겠지?”
나는 그 꼴을 보며 픽 웃었다.
“…몇 점인가요?”
“던전 공략에는 점수가 없다.”
“그럼요?”
“패스와 패일이지.”
“철수도 있잖아요.”
“철수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공략 실패 선언하고 살아서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으면 그건 패스지.”
“…그럼 패일은요?”
“공략대 사망. 뭘 물어봐.”
나는 박수를 한 번 쳐서 주위를 환기했다.
“수업 끝나기 전에 한번 씩 다 해 봐야 해. 보자… 오현욱이 부대장으로 서한성을 지목했지? 그럼 서한성이 해 보자.”
“네?”
서한성이 화들짝 놀라 허리를 똑바로 했다.
“저, 저도요? 현욱이가 공략했잖아요?”
“그래서?”
“그럼, 어, 제가 할 필요는….”
“대장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알려면 너희도 대장이 되어 봐야 알 거 아냐.”
“그, 그거야 그렇지만….”
“자. 대장은 서한성. 부대장은 누구?”
서한성은 눈을 데구룩 굴리다가 대답했다.
“저도 현욱이요….”
“왜?”
“저보다 실력도 좋고, 던전 경험도 많으니까….”
“귀찮은 절차는 생략하고, 던전에 바로 진입한다.”
“어어, 자, 잠깐만요!”
“음?”
“대열, 을, 미리 정리하고… 정비를 하고요.”
좋은 지적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한성은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보급품을 확인하거나 던전 탐사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대열을 정리한다. 오현욱과 서한성의 자리가 바뀐 것 말고는 똑같다.
“던전에 진입합니다….”
나는 씩 웃었다.
“던전 진입. 픽시 여섯 마리가 게이트 주위를 맴돌고 있다.”
“네?!”
“픽시 여럿 마리가 게이트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저, 저희가 들어갔던 던전은 안 그랬는데요!”
“내가 언제 너희가 들어갔던 던전이래?”
“네?”
“하늘 아래 같은 던전은 없다.”
같은 던전에 다시 들어가도 공략은 달라지는 법이다.
“머리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지.”
나는 내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쉽게 가면 쓰나.”
* * *
날갯짓 한 번에 바다가 움직인다.
물이 들어간 작은 상자 안에 갇힌 기분이다. 하늘에 있었던 바다는 비처럼 후두둑 떨어지더니 이제 발밑에서 찰박거린다.
홍석영은 물에 휩쓸려 중심을 잃었다가 암초 사이를 연결한 김채민의 덩굴을 붙잡고 가까스로 바다로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도 홍석영과 비슷한 꼴로 덩굴에 매달려 있었다.
역시 김채민을 데려온 게 옳았다. 이 마법이 없었더라면 발판 때문에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
다시 바다가 움직인다.
집채만 한 파도가 덩굴에 매달린 헌터들을 덮쳤다.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헌터들이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떨어지려던 찰나.
덩굴이 헌터들의 몸을 붙잡았다.
“…!! ……!!!”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괴물은 불만 어린 얼굴로 이를 딱딱 부딪쳤다. 날개와 몸통의 깃털은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롭다. 사람도 낚아챌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발톱도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초처럼 짙은 녹색을 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창백한 얼굴. 오뚝한 코. 갸름한 입술과, 그 사이로 날름거리는 붉은 혀까지.
저 아름다운 얼굴이 얼마나 많은 헌터를 잡아먹었던가.
던전 안의 몬스터가 세이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로, 어째서인지 이 던전을 우습게 보는 헌터들이 있었다. 무려 삼 년 동안이나 생존자가 없는 던전이었는데.
덕분에 세이렌들은 끝없이 포식했다. 간혹 살아 돌아오는 이가 있어 던전 내부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세이렌의 날갯짓에 맞춰 위치가 바뀌는 바다라든지, 세이렌이 앉아서 쉬는 돌기둥과 암초라든지.
그래서 강원도청에서 공략을 부탁받았을 때 김채민을 제일 먼저 끼워 넣었다. 김채민의 마법이라면 발판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내가 혼자 들어가서 먼저 상황을 살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혈기 넘치는 젊은 헌터도 아니었고, 이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았다. 시범고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자신이 죽는다면 처치가 상당히 곤란하게 될 청년도 있었다.
‘이 헌터가 있으니 그리 곤란해질 것도 없나.’
그래도 자신이 살아 있는 게 제일 좋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던전을 공략하면 끝날 일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세이렌의 목소리만 막을 수 있는 룬도 있지 않을까.’
자판기처럼 누르면 뭐라도 튀어나왔을 텐데.
스쳐 지나가는 얼굴에 홍석영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묘하게 모르는 게 없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물으면 툭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시가 편하다는 이유로 학교에 데려다 놨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해 봤자 제 눈을 피해서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계속 옆에 두고,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처음에는 꺼리던 수업에도 점점 열을 올리는 걸 보고 있으니….
‘편하단 말이지.’
방주의 일도 있는 데다가 시범고 때문에 던전 공략을 제대로 못 한 지도 일 년 가까이 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압박이 제법 거세지고 있었다.
던전 공략을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형태를 바꾸고 싶었다. 자신이라고 항상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시범고를 만든 일도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은 그 연장선이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우희재는 홍석영에게 가장 필요한 인재였다.
알아서 커리큘럼을 짜 올 만큼 학생들에게 진심인 데다가 실력도 좋다. 룬이라는 독특한 지식도 있고, 그 외에도 아직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단이 많아 보인다.
동생을 구하고 방주의 일만 얼추 해결되거든, 그 녀석도 한번 제대로 키워 보고 싶다. 서른이면 이제 한창 헌터로서의 재능을 꽃피울 나이 아닌가.
“……!!”
‘어이쿠. 잡생각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홍석영은 급하게 창을 들어 세이렌의 발톱을 막았다. 그대로 힘을 주어 발톱을 뿌리친 다음 창을 내질렀다.
창과 발톱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홍석영의 귀에는 닿지 않는 소리였지만 손바닥에 전해지는 충격만으로도 세이렌의 힘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했다. 세이렌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 새의 몸. 사람을 홀리는 노랫소리.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이렌과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던전 안에 있는 세이렌의 수는 셋이다. 한 놈이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 홍석영은 침을 뱉어 입 안에 남아 있는 짠맛을 없앴다.
홍석영은 창을 크게 휘둘러 세이렌을 떨쳐낸 다음 뒤로 몸을 날렸다. 어느새 김채민의 덩굴이 빼곡하게 암초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홍석영은 발끝으로 덩굴을 확인했다. 어쩔 수 없이 흔들리긴 했지만 힘껏 걷어찬다고 해서 끊어질 것 같진 않았다.
홍석영은 예고 없이 세이렌을 덮쳤다. 힘을 이기지 못한 덩굴 몇 가닥이 끊어졌지만 금방 복구되었다. 순간 홍석영의 움직임을 놓친 세이렌이 입을 크게 벌리며 날개를 퍼덕였다.
콰앙!!
다른 헌터에게 붙어있던 세이렌이 동족을 구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다. 홍석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창날에는 붉은 피가 흠뻑 묻어 있었고, 홍석영의 공격을 맞은 세이렌은 바다로 떨어졌다.
한 마리.
전투는 계속된다. 확실히 한 마리가 줄었더니 훨씬 낫다. 세이렌들의 경계가 높아진 건 달갑지 않았지만.
바다의 위치가 바뀌는 건 여전히 까다롭다. 홍석영과 헌터들은 세이렌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공격을 계속 퍼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이렌이 크게 날갯짓을 할 때마다 바다가 움직였다.
촤아아악!!
거대한 파도와 함께 바다가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간다. 파도 때문에 시야가 가렸다. 아니, 그 파도 사이에 옆구리가 크게 찢어진 세이렌 한 마리가 몸을 숨긴 채 올라왔다.
파도가 덮친 것은 덩굴 중앙에 꽃처럼 앉아 있는 마법사. 어두운 금발의 세이렌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김 선생!!!”
발톱으로 창을 꽉 붙잡아 오는 세이렌을 억지로 밀치며 홍석영은 몸을 뒤틀었다.
덩굴이 끊어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고 있던 것은 필요 없다. 이대로 김채민이 당하고, 마법이 풀리면 끝장이다. 제아무리 자신이라 하더라도 발판이 없으면 어쩔 수 없다.
홍석영은 그대로 세이렌의 발톱과 김채민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창을 세워 막을 여유 따위는 더욱 없었다.
“홍 선생님!!!”
김채민이 비명을 질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