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59)
유품(2)
처음에는 노란 스포츠카를 보며 좋아하던 아이들이 조용해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김채민의 얼굴이 심각했다.
평소의 생기발랄한 모습은 없다. 옷차림도 화사한 무늬의 원피스가 아니라 보석 브로치를 잔뜩 단 검은 코트를 입고 있다. 아마 김채민이 정성 들여 제작한 전투복일 거다.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온 거다. 왜? 그렇게 바로 달려올 만큼 심각한 일이 발생한 걸까?
홍석영은? 아저씨는 어디 있지?
나는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억지로 조용히 시킨 다음 교실을 나왔다. 다선의 헌터들이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오늘 이미선은 시범고에 나오지 않았다.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김채민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운전대를 꽉 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래도, 김채민은 부상이 없어 보였다. 팔다리도 잘 달려 있다. 다른 눈에 띄는 상처도 없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을까.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얼굴로.
“…김 선생님?”
“우 선생님.”
김채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보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선생님, 저, 저랑 같이, 병원에 좀.”
“병원에요? 왜요? 공략에 실패했습니까?”
“아, 아뇨, 공략은… 공략은 했는데.”
불길함이 엄습한다.
그럴 리가 없다.
홍석영은 최강의 헌터다. 앞으로 이십 년이 지나도 최강이다. 그 사람은 죽지 않는다. 김채민도 죽지 않았는데, 아저씨가?
웃기지 마.
“홍 선생님이.”
“아저, 홍 선생님이 왜요?”
“일단 차에 타요.”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기, 애들 하교시켜 주세요.”
다선의 헌터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라는 둥 뭐라고 말한 것 같긴 한데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김채민의 차에 올랐다. 김채민은 곧바로 출발했다.
“…….”
왜?
아저씨가 겨우 세이렌 몇 마리 잡는다고 고생할 리가 없는데? 나름대로 엄선한 헌터들을 데리고 공략했을 거 아닌가. 김채민을 죽였던 초보 헌터 같은 놈도 없었을 거다.
“난.”
아무 말 없이 차를 몰던 김채민이 불쑥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할게요.”
“…네?”
“난 분명 반대했어요.”
“네?”
김채민은 이를 으득으득 갈기 시작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슬픔을 억누른다기보다는….
“젠장, 난 반대했다고요!!”
“김 선생님?”
“어쩜 인간이 그래? 마법사보다도 더 마법사 같아! 내가 다음번에 같이 일하나 봐라!!”
슬픔이 아니라 분노를 억누르는 모습이다.
“홍석영 진짜 재수 없어!!!”
김채민은 브레이크를 밟더니 운전대에 이마를 박았다.
빠아아앙.
경적이 요란하게 울린다.
…여기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시골길이라 다행이다.
* * *
“도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차를 세워 두고 한참을 욕설과 발광을 해 대던 김채민은 삼십여 분이 지난 다음에야 진정했다.
“공략하고 바로 온 거 아닙니까? 홍 선생님이… 다친 건 아니죠?”
“그 인간이 다쳤다면 이렇게 짜증 내진 않았을 거예요.”
머리를 쥐어뜯던 김채민은 소매로 얼굴을 벅벅 닦았다. 별로 깨끗해지진 않았다.
백미러로 얼굴을 확인한 김채민은 멋쩍게 웃었다.
“어우, 죄송해요. 제가 원래 안 이러거든요.”
“…공략이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공략은 괜찮았어요. 아니, 안 힘든 건 아니었는데, 위험하기도 했고, 제가 진짜 완전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핵 부수고 다 했으니 괜찮아요. 괜찮았어요. S급 던전치고는 빨리 끝나기도 했고.”
김채민은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말이 아직 횡설수설하기는 하는데… 이러다 갑자기 전봇대라도 들이박는 건 아니겠지?
이젠 다른 의미로 불안에 떨며 김채민을 흘긋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래서 병원은 왜 가는 건데요?”
“그게….”
김채민은 땅이 꺼져라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지금 몇 시죠? 세 시? 이제 시작했겠네요. 직접 보는 게 빨라요.”
“뭘 봐요?”
“휴대폰으로 인터넷 켜 봐요.”
나는 미간을 좁혔다.
“아무 사이트나 들어가도 메인에 걸려 있을 거니까… 보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걸요?”
의심스럽긴 했지만 나는 김채민이 시키는 대로 인터넷 창을 켰다.
키자마자 김채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시뻘겋게 깜빡거리고 있는 문구가 있었다.
‘홍석영, 강원도 속초 던전 공략… 기자 회견’
“기자 회견?”
관리청에서 겪었던 즐겁지 않은 기억들이 눈앞을 잠깐 스쳤다.
정신 차리자. 저기 있는 건 내가 아니다. 아저씨 대변인 노릇을 하느라 팔자에도 없던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야 했던 내가 아니라고…!
섬네일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있다. 홀린 듯 클릭했다.
음량을 조절하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략은 완료되었습니다. 강원도 속초의, 일명 세이렌의 둥지 던전은 완전히 닫혔습니다. 공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길드 다선을 통해 가까운 시일 내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남자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현재 부상자는 다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공략으로 지쳤을 헌터들의 회복을 위해 저희 다선에서는 기자 여러분들께 인터뷰 요청을….”
“홍석영 헌터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인터뷰 요청을 지양해 줄 것을 바랍니다.”
“다연 병원으로 이송된 헌터 중 홍석영 헌터가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는데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서로 앞다투어 시장바닥처럼 고함을 쳐 대고 있었다. 실시간이다 보니 그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해 봤자 저렇게 피해 버리면 답변을 한 거나 다름없다.
소란스러움이 계속되다가 화면이 스튜디오로 전환되었다. 기자 회견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10분 남짓이다.
“…….”
“…….”
“혹시나 해서 묻지만 홍 선생님이 정말….”
“그랬으면 이렇게 짜증이 안 났을 거라니까요.”
그랬었지.
“그럼 왜…?”
김채민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던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방주 때문이에요.”
“방주요?”
핑곗거리로 방주를 들먹이는 건 나만 그랬던 게 아닌 모양이다.
“걔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홍 선생님이 쫓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겠어요?”
“뭐… 그렇겠죠.”
홍석영이 방주를 쫓게 된 경위가 뭐라고 했었지? 지인의 시신을 되찾아 달라는 유족의 부탁을 받았다고 했었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홍석영이나 되는 거물이다.
그런 헌터의 움직임을 모르기는 어렵다. 홍석영이 굳이 김 군 같은 사람을 써서 물밑에서 조용히 조사하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일 거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심하게 다친 척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
중간 과정이 너무 생략됐다.
“우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방주에서 그 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김채민은 가볍게 날 흘겨보았다.
“운전할 땐 전방을 항상 주시하세요.”
“…진짜 얄미워.”
김채민은 가볍게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송파구 던전 건도 있고 해서… 홍 선생님이 일부러 방주 지부 몇 군데를 습격했거든요.”
“습격… 했다고요? 전 들은 게 없는데요?”
“우 선생님은 아이들 가르치느라 바빴잖아요. 괜히 신경 쓸 일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홍 선생님이 그래서요.”
그 빌어먹을 아저씨.
“그리고 언론 발표도 막았고요. 어쨌든, 그렇게 대놓고 활동을 했으니 방주도 지금은 홍 선생님 눈치 보느라 쥐 죽은 듯 지내고 있거든요.”
이쯤 되니 김채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그래서 홍 선생님을 다쳤다고 꾸미고 방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요?”
“왜 꾸몄다고 생각해요? 진짜 다쳤을 수도 있잖아요!”
“아까 안 다쳤다면서요?”
“윽.”
이 사람이랑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은요? 다선 헌터들입니까? 아니면 따로 협조를 구한 겁니까?”
“아. 그 사람들은 진짜 홍 선생님이 다쳤다고 생각할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세이렌 피를 뒤집어써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제대로 얻어맞기까지 해서.”
“얻어맞아요? 홍 선생님이?”
“어, 그게. 제가 실수를… 했다고 했잖아요.”
조금 전 김채민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진짜 완전 멍청한 실수요?”
“…진짜 완전 얄미운 거 알죠.”
“어쨌든요.”
김채민은 헛기침을 요란하게 하다가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렇잖아도 던전 공략이 오랜만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청각마저 막아 놓았다. 그래도 대마법사라는 이름값이 있으니 정신 차리고 공략에 임했지만….
“세이렌의 기척을 놓치고 실드도 못 치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는데, 그걸 홍 선생님이 커버했다?”
“그렇게 말하면 제가 정말 구제 불능처럼 들리잖아요….”
김채민은 풀이 죽은 채 웅얼거렸다.
나는 무시했다.
“다른 헌터였으면 최소 중상으로 끝났을 테지만 홍 선생님은 무사했고…. 하지만 세이렌 피를 뒤집어쓴 김에 다친 것처럼 연기했다?”
“저도 깜빡 속았다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짜증 났던 거예요?”
“그, 그건 아니고, 선생님이 애들까지 속이겠다고 하니까….”
그쪽이었냐.
“병원에 가고 나서야 저한테 말해 줬다고요! 심지어 이미선 헌터는 좋은 생각이라고 좋아하잖아요.”
그 여자 성격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나는 대충 김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듣고 나니… 흠. 괜찮다. 괜찮아 보인다.
방주의 움직임을 억지로 끌어내겠다는 거니까.
무엇보다 아저씨도 무사하고, 김채민도 멀쩡하다.
세이렌의 던전이 닫혔으니 김채민이 죽을 일도 없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다.
김채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은 애들 속이는 게 아무렇지 않아요?”
“어설프게 얘기해서 애들이 알고 있는 게 더 위험할걸요.”
“…….”
“안 그래도 유지은, 걔. 방주의 하부 조직의 개소리에 팔랑거리는 걸 제가 막았습니다.”
“아, 그 전국새마음, 거기요?”
“모르는 게 나아요.”
“아는 게 조심하기 더 쉽지 않겠어요?”
“이유 없이 애들이 경계하면 의심 사기도 쉽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진짜 다친 게 아니라면 병원에 오래 있지도 못할 텐데요. 아니, 진짜 다쳤더라도 홍 선생님 회복력이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열흘이면 다 털고 일어나겠죠.”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봤다.
“전방 주시하세요.”
“얄미운 소리 그만하고요. 우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보기보다 냉정하네요.”
“논리적인 판단인 거죠. 뭐, 김 선생님이 그 난리 쳐서 학교에서 절 데려왔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김 선생님은 울면서 병원에라도 들어가 보죠?”
“싫어요!”
“효과 좋을 것 같은데.”
“제가 울 거면 우 선생님도 울어야죠!”
그게 뭐 어렵다고.
“필요하다면요.”
더 커질 일이 없어 보였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다. 그러나 곧 김채민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좋아요. 그럼 쌍으로 울면서 병실이나 들어가요. 혹시 알아요?”
김채민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려 퍼진다.
“홍 선생님이 당황할지도 모르잖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