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60)
유품(3)
물론 나는 울지 않았다.
김채민은 소매로 눈가를 닦는 시늉을 하긴 했다. 얼굴이 먼지투성이라 정말 울었더라도 티는 안 났을 거다.
그래도 김채민의 그런 모습은 사진을 남겼다. 무려 각종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역시 따로 들어가는 게 맞았다니까요.”
나는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뭐가 돼요?”
“뭐가 되기는요. 생사를 함께 한 동료를 걱정하는 맘씨 좋은 대마법사가 되는 거죠.”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위험에 처하게 한 못돼 먹은 대마법사가 아니라요?”
“그건 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김채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VIP 병실로 가는 길엔 아무도 없다. 이미선이 무엇보다 보안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홍석영이 다친 곳도 없는데 다친 척 입원했다는 말이 나오면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른다.
첫날이야 심각성을 더해야 했으니 김채민도 병원 정문을 이용했다. 하지만 홍석영이 입원한 지도 오늘로 삼 일째. 뭐든 적당해야 효과가 좋은 법이다. 괜히 사람들 눈에 많이 띄어 봤자 좋을 것도 없고.
보안을 통과하고도 가장 안쪽에 있는 병실.
“오늘은 안 울었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대뜸 들리는 말에 김채민과 나는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우 선생, 자네도 울기로 했다며? 오늘쯤엔 울었어야 효과가 좋았을 텐데.”
“그건 애들이 잘 하고 있어서 전 괜찮습니다.”
어제 김채민과 잠깐 학교에 들렀다. 이미 뉴스를 본 뒤라 따로 설명할 건 없었다.
김채민은 홍석영을 향해 홱 고개를 돌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 나중에 나가고 나면 애들한테 꼭 사과하세요!”
“왜?”
“네?”
김채민의 가정 환경이 정말 궁금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마법사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도대체 집안 분위기가 어땠길래 이런 성격이 되었지?
오히려 무슨 소릴 하냐는 얼굴로 반문하는 홍석영이 더 마법사 같아 보인다.
하긴, 프랑스의 아낌없이 주는 대마법사 같은 애도 있는데 김채민 정도면….
“짜잔! 사실 털끝 하나 안 다쳤고 그 뉴스는 다 뻥이었단다! 하면 내가 거짓말한 나쁜 놈이 되지만, 그냥 잠자코 있으면 애들은 선생님을 걱정한 착한 아이들이 되잖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애들도 그 편이 마음이 편할 거야.”
“진짜 말이라고 하냐고요.”
홍석영은 김채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테이블 위에 있는 음료수 박스를 열었다. 그중에서 알로에 주스를 집어 들었다.
꿀꺽꿀꺽꿀꺽….
홍석영은 단숨에 병을 지웠다.
이게 다 쇼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태평한 꼴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과거로 돌아와서 느는 건 짜증과 한숨밖에 없는 것 같다.
잔뜩 풀이 죽은 애들을 보는 건 가슴 아팠지만 나도 홍석영의 말에 동의한다.
몰라도 되는 어른들의 일에 애들을 끼울 필요는 없다.
“그래서, 효과는 좀 있답니까?”
“무슨 효과?”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홍석영을 노려보았다. 홍석영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방주? 아직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어.”
“병원에 있기로 한 시간은 보름이잖아요. 방주에서 안 낚이면 어떡합니까.”
“안 낚이면 안 낚이는 거지.”
홍석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움직이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나쁜 건 없어.”
“홍 선생님이야 그렇겠죠. 무려 보름이나 휴가를 얻은 거 아닙니까.”
“눈치챘어?”
홍석영은 김채민에게는 오렌지 주스 병을 주었고, 나에게는 토마토 주스 병을 주었다.
…기준이 뭐야.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데.
그래도 줬으니 뚜껑을 열어 마셨다.
김채민과 홍석영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옆에서 들어 봤지만 시답잖은 소리뿐이다. 솔직히 첫날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여기에 출근 도장 찍어 봤자 할 일이 있겠는가. 김채민이 끌고 왔으니 온 거지.
그리고 난 병원을 싫어한다. 특히 이런 대형 병원이라면.
묘하게 냄새가 연구소에서 맡던 것과 비슷해서.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무사한 거예요?”
“음?”
“분명 제대로 들어간 걸 봤는데!”
“그야 봤겠지. 자네 눈앞이었는데. 일등석이었지.”
“얄미운 게 우 선생님이랑 완전 똑같아!!!”
나는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가정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넓다. 실제로 병실보다는 이런저런 곤란한 일로 세간의 눈을 피하고 싶은 회장님들이 많이 쓴다고 했던가.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병원행을 택하던 얼굴들이 몇 떠오른다. 그 안에서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이번에는 못하게 해 주마. 개인적인 원한이다.
어차피 멸망은 막을 생각이다. 그럼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지. 일은 지긋지긋하게 했고, 하고 있으니 돈이라도 박박 모아서 편안한 은퇴 생활을 즐겨 보는 것도 좋을 거다. 던전과 함께 폭파되었던 내 휴가를 맘껏 누리는 거지.
그러려면 살기 좋은 나라도 필요하다. 최소한 뉴스를 볼 때마다 뺀질거리는 면상들을 치워 놓아야 내 혈압에 도움이 된다.
…일거리를 내 손으로 더 늘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맞았잖아요!”
“맞았지.”
“그런데 왜 멀쩡해요?”
“멀쩡해서 불만이야?”
“그건 아닌데요!”
저쪽은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계속하고 있고.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음료수 박스를 확인했다. 아마 이미선이 가져다 놓은 거겠지.
그걸 부엌으로 가져갔다.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는 커다란 냉장고 안에 음료수 병을 정리해서 넣었다.
음료수가 아니어도 냉장고 안은 가득 차 있다. 이것도 이미선이 채워 놓은 건가? 아니면 VIP 병실의 기본 옵션?
내가 이런 곳에서 지내 봤어야 알지.
진득하게 달라붙은 토마토 주스의 단맛을 없애기 위해 냉장고 안에 있는 고급 생수병 하나를 꺼내 목을 축였다.
“아니, 다친 곳 없다니까! 왜, 배라도 까 줘?”
“제가 홍 선생님 같은 아저씨 배 봐서 뭐 해요?!”
“뭐? 아저씨?!”
“홍 선생님 나이면 아저씨죠! 아, 할아버지인가?”
“김 선생, 말이 심하네!”
홍석영와 김채민의 영양가 없는 말씨름은 계속되었다.
그걸 무시하고 부엌을 뒤졌다. 부엌 찬장 안에는 다른 주전부리도 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생수만큼이나 비싸 보이는 과자다. 식탁 위에는 때깔 좋아 뵈는 과일도 있다.
과일을 한번 보았다가 과자를 집어 들었다.
하나씩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결국 진 건 홍석영이었다.
“알았네, 알았어! 나 원, 이거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 돼!”
“들어 보고요.”
“거 까다롭네. 하지만 내 비장의 수단인 건 맞으니까 김 선생과 우 선생만 알고 있게.”
홍석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러자 김채민이 당황했다.
“어, 어어,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돼요.”
“알려 달라며?”
“그런 거 잘못 알았다가는 탈 난다고요!”
그러나 홍석영은 여전히 김채민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한배를 타지 않았나. 만약을 대비해서 자네들도 알아 두는 게 좋아.”
홍석영은 주섬거리며 목깃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먹던 과자를 내려놓았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거 보이나?”
홍석영은 목에 걸고 있는 작은 쇳조각을 보여 주었다.
낡은 가죽끈으로 꿰인 작은 철판 두 개.
지금은 내 지갑 안에 숨겨 놨지만 원래는 내 목에도 저 중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저씨한테 입양되었던 날, 제일 먼저 내게 주었던 거다.
“이게… 뭔데요?”
“뭐일 것 같나?”
김채민은 눈을 깜빡거렸다. 홍석영은 싱겁게 웃으며 쇳조각을 뒤집었다.
“오 년 전에, 몽골에 있는 던전에서 주웠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매끈한 표면. 하지만 왼쪽 상단에 희미하게 획이 새겨져 있다. 아슬아슬하게 ‘ㅎ’ 자가 완성되었다.
“내가 받는 대미지를 흡수해.”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요?”
김채민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당연히 무한하지는 않아. 총량은 정해져 있고, 데미지를 받으면 그 비율대로 이름이 새겨지지. 세이렌 덕분에 ‘ㅎ’이 완성됐지 뭐야.”
유지은은 저 인식표를 현존하는 최선의 방어구라고 말하곤 했다. 착각하면 안 된다. 최고가 아니다.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아저씨 같은 헌터에게는 저만한 아이템이 또 없다.
커다란 창과 다부진 체격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곤 하는데, 아저씨는 빠르다.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 게 아니라 피하거나 흘려 버리는 방식으로 싸운다. 그런 사람을 제대로 맞히기는 힘들다. 발판이 제대로 없는 세이렌 던전의 특수 상황과 김채민의 실수가 아니었더라면 세이렌이 아저씨를 맞히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아저씨가 아니라 홍석영.
“나름 여벌 목숨이지. 끝내주지?”
“끝내주다 못해 사기인데요….”
게다가 저 인식표가 계산하는 대미지는 누가 각인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각성자가 인식표를 사용한다면 덤프트럭에 치이는 충격만으로도 이름이 모두 새겨질 거다.
물론 각성자라면 덤프트럭에 치여 봤자 그 정도로 충격을 받지 않는다. 인식표에도 기껏해야 이름 첫 자가 새겨지는 정도로 끝날 거다.
하지만 홍석영이라면 이름이 생기기는커녕 새겨지는 시늉도 없을 거다. 세이렌한테 공격당해도 자음 하나가 끝이지 않은가.
반대로 말하면 저 인식표가 없었더라면 크게 다쳤을 거다. 이런 쇼를 할 필요 없이 정말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네.”
이십 년 뒤에도 아저씨는 인식표에 이름을 완성하지 못했다. 두 개의 인식표 중 하나를 나한테 줬는데도 그랬다. 첫 글자만 겨우 완성했었다.
하지만 유지은이 내게 주었던 아저씨의 인식표에는 이름 석 자가 모두 새겨져 있었다.
지네를 상대한다고 그랬을까? 그랬겠지? 지네 말고도 그만한 몬스터가 더 있었을까?
몬스터를 죽이느라 새겨졌던 거겠지? 아니면 김채민을 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하느라 당했던 걸까. 하지만 그럼 뭐 해. 구해 줬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저씨라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구한 걸로 됐다며 만족스럽게 웃었겠지.
…휴가 가지 말걸. 괜히 간다고 했다. 내가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희재야. 너 휴가 좀 써라.’
‘네? 왜요? 싫은데요.’
‘네가 안 쓰니까 밑에 애들이 쉬질 못하잖냐.’
‘누가 쉬지 말래요?’
‘어허. 어차피 너 이번에 승진하잖아. 그 기념으로 어디 좋은 곳 가서 놀다 와. 젊은 애가 맨날 사무실에만 박혀 있고…. 사람도 만나고 그래.’
‘사람은 지금도 실컷 보고 있는데요.’
‘그런 사람 말고!’
결국 아저씨의 등쌀에 못 이겨 휴가를 냈다.
며칠 쉬다가 오면 내 소중함을 깨닫고 우는 소리를 낼 게 분명했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실장님!!’
주먹을 꽉 쥐었다.
손목에서 울릴 리 없는 진동이 계속 울린다. 던전이 터졌다는 긴급 알람. 헬리콥터 아래에서 들리던 비명. 살려 달라는 고함. 살이 찢기는 끔찍한 소리. 그러다가 찾아온 고요. 몬스터들의 울음.
독의 악취와 매캐한 재 냄새.
‘넌 살아라.’
활짝 웃는 얼굴.
유지은이 내게 주었던 아저씨의 인식표는 과거로 오게 된 뒤에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마력 시계에서 생체 반응이 사라진 것보다도 그 인식표가 아저씨의 죽음을 와닿게 했다. 그걸 목에 걸고 다닌 삼십 년의 시간 동안 글자 하나 완성하지 못했었는데.
“잠시 화장실 좀.”
비척거리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입을 틀어막았다.
“······.”
여기서 쏟아 내면 안 된다. 최소한, 이 얄팍한 문 너머에 홍석영이 있는 이곳에서만큼은 안 된다.
“씨발.”
참고 참았던 감정은 욕이 되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더듬거리다가 지갑을 꺼냈다. 익숙하게 지갑 안에서 아저씨의 인식표를 꺼냈다. 조금 전 보았던 것과는 달리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내 것과는 달리.
어차피 난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아저씨한테 돌려줄걸. 그랬더라면 아저씨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얇은 철판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그곳에 있는 너무나도 선명한 홍석영, 이름 석 자가.
오로지 이것만이 내 아저씨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내···
······내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라고 불러 줄걸.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아끼고 있었을까.
결국 한 번도 불러 주지 못했잖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