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67)
전학 수속(4)
놀이방 벽면 하나는 커다란 거울이다. 물론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붙여 놓은 건 아니다. 반대쪽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놀이방이 훤히 보이는 구조다.
3호는 거울 너머를 보았다. 보이는 거라곤 자기 자신뿐이다.
반대편에서는 엄마가 나를 보고 있을까?
오늘 새로운 연구소장이 온다고 했으니 안내 때문에 없을 수도 있다. 평소라면 한 번씩 놀이방 안으로 들어왔을 연구원도 보이지 않는다.
“오빠. 오빠아.”
“어? 왜, 무슨 일이니?”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3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블록을 내밀었다.
“이거 빼 줘.”
“그래. 이리 줘 봐.”
꽉 맞물린 블록을 분리해 주었지만, 여자아이는 가지 않고 여전히 3호에게 매달렸다.
아이는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있잖아, 오빠. 오늘 오빠 생일이라며?”
“어디서 들었어?”
“아까 주사 맞을 때 연구원님이 그러던데?”
“그래?”
어차피 케이크가 나오는 간식 시간이 되면 모두가 알겠지만…. 사실 내키지 않았다. 생일 같은 거 축하해 주지 않았으면 했다. 생일이 지날 때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그만큼 길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작년 생일 때도 이곳에서 딸기가 잔뜩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오늘도 똑같은 케이크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년에도.
“응. 그래서….”
하지만 그런 3호의 심정을 모르는 아이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생일 선물이야!”
여자아이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그렇게 꼭꼭 숨겨 놓은 것치고는 대단찮은 물건은 아니었다. 유산지에 포장된 쿠키 두 개. 어제 간식으로 나왔던 것이다.
“오빠 주려구 어제 안 먹고 챙겨 놨어.”
하지만 이곳에서 어린아이가 구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뿐이다. 오히려 좋아하는 쿠키를 먹지 않고 자신에게 주는 게 기특했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보고 생일 축하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3호는 주위를 살폈다. 놀이방에 들어와 있는 연구원은 없었다.
그래서 3호는 여자아이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소희야. 잘 먹을게.”
오랜만에 이름이 불린 8호는 활짝 웃었다.
3호는 그 자리에서 8호가 가져온 쿠키 하나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쿠키 반쪽을 똑 떼어 주자 내심 먹고 싶었는지 8호는 사양하지 않고 날름 먹었다. 입가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떼 주자 8호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남은 하나는 오빠 다 먹어!”
연구소의 다른 아이들도 나이가 많은 3호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8호는 유독 그게 심했다. 원래 오빠가 있다고 했었던가. 바깥 생활을 기억할수록 힘들어지니 3호는 일부러 그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을 잘 따르는 8호를 보고 있으면 한때 여동생이 가지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딩동.
추억을 방해하는 작은 알람.
“연구원님 오시나 보다. 얌전히 있어야 해. 알지?”
“응!”
8호가 블록을 들고 친구에게 돌아갔다.
소독실이 있으니 놀이방까지 들어오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3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을 흘깃거렸다.
오전 주사 시간은 끝난 지 오래다. 점심도 이미 먹었다. 낮잠 시간이라면 스피커를 통해 알리지 찾아오지 않는다.
새 연구소장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누군가 폐기되는 것이라 여겼을 거다.
문이 열렸다. 방문객의 모습이 나타나기 전, 두런거리는 목소리부터 들렸다.
“여기는 분위기가 좋네요. 아이들 얼굴도 밝고. 좋아요. 아주 좋아요.”
“직전에 바다를 확인하고 왔는데 거긴 영 아니더군요. 죄다 폐기하고 온 터라 걱정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낯선 남녀의 목소리.
“하하. 바다와 저희를 비교하면 섭섭합니다.”
뒤를 이어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저 두 사람이 새로 온 사람인가? 둘 중 누가 연구소장인 거지?
연구소장의 성격에 따라 연구소의 분위기가 바뀐다. 당연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생일보다, 이쪽이 훨씬 중요하다.
3호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보았던 연구소장은 어땠던가.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평이 안 좋았다. 아이들이 싫어했던 건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반항적이었던 1호 누나는 연구소장에게 자주 불려 갔었다. 갔다 올 때마다 1호 누나는 울면서 돌아왔었지.
그래도 다행히 그 연구소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으로 온 연구소장은 바쁘다며 자주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신경은 많이 썼다. 간식 시간이나 낮잠 시간도 그때 생겼다. 악몽을 꾸고 밤에 울먹이며 일어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자 푹신푹신한 인형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이번 연구소장은 어떤 사람일까.
시설을 안내하는 엄마… 연구원의 얼굴이 제일 먼저 보인다.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남녀가 그 뒤를 따라온다.
연구소장을 알아내려던 3호는 정작 그 두 사람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보다 제일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다.
목이 긴 검은색 티셔츠. 두꺼운 재질로 된 검은색 바지. 검은색 군용 부츠. 검은색 가죽 장갑.
그리고, 부리가 긴 까마귀 가면.
처형자. 혹은 감시자.
첫 번째 연구소장을 죽인 남자.
“우으응.”
그 품속에서 하얀 손이 기지개를 켜더니 까마귀의 부리를 턱 잡았다.
작은 남자아이다. 소희, 8호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
아이는 눈을 비비더니 하품을 쩍 했다.
“응… 엄마? 여기 어디야?”
연구소를 둘러보던 여자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구소. 어제 아빠한테 설명 들었지?”
“움….”
“그새 까먹었어?”
옆에 있던 남자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혀를 끌끌 찼다.
“한동안 여기서 지낼 거라고 했잖아.”
“음…. 어! 레고다! 나 가서 놀아도 돼?”
“배는 안 고파? 밥 안 먹고 계속 잤잖아.”
“응. 괜찮아.”
“엄마랑 아빠가 여기 둘러보는 동안 잠깐 놀고 있어. 어디…. 얘.”
여자는 놀이방을 두리번거리다가 3호에게 손짓했다.
3호는 화들짝 놀라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네가 여기서 나이가 젤 많니? 번호가 어떻게 돼?”
“3호… 입니다.”
“잠깐 우리 아들 좀 봐주겠니?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네.”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엄마가 없었어도 얌전히 대답했을 것이다.
연구소장이든 연구원이든. 뒤에 처형자를 데리고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새로 온 두 사람이 아이들이 머무르는 시설을 돌아보는 동안 3호는 아이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처형자는 문 근처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아이는 그새 다른 아이들과 친해져 웃어 대고 있었다.
“안녕.”
“응? 안녕, 형아.”
“난 3호라고 하는데. 네 이름이 뭐니?”
“이름?”
남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형아. 여기서는 이름 물어보면 안 되잖아. 엄마한테 일러도 돼?”
천진하게 웃는 얼굴이 마치 얼음덩이처럼 3호에게 내리꽂혔다.
“장난이야. 근데… 어? 그거 쿠키야? 나 먹을래!”
“어? 자, 잠깐.”
“그거 주면 엄마한테 말 안 할게.”
3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이는 3호의 손에서 쿠키를 가져갔다. 소희가 주었던 쿠키였다.
아이는 쿠키를 크게 베어 물며 말했다.
“이름은 됐고, 난 아마… 아빠가 뭐랬더라. 12호라고 했던가? 12호일 거야. 아님 말구.”
“…….”
12호는 놀이방 안에서 지내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간식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야 어슬렁거리며 놀이방 안으로 들어와서 놀다가 저녁을 먹을 때쯤에 다시 나갔다. 그런 12호의 뒤를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가 졸졸 따라다녔다.
13호와 14호, 15호가 생겨도 12호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12호를 경계하던 아이들은 12호가 바깥에서 장난감과 과자를 잔뜩 가지고 오자 오히려 친해지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3호는.
“형아.”
“…응?”
“과자 맛있겠다.”
12호에게 간식을 양보할 뿐이었다.
여전히 연구소 생활에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새 연구소장은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다. 가끔 먹는 약이 늘어나곤 했지만 그건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게 바뀌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그때였다.
새 연구소장이 죽고, 아이들이 무더기로 들어왔을 때.
새로이 연구소장이 된 전 연구소장의 남편도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12호가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살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
* * *
강태우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젠 아침에 눈뜨자마자 먹는 약도 없고, 씻고 나와서 맞는 주사도 없다.
하지만 아직도 왼쪽 팔이 욱신거릴 때가 있다. 주사를 맞았던 팔이다.
2년 전 연구소를 졸업했다.
폐기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동안 얌전히 잘 지냈던 덕분인지 다른 보육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한참 뒤에야 연구원님이 손을 써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젠 실수로라도 엄마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그보다는 소희가 더 가족에 가깝다.
보육원에서 소희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연구소를 나오면서 다신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먹지 않고 놔뒀던 레몬 맛 사탕을 모두 쥐여 주고 나왔었다.
‘태우 오빠!!’
옛날처럼 가볍게 들지 못할 만큼 컸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학교에서 만들었다며 색종이 꽃을 내밀며 웃는 어여쁜 동생. 내 동생.
이젠 볼 수 없는 동생.
똑똑.
“태우 학생?”
“네, 선생님.”
“일어났니? 준비되면 나오렴.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우희재.
전국새마음정신협회에서 번호를 받았다고 하자 원장님이 기뻐하셨지.
…그 원장님도 지금은 죽었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될까. 미성년자인 건 이래서 불편하다.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육원에서 얌전히 시키는 대로 있을 생각이었다. 연구소와 너무 깊이 관련이 있으니 완전히 나오는 건 무리겠지만 동생을 데리고 조용히 사는 것쯤은 가능해 보였다.
아니면 차라리 더 열심히 일해서 연구소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른 보육원으로 흩어졌을 연구소 동생들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랬었지.
“태우 학생?”
침대 옆에는 하얀색 조잡한 박스가 있다. 각성자 등록을 할 때 받아 왔던 것이다. 보육원에 계속 있었다면 소희와 도망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큼. 네. 금방 나갈게요.”
“그래.”
자신이 보육원을 보지 못하게 막은 우희재와 김채민은 안타까운 얼굴로 자신을 보았다.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엊그제 있었던 던전 브레이크는 그새 잊혔다. 뉴스에서도 1면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고아 몇 명이 죽었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다.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침대가 있는 방이 딸린 병실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여기가 경호가 제일 좋다며 우희재가 데려다주었다. 경호 같은 게 왜 필요한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병실 거실에는 우희재와 김채민은 물론, 처음 보는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강태우의 눈은 그 세 사람을 향하지 않았다. 도심지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옆. 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내가 천천히 몸을 틀었다.
아무렇게나 쓸어 넘긴 머리카락. 듬성듬성 난 수염.
지난주부터 TV만 틀면 나오던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어도 바로 알아봤을 거다.
“강태우 학생. 나는 홍석영이라고 하는데. 혹시 알까?”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
“평소 하던 대로 하고 있잖나.”
“목소리부터 너무 깔았잖아요.”
“교장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좀 표현하지?”
“원래 존경심은 월급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우희재가 코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태우 학생. 지금… 많이 힘든 거 알고 있는데,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네?”
우희재는 강태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이끌었다.
“여긴 홍석영 헌터님. 그런데 지금은 헌터가 아니라 교장 선생님 자격으로 오셨어.”
“…교장 선생님이요?”
“내가 시범고 선생님인 건 말했었지?”
“네.”
“시범고가 어떤 곳인지는 알아?”
“…헌터를 훈련시키는 곳이라고.”
“그래. 잘 아네.”
우희재는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학교에 다닐 생각 없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