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74)
옛날 애들(1)
“폭죽을 만들어요.”
순순진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폭죽?”
“딴건 필요 없고 소리만 요란하면 돼요. 아, 그리고 움직여야 해요. 고블린들이 달리는 통로에는 다른 장애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움직이는 폭죽을 통로에 잔뜩 풀어서 고블린들의 감각을 어지럽히는 거예요. 적당히 기회를 봐서 폭발도 중간중간 일으키면 좋구요.”
“폭죽은 어떻게 만들게?”
“마법사가 둘이나 있는데 왜 못 만들어요?”
“…….”
“…….”
순순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뭐…. 당당해서 좋네. 내가 원하던 건 바로 이런 거였다.
지금 아이들은 숙제 검사를 받고 있다. 고블린 땅굴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그거.
유혜은과 강태우를 제외한 인원수대로 방법을 생각해 오랬다. 난 다 같이 상의해서 일곱 개를 채워 오라는 말이었는데, 정작 애들은 각자 하나씩 할당량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경쟁 심리에 불이라도 붙은 모양인데…. 회복력이 빠른 나이라니까. 침울해 있던 것도 그날 하루뿐이었다. 오후 수업이었으니 반나절도 안 된다.
우울한 얼굴로 뚱하게 앉아 있는 것보단 낫지. 오현욱을 봐라. 쟤 주위만 시꺼멓다. 오죽하면 박서현도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괜찮죠?”
순순진은 콧대를 높이 들었다.
며칠에 걸려서 통과한 아이들도 나왔다. 순순진은 꽤 늦은 편에 속한다.
아이들이 제시한 방법은 완벽하지 않다. 지적할 구멍이 많았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결국 그 공략 가이드 피드백은 다 끝내지도 못했다.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는 애들한테 해답지도 없는 오답 노트를 해 오라고 할 만큼 성격이 나쁘지 않다.
내가 보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의 전략에 얼마나 자신하고 있냐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순순진의 대답은 합격이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날 속였다고 착각하겠지. 그렇게 놔둘 순 없다.
난 유능한 교사니까.
“누구?”
“…네?”
자신감 넘치던 얼굴이 살짝 떨렸다.
“누구한테 물어봤어? 지 헌터?”
“……히.”
순순진은 헤실거리며 웃었다. 작달막한 여자애가 그러고 있으니 화를 낼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화를 낼 생각도 없었다.
“뭐, 됐다. 통과.”
“…왜 그냥 넘어가요?!”
오히려 순순진의 옆에서 이승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물어봐도 되는 거였어요?”
“물어보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헌터님들한테 묻지 말고 하랬잖아요!”
“그건 그 전에 공략 가이드를 작성할 때의 얘기지.”
이승연은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따졌다.
“그럼 저도 물어보고 와도 돼요?!”
“돼.”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이승연의 어깨를 눌렀다.
“앉아라.”
“물어봐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나 몰래 물어본다는 수고 정도는 들이는 게 양심 있는 행동 아니겠냐. 그리고 다선 헌터들에게 물어본다는 방법은 순순진이 써먹었으니 두 번은 안 돼.”
이승연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지.”
“형들한테 물어보면 다른 방법도 알려 줄 텐데!”
얼씨구, 형?
명동에서 이승연이 나보고 뭐랬더라? 아저씨? 열여덟 살에게 서른은 아저씨라고 이해를 해 보려고 했지만 어쩐지 속에서 울컥 올라왔다.
헌터 나이 서른이면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나이 아닌가! 아저씨라 불리기엔 이르다.
…내가 딱 저 나이 때쯤에 유지은을 아줌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유지은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업보를 돌려받고 있군.
나는 이승연을 무시하고 말했다.
“다선 헌터들에게 묻는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너흰 배우는 처지니 프로에게 묻는 걸 부끄럽게 여기면 안 돼. 자존심 세워 봤자 밥 안 먹여 준다.”
“…….”
“던전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대장이 짊어질 필요는 없어. 머리를 맞대다 보면 쓸 만한 방법 하나쯤은 나오겠지.”
이승연은 여전히 입을 쭉 내밀고 있다. 저래서 안 된다는 거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을 번쩍 드는 최진우를 봐라. 들썩이는 엉덩이를 보자 할 말이 대충 예상 갔다.
눈치 빠른 것도 실력이지.
“최진우?”
최진우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폭죽을 만들어요!!!”
“뭐?”
옆에서 이승연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나와 마찬가지로 최진우는 친구의 허우적거리는 손을 무시했다.
“폭죽 만들어서… 이거 말해야 해요?”
“됐어. 통과.”
“아자!”
“왜 이게 통관데요?!!”
이제 고블린 땅굴을 탈출하지 못한 이는 이승연과 오현욱 둘뿐이었다.
이승연은 세상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폭죽은 아까 순순진이 말한 거잖아요!”
“아냐.”
최진우가 옆에서 얄밉게 깐죽거렸다.
“우 쌤이 순순진은 다선 헌터님들에게 묻는 방법을 써먹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폭죽은 안 써먹은 거지.”
“그런게 어디 있… 이건 반칙이죠, 쌤!”
“던전 안에서는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단서가 공략의 키워드가 되곤 하지. 항상 주의를 기울이도록.”
시간을 봤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승연과 오현욱은 내일은 꼭 통과하도록 하고.”
부담감을 너무 주는 것도 안 좋겠지.
요즘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보고 있다. 어차피 홍석영은 신경을 안 써 줄 테니까 아동심리학 책이나 교육학 같은 거.
정말 자존심 상하는 소리긴 한데, 전국새마음정신협회에서 들었던 강의가 의외로 쓸모 있었다. 최소한 초청한 강사는 제대로 된 사람이었나 보다. 정작 거긴 그때 한 번만 가고 말았지만.
방주를 낚아 볼 생각으로 어슬렁거리며 출석했던 건데, 3호를 데려왔으니 나름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가기보다는 방주에서 오는 걸 기다려야 한다.
어쨌든, 책에서 그런 문구가 있었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통과 못 하면….”
그렇다고 무작정 칭찬만 해 줘도 안 되고.
…육아는 너무 어렵다. 강낭콩 키우는 게 편했지.
“못 하는 거지, 뭐. 쉬운 건 다른 애들이 해 버렸으니 너흰 골치 좀 아플 거다.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으니까 스스로 생각해 봐.”
하지만 보상은 확실한 게 좋다.
“너희 둘은 통과하면 스티커 하나씩 주마.”
* * *
“오늘 오후 2시, 홍석영 헌터를 비롯한 헌터 9명이 강원도 철원 인근의 던전 공략에 성공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껐다. 자료 화면이랍시고 나오는 홍석영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였다.
고개를 들었다.
“…….”
“…….”
홍석영이 또 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어, 모처럼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왔는데 한숨이 뭔가.”
“모처럼 왔잖습니까.”
“없어서 허전했어?”
“아뇨. 기왕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 살아날 구석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거든요.”
“거참. 자신감 넘쳐서 좋구먼.”
홍석영은 능숙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이미선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그럴싸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는 카페가 밖에 있는데도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입맛은 그대로다.
그래도 예의상 물어는 봤다.
“밖에 지 헌터가 커피를 만들어 주는데요. 가져다 드릴까요?”
“음? 됐어.”
홍석영은 종이컵에 커피 믹스를 부었다.
“난 이게 더 좋아.”
잠깐의 고요.
찰나의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은 홍석영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새 내 몫의 커피도 탔다.
“애들 수업은?”
“걔넨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어요.”
“그 정도야?”
“댁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자네 점점 말이 험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입니다.”
“착각?”
“네. 착각.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죠. 헛것이 들리기 시작하면 이제….”
“어허.”
홍석영은 장난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커피를 마셨다. 혀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단맛이 기분이 나쁘면서도 안정적이다.
“이 헌터 말 들어 보니 수업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던데? 나 없는 동안은 던전 공략법을 주로 가르쳤다며.”
“애들 싸우는 거야 뭐….”
홍석영이 굴리고, 내가 굴렸다. 픽시 던전의 일이 있고 나서 체감한 게 있었던지 나나 김채민이 제대로 봐주지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다선의 헌터들이 있는 게 도움이 되었다. 시범고에 채용된 건 아니지만 고용주의 조카가 학생이지 않은가. 다선의 헌터들이 수업은 못 해 줘도 전투 훈련은 나름 해 줬다. 어차피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마법사나 헌터나 마찬가지다. 몸 쓰는 방법을 익히는 데에 대단한 스승은 필요 없다. 더 좋고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실력자만 있으면 된다.
“…솔직히 오현욱 정도면 지금도 B급 헌터는 될 겁니다.”
원래, 내가 아는 돼지 오현욱은 시범고를 졸업하고 딱 일 년 뒤. 스물한 살 때 A급 헌터가 된다. 아마 그 시기가 오현욱의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던전을 공략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새끼 돼지의 발전 속도가 그때와 비교해서 빠른지 느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눈부신 재능은 지금도 빛나고 있다. 돼지 오현욱이 자신의 실력을 숨겼던 것이 아니라면 새끼 돼지는 내년쯤 무난하게 A급 던전 통행세를 감당할 수 있게 될 거다.
“근데 여기가 좀.”
나는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홍석영은 모처럼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 담임을 만나러 가던 아저씨의 얼굴이 딱 저랬다.
“지은이가 그러더라고.”
유지은은 갑자기 왜 나오는데?
“목숨 걸고 던전 공략해 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생만 늘어나니까 자기 목숨 자기가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고.”
“…….”
너무 주제넘은 가르침이었나?
아니,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들이다. 던전 안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다 못해 인간 세상에 염증을 느끼지도 않고, 내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만나지 못한 나이.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가르쳐 놔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살아서 귀환한다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삼 년 뒤에 몇 명이나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내가 슬쩍 눈치를 보는 걸 알았는지 홍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잘했네.”
“…….”
“앞으로도 그 모토로 가르쳐.”
“…네?”
이 무슨, 앞으로 자기가 전혀 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게 가장 기본이지.”
“…….”
“가끔 자기가 아니면 이 던전으로 공략할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는 애들이 있더라고.”
홍석영은 혀를 끌끌 찼다.
“이번에도 그런 놈 하나를 구했지. 원래 구출 임무 같은 건 안 하는데, 하도 사정하는 통에.”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아저씨가 저렇게 싫은 티 내는 일은 드문데.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다.
“내 학생들이 그런 골 빈 놈이 되게 할 순 없지.”
“아, 네….”
“그래서 잘하고 있다고.”
“…….”
“…….”
나는 홍석영을 살폈다.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다.
“커피 한 잔 더 타 줄까?”
“아뇨, 됐습니다…. 혹시 이 말 하려고 저 부른 건 아니죠?”
“안 되나? 들어 보니까 요 며칠 동안 다선 헌터들한테 할 일을 많이 떠넘겼던데.”
“떠넘겼다니. 억측이 심하시군요.”
교실 안에서 아이들에게 몬스터 강의를 하고 있을 다선 헌터들을 떠올렸다.
“일을 분담한 거죠.”
겨우 그런 것까지 내가 가르칠 필요는 없잖아.
“홍 선생님이 만든 던전 탐사 매뉴얼도 있잖습니까? 새로운 걸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걸 알려 주는 건데….”
“던전 탐사 매뉴얼을 자네가 어떻게 아나?”
아차.
“헌터들이 얘기하는 거 들었습니다. 애들한테 그런 걸 좀 가르치라고요. 기껏 만들어 둔 걸 왜 다선한테만 줬어요?”
“나중에 다 하려고 했지.”
믿음이 안 가는 말이다. 나는 홍석영의 얼굴을 보았다. 홍석영이 슬며시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며 커피를 마셨다.
…더 믿음이 안 간다.
“어, 어쨌든. 이거나 보게.”
침묵이 길어지자 홍석영은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고 품속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옷 안에 넣어 놔서인지 험하게 구겨진 자국이 있다.
“이건?”
아무 무늬 없는 표지에는 덩그러니 제목만 인쇄되어 있었다.
[현대 룬의 재해석 및 던전 공략과 몬스터 사냥에 도움 되는 다양한 룬]“슬슬 룬을 발표하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