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75)
옛날 애들(2)
[현대 룬의 재해석 및 던전 공략과 몬스터 사냥에 도움 되는 다양한 룬]‘…오래도록 던전 공략에 있어서 등한시되어 온 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기존의 마법으로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대마법사 김채민(등록번호 KR-0148-D1788)이 검증하였으며…’
홍석영이 내게 준 책자에 실려있는 룬은 서른 가지. 이미선이 내게 말했던 대로 마력 가림막 룬은 없었다. 보조 룬에 속하는 지속, 보정, 방수, 증폭, 공명 룬도 하나하나 따로 나뉘어 있었다. 이건 내가 분리를 해 줬으니 기억한다.
설명은 간단하다.
지속. 룬을 좀 더 오래 지속시킨다.
보정. 룬을 보정한다.
방수. 물에 젖는 것을 막아 준다.
간단한 만큼 대충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선이 미리 말해 주었던 거다.
뭐라고 했더라. 이렇게 적어야 꼬장꼬장한 마법사들이 방심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오로지 그 목적 때문에 룬 설명이 죄다 두루뭉술해졌다. 심지어 이미선은 제일 앞 장에 넣을 거라며 효과도 애매하고 최대한 없어 보이는 룬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페이지를 다시 넘겼다.
총명.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을 도와준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이상하게 보이긴 하다.
아니, 그래도 이건 꽤 자주 쓰이는 룬 중 하나였다. 단독으로서는 거의 효과가 없지만 한… 백 개쯤 공명시키면 효과가 꽤 좋다.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을 도와주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지만, 정확히는 마력을 쾌청하게 만들어 준다. 일종의 마력 청정기 같은 역할을 한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도 명상실 같은 데에 설치해 뒀는데, 항상 마법사들이 개다래나무에 홀린 고양이처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물론 뒤의 얘기는 빼고, 룬의 효과에 대해서만 이미선에게 알려 주었다. 이미선은 깔깔 웃음을 터뜨리더니 딱 좋다고 말했다. 뭐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드 사무실에 놔두고 싶은 모양이겠지. 마법사만큼 효과를 보진 못하지만 헌터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여기 적힌 설명처럼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을 도와주겠지.
“그건 견본이네.”
내가 책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자 홍석영이 불쑥 말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나나 이 헌터에게 말하게.”
“아뇨….”
나는 책자를 다시 처음부터 훑었다.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제대로 보게. 작성자 말인데.”
홍석영은 내가 대충 보고 넘겼던 속표지를 펼쳤다.
“지금은 다연과 다선을 적어 놨네. 김 선생 이름도 올려 뒀고.”
“네. 그런다고 얘길 들었는데…? 뭐 바뀐 게 있습니까?”
“아니….”
홍석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네, 그. 아는 마법사. 이름 안 넣어도 되겠나?”
“…아. 그.”
나조차도 반쯤 잊고 있던 설정이었다. 내가 있지도 않는 마법사를 워낙에 팔아먹었어야지. 그사이에 체감상 뭔가 많은 일이 있었다.
귀찮아서 모든 설명을 존재하지도 않는 방주의 마법사에게 떠넘겼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올린 건 프랑스의 대마법사. 종종 국제회의에서 얼굴도 보고 인사도 나누는 사이였다. 지금쯤이면… 글쎄, 무슨 학회를 만들겠다며 고생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안 넣어도 됩니다.”
오히려 넣으면 큰일 난다. 걘 지금도 유명한 대마법사다. 프랑스의 자랑, 낭트의 보석. 아낌없이 주는 대마법사….
“그래도 거, 그런 대단한 룬을 만들어 낸 이 아닌가? 이름이라도 남겨 주는 게?”
볼 때마다 내 양심이 남아나지 않도록?
절대 안 된다.
프랑스의 대마법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를 탄생도 하기 전에 빼앗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게 어쩌고 하긴 했지만 그거야 변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오히려 몇 가지 주요 룬을 일찍 발표하는 격이니 그걸 보고 영감이라도 얻어서 더 대단한 룬, 혹은 마법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쪽이 인류에 더 도움이 되겠지. 마력 가림막 룬을 두 번 만들어 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시간이 절약되지 않는가.
“괜한 시선을 모을 수 있습니다. 방주에서 눈치라도 채면 귀찮아질 테니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보육원을 습격한 놈에 대해서는 뭐라도 찾은 게 있습니까?”
“아. 그놈.”
홍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영… 물 건너에 아는 사람들을 들쑤셔 보기도 했는데 나오는 게 없어. 원래도 소문만 있던 놈이라.”
이미선이 보여 주었던 영상을 되새겼다. 실력을 가늠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건 자동차를 구겼던 순간밖에 없다. 그렇지만 참고 수준이지 이렇다 할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보육원을 습격한 이유도 아직 모르잖는가. 내분이라고 짐작만 할 뿐.
홍석영도 내 말에 동의했다.
“보육원에 남아 있던 데이터를 뒤져도 이거다 하는 건 없다고 하더군. 아, 그래도 후원 재단으로 연계되어 있는 보육원이 꽤 있다더라고. 운이 좋으면 동생을 찾을 날도 머지않았을 거야.”
“…그거 좋네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홍석영은 일부러 큰소리로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얼굴 펴고. 3호는 아직 입을 안 열었나? 뭐라도 좋으니 내부 정보가 더 필요한데.”
“애잖습니까. 아직 눈치 보는 중이죠.”
“어떻게 잘 꼬셔 봐. 그게 선생이 할 일이잖나.”
“선생이라면 애들을 잘 가르쳐야죠. 그건 선생이 학생한테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처럼 들리는데요.”
“우린 정식 학교가 아니라서 괜찮아.”
이게 정말 교장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인가?
내 얼굴에서 뭘 읽었는진 모르겠지만 홍석영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혀를 짧게 차며 홍석영에게 책자를 돌려주었다. 이제 이 서른 개의 룬은 내 손을 떠났다고 봐야 한다.
이 룬을 시작으로 앞으로 헌터사는, 던전 공략은 내가 알던 시간과 완전히 달라지겠지.
홍석영은 내게서 책자를 받아 다시 품속에 넣었다. 나는 사라진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털어 냈다.
“어쨌든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 * *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
“…네?”
강태우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내가 했던 말을 곱씹고 뒤늦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방법을 좀 바꿔 보자.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래요?”
“난 이렇게 배우긴 했는데, 너한텐 안 맞는 방식이야.”
“어….”
강태우는 마력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썼던 방법을 쓰면 안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다.
아주 못 써먹는 방법은 아니다. 강태우는 나와 같이 인공적인 실험의 산물이다. 자연 각성자에 비하면 마력 전도율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헌터로 살 게 아니라면 문제없고, 본인도 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헌터가 되어서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말이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시범고에 입학시켰는데 관리는 해 줘야 하지 않는가. 나도 그 정도의 책임감은 있다. 게이트 지나가자마자 마력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꿈자리가 사나워질 거다.
아저씨는 나를 강제로 마력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나는 마력을 볼 수 있으니 아저씨의 수업에도 어찌어찌 따라갈 순 있었다.
마력에 익숙해진다? 결국 아저씨가 매번 마력을 거칠게 움직여서 날 훈련시켰다는 말이다.
‘전투 훈련도 되고, 마력에도 적응하고! 일석이조 아니냐!’
아저씨가 홍석영이 아니었다면 밤에 자는 동안 목을 따 버렸을 텐데.
어쨌든 마력이 잘 통하는 민감한 몸뚱이도 지속해서 마력에 노출되다 보면 적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태우에게 똑같은 수련을 하기에는… 너무 연약하다. 강도를 낮춰서 비슷하게 흉내를 내 보려고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낙법도 겨우 배웠는데 그 이상으로 강도를 높이면 도망갈지도 모른다.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미연의 사태는 모두 방지해야지.
무작정 눈을 가리고 마력을 피해 보라는 건 역시 아니었나 보다.
“기초부터 다시 해 보자.”
예전에 내가 가지고 놀았던 동전이 있으면 딱 좋을 텐데. 흔들면 마력이 떨어지는 그거.
…홍석영에게 달라고 해 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라고 하면서 달라고 해.
대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마력이 뭉쳐서 손바닥 위에 고였다.
“마력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지?”
“네.”
“넌 나처럼 마력에 민감하니까 지금 제대로 해 놔야 해.”
“마력에 민감하면 안 좋은가요?”
“그건 아닌데…. 신경 쓸 게 늘 뿐이야. 제대로 적응만 하면 오히려 편하지.”
느릿하게 말을 이어 가며 강태우를 보았다.
얘를 이렇게 키우는 게 맞을까? 열심히 가르쳐 놨는데 방주에 홀라당 돌아가 버리면 어떡하냐. 죽 쒀서 개 준 꼴이지 않은가. 심지어 방주는 개만도 못한 놈들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방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방주 내에서 각성자를 어떻게 취급하냐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뻔히 알면서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그래. 역시 방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기본은 가르쳐 놔야 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객사하지 않고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겠지.
“던전에 들어가서 함정 같은 걸 대충 느낄 수 있을 때도 있고…. 네 노력에 달려 있기야 하지만 마법의 발생 위치도 알 수 있지. 마법형 몬스터를 상대할 땐 이보다 유리한 게 또 없어.”
“그렇군요….”
전혀 와닿지 않는 얼굴이었다.
음. 아.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건 하다 보면 알게 될 거고. 몸이 인식하는 마력을 네가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지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 볼 수 있거든. 잠깐 기다려. 필요한 걸 가지고 올 테니까.”
내 것이 아니다 보니 들고 다니는 걸 깜빡한다. 딱히 쓸 일도 없고. 애초에 나는 내 창도 아공간에 박아 두고 안 쓴다고. 그걸 마지막으로 꺼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교무실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가니 소파에 드러누워 이미선의 룬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홍석영이 보인다.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꼴을 보고 있으니 괜히 심사가 꼬인다.
나는 벽에 기대어 놓은 유지은의 검을 들었다. 보기보다 묵직하지만 역시 창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
“검? 그건 왜?”
홍석영이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무리 주인 가리는 놈이라 하지만 너무 아무렇게나 두는 거 아닌가? 누가 훔쳐 가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서 누가 훔쳐 갑니까.”
“또 모르지.”
“훔쳐 가시려고요?”
“어허. 좋은 검이지만 걘 너무 가벼워.”
홍석영은 완전히 몸을 일으켜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 어디에 쓰려고?”
“강태우 학생 가르치는 데요.”
“벌써 검을 들어? 지금 걜 애들 굴리듯 굴리면 고소당해. 설마 걔가 고아라고….”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못 하는 말이 없어. 기겁해서 홍석영을 돌아보자 씩 웃는다. 이 인간이 진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강태우에게 다가갔다. 강태우는 내 뒤에 있는 홍석영을 보자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교장 선생님은 무시해도 돼.”
나는 홍석영을 무시하며 검을 들었다. 검끝에 푸른 불꽃이 일렁거렸다. 시범을 보여 줄 요량으로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선의 헌터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른 불꽃은 불규칙하게 내가 휘두르는 대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마지막으로 검을 털어 버리듯 흔들자 불꽃이 사라졌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강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바닥에 그리는 게 뭔지 맞혀 보도록.”
“…눈을 감고요?”
“떠도 돼.”
나는 바닥에 선 하나를 그었다.
“어차피 보이지 않을 거니까.”
“…네?”
나는 검을 휘둘렀다.
먼저 바닥에 선을 긋는다. 이건 쉽지. 발 앞에서부터 시작해서 교실용 컨테이너 앞을 지나는 커다란 원이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화상 입을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들리게 일부러 크게 말했다.
다시 검을 움직인다. 이젠 익숙해진 푸른 불꽃이 원 안을 채운다.
그리고.
유지은이 하곤 했던 기예 중 하나다. 대충 흔드는 각도를 비슷하게 흉내 내자 다행히 원하는 대로 불꽃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 눈에는 보인다. 일렁거리는 마력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글쎄, 열기 때문에 아지랑이 정도는 보이겠지.
나는 강태우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원 안에 쓰는 글자를 맞히면 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