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78)
학부모 상담(1)
이승연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하나 있다.
이걸 차별화라고 해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윤리적… 도의적으로?
어쨌든 간에, 이승연에게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부르면 하던 일을 제쳐 두고 나올 수 있는 보호자가 있다는 게.
“승연이 일로 이야기하고 싶다고요?”
딱.
이미선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껌을 씹었다. 경박한 소리와 함께 코끝에 달콤한 향이 스쳤다. 껌을 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지.
어깨 길이에서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 헌터들에게서 보기 힘든 정장 차림은 사업가로서의 느낌이 더 강하다. 길드를 운영하고 있다고는 해도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 많지 않은 이미선에게는 그쪽이 더 맞는 설명일 거다.
“네.”
“제 연락처 드렸잖아요? 바로 전화해도 됐었을 텐데. 우리 애들 거치는 게 더 번거롭잖아요.”
“이 헌터님 바쁘실 텐데 제가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우 선생님이 부르는데 바쁜 게 무슨 대수예요?”
이미선은 깔깔 웃었다.
“그리고 승연이 일이잖아요. 우 선생님이 제 얼굴이나 보자고 승연이를 들먹거렸을 리는 없고….”
“…….”
“그냥 들먹거린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시범고 아이들 절반은 홍석영이 마련해 놓은 숙소에서 지낸다. 최진우는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평일에는 숙소에서 지낸다. 부모님이 일하셔서 매일 데리러 올 수도 없고,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피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강태우도 상황이 그렇다 보니 지금은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귀찮지도 않은지 매일같이 등하교를 하는 건 세 명.
한은영과 순순진, 그리고 이승연.
한은영과 순순진의 보호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이승연의 보호자만큼은 확실하다.
이미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내가 연락처를 알고, 이미선의 말대로 전화를 하든 다선의 헌터들을 통하든 언제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이다.
박서현과 오현욱은 학부모 상담이라는 게 불가능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서한성도 오현욱처럼 던전 브레이크 때 부모를 잃었을 거다. 최진우는 부모가 각성자가 아니다 보니 이쪽에 관해서는 홍석영에게 알아서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유혜은과 유지은 자매는 애초에 홍석영이 후견인이다.
자신의 미래와 능력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아이들과 달리 이승연은 자기 미래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는 다정한 보호자가 있다.
이건 나에게도 좋다.
이승연이 시범고를 그만두고 싶어 할 때 설득하는 역할을 떠넘길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꼭 설득해야 하나?
“그럼 무슨 일인가요?”
이게 룬이나 방주에 관한 일이면 모를까 학생에 관한 일이다. 업무라기보다는… 아니, 내 업무라고는 할 수 있는데, 어쨌든. 홍석영이 매번 나와 김채민을 끌고 갔던 것처럼 낡은 호프집에서 이야기할 만한 건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에 이미선을 불렀다. 없는 월급이지만 배려심을 발휘해서 음료수도 시켜 줬다. 앞으로 할 이야기를 생각하면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지.
자기 입으로 자기가 재능이 없다고 떠들어 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학부모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선은 헌터고, 젊은 나이에 이미 한 길드의 마스터이다.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이니 이제 와서 혈연에 눈이 멀어 버리지는 않겠지.
“우 선생님?”
“…이승연 학생 말입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헌터님도 알고 계시죠?”
“네?”
어떻게 서두를 떼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아는 이미선은 지금보다도 더 나이가 많으니까. 그때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 이미선은 사랑하는 조카도 잃은 지 오래였잖은가.
하지만 막상 이미선을 불러다 앉혀 놓고 있으니 그 이미선이나 이 이미선이나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헌터보다는 사업가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 말에 더 부합하는 여자.
이 사람은 이래저래 말을 꼬는 걸 싫어했다.
“이승연 학생은 재능이 없어요.”
“……네?”
못 알아들었을까 봐 좀 더 분명하게 말했다.
“이대로 헌터가 되면 오 년 안에 죽을 겁니다.”
딱, 딱 껌을 씹던 이미선의 입이 멈췄다.
나는 재차 물었다.
“그래도 조카가 헌터가 됐으면 합니까?”
* * *
기존의 시범고 학생 여덟 명.
박서현과 오현욱은 이십 년 뒤에도 현역 헌터로 활약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아저씨가 워낙 꼭꼭 숨겨 놓은 터라 마력 시계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딱 한 명.
일찍이 죽은 이승연에 대한 정보만큼은 넘칠 정도로 많았다. 함께 죽었던 유혜은에 관한 이야기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는데.
물론 열여덟 살에 죽은 어린애에 대한 정보라고 해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신문 기사나… 헌터 아카데미의 전신인 시범고에 남겨진 평가지 몇 장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도 이미선이 거르지 않았나 싶다.
‘촉망받는 인재’
‘헌터가 되어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아이는’
어쩌고저쩌고.
그런 식으로나마 대한민국 헌터사에 한 획을 그었던 아이다.
죽은 아이에 대한 평가는 항상 후하다.
나도 그런 이야기에 속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속았다. 막연하게 재능 넘치는 아이라고. 명동에서 봤을 때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열여덟 살 애가 잘 싸워 봤자 얼마나 티가 나겠는가. 이승연이 각성한 지 얼마나 됐더라? 이 년? 삼 년?
이승연은 D급 헌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
딱 평균 수준이다. 박서현이나 오현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게 평가하는 입장이 되면 걔네가 다 똑같은 D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본기가 없지는 않으니까 시간만 들이면 그럭저럭 평범한 헌터가 되기는 할 겁니다.”
명동에서 아이들을 만났던 것도 벌써 세 달이 지났다. 그 정도 시간이면 다른 건 몰라도 애들 실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처음부터 재능이 확실한 박서현과 오현욱은 제외한다.
최진우는 속성 덕분에 유리하다. 박서현이 남 가르치는 데에 재주가 있다면 쓸 만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다. 애초에 마법사는 마법사가 된 것만으로도 존재 의의가 있다.
서한성과 순순진도 나쁘지 않다. 서한성은 상황 판단이 빨라 허를 찌를 줄 안다. 맨 앞에 나서서 싸우는 건 아직 이를지는 몰라도 전체를 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공략대에는 이런 인재도 필요한 법이다.
순순진은 날래고 자그마한 체구로 쉽게 자신의 기척을 숨기곤 했다. 본인도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애들이 실력이 금방 는다. 정작 순순진은 이승연한테 맞춰서… 아니다. 이건 재능과는 관련 없어 보이니까.
그리고 한은영은… 솔직히 실력 자체는 고만고만하다. 본인도 의지가 없지는 않은데 필사적이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얘는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정보를 분석하는 머리는 있으니 그쪽으로 키우면 오히려 재능이 빛을 볼 거다.
유혜은은 전투가 주력이 아닌 애니까 넘어가고.
남은 건 이승연.
“하지만 이승연 학생이 거기서 만족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더 가면 죽을 겁니다.”
과연 이미선은 어떻게 나올까.
사랑하는 조카가 그럴 리가 없다며 화를 낼까. 아니면 그럼 이제 우리 조카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안달복달 못 할까.
그도 아니라면.
이건 내가 이미선을 시험하는 거기도 하다.
이미선의 조카 사랑이야 유명하지 않은가.
그러니 경계를 알아야 한다. 이미선이 조카에 대해서 어디까지 눈이 멀 수 있는지.
솔직히 나도 떳떳하진 못하지. 이승연을 이용해 먹은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사후 처리는 제대로 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는 걸 어떡하라고!
훈련이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명동에서 내몰았던 게 미안하긴 했으니까 그 정도는 기꺼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선에게 한 말대로, 그랬다가는 이승연은 5년도 안 돼서 죽을 거다. 이승연의 재능이 딱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그걸 뻔히 알면서도 등을 떠밀고 싶지 않다. 명동에서 걜 내몬 건 내가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 이건 내가 평생 쫓아다니면서 도와줄 수도 없잖아.
“제가 보기엔 이승연 학생은 욕심이 있어요.”
우는 얼굴을 끝까지 보이지 않으려고 날 보지도 않던 녀석.
그 녀석과는 달리 나는 이미선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그 욕심 때문에 죽을 겁니다.”
“…….”
“그래도 괜찮습니까?”
창백한 얼굴로 내 말을 듣고 있던 이미선은 테이블 위에 있는 티슈를 가져다가 껌을 뱉었다.
이미선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나도 알아요, 선생님. 모를 수가 없죠. 우리 길드원들 스카우트를 누가 했을 것 같아요? 제가 하나하나 손수 골라 왔어요. 저도 눈이 있는데 제 조카를 모를까 봐요.”
“그럼.”
“승연이도 알고 있을 거예요. 시범고 들어가서 또래 애들이랑 부대끼면서 더 잘 알고 있을걸요? 요 며칠 동안 걔 얼굴이 심상찮기도 했고.”
“그러면.”
“하나 말씀드리는데, 저는 승연이가 시범고에 들어가는 거 반대했어요.”
“…….”
“솔직히 헌터가 되는 것도 말리고 싶었어요. 걘 왜 각성했나 몰라. 아니, 각성했어도 헌터가 될 만한 마력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선은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의외의 말이다. 이미선의 얼굴에는 조카의 고집을 들어주다 못해 지쳐 버린 고모의 피로가 날것으로 묻어 있었다.
“승연이가, 어릴 때 순진이랑 많이 놀다 보니까… 그, 헌터에 대한 동경이 좀 있어요.”
“순순진 학생이요?”
“순진이 아빠가 헌터거든요? 헌터기는 한데, 공략하러 다니진 않고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승연이 할아버지 경호원이에요. 승연이가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서 지냈는데, 순진이랑 나이가 같다 보니 같이 많이 놀았거든요.”
이승연과 순순진의 친근함이 이해가 갔다. 이미선이 순순진을 후원하고 있어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소꿉친구라고 보면… 친할 만하지.
“근데 순진이가 어릴 때 각성했거든요? 열 살 때였나. 같이 놀던 친구가 하룻밤 사이에 힘도 엄청 세지고 달리기도 빨라지니까 얘가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
“당연히 자기는 언제 각성할 수 있냐고 찡찡거리기 시작했죠.”
나는 가만히 이미선의 말을 들었다.
이런… 평범한 아이의 사고방식은 잘 모르겠다. 이미선이 알아서 말해 주고 있으니 그냥 얌전히 듣기나 하자.
“순진이도 옆에서 멋있다고, 자꾸 해 보라고 하니까 자기 아빠한테 배웠던 걸 승연이한테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했던 거예요.”
“아, 그래서.”
“네. 승연이랑 순진이 움직임이 비슷하죠? 그거 승연이가 순진이한테 배워서 그래요.”
쌍둥이처럼 닮아 있던 이승연과 순순진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항상 이승연이 순순진보다 한 박자씩 늦었다. 아니, 처음에 움직일 때는 늦었지만 훈련을 하는 도중에는 딱 맞아떨어진다.
순순진이 이승연의 속도에 맞춰서 느려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야 어차피 승연이가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겉모양만 흉내 내니까 그냥 놔뒀죠. 애들 노는데 끼어들기도 그렇잖아요.”
이미선의 목소리에는 깊은 후회가 묻어 있었다.
“이게… 승연이가 각성하고 나니까 말이 달라지더라고요. 각성하고, 흉내만 낼 수 있던 걸 할 수 있게 되니까 승연이가, 좀, 불이 붙었나 봐요.”
“…그걸 그냥 놔뒀습니까?”
“처음에는 둘이서 사고 칠까 봐 저나 순진이 아버지가 봐줬죠. 솔직히 잠깐 하고 말 줄 알았어요.”
잠깐 하고 말기에는 이젠 너무 멀리 왔다.
“순진이를 홍 헌터님한테 맡기기로 했을 때, 이승연 고게… 몰래 홍 헌터님을 찾아가서 자기도 시범고에 넣어 달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홍 선생님이 그래서 넣어 줬어요? 이승연 학생을?”
“안 넣어 줬으면 지금 승연이가 시범고에 있었겠어요?”
“…….”
뭔가, 머릿속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맞아떨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