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81)
습격(2)
꿈 많은 아이에게 현실을 가르쳐 주는 일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아니, 근데 솔직히 열여덟 살이면 슬슬 현실의 쓴맛에 대해서도 그럭저럭 아는 나이 아닌가?
아냐? 아니면 어쩔 수 없지….
하긴 열여덟이면 미성년자다. 스무 살을 넘긴 성인이었다면 알아서 크라고 일갈했을 텐데. 하지만 이승연은 아직 학생이고, 보호자의 관심이 필요한 나이이며…
내 학생이다.
내가 원해서 된 교사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걔가 잘못되면 책임이 나에게 돌아온다.
그냥 무릎이 조금 까지고, 마음에 스크래치가 살짝 나는 정도라면 나도 이렇게까진 안 한다.
하지만 이건 사춘기의 방황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되는 순간 죽는다. 만약 내게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눈앞에서 사람이 뻔히 죽는 길을 걸어간다면 훈수 한두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의 도리다.
그리고 그건 이미선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이미선이 대단한 성인군자라는 소리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에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웃기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어린애를 돕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게다가 이미선은 이승연과 가족이잖은가. 사랑스러운 고모와 귀여운 조카.
“그러니 역시 이 헌터님이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가족한테 듣는 편이 충격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가족한테 들으면 오히려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죠. 오히려 선생님께 객관적으로 전해 들어야지 납득이 빠를 거라구요.”
한 발자국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물러나는 순간 지는 게임이다.
“귀여운 조카잖습니까. 고모가 돌봐 줘야죠.”
“생명의 은인인 선생님이잖아요.”
“그게 이 일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고모라고 애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진 않거든요!”
이 설전 아닌 설전의 기반에는 단 하나만 존재했다.
다시 말하지만,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꿈꾸는 아이에게 현실을 일깨우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난 제대로 된 인간이고, 열심히 하는 애한테 넌 재능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하는 정 없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좋습니다.”
이래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대화는 계속 도돌이표였다.
아니, 이미선을 불렀을 때는 그래도 진지하게 학부모 상담을 해 보려고 했는데. 아저씨와 얘기하던 담임 선생님 흉내도 내 봤다고.
왜 마무리가 이 모양이지.
이미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이 얘기하시려고요?”
“아뇨.”
낙폭이 크다. 이미선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 여자도 못 쓰겠구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잖습니까. 그 사람한테 시키죠.”
잠깐 어리둥절해하던 이미선의 얼굴에 이해의 빛이 번진다.
“홍 선생님이요?”
“입학 받아 준 게 홍 선생님이라면서요?”
그럼 홍석영한테 시켜야지.
그래. 홍석영이 해야 한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원래라면 이미선에게 조카의 부고를 전해야 하지 않았는가? 부고보다는 자퇴 권고가 훨씬 낫다.
음. 역시 이런 예시는 인간적으로 좀 그렇나?
어쨌든 여긴 학교도 아니니 자퇴도 아니다.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면 끝날 문제지 않은가. 본인이야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침울해할 수도 있지만 뭐든 죽는 것보단 낫지. 게다가 그 와중에도 아득바득 어떻게든 해 보려고 이미선 몰래 홍석영에게 시범고 입학 허가까지 받아 낸 걸 보면 걘 뭘 해도 될 애다.
…이건 진심이다.
“어머나. 그렇네요. 생각해 보니까 그래요. 따지고 보면 이게 다 홍 헌터님 때문이잖아요. 당연히 홍 헌터님이 하시는 게 이치에 맞네요.”
이미선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진다. 이미선은 품속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내 손바닥 위에 기울였다. 달짝지근한 향이 풍겨 왔다.
이미선은 내게도 통을 흔들었다.
“선생님도 씹으실래요?”
“아뇨. 금연이라도 하십니까?”
“아이참. 그땐 제가 어렸었죠.”
“…….”
진짜야?
“제가 던전에 자주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번듯한 헌터 노릇을 하게 될 줄 알았으면 안 피웠어요.”
“아, 네….”
“담배는 몸에 냄새가 너무 배서요. 몬스터들이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니까요.”
“그렇겠죠….”
한동안 담배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던 이미선은 아차, 하는 얼굴로 시계를 보았다.
“벌써 이 시간이네. 승연이 걔, 친구들이랑 논다고 하긴 했는데.”
“친구랑 논다고요?”
“안 놀겠죠?”
“안 놀겠죠.”
교실에서 그러고 뛰쳐나갔는데 퍽이나 애들이랑 놀겠다.
이미선은 멋쩍게 웃었다.
“어디 이상한 짓 할 애도 아니고. 저랑 같이 들어간다고 했다고 하니까 괜찮아요.”
“애나 잘 달래 주세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설득하라고요?”
“하면 좋고요. 아니면 말고.”
이미선은 나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뭐, 당장 급한 불은 하나 껐고.
그럼 덜 급한 불도 이야기해 볼까.
“그러고 보니.”
“네?”
“그 룬 말입니다.”
“어, 혹시 고칠 부분 있어요? 홍 헌터님이 없다고 했는데?”
“네? 아뇨. 내용은 그만하면 됐습니다. 발표를 언제 하는지 들은 적이 없어서….”
이미선은 눈을 두 번 깜빡였다.
“…했는데요?”
“…….”
“못 들으셨어요?”
“…했다고요?”
이미선은 휴대폰 화면을 조정하더니 내게 내밀었다. 국내 기사.
‘지난 15일, 길드 다선이 룬에 대한 획기적인 발견을…’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했다고요.”
“별말 안 하시길래 아시는 줄 알았죠…. 혹시 아직 발표하면 안 됐었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어차피 타이밍은 이 헌터님께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냥, 이걸 제가 몰랐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어서요.”
나는 내 휴대폰으로도 검색해 보았다. 기사를 그대로 베껴 온 것인지 이미선이 보여 준 기사와 비슷한 기사가 몇 개 더 있을….
나는 이미선에게 물었다.
“이 기사, 다선에서 뿌린 겁니까?”
“우 선생님 사회생활 너무 잘 아신다.”
“…….”
하지만 그것치고도 이상하다.
기사가 너무 적다. 대부분이 같은 날짜에 나온 것이다. 검색 결과를 훑어보아도 다선은 돈이 남아도냐며 왜 룬 같은 걸 연구하냐는 반응 몇 개가 전부였다.
“다선에서 언론 통제도 합니까?”
“우리 길드를 좋게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외 사이트도 훑어보았다. 홍석영이 보여 준 책자에는 영문 버전도 있었으니까.
이미선이 국내에만 발표하지도 않았을 테고.
해외에서는 국내보다는 반응이 조금 더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대부분 비웃음뿐이었다. 한국 길드가 이상한 짓을 한다, 시간 낭비다, 이런 효과는 우리 집 고양이를 토템 삼아도 볼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이미선을 보았다. 이미선은 싱긋 웃었다.
“생각한 반응이 아니에요?”
“…뭐.”
“격렬한 반응을 원했다면 설명을 그런 식으로 쓰진 않았을 거예요.”
처음에는 비교적 조용히 흘러가도록 할 거라고 했었지.
“마법사들한테 룬도 있었구나, 싶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김 헌터가 해외에서도 꽤 유명해서 다들 한 번 정도는 들여다볼 거에요.”
“그때 다른 룬도 공개하려고요?”
“비슷하죠. 제일 좋은 시기가 언제인지 가늠하고 있거든요.”
“…그땐 저한테 꼭 알려 주길 바랍니다.”
“제가 안 알려 준 게 아니라니까요? 전 홍 헌터님이 알려 줬을 거로 생각했어요.”
이미선을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음… 승연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부터 찾아야겠어요. 선생님도 같이 갈래요?”
“제가 가 봤자 뭐합니까.”
“그래도 승연이가 선생님 많이 좋아해요.”
“그거야….”
그걸 노리고 그런 방법까지 써 가며 구해 줬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선은 그걸 뭐라고 받아들였는지 작에 웃으며 나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은 수업 다 끝나면 뭐 해요? 취미 같은 거 만들었어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침대에 누워 마력 시계만 뒤진다. 방주에 대한 자료를 뒤지고, 혹시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시범고 학생들에 대한 것도 겸사겸사 찾아본다.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우연하게라도 발견하면 좋으니까.
카페를 나와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이미선은 내 옆에 따라붙었다.
이미선은 한 손으로 휴대폰을 조작하며 말했다.
“건물 올릴 때 교사 숙소도 같이 만들어 줄게요. 그럼 지내기 훨씬 편할 거예요.”
“건물 진짜 세우긴 합니까?”
“내년 신입생 받을 때는 번듯하게 학교 모양을 하고 있어야죠.”
“학교로 인정부터 받고 말하죠.”
“그건 문제없어요.”
이미선은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이승연, 이게 전화를 또 안 받네.”
“친구랑 놀고 있나 보죠.”
“아깐 안 놀 거라고 했잖아요?”
“애들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미선은 이승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저 나이 때 고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수도 있지. 나도 아저씨 전화를 피한 적이 많다. 어차피 집에 가면 얼굴을 보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이미선의 목소리가 흩어진다.
나는 바닥을 보았다. 마력 알갱이가 굴러다닌다. 이렇게 바닥 근처에 있는 애들이 아닌데. 마력은 가볍다. 보통은 내 눈높이보다도 조금 더 높게 흘러가는데.
게다가 색이 진하다. 옅은 붉은 기를 띄고 있는 마력. 누군가가 마력을 움직이고 있다.
…누가?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젠장. 유지은의 검. 내 숙소에 그냥 던져 두고 나왔는데. 어차피 나밖에 못 잡는 검이라 보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두고 다녔다. 유지은이 알았더라면 미친 새끼라며 욕을 퍼부었겠지.
“이 헌터님.”
“승연이가… 네?”
“무기.”
“네?”
“무기 있죠? 아무거나 하나 줘 봐요.”
이미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우 선생님은 모를 수도 있지만, 헌터가 길거리에서 무기 들고 다니면 벌금이거든요. 라이센스가 정지될 수도 있어요.”
“알아요. 지금 좀 급하니까 하나 줘 봐요. 제 검은 두고 와서.”
아공간을 연결한 지갑은 내 주머니에 잘 있고, 그 안에 있는 내 창은 더 잘 있지만 여기서 꺼낼 순 없다.
이미선은 날 지그시 보다가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열었다.
초록색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은색 검. 얇고, 가볍다. 유지은의 검보다 더.
그래도 충분하다.
“왜 그래요?”
“뭔가….”
붉은 마력이 훅 빨려간다. 난 이미선을 두고 마력을 좇았다.
“우 선생님!”
이미선이 서둘러 내 뒤를 따라왔다.
마력을 보고 나서야 이 주위에 이상하게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 건너편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머릿속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재야. 보통 안 좋은 예감은 다 맞아떨어지는 법이거든.’
‘근데요?’
‘그러니까 뭔가 불길하거든 망설이면 안 돼. 뭐라도 해야 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선이 보여 주었던 CCTV와 블랙박스 영상.
그 영상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차림새다. 헐렁한 검은색 옷. 모자. 빨간 단발머리.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건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구겼던 자동차가 아니다. 강태우와 이승연.
“오늘 한 군데 더 가야 하니까… 얘기도 많이 해 줬다, 그치? 빨리 끝내자.”
빨리.
더 빨리.
발밑에 고이는 마력을 지르밟고, 달려간다.
“어?”
놈이 나를 눈치챘다.
동시에 나는 이미선의 화려한 은색 검을 내질렀다. 풍선처럼 모여 있던 붉은 마력에 검 끝이 닿는 순간 팡, 터졌다. 붉은 마력이 피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마력 너머로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너. 뭐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