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89)
꽃 아래(2)
보육원으로 가는 동안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강태우는 별로 입을 열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홍석영은 이미선에게 몇 번 농담을 걸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거리에는 샐러맨더의 흔적이라곤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간혹 샐러맨더의 독의 영향으로 죽어 있는 가로수나 망가진 보도블록 따위가 보이긴 했지만 그뿐이다. 그 외에는 평범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 걸어가는 사람들.
며칠 전 이곳을 채웠던 도마뱀이나 죽은 사람들은 없었던 것처럼.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기분이 이상해졌을 뿐이지.
TV에서는 다시 명동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명동의 상점들이 장사를 시작했다거나, 보상 문제로 소송이 오갔다거나. 피해자들을 위한 촛불과 꽃도 골목 한구석에 단출하게 남았을 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일어났던 던전 브레이크는 과거처럼 재앙이나 끔찍한 참변 따위로 불리지 않았다. 오십여 명의 민간인이 시체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자를 잃은 헌터 하나가 요란하게 난리를 피우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치고는 피해가 적다. 그건 좋은 일이지만 내 기억과 비교하면 관련 대책 마련이 느리다. 사상자가 적으니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홍석영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내가 물소들을 몰았던 덕분인데.
일부러 사상자를 늘리기 위해 피해를 키울 생각은 없지만 관련 법안이 늦어지는 건 생각지도 못한 후유증이었다. 현역 헌터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법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던전 등급 재조정과 던전 관리법은 꼭 있어야 한다. 원래라면 지금쯤 발안이 돼야 했는데.
나는 운전석에 앉은 홍석영을 흘깃 보았다.
명동 브레이크가 끝나고 홍석영이 날뛰는 것도 크게 못 봤는데. 원래라면 뉴스를 몇 번 더 타야…. 애들이 전부 무사하니까 홍석영도 얌전해진 건가?
…잠깐. 설마 이거 때문에 관리청 설립도 늦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럼 곤란한데.
“좋아. 다 왔다. 여기 맞지?”
홍석영은 골목에 차를 세웠다.
보육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에는 밝은색을 이용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수한 지 오래되었는지 희미해지거나 얼룩진 부분이 보였다. 그래도 원래 어떤 그림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들진 않았다. 꽃과 나무, 손잡고 있는 어린아이들.
강태우는 조심스럽게 담을 따라 걸어 정문으로 향했다.
“…샐러맨더 피해 때문에 잠시 닫아 둔 걸로 했어요.”
붕괴한 던전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이상하게 여길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왜 보육원을 닫았냐며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육원 내에서 죽은 아이가 있다는 얘기가 돌아서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가 죽은 건물은 손쉽게 기피 대상이 되곤 했다.
보육원을 닫는 일은 길드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큰일이다. 불가능하다는 일이 아니라,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원장의 명령에 따라 나에게 접근했던 3호의 신변이 이쪽에 있으니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괜히 자극할 필요가 없다.
이미선은 약간의 공권력을 움직여 보육원 폐쇄를 공적인 일로 만들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 기억 속에서도 잊힐 테고, 그럼 보육원을 아예 밀어 버리고 다른 시설을 지을 수 있을 거다. 그 전에 방주에서 움직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그리고 아마 방주에서는 이런 작은 보육원의 처우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엔 너무 바쁠지도 모른다. 알렉스 호프가 여기만 습격했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 시기에는 던전 브레이크가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 틈을 타서 알렉스 호프가, 아니면 그와 함께 움직이는 이들 중 하나가 방주의 부속 조직을 공격했을 수도 있다. 매번 던전 브레이크를 틈타서 공격했다고 하면 어떤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던전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가 죽인 거로 생각할 거니까.
시체에 남아 있는 흔적이 몬스터가 남긴 것과 다르다고 해도.
그런 시대다. 던전 브레이크의 사후 관리만으로도 정부에 손이 남아나지 않는 바쁜 시대.
“컴퓨터는 분석한다고 가져갔지만… 그거 말고는 전부 그대로 있어요. 누가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서 경비도 단단히 세워 뒀고요.”
“그건 전에 말했던 약간의 공권력?”
“경찰이 동네 순찰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업무잖아요?”
이미선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말고도 잘 세워 뒀어요.”
예민한 감각에 보육원 주위로 느껴지는 마력이 걸렸다. 헌터들. 아마도 다선의. 아니면 국제이능협회의.
창문이 까맣게 코팅된 밴에 타고 있는 이들도 있고, 맞은편 빌라에서 느껴지는 이들도 있다. 보육원 내부에 경비를 세워 두는 건 이상하니 주위에 두는 걸로 타협했나 보군.
“손님이 있었습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뇨. 우리가 처음이에요.”
“…전 손님이 아니에요.”
“그래. 그렇지.”
강태우는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모를 거다.
알더라도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거다. 강태우는 주먹을 꽉 쥔 채 보육원 건물을 올려 보았다. 미끄럼틀이 있는 작은 운동장. 여름날, 사람 손을 타지 않자 금방 무성해진 화단. 어쩐지 서늘하게만 느껴지는 보육원 건물.
이미선이 열쇠로 정문을 열었다. 강태우는 잠깐 망설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 * *
어차피 시간은 많다.
홍석영은 일부러 강태우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었다. 동생을 잃은 아이에게 그 정도의 친절을 베풀 자비는 있었다.
강태우는 정문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우희재를 보며 물었다.
“저, 가져올 게 있는데. 그것부터 챙겨도 될까요?”
우희재는 홍석영을 보았다.
이런 것까지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허락이 아닌가.
우희재의 날카로운 눈빛은 허락보다는 동의를 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자기가 거절한다면 금방이라도 아이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였다.
홍석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우희재는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처음 명동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그랬다. 그때도 난감해하는 기색은 있었지만 그간 마주쳤던 범죄자들처럼 홍석영을 무서워하진 않았다. 오히려 귀찮아했다면 모를까.
그래서 홍석영도 처음엔 우희재가 그놈일 줄은 몰랐다. 그냥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사를 받게 했지만 별 탈 없이 풀려났을 거다. 우희재의 신원이 확인만 됐다면 말이다.
조회되는 신원이 없고, 각성자다.
이름을 물어보면 순순히 대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명동에 남아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혼란을 수습하던 홍석영은 나중에야 우희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연락이 끊긴 후배에게 들었던 내부 조력자.
이름은 모른다. 성은 안다. 얼굴도 모른다. 하지만 각성자인 건 안다. 검을 무기로 쓰는 것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방주에서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것도.
김 군이 접촉하기 전에도 방주에서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었다. 김 군이 정체를 들키고 죽었다면 그 자신도 안전을 위해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여겨서 곧바로 실행했을 거다.
아마 명동에서 그렇게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을 거다. 그건 실수였을 게 분명하다. 그제야 홍석영은 당황스러워하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안 될… 까요?”
“…….”
우희재의 눈이 더 사나워진다.
아닌 척해도 아이들한테 약한 구석이 있다. 동생은 나이가 더 어리다고 했는데.
홍석영은 속으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가져올 물건이 뭔데?”
강태우는 미끄럼틀 근처에 있는 화단으로 갔다. 그대로 화단 안으로 들어간 강태우는 나무 아래를 파기 시작했다. 보육원 안에 있는 나무 중 제일 큰 나무다.
“…도와줄까?”
맨손으로 흙을 파는 아이가 안쓰러웠는지 우희재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음. 그러고 보니 우희재에게도 검을 넣을 만한 아공간을…. 아니다. 그건 더 두고 보자.
“아뇨. 깊이 안 묻어 놨으니까 괜찮아요.”
강태우는 팔목으로 이마를 훔쳤다. 각성한 지 오래되지 않은 아이는 아직 더위에 약했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거다.
강태우의 말대로 찾는 물건은 금방 나왔다. 꽁꽁 묶은 비닐봉지. 강태우는 비닐봉지를 풀어 헤쳐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꺼냈다. 그것도 랩에 한 번 더 싸여 있었다.
“뭐야?”
이게 우리에게 줄 정보인가?
강태우는 우울한 얼굴로 랩을 벗겼다.
“소희랑 묻어 놨던 타임캡슐이요. 보육원 나갈 때 꺼내기로 했거든요.”
예정보다 훨씬 이르게 개봉하게 된 타임캡슐 안에는 어린아이들이 미래의 자신에게 썼을 편지와 동전 몇 개와 뚜껑에 스티커를 잔뜩 붙인 틴 케이스가 있었다.
강태우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다가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일어났다.
“가져올 게 하나 더 있어요.”
이번에 강태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아이들의 생활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미선이 시체와 피를 치워 둬서 다행이다. 어린애가 보기에는 좋은 풍경은 아니니까.
그래도 내부는 여전히 깔끔하지 못했다. 죽은 아이들도 있지만 살아 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홍석영은 그 아이들이 방주와 관계없는 다른 보호 시설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걸 확인했다. 그 아이들의 짐을 빼느라 다소 어수선했다.
강태우는 방 하나로 쏙 들어갔다.
하얀색 책상과 분홍색 이층 침대. 크기가 작은 침대를 보면 어린아이들이 지내던 방이다.
강태우는 익숙하게 이층 침대로 올라가 베개를 뒤집어 커버를 벗기기 시작했다. 뭐 하나 싶어서 가만히 지켜보자 베개 속에서 비즈로 만든 조잡한 팔찌가 떨어졌다.
“…여동생이 여기 와서 처음 만든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이 도와주긴 했지만 자기가 처음 혼자서 만들어 본 거라고 엄청 애지중지했거든요.”
강태우는 팔찌를 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더 연습해서 선생님 도움 없이 만들 거라고 했어요. 저한테도 하나 만들어 줄 거라고.”
“…….”
“그랬는데….”
강태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우희재는 난감한 얼굴로 강태우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홍석영도 어린아이를 달래는 재주는 없다.
의외로 나선 건 이미선이었다.
이미선은 분홍색과 빨간색이 섞인 비즈 팔찌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손재주가 좋네.”
“…네.”
“혹시 이거 차고 다닐래? 작아서 네 손목에는 맞지 않겠지만 연장선을 달면 될 텐데.”
“…….”
“누나가 도와줄게.”
누나라니 양심이.
우희재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이미선이 우희재를 노려보았다. 다행히 강태우는 자기 머리 위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우가 이곳에서 챙기고 싶었던 건 그게 전부였다. 타임캡슐 하나와 여동생의 팔찌 하나.
“네 개인 물건은? 내가 그때 챙겨 온다고는 했는데 안 들고 온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아뇨. 필요 없어요.”
여동생의 팔찌를 손에 쥔 강태우는 어째서인지 조금 전보다도 더 자란 듯했다.
아이들의 성장이란.
그게 좋은 일로 성장한 게 아니라는 게 안타까웠을 뿐이다.
강태우는 붉어진 눈가를 벅벅 문지르다가 말했다.
“원장실로 가요.”
“원장실? 거긴 내가 다 찾아봤는데.”
이미선이 눈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다 안 봤어요.”
그러나 강태우는 이미선의 말을 부정했다.
“아직 안 본 곳이 있어요. 전 알아요.”
오